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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 20-22> 함께 주안에서 성전되어 가고
<지난주 말씀요약> 지난주에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들의 모습과 후의 모습을 알아 보았습니다. ① 허물과 죄로 죽었고, 세상 풍속을 따랐으며,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하는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랐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습니다 (엡 2:1-2). 아멘
② 물과 기름과 같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원수와 같은 담을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심으로 친히 허셨습니다. 둘을 나누게 한 법조문으로 된 계명을 폐하셨습니다 (엡 2:14-15). 구약을 다 폐하신 것이 아닙니다.
③ 그래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한 몸, 한 새사람을 만들어 하나님과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엡 2:15-26).
④ 그래서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성도와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엡 2:19). 오늘날 우리들도 이방인과 유대인과 같은 관계가 많습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화목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화목하게 되어 교회된 우리가 어떻게 성전으로 거룩하게 지어져 가는지를 “함께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 성전이 되어져 간다는 것은 교회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는 거룩한 전으로 되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벧전 2:5)
1.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터가 필요합니다> - 예수님의 역할
① 먼저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습니다 (2:20) (터,기초, 데멜리오)
[표준새]엡 2: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공동번역]엡 2:20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 사도와 선지자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기초, 신앙의 기초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터와 같은 신앙의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계 21장)
건물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기초가 있어야 되듯이, 성전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튼튼한 터,기초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기초)
▶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냐 아니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초기부터 진리의 말씀으로 기초가 잘 놓아져야 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건물이 올라가다가 무너집니다. 변형이 생깁니다. 단추를 잘 못 끼는 것과 같습니다.
▶ 이 관계를 고전 3:6-17절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 (기초를 세우는 일)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게 하신다 (6-7절)
내가(바울이) 지혜로운 건축자 같이 터를 닦아 두었다(10)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다 (11절)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그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터는은 기초돌, 모퉁이돌,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엡 2:20절의 원어를 보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남성, 복수형이고, 터 (데멜리오)는 중성,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정리하면, 사도와 선지자들은 그 터를 닦아 준 분들입니다 (고전 3:10). 사도와 선지자들은 심고 물주는 역할입니다. 터는 오직 한분, 단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의 기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3:11). 다른 것 위에 세워지면 이단이든가 다른 종교입니다 (고전 3:10)
② 엡 2:20절에, 예수님은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행 4:11절과 시 118:22절, 벧전 2:7절에서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시 118: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사 28:16절에서는 견고한 기촛돌이라 했습니다.
[사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NIV. NKJV에서는 the chief corner stone입니다 (머리이신 모퉁이돌)
▶ 예수님에 대하여 모퉁이돌, 머릿돌, 기촛돌의 세가지 단어가 사용된 것은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석이 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릿돌이 되시며, 모퉁이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 모퉁이 돌은 인접 벽고 벽을 연결하는 기능도 있다고 하니 이방인과 유대인을 연결하는 돌이며, 한 구석 모퉁이(corner)에 있으니 겸손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머릿돌, 모퉁이돌, 기촛돌 되시면서 일반 돌처럼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산돌 (LIVING STONE)이십니다. (벧전 2:4-5)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생명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이며,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기도 합니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 <건물 하나하나가 강건해져야 합니다> - 성령의 역할
▶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 집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속 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강할 때 건물이 튼튼해 지는 것입니다 (3:16)
벽돌을 구우면 강도가 높아집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그들이 굽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불로 구워져야 합니다. 벽돌이 무르면 무너지거나 물이 새거나 도둑이 뚫고 들어옵니다.
3. <기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 성령의 역할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집니다.(엡 4:16),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납니다 (벽돌이 빠집니다) 사랑으로 교회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육신적인 사랑으로 친구의 사랑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연애하기 위해서 오는 것, 친구 만나기 위해서 오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4. <이제 성전이 되기 위하여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 성령의 역할
마치 벽돌이 연결되어 집이 지어 지듯이 말입니다.
모퉁이돌,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예수님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갑니다. 교회의 지체된 우리가 건물로서 서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연결: 원어에 레고라는 어휘가 있음, 결합(상합) : 함께 가다. 수동태, 현재형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 연합과 결합은 같은 단어, 쉼비바조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이 거하는 전이지만 또 그들이 서로 주 안에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주적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① 이렇게 연결되어 결합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현재형)
성전을 짓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것도 지성소에 하나님의 임재를 위함입니다.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임재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이루는 지체, 곧 건물들이라면 그 모양도 색깔도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개성이 다른 재료로서 건물을 짓는다면 색깔도 모양도 부조화를 이루겠지만 주안에서 지어지는 집이므로 조화로운 집이 아름다운 집이 될 것입니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말입니다. 이런 집이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천국갈 때까지 지어질 것입니다.
▶ 계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과 같이 다양한 보석과 같이 만들어져 갑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각각 다른 색깔의 귀한 보석들입니다.
성은 정금이요 성곽의 기초석은 12보석으로, 성곽은 벽옥으로 성의 길은 유리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은 자가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각종 보석으로 지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 천상교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계 21-22장).
▶ 지금 얼마나 지어지셨나요. 교회를 이루는 지체, 건물로서 준비가 되어져 있습니까? 집은 결코 벽돌 하나 혼자 안됩니다. 모여야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내가 단단하지 못하다면, 믿음이 강하지 못하다면 그 부분이 약해 세상 빗물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빠지거나 물이 샐 것입니다.
②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십니다 (4:3). 이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 the bond of peace (평안의 본드)
마치 시멘트와 같이, 접착제 본드 처럼 성령께서 각 지체, 건물을 결속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안의 본드입니다. 건물이 서로 붙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부조화가 없이 잘 맞아 들어가는 평안한 모습입니다. 서로가 잘 맞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이루는 옆에 분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평안입니다.
③ 함께 연결되고 결합되어 성전으로 지어질 수 있는 것은 한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피를 수혈할 때 A,B,O,AB형이 서로 맞아야 합니다. 다른 형의 피를 수혈하면 죽습니다. 이렇게 도저히 함께 할 수 없고 섞일 수 없는 너와 나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흐르게 하셔서 함께 몸된 성전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O,A,B,AB형이 아니라 J형입니다 (예수님의 피)
같은 예수님, 한분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도 한분이라 했습니다 (엡 4:5). 예수님이 한분이시므로 당연히 같은 성령님입니다. 소망도 같습니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입니다 (고전 12:12-13). 우리는 다르지만 이제 완전하게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하나 되지 못하고 교회공동체를 헤치는 것은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무너뜨리는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 같은 주, 같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기초가 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령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에게 다른 영이 역사한다고 보면 됩니다.
화목하여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지 아니면 교회공동체를 헤치는 자인지 자신을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5. <건물마다 각 기능이 있듯이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기둥은 기둥대로, 벽은 벽대로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처럼 우리들도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① 4:7절,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나는 은사가 없다가 아닙니다. 정말 그가 없다면 그는 교회, 성전의 지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물의 분량대로 주시기에 종류가 다르고 그 크기도 다를 수 있습니다.
② 엡 4: 11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오중직임)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이것은 직임이요 은사입니다. 이렇듯 각자에게 직임, 은사를 주십니다. 이것은 건물의 각각의 기능과 같습니다.
벽이 벽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 지체가 그 직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리고 혼자 다 하고자 하면 그 건물은 분명히 문제가 생깁니다. 불구가 된 것입니다. 건물로 본다면 누수가 되거나 기울거나 심하면 무너진 것입니다.
물이 샌다는 것은 틈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며, 세상의 물이 스며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세상의 것으로 젖습니다. 교회가 교회 기능을 못하면 결국 예수님은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깁니다 (계 2:5).
이 부분에 대하여 고전 12장에 잘 나와 있는데, 상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말씀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③ 이런 은사를 각자에게 주신 것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4:10)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므로,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로 교회에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교회가 충만해지면 교회가 세상에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로 채워져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세상에는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④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입니다.
각 지체가 역할을 할 때 건물의 제 기능이 발휘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오직직임이 교회에 풀어져 성도를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고전 14:4) 봉사도 하십시요. 영의 양식만 먹고 그냥 있으면 온전한 신앙이 아닌 불구가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약 2:17). 행함이 없으면 말씀이 사탄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마치 돌밭에 떨어진 씨를 새들이 먹어 버리는 것과과 같습니다.(마 13:4). 말씀이 삶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행함으로 말씀을 소화하고 이루는 것입니다.
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기 위함입니다.
개인과 교회의 영적 성장의 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12절에 온전한 사람이 된 상태입니다. 14절에 아이와 대조되는 말입니다. 15절에, 그에게까지 (그리스도)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아이와 같이 자라지 못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30-33세에 공생애를 하신 것은 장성한 분량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영적으로는 어린아이가 많습니다.
꿈을 통해서도 안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어린 아이는 항상 아이로 나타납니다.
제 꿈의 스코프 속에 여러분들이 다 있을지 모르니 빨리 자라세요. 영의 양식을 먹어야 자랍니다.
<맺음말>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의 성전의 건물로서 제대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벽돌이 빠져 나올 것 같이 덜렁 덜렁 합니까?
성령의 본드로 단단히 붙여져 있습니까? 사랑으로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습니까? 몸이 레고처럼 잘 맞추어져 하나되어 있습니까? 같은 성령을 소유합니까? 같은 믿음을 같은 세례를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다른 하나님을 믿지 않으십니까? 혹시 다른 영을 따르지 않습니까? 어느 한 가지라도 자유롭지 못하면 다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리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함께 온전한 성전을 지어져 가는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입니다. 여기까지 이루어 결국 저 천국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