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 2009.06.21 (일요일), 08:00
♧ 날 씨 : 비온 후 갬
♧ 산행코스 : 입석⇒(2.1km/1시간40분)경일봉⇒(1.2km/1시간)
자소봉⇒(0.7km/25분)뒷실고개⇒(0.8km/25분)
청량사⇒(1.2km/30분)입석
장마전선이 북상하는 관계로 새벽까지 비가 내리고, 곳에 따라 소나기가 쏟아질 것이라는 기상대의 일기예보 때문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좋은 계절에 명산을 찾아가는 기대감으로 그대로 강행하기로 하고 출발했다.(08:10)
신대구고속도로를 경유 중앙고속도로에 이르는 동안 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시야를 가리는 등 불규칙한 날씨가 몇 번인가 반복되면서 마음을 졸이게 하기도 했지만 푸르른 6월의 산야를 가슴으로 품으면서 신나게 고향 길을 달리는 상쾌함이 있어 근심은 곧 사라지고 넘실대는 즐거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의성을 지나 남안동 I.C를 통과하여 양반의 고장 안동 시내를 달리니 아직 왠지 거역하지 못할 무언가가 곳곳에 서려있는 듯 선비의 기개가 충만하다. 유명한 문화재 안동하회탈 공연이 개최되고 있는 문화재전시홍보관 앞에서 좌회전하여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서원 방향으로 가다 삼거리에서 다시 청량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곳곳에 가슴높이를 넘나드는 푸른 잎의 담배 밭이 보이고, 수확한 담배 잎을 건조시키는 흑벽돌로 지어진 재래식 건조실이 정겨운 농촌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심한 가뭄으로 밭작물들이 시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안동에서 24km 정도 2차선 시골길을 따라 북상하면 청량산 입구 청량교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면 '淸凉山'이라 크게 새긴 도립공원 표지석이 반긴다. 그 돌비석 뒤에는 퇴계 선생이 지은 '청량산가'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퇴계가 이곳에 은거해 있음이 뭇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저어해서 지은 노래라고 한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로다
백구가 훤사(喧辭)하랴마는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부(魚舟子)가 알까 하노라」
차도를 따라 동쪽을 향해 올라가면 왼편에 식당 겸 민박집이 두어 채 있고, 그 옆에 청량사로 올라가는 좁다란 시멘트 포장길이 있다. 그리고 맞은편엔 청량폭포가 시원하게 맑은 물을 토해내고 있다. 거기서 직진해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편에 육각정자에서 청량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고 안내간판이 서 있다.
다행히 날씨는 화창하게 개여 있고 놀랍게도 산행인들을 수송한 대형버스 수 십대가 이미 곳곳의 주차장을 꽉 메우고 있다.
도립공원표지석에서 차로 5분 정도 올라가면 길가 오른편에 '입석'이라는 바위가 있고, 왼편에 등산로를 알리는 큰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이 청량산 산행의 일반적인 산행기점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시간관계로 기존의 3코스와 4코스를 적절히 안배하여 입석⇒(1.2km/30분)응진전⇒(1.2km/1시간)자소봉⇒(0.7km/25분)뒷실고개⇒(0.8km/25분)청량사(청량정사)⇒(1.2km/35분)입석으로 원점 회귀하는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CBA 산악회 등산코스(5.1km)를 별도로 준비했다.
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과 명호면, 그리고 안동시 예안면과 도산면에 걸쳐 있고,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경상북도 도립공원이다. 산줄기는 경북의 동북부 고산지대에서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일월산(1,218m)에 그 맥이 닿아 있고, 낙동 정맥의 주류에서 벗어난 지맥에 속해 있다.
산의 주변에는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온 낙동강 상류인 명호강이 감싸 흐르고 있으며, 곳곳에 깎아지른 층암절벽의 괴이한 암봉들이 어우러져 있는 전형적인 암산이어서 청송의 주왕산, 진안의 마이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寄嶽)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세 산은 모두 석질마저 비슷해서 마치 불량 레미콘처럼 바위 속의 자갈이 그대로 드러나는 퇴적암의 일종인 역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중국에 유학하여 중국의 청량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얻어 귀국할 때 문수보살이 '너희 나라에도 청량산이 있느니라'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그 청량산을 찾다가 오대산이 청량산인 줄 알고 거기에다가 적멸보궁을 짓고 정골사리(佛頭骨片)를 모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자장율사가 봉화의 작은 산에 들렸을 때, '아! 이 산이 청량산이거늘' 하고 한탄을 했다고 하여 그 이후부터 이 산이 청량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근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간단한 점검을 마친 후 산행에 들어간다. 산행들머리부터 인산인해다.(11:30) 한 줄로 서서 앞사람의 머리만 쳐다보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고, '응진전 0.6km, 20분'이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직진하는 길은 청량사(내청량사)로 바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 급경사 오름 길로 올라가면 응진전(외청량사)으로 이르게 된다. 응진전을 일명 외청량사라 하는데,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청량사와 더불어 창건한 청량사의 암자이다. 금탑봉(620m)을 배경으로 절벽 중간에 지어져 있으며 경관이 뛰어나다. 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의 절벽이고 맞은편엔 축융봉(845.2m)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만만찬은 비탈길이지만 산행은 자신의 스페이스대로 가야하는데 산보를 하는 듯한 속도에 지쳐버리고 말 것 같다. 응진전에 도착하니(11:50) 경관이 정말 장관이다. 응진전 뒤 절벽에는 방금 떨어질 듯 위태위태하게 얹혀 있는 한 아름 크기의 바위가 있는데 이름하여 '동풍석(動風石)'이라 하며, 암자 동편 절벽 아래에는 시원한 석간수가 있어 물맛이 좋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 것 같은 그야말로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쳐다보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은 부엉이바위를 얘기했다. 무상하게도 사람은 가고 없는데 사연은 남아 이렇듯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응진전에서 금탑봉 산허리를 돌아 서·북쪽으로 10분 정도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면 금탑봉 아래 수줍은 듯 숨어 있는 샘이 있는데 최치원이 마시고 한층 총명해졌다고 해서 샘 이름이 '총명수(聰明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말라버려 샘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어서 어풍대(御風臺)다. 청량산의 빼어난 풍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아래로 청량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청량사와 그 주변을 둘러보면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봉들이 절을 둘러싸고 있는 듯, 그 모습에서 참으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의 봉우리들이 연꽃잎이라면 그 가운데 수술 자리에 청량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0여명의 일행을 추월하기로 하고 선두에서 속도를 내어 비탈길을 오른다. 곳곳이 암벽으로 이루어진 된비알이라 오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비를 핑계로 오늘 산행을 포기하고 집에 있었으면 정말 후회막급일거라는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오르니 땀은 비 오듯 하고, 조금 더 동쪽으로 구부러지는 길로 전진하니 청량정사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오른편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초막을 짓고 서예에 정진했다는 경일봉 아래 김생 굴로 가게 된다. 오르막을 오르니 반갑게도 그늘진 쉼터가 기다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12:14) 오이랑 과일과 생수로 재충전을 하고 한 컷 추억을 남기고 다시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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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굴 가는 쉼터에서. 12:14)
모두들 이곳이 처녀 산행이라 길이 익숙지 못한 탓으로 경일봉을 두고 자소봉쪽으로 가고 만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계속되는 오르막을 올라 능선을 하나 넘으니 철계단이 기다린다.(12:33) 비가 내린 탓으로 길이 미끄럽고 체온과 기온의 상승으로 땀방울이 굵어 갈 무렵 반갑게도 수 십 명이 쉴 수 있는 숲속 넓은 공터가 쉬어 갈 것을 유혹한다.(12:40)
20여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탓으로 모든 회원들이 기분 좋게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연초록의 녹음 짙은 숲속 길을 오르내리며 멋진 자연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100여개의 경사진 철계단을 올라 아름다운 자소봉 정상(840m,13:25)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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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길 옆에 정상석만 세워져 있는 탁필봉(820m, 13:40)을 지나 청량정사 방향으로 얼마간 내려오다가 적당한 자리에 둘러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 천지에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행복한 마음이다.
지금부터는 하산길이다.(14:25) 청량산의 명물인 하늘다리를 건너려면 장인봉쪽으로 코스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음기회로 미루고 곧 바로 청량사로 향한다.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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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어느 산이나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등산로가 유행이지만 이곳은 급경사길에 계단의 높이와 폭이 높고 커서 오히려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 불편하다. 응진전을 거쳐 자소봉을 올랐던 길이나 이곳 내리막길이나 난형난제일 만큼 된비알이다.
하산길 대부분이 나무계단으로 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길고 지루한 나무계단 길을 하염없이 걷고 걸어 지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지금까지 이렇게 긴 계단 길을 본적이 없다. 드디어 청량사다.
이미 먼저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경내를 관람하느라 분주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풍수지리학상 길지중의 길지로 꼽히는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로 퇴계가 자신의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고 읊었을 만큼 아름다운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어 그 모습이 매우 수려하다.
응진전과 함께 지어진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이 그것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고 지불은 종이로 만든 부처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금칠을 해놓았다.
사찰을 잠시 돌아보고 이윽고 사리탑으로 내려선다.(14:55) 영화 “워낭소리”의 처음부분에 노부부가 불편한 몸으로 힘겹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워낭을 손에 들고 평생 동안 고락을 같이하다가 죽은 소의 영혼을 위로하는 장면의 배경이 바로 이곳 청량사의 사리탑이다. 워낭소리의 주인공인 노부부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은 관계로 사리탑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누구에게나 찾아가면 차를 무료로 준다는 “산꾼의 집”. 청량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산꾼 이대실씨가 사는 산꾼의 집(오산당)이다. 눈빛이 참 맑은 그는 그림에 시, 도예까지 못하는 것이 없단다. 지난 16년간 산꾼의 집을 자신의 재주로 꾸몄다고 한다.
입석에 도착하니(15:30) 6월의 뜨거운 태양이 녹음사이를 뚫고 뜨겁게 몸을 찌르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감사해 하면서 부산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도산서원을 들리려고 했으나 주차료와 지나친 관람료 때문에 포기를 하고, 가격이 너무도 싸고 맛있다는 김사장님이 추천하는 봉양 한우마실직영식당(경북 의성군 봉양면 화전리 88-2. 도리원. 054-832-1999)에 들러 의성마늘소고기로 맛있게 배를 채우고 나니 모두들 만족한 듯 즐거운 마음으로 부산길에 올랐다.(17:20)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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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의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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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해발800m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90m의 다리. 2008년5월 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