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 자체가 여정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것이며 새로운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큰 삶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며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더 여행을 좋아했다. 세계 유명인 보다는 많은 여행을 하지 못하였지만 54년을 여행한 것은 사실이다. hfo 머물지 못하고 바로 떠나는 나의 인생 역마살이 끼었다고 할까 나를 오래 그곳에 붙잡아 두었으면 하는 바램을 뒤로하고 떠나가는 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어머니 품속에서 6.25 민족 비극에 전남 담양과 곡성에서 살았고 소년 시절을 담양, 곡성과 광주에서 인생의 기초를 배우면서 보냈다.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을 받으면서 야간에는 서당에 가서 천자문을 읽고 명심보감도 읽었다.
또한 우정(友情)을 위해 여천 나환자촌을 찾아 그 형제 자매들의 고통의 모습을 실감하면서 그들의 꿋꿋한 삶을 보았다. 또한 친구와 함께 제주도 무전여행도 해보았다. 1966년 공개경쟁 시험에 합격하여 담양군천 남면 사무소 공직에 몸담았다. 경남 진주 사천항공학교 서울 여의도 항공학교 평택 미 45중대 항공교육으로 항공기 정비교육을 마치고 원주에서 헬리콥터 정비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러서 공무원에 복직하여 담양군청에서 명예퇴직에 이르기까지 32년 7개월 성상을 나의 삶의 수단이면서 나라와 내 향토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였다.
1990년부터 일본과 전국의 산에 등산을 하여 심신을 단련하고 여행하면서 그 지방 문화를 구경하면서 향토문화 사랑에 관심을 가져 1999년 담양향토문화연구회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난 날 집사람과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 경남 밀양, 부산 태종대, 거제도 여행은 새로운 충전의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삶의 수단이면서 사회에 봉사는 불행으로부터 행복을 지키는 보험업을 시작하였다.
보험등 11개 손보사와 각종 금융으로부터 보험개방에 따른 한계흫 느껴 일본 북 규수 여행에 나선 것이다. 평화여행사가 추진한 4박 5일간 선박을 이용한 새로운 여행 새로운 모습을 찾기위해 출발할 것이다.
일본 북 규수를 향해
우리는 부산항구 선상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북 규수로 향했다. 선상에서 본 불야성의 항구도시 부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일려온 검푸른 파도에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반짝거리는 부산항을 송두리째 꿀꺽 삼키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 속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석류 알처럼 박혀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건물과 사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려보았다.
선상에서 지루한 밤을 보내고 이튿날 23일 후꼬오까 하까다항에 도착하였다. 규수(九州)지방은 일본(日本)의 4개 열도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44,256㎢면적에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도공(심수관씨)들이 정착하여 일본이 세계적으로 도자기 문화를 꽃피운 곳이며 중부 활화산 아소산(阿蘇山)으로 강한 지세의 지역이다.
나가사끼(長崎)오오우라 덴슈도(木浦天主堂)
일행은 오전 11시 40분 포상강(浦上江)을 낀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가사끼 市에 들어섰다. 나가사끼 시는 인구 45만명으로 규수 지방의 5번째 도시로 지리적으로 서해안에 위치하여 전차가 있고 딸기, 메론, 귤이 재배되고 있으며 곳곳에 스기나무와 야자수, 대나무가 얽혀 항구도시를 이루고 있다.
5월에는 기와사마 철쭉이 아름답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일본에서 눈이 오지 않는 지방이라 한다. 이 도시는 일찍이 네델란드 하멜이 풍랑을 만나 우리나라 제주도까지 흘러 표류하다가 이곳으로 돌아와 일본과 40년간 교류하면서 서양문명을 제일 먼저 전달된 항구이며 1992년에 문을 연 하우스텐보스(HUISTEM BOSCH)는 총면적이 152㏊의 네델란드 마을 테마 파크이다.
하우스텐 보스는 광대한 부지에 6km의 운하가 흐르고 있으며 네델란드 고성(古城)이나 궁전, 푸른정원, 박물관 등이 있어 일본 속의 네델란드 문화촌을 이루었다.
이곳은 정지된 시계유물에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을 가리키고 있어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7만여명이 사망하였고 원폭 중심지에서 반경 2km이내는 불바다가 되었는바 이곳에 평화 기념공원과 그 안에 평화기념상들이 즐비하게 새워져 평화에 대한 기원이 숨쉬고 있었다.
9.7M의 운젠 조각가는 하늘을 가린 한 손은 원폭을 한 손은 평화를 두눈을 감은 모습은 원폭 피해자에게 묵념을 올린 조각상이 원폭의 공포를 짐작케 했다.
특히 일본 학생들이 평화를 상징한 학을 종이로 예쁘게 접어 수를 놓아 그들의 간절한 평화의 소원을 적어 메달아 놓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평화를 사랑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으나 그들이 저지른 동남아세아의 만행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음을 알지! 모를지? 동독과 소련에서 보내어 건립한 평화상징의 조각들을 보면서 조각 당시 공산주의 평화의 허구성을 들어내 관광객으로 하여금 많은 조소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당시 원폭 투하의 생생한 장면을 각종 TV, 영화상영 전시물을 통하여 관람하였다. 당시 파손된 갖가지 유품을 보면서 박살된 오우라텐슈도(大浦天主堂) 유물 앞에 일행들은 숙연하였다.
오우라텐슈도 1864년 프랑스 선교사가 세운 오래된 목조 성당으로 26명 신자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공자묘가 있는 중국역대 박물관이 있어 유일하게 중국 요리집이 있었다.
일행들은 중국 짬뽕요리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은 탕수육과 튀김 그리고 우리나라 컵라면의 면발에 약간의 채소를 곁드린 음식으로 김치가 없으면 갈증이 심하도록 맛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쓰레기 처리에 골치를 앓고 있는지 네프킨에 인색하면서 중국 전통 과자 등 상품구매유혹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일행은 나가사끼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로 이동하여 시마바라 반도에 자리밥고 있는 일본 최초의 운젠 국립공원(雲山國立公園)은 운젠 다께의 분화(噴火)활동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온천 가의 지코쿠라불리우는 크고 작은 열탕이 30여곳이 있어 굴뚝을 세우ㅐ 열기를 토해내어 터질 듯한 분화활동을 잠재운다고 한다.
우리는 운젠 휴게소에서 원산지 가스테라 빵 맛을 보고 녹차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아름답게 펼쳐진 해안선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 추억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운젠 국립공원을 돌아보면서 가이드 김영선 양이 일본이 역사이야기에 일본천황과 막부 도꾸가와이에야스, 애도, 풍신수길 등과의 관계 등 설명에 일부일행은 자장가로 착각 잠에 빠진 자도 있었다.
1,395m 보현악(普賢岳)중턱 소병정 온천 지대 표고 200m에서 600m를 오르내리면서 운젠 악을 지나 도로변에 울창한 스기나무와 야자수 그리고 처절한 산사태 모습을 흙에 묻힌 잔재 물 기와지붕과 택지조성 장면이 그 때 참상을 엿볼 수 있었다. 택지조성을 하면서 이후에 생길 줄 모른 산사태에 대비하여 기반조성을 하고 있으며 산사태로 옛날에 비하여 300m가 줄어 그 모습과 아름다운 항구 모습을 비디오에 담았다.
그리고 일행은 시마바라 항구에서 승선하여 조상의 혼이 서린 구마모도 현으로 가서 백금(白金)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청전과 구마모도성 그리고 아소산(阿蘇山) 활화산
우리나라는 수많은 왜침(倭侵)을 당하였으나 그 중 임진년의 비극은 우리민족의 크나큰 수난사(受難史)였다. 그러면서 우리민족의 우수성은 변하지 않고 크게 입증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다만 우리민족은 평화를 숭상하고 예절바른 민족으로 다른 민족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어 그 들 민족으로부터 약탈과 강압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백금 호텔 사장에게 일본으로 출발하면서 지은 “남 강 진주성” 시(詩)를 엽서에 써서 우편으로 부쳐달라고 하여 주었다.
남 강 진주성
푸른 남 강에 비친 고고한 의 암
애국충절 오래오래 빛이나
바위에 서린 절개의 모습
우리 가슴속 깊이 깊이 기리네
영호남 7만 영령 빛나는 충혼
임진왜란 진주성 처절한 싸움
강낭콩의 생애를 거닌 주 논개
오늘도 푸른 강물에 아른거리네
일행은 다음날 2월 24일 오전 8시 30분 여장(旅裝)을 챙겨 일본의 3대 성(城)의 하나인 구마모도(1601~1607)성으로 출발하였다.
구마모도의 푸른 하늘과 해안에 펼쳐진 마을 그리고 소 도읍의 아름다운 풍경, 전철이 다니는 깨끗한 거리 하나하나 관광자원이었다. 이 고장은 지하수가 많이 나와 지하철을 설치 할 수 없어 전철이 발달된 곳이라 한다.
구마모토성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토기요마사(가둥청정)가 조선 동래성을 함락시켜 동래성의 식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선의 도공과 주민을 끌고 와서 성을 쌓게 하고 성내에 120개의 샘을 팠다고 한다. 구마모도는 지하 40m만 파도 나왔다 하며 현재는 17개소만 남아있다고 한다.
일행은 고요한 거리 전철을 보면서 일본의 특별 사적으로 검정 기둥, 하얀 벽으로 간축된 까마귀성으로 갔다. 성 입구에는 가등청정 조각상이 서있고 활 모양으로 곡선을 이룬 성곽(城郭)과 수로(水路)로 둘러진 성(城)이었다. 성안에는 군데군데 벚나무가 서있고 여기를 찾는 한국인관광객이 꽤 많았다.
성 입구에 보병 제13연대 돌비가 서있고 일본 학생들은 이성이 조선인이 쌓았다고 자존심이 상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우리 조상님들의 건축의 우수성 발휘와 고통을 되새기면서 천수각으로 입장하였다.
천수각에는 일본인들이 구마모도 성 설계와 임진왜란 당시 유물을 전시하여 당시 상황을 한눈으로 구경하였다. 당시 천수각은 일본 내란으로 불타버리고 현재 천수각은 1960년 구마모도 시(市)에의해 복원되어진 것이다.
불타버린 성과 천수각은 우리 조상님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지어진 것으로 당시 심어진 은행나무아래에서 묵념을 올렸다. 구마모도 성은 성곽넓이 98난 평방미터이며 둘레가 약 9km로 담양금성산성정도이다.
자원봉사자 노인들의 친절한 모습을 보면서 구경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기생화산 다섯 봉우리가 있는 아소(阿蘇)로 갔다.
일행은 가면서 도로 휴게소에 있는 농산물 유통센터에 내려 판매하고 있는 가공 농축산물을 구경하고 일본 가공 상품과 가격을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았다. 농산물 푸대접은 우리나라나 같은 모양이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아소로 계속 달리면서 초원과 삼나무 경계를 이룬 규수의 상징이라 세계최대의 칼델라를 가진 복시 화산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름다운 평원에 하얀 화산 연기가 피어오른 모습을 바라보며 아소산 식당에서 소고기 불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마치고 가이드를 따라 스키장에 있으며 하얀 연기를 내뿜는 아소산 분화구를 향해갔다.
모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 화순군 군의원들 그리고 무안노인 봉사대 관광객을 만나 우리나라 관광으로 착각했다.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하여 웅대한 자연의 신비를 느꼈다.
그 규모는 동서 18km 남북 24km 둘레 128km 면적 380평방키로미터 높이 1,328m 화산구의 폭이 1.1km 깊이 100m로 밑바닥에서 분연히 솟아나고 있다.
유황이 진동한 뱃부(別府)
일행은 오후 1시 55분 온천지대 뱃부로 향했다. 일행들은 우리나라 개마고원과 같은 표고 800m 산정으로 평원을 이루고 있으며 초원과 군데군데 삼나무 군락 그리고 내뿜는 하얀 수증기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뱃부 온천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진한 유황냄새를 맡으며 부산한 카메라 촬영을 하였다.
그림과 같은 온천지대 혈지옥, 해지옥, 산지옥에서 진한 유황냄새에 생생한 수증기를 내뿜는 활화산을 체험하고 카메노이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고기산(高崎山) 원숭이와 천만궁
여행 3일째 2월 25일 아침 7시 30분 뷔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이따(大分) 다까자끼야마(高崎山) 자연 동물원으로 갔다. 가이드는 원숭이를 구경하는데 사전 교육을 하였다. 원숭이와 눈을 마치지 말며 호주머니에 물건을 넣어가지 말 것 카메라를 빼앗기지 말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자연동물원에는 A, B, C 3개팀에서 A팀을 20분간 현장에서 활발한 원숭이를 구경하였다. 일행중 한 사람은 일회용 카메라를 빼앗겨 그만 원숭이가 갈기갈기 찢어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비디오와 카메라로 광경을 담았다.
우리는 원숭이의 철저한 계급사회와 어른 원숭이가 다른 어린 원숭이 먹이를 빼앗아 먹는 구경을 마치고 다라이후 천만궁으로 갔다. 어린시절을 강인하게 키운나는 하얀 스타킹에 반바지 차림의 유아원 초등학생 일본관광객과 함께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들어가 천만궁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매(飛梅)전설을 전하기 위해서 매화 떡을 팔고 있어 한 개 가격이 100엔으로 비싸며 맛은 우리나라에서 못지와 비슷하였다. 천만궁은 일본의 신사였다. 신사는 각종 소원을 글로 서서 메달아 성취를 기원하는 모습이었다. 일본 학생들이 단체로 방문하여 소원을 비는 모습들이었다.
후꼬오까 하까다항에서 귀국
일행은 마지막 여행지 후꼬오까 하까다 항구로 갔다. 인공 신도심 베이사이드 플레이스를 견학하고 전망대와 수중물고기를 구경하였다. 다시 우리는 오후 7시 하까다 항구에서 부산으로 출발선상에서 밤을 보냈다.
멀미가 심했으며 일부 잡상인들의 컴퓨터 밀수의 부끄러운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10시 30분 부산 허심청에서 온천욕을 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일본인의 상술과 검소한 생활
일본은 고물가속에 세계 선진국이다.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관광지를 개발상품 판매에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심지어 원폭의 현장, 화산폭발의 현장에서, 비극을 이용 상품화하고 있으며 작은 집, 작은 차 이 모든 일본인의 검소한 생활 우리가 진정 본 받아야 할 문화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