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출발)에서 천왕봉(도착) 구간은 우리팀에서는 4차 출진이지만, 백두대간 종주의 첫번째 구간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고, 일생에 한번 도전해 볼만한 무박 지리산 종주의 기회라는 것이다.
6월12일 11시경 사랑하는 마눌과 토끼같이 예쁜 소영, 우림의 무사귀환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그동안 3회의 경력이 붙어서 배낭도 이번엔 특별히 풍부한 과일, 소주 등을 준비했는데 조금은 무거운 감이 들었다. 청사에서 모여 13일 0시 정각에 대망의 백두대간 첫번째 구간인 지리산 성삼재로 향하여 버스는 내달렸다. 무박 2일의 일정을 감안하여 잠을 청하는데 지리산 종주에 대한 벅찬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생애 있어 지리산 종주는 2번으로 기억하는데, 그 첫번째가 군대 갔다와 복학후 여름방학에 여섯지기 친구들과 구례에서 3박4일 일정으로 무진 고생을 하며 다녀왔고, 두번째는 직장생활 얼마 안되서 뱀사골에서 야간 등반으로 시작하여 1박2일로 천왕봉까지 완주하였다. 지난 기억으로는 지리산의 산세가 험하여 하루에 8시간 많아야 10시간 정도 걸었음에도 무척 힘들고 어렵게 산행을 마쳤던것 같다. 물론 중간에 야영을 위한 텐트 등 짐이 꽤 무거운 탓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리산 무박 종주는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 29km, 접근로인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5.3km를 포함하여 총 34.3km를 16시간 정도 걸릴것으로 예상하였다. 평소 산을 좋아하고 10시간이내는 어느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유지할 수 있으나, 이번 만큼은 사실 나의 체력이 견딜 수 있을지 조금은 염려가 되었다.
드디어 2시30분경 성삼재 주창장에 도착하여 배낭을 챙기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성삼재 등산로 입구로 갔다. 야간 산행의 위험 때문인지 3시부터 개방을 한다고 한다. 마라톤 출발선에 선 선수들 같이 모두들 배낭을 매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힘차게 노고단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노고단까지 길은 등산로가 아닌 일반 도로길이었다. 반짝이는 랜튼 불빛을 밝히며 눈 깜짝할 새에 선두가 치고 나간다. 조금은 가파른 언덕배기에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선두를 딸아 붙을려고 용을 써보나 허사였다. 새벽 등반으로 허기가 느껴지며 물, 과일 등으로 채워진 배낭이 조금씩 어깨를 짖누르어 속도는 더욱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고단 정상(1507m)까지는 채 30분이 안 걸린듯하고, 청정한 노고단 정산에서 본 밤하늘의 별들이 쏫아질듯 반짝이는 것을 잠시 만끽하고 어둠속에서 재단만 흘깃 바라보고, 임걸령 방향으로 길을 재촉했다. 1500 고지의 새벽 공기가 제법 싸아한 바람으로 송글 송글 맺힌 땀방울을 금새 식혀 주었다.
새벽 등반의 장점은 오직 불빛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니깐 피로도가 덜하여 등반 속도를 많이 낼 수 있다. 임걸령까지 등산로는 조금은 평이했고 얼마를 걸었는지 동쪽 하늘이 환해져 온다. 또한 새들의 즐거운 쫑알거림에서 해돋이가 멀지 않음을 알려 주었다. 전망 좋은 곳에서 해돋이를 맞이하려고 더욱 속도를 내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중천에 뜨고 말았다. 날씨가 너무 맑고 청명하며 하늘과 바람과 숲이 어울어진 멋진 날이었다. 오늘 정도의 날씨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에서의 일출도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며 조금은 아쉬웠지만, 주능선 좌우 아래로 펼쳐져 장관을 이룬 운해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토끼봉으로 갈라지는 노루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쉬지 않고 3시간을 걸어온 것으로 거리상으로 10km쯤 된듯했다. 하지만 선두는 이미 날아간듯 따라 잡을 수도 없고 초반에 너무 무리해서 오바하지 않기로 하고 느긋하게 지리산의 정취를 맘껏 즐기며 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식사는 연하천 산장에 도착해서 땀으로 얼룩진 얼굴도 닦고 시원한 물과 김밥 한줄로 때우니 지친 몸이 다시 힘이 솟았다. 주 등산로는 끝없는 돌들과의 전쟁, 아님 계단으로 이루어져 실로 최악의 바닥 켠디션인듯 싶다. 예전의 일반등반로를 개보수를 하면서 그러챃아도 돌이 많은 산인데 일반 구간도 돌로 깔아 놓아 일반 흙길보다 피로도가 2배이상 쌓여갔다.
10시경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진군이다. 얼마를 갔는지 선비샘이 나왔는데 그 유래로 샘터위에 무덤을 두어 샘터에 물을 마실려면 허리를 굽히게 되어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게 했다고 한다. 맛난 약수한잔으로 목을 추기고, 칠선봉, 영선봉(1651m)을 지나 13시경 세석산장에 도착하여 점심을 준비했다.
세석을 수많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특히, 라면 꿇이는 냄새에 시장기 가득한 우리의 배를 더욱 꼬르륵하게 하였다. 겨우 우리팀도 자리를 잡아 각자 싸온 반찬을 꺼내 놓고 꿀 맛의 성찬을 즐기는데, 내가 어깨 고통을 참으며 가져온 소주을 꺼내 놓으니 모두들 감탄의 모습이다. 비록 출발할때 꽁꽁얼었으나 녹고 말았지만 시원함은 그대로 남아있어 돌아가면서 한잔씩하며 땀 흘린 여정을 이야기 하였다.
점심으로 다시 재충전한 몸이지만 이제부터가 진정한 나와의 싸움이라 생각했다. 남아있는 구간이 험하고 하산길 또한 최악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옷을 반바지로 갈아입고, 양말도 새것으로 갈아신고 새로운 기분으로 천왕봉을 향하여 힘차게 내딛었다.
촛대봉(1703m)을 지나면서 20년전 친구들 하고 왔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예전에 이곳에 도착하니 갑자기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했다가, 잠시후 찰라에 구름이 걷히고 햇살 가득하여 변화 무상한 지리산의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찬란한 햇살아래 밝은 날이다.
연하봉(1730m)을 지나면 장터목 산장까지 16:00이전까지 통과해야만 하산하는데 무난하기 때문에 다시 속도를 내었다. 앞서간 선두팀과 중간에 탈출 코스로 나간 동료들을 제외하고 달랑 5명이 한팀이 되었다. 서로 격려하며 15:30분경 장터목 산장에 도착하니 모두들 힘들고 찌든 모습이다. 하지만 마지막 고지까지는 1시간만 더 가면 되어 남아있는 보충 식량을 나누어 먹고 신발끈도 다시 매고 힘차게 일어섰다.
제석봉(1806m)을 거쳐 천왕봉까지의 등산로는 정말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최대의 난코스로 급경사의 바위틈을 기어서 한발 한발 올라갔다.
드디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천왕봉(1915m) 올랐다. 몇년만이던가 이 기쁨이... 가슴이 벅차고 그간의 고생이 한순간에 앃은듯 했다. 하늘은 옅은 뭉개구름이 둥실 둥실 천왕봉 주위에 띠를 두른듯 펼쳐져있고, 길게 이어진 산봉우리를 따라 끝자락에는 멀리 남해 바다도 보였다. 천왕봉의 비석앞에는 '
한국인의 氣像 여기서 發源하다'라고 쓰여 있고, 뒤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라고 새겨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기상이 일어난 이곳의 정기를 받아 나를 알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만사형통'하길 기원하였고, 천왕봉 사진과 함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 또한 오늘을 계기로 지리산 정기 받아 어떤 일이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하루 하루 후회없이 살리라 다짐한다. 민인규 화이팅!!!
하산은 중산리 방향으로 내려오는데 이곳은 천왕봉까지 최단거리로 오를 수 있는 등산코스이다. 예전에 친구들하고의 하산길도 중산리로 기억하는데 거리는 비록 짧지만 끝임없이 가팔게 내려오는 길이라 무릎과 허리 등에 충격이 와서 진저리를 치며 하산한 기억이 생생하다.
천왕봉에서 직경사를 잠시 내려오니 천왕샘이 있어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식수도 보충하여 기나긴 마지막 스퍼트를 위하여 화이팅을 외쳤다.
한없는 내리막은 조심 조심, 터벅 터벅 얼마을 내려왔을까 로타리 산장이 나오고 이어서 법계사를 지나 칼바위를 거쳐 종착지인 중산리에 도착하니, 어느덧 날은 저물어 어둠이 내리고 발은 불이 난듯, 무릎은 뻐근, 허리는 끊어질듯, 어깬 욱신, 뭄둥아리 어느 한곳 성한 곳이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필생의 과업인 무박으로 지리산을 종주하다니!!! 실로 나자신에게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기특하였다.
하산주로 막걸리 한사발에 푹 고아서 흐물 흐물한 백숙 닭다리를 한입 가득 먹으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따로 없었고, 피곤에 지친 몸을 버스 의자에 기대니 나도 모르게 깊고 행복한 잠에 빠졌다. 대전에서 새벽 0시 출발하여 다시 23시 50분경 도착하니 실로 24시간만에 무박 지리산 종주라는 크나큰 일을 치루고 무산귀한한 것이다.
내몸 비록 부서질듯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개운함에 상쾌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바로 성현들이 이야기한 고행속의 낙일른지도~~~^^*
TIP 1. 지리산 무박 종주시에는 절대 배낭을 무겁게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 주능선 중간 중간에 산장과 샘이 수시로 있어 음식과 식수의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며, 어깨가 무거우면 발걸음이 천근 만근이어서 하루에 종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에피소드 1. 겨우 중산리에 하산하니 반가운 우리팀의 얼굴들이 보이는데 어째 좀 분위기가 싸아하다. 웬일인가 했더니 우리 왕총무님께서 택시기사와 시비가 있었단다. 매표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얼마안되는 거리를 왕복 1만원을 내라고 하니, 정의파이신 왕총무님이 가만히 있을리 만무하고 대한민국 택시 요금은 미터제가 아니냐고 따지셨는데, 시골 택시기사가 험악하여 112에 신고 결국 경찰까지 오게 되었다. 경찰이 오기전에 큰소리 치고 똥폼잡던 얼빵한 택시기사는 꽁무니를 빼고 사라져서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못하였지만, 우리는 덕분에 꽁짜로 경찰차를 얻어타고 버스 있는곳까지 하산~~~
끝까지 저희팀들 챙기시느라 고생하신 왕 총무님 화이팅!!!
에피소드 2. 귀향길에 버스가 금산휴게소에 들렸는데, 여러가지 일로 조금은 시간이 지체되어 바쁜마음이었는지, 내린 회원에 대해서 확인을 제대로 못하고 휴게소를 출발하였다. 얼마안가서 휴게소에서 내린 회원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버스를 고속도로 가길에 세우고 어찌할것인가 잠시 상의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며 기다렸다(고속도로라 뒤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 한참을 기다리니 휴게소에 연락이 되어 남겨진 회원이 순찰차를 타고 버스있는곳까지 와서 합류하여 무사귀환할 수 있었다...휴게소에서 화장실갈때는 옆사람에서 반다시 신고하자...^^*
<참고>
(1) 화개재 유래 -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 중 하나로,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하던 장소였단다. 지금은 지역간 도로가 개설되어 사람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어떻게 짐을 지고 이 곳을 오르내렸는지 대단하다고 생갈할 뿐이다..
(2) 선비샘의 유래 - 옛날 덕평골에 화전민 이씨라는 노인이 살았다. 노인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서, 죽어서라도 남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 자식들에게 자신의 묘를 상덕평의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다. 효성스러운 자식들은 그의 주검을 샘터위에 묻었고, 그로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샘터의 물을 마시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서 무덤으로 절을 하는 형상이 되어 죽어서 남들로부터 존경 아닌 존경을 받게 된 것이란다...
(3) 장이 섰다는 장터목의 유래 - 장터목이란 명칭은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던 곳'에서 유래되었단다. 화개재와 더불어 옛 선인들이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장을 열었다는데 새삼 경이스럽기까지 하다...
(4) 천왕샘 -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에 있는 샘으로 서부 경남 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란다.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런,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