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동 ‘으능정이’ 명칭에 대하여, 시장님과 대전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에
삼가 시정 요구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대전문화역사진흥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전오입니다. 저희단체는 ‘2010-0-대전광역시-제40호’로 지정된
비영리민간단체이며, 단체사무실은 ‘대전 동구 대동 403-19’에 있습니다. 사무실 전화는 ‘257)6626’이며, 저의
휴대전화는 ‘010-5409-7627’입니다.
저는 그동안 대전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온바,『한밭의 우리말이름과 옛이야기』(2006년:446쪽), 『한밭의
지정문화재·비지정문화재』(2009년:682쪽), 『한밭의 옛이야기』(2011년:455쪽) 등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그간 대전의
땅이름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던 중, 은행동 ‘으능정이’의 명칭에 친일적 잔재가 녹아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이의 시정을 ‘시장에게
바란다’에 지난 2011년 3월 4일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바 있습니다.
『 대전시는 은행동 ‘으능정이’의 잘못된 이름을 바로 잡을 의사가 없는가?
은행동의 ‘목척다리’는 대전 천과 중앙로가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는 다리이다. ‘목척교(木尺橋)’라고도 부른다. 대전역
세거리에서 충남도청 쪽으로 600m정도 간 지점에 있다. 조선 초 공주목에 속했던 이곳이 영조(1724-1776) 때에 공주목
산내면 목척리(木尺里)가 되었다. 이때부터 불러져온 ‘목척리’의 ‘목척’이 다리이름으로 굳어져 ‘목척다리’가 되었다.
일제 때인 1912년 이곳에 길이 70m에 넓이 5.45m의 나무다리가 놓여 졌었다. 해방 후 대전 천 복개사업에 따라
1974년 철근콘크리트 다리와 홍명상가, 중앙데파트가 준공되었다. 이후 35년간 호텔과 마트, 시민공원 등으로 변신하며 대전시민과
함께 호흡해오던 이 시설물은, 천변 복원사업의 일환에 따라 2009년에 해체되어, ‘목척다리’ 일대만 새로운 조형으로 꾸며지며,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되었다.
은행동의 ‘은행나무골’마을은 조선 후기 들어 지금의 목척다리에서 충남도청에 이르는 일대를 아울렀으나 1946년 이후
지역이 세분되어, 목척다리에서 중앙로 네거리에 이르는 구간이 은행동으로 확정되고, 이 구간이 ‘은행나무골’ 혹은 ‘으능정이‘로
불러지고 있다. ‘으능정이’는 일제가 이 지역을 1935년 대전부 춘일정이정목(春日町二丁目)으로 편입시키면서, 이 지역에 일본식
표기인 ‘정이(町二)’가 삽입되었다. ‘정이(町二)’는 일본 본토에서 쓰이는 일본식의 번지 지정이다.
이렇게 일제에 의해 강제로 삽입되어 쓰여 지던 일본식 번지명이, 해방 후에도 고쳐지지 않고 한술 더 떠 ‘정이’ 앞에
‘으능’을 붙여 ‘으능정이’로 해괴하게 쓰여 지고 있다. 이렇듯 잘못되어진 이 이름은 순 우리말로 오인되어지며, 날로 확장
사용되어 가고 있다. 늘 불러지는 이곳 이름 하나에도 우리 것으로 바로 잡아 세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일제의 잔재는
이런 식으로는 결코 쉽게 청산되지 않는다. ‘으능정이’는 이제라도 순 우리말인 ‘은행나무골’로 고처 불러야 마땅하다.
(「대전지명지」597쪽, 598쪽 참조)
대전시는 은행동 ‘으능정이’의 잘못된 이름을 바로 잡을 의사가 없는가? 』
이에 대한 대전시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전오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시청 비서실 송덕헌 비서관입니다. 평소 시정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시청홈페이지에 올린 으능정이 표현에 대하여 시사편찬위원회에 문의한 내용을 보내드리니 참고하시기바랍니다.
[으능정이]는 은행정(銀杏亭)에 지명접미사 [이]가 붙어 [은행정이]가되고 [으냉정이/으능젱이(전설모음화)]로 되었으나
폐구조모음화로[으닝정이]로 되지못하고 모음조화에 이어 전설모음화로 [으능정이/으능젱이]로 발음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수동에도 [으능정이]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그곳도 은행나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정이"는" 정자"의
변환에의한 것으로 일본식의 "정이(町二)"는 아닌 것으로 자문 받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계속 시정에 애정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
저는 대전시의 답변을 받고 ‘으능정이‘의 ’정이‘에 ‘정자(亭子)’를 뜻하는 ‘정(亭)’이 ‘이’가 따라 붙어
’정이‘로 사용된 경우가, 1935년 일제가 은행동의 ‘은행나무골’의 이름을 ‘대전부 춘일정 이정목(大田府 春日町 二丁目)’으로
쓰도록 강제하기 이전부터 있었는지를 조사해 보았으나, 일제 이전에는 어느 곳에서도 ‘정자(亭子)’를 뜻하는 ‘정(亭)’에 ‘이’가
붙어 사용된 문헌을 보지 못했습니다. 1935년 이전에 ‘정자(亭子)’를 뜻하는 ‘정(亭)’에 ‘이’를 붙여 사용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이’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이 ‘정이’는 1935년 일제시대의 잔재로 남은 것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전시의 답변 중
[으닝정이]의 전설모음화니, 폐구조모음화니 하는 것은 대전시의 일방적인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명을 그런 궤변으로 오도하자면
마음대로 고치지 못할 지명이 없습니다. 그런 궤변에 의존치 마시고 혹 제가 부족하여 발견하지 못한, 옛 문헌에 1935년 이전에
‘정자(亭子)’를 뜻하는 ‘정(亭)’에 ‘이’가 붙어 사용된 기록이 있다면 제시해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전시에서 근거로 내세우는 「대전지명지」는 염홍철 현시장님이 관선시장으로 계실 때인 1994년 10월 15일에 발간된
책입니다. 최근의 1994년 발간된 「대전지명지」에 ‘으능정이‘가 실려 있다해서, 이것을 순 우리말 땅이름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명이 가져야할 역사성과 민족적 순수성의 가치를 모독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일 수 있습니다. 「대전지명지」의 494쪽과 598쪽에
실려 있는 ‘으능정이‘는 일제가 남긴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른 것으로 사료됩니다. 잘못은 쉬쉬할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고치고 명명백백 알려서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는 대전시의 답변을 받은 후 ‘정이’는 일제의 잔재로 반듯이 바로 잡혀야한다고 생각되어, 2011년 10월 4일 자로 다음의 글을 ‘시장에게 바란다’에 다시 올린바 있습니다.
『 ‘으능정이’는 ‘이’를 빼고 ‘으능정’으로 써야 마땅하다.
은행동의 ‘은행나무골’ 마을은 조선 후기 들어 지금의 목척다리에서 충남도청에 이르는 일대를 아울렀으나, 일제가 이
지역을 1935년 일본식 지명인 대전부 춘일정 이정목(大田府 春日町 二丁目)으로 바꾸어, 본래 불러오던 ‘은행나무골’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게 강제하면서, 일본식 지명이 이곳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이후 지역이 세분되어, 목척다리에서 중앙로
네거리에 이르는 구간이 은행동으로 확정되었다.
1985년 이후부터는 둔산신도시가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1999년에는 대전광역시청이 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시청의 이전과
함께 시청이 있던 대흥동은 물론 은행동 일대까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전시는 공동화 되어 가는 은행동에 자동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여 은행동을 살린다는 의도 하에 이 거리의 명칭을 ‘으능정이’라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적극 이 이름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으능정이’의 ‘정이’는 1935년 일제가 사용한 번지명인 대전부 춘일정 이정목(大田府 春日町 二丁目) 중
‘춘일정(春日町)’의 끝자인 ‘정(町)’과 ‘이정목(二丁目)’의 첫 자인 ‘이(二)’ 자를 따내 붙이면 ‘정이(町二)’가 되는
묘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으능정이’의 ‘정이’는 춘일정 이정목(春日町 二丁目)의 일본식 번지명을 두자로 줄인
말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으능정이’의 ‘정이’가 춘일정 이정목(春日町 二丁目)을 두자로 줄인 ‘정이(町二)’에서 온 것이라면, 이는
우리의 지명으로 쓰기에 상당히 부적합한 것이다. 아니 이런 냄새가 나는 ‘정이’를 꼭 써야만 하는 걸까? ‘으능정이’의 ‘으능’이
‘은행(銀杏)’의 방언이라고는 하나, 이 ‘으능’에 굳이 일본식 번지명을 두자로 줄인 것 같은 ‘정이’를 붙여, 꼭
‘으능정이’로 써야만 하는가?
예전에 쓰던 땅이름대로 ‘은행정’이나 ‘은행나무골’로 바로잡아 써야하지 않을까? 굳이 ‘으능정이’로 써야한다면 ‘이’를
빼고 ‘으능정’으로 써야 한다. 일제의 냄새가 풍기는 ‘정이’를 대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이름 속에 굳이 삽입시켜 써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정자(亭子)’를 뜻하는 ‘정(亭)’에 ‘이’가 따라 붙어 ‘정이’로 쓰는 경우는 일제 이전인 1935년 이전에는
없었다. ‘으능정이’는 ‘은행정’이나 ‘은행나무골’로 고쳐 쓰거나, 정이 아니 된다면 ‘으능정’으로 ‘이’를 빼고 써야 마땅하다.
(‘이전오’가 엮은「대전문화역사진흥회」발행의『한밭의 옛이야기』88쪽에서 인용)
약력)
이 전 오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
저서)
(무전유럽배낭여행기) 『뜻을 세우면 길이 보인다』(2001년:224쪽)
『한밭의 우리말이름과 옛이야기』(2006년:446쪽)
『한밭의 지정문화재·비지정문화재』(2009년:682쪽)
『한밭의 옛이야기』(2011년:455쪽) 』
저의 글에 답변은,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저에게 통보도 없이, ‘처리완료’로 떠서 무엇이 처리되었다는 것인지
궁금하여, 시장비서실의 송덕헌 비서관에게 전화로 문의해본바, 위의 지난번 답변에 더할 것이 없어서 그 답변에 가름하여,
‘처리완료’라 했다는 것입니다. 대전시는 이 중대한 문제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관의 권위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저는 행정소송도 불사할 마음으로 그 절차를 알아보던 중, 대전시의 지적과로부터 은행동의 지명은 중구청 관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구청에 문의 하여 새주소 담당인 배성희님과 통화하게 되었으며, 제가 올린 글을 그 분의 전자주소로 보내
읽어보시게 한 후, 그 분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저의 의도를 확실히 알겠으나 은행동의 ‘으능정이’ 거리는 주소상으로는 ‘중앙로 164번길’로 올라 있어, 고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모든 행사 때마다 ‘으능정이’로 표시되고 ‘으능정이’로 사용되는 현실인데, 이를
어찌하느냐고 물으니, 자신들은 대전시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에 따를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대전시에 있으며, 1994년도에 발행된「대전지명지」의 ‘으능정이‘가 문제입니다. 대전시장님과
대전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는 1994년도에 발행된「대전지명지」의 ‘으능정이‘가 잘못 표기되었음을 공표해 주시고, ‘으능정이‘를
공공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도록, 지시하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으능정이’는 ‘은행정’이나 ‘은행나무골’로 고쳐 쓰거나,
정이 아니 된다면 ‘으능정’으로 ‘이’를 빼고 써야 마땅합니다. 저의 요구에 잘못이 있으면 그 사항이 무엇인지 정확한 문헌적
사실을 통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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