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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구인들은 조선을 "희대의 야만국"으로 여겼다.
1866년 8월 평양 대동강에서 학살당한 제너럴셔먼호의 승무원(미국인 5명 포함)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당시 미국정부 및 국민들을 매우 분노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당시 조선은 외국인 승무원들을 참수(목을 잘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라낸 머리를 장대 끝에 매달아 인적왕래가 많은 길거리에 세워놓는 효수(梟首)형을 자행했다. 당시 조선으로서는 합법(형법)적인 처형이었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소위 '병인대박해' 로 전국을 '살인광풍'에 내몰았는데, 이 때 8천여명의 내국인 신자가 체포돼 참살당했고 비밀포교하던 프랑스신부 12명이 체포돼 9명이 참형을 당했다.
그해 여름 또 다시 평양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외국인 승무원 전원이 학살 당하자, 조선을 규탄하고 응징하자는 분위기가 유럽은 물론 미국에도 널리 확산됐다.
당시 조선이 실제보다 더욱 야만적인 모습으로 서구사회에 알려진 것에는 조선조정의 책임이 컸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주도로 완강한 쇄국정책을 시행, 중국을 제외한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원천봉쇄했으므로, 외국인학살 소문은 민간의 입을 거치면서 "과장과 왜곡" 이 더 보태져서 외국에 흘러나갔던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정부는 미국이 파견한 제네럴셔먼호 진상 조사단에게조차 비협조와 사건은폐로 일관했고, 그러자 미국조사단은 민간의 '뜬소문'을 수집해 미국정부에 보고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정부는 조선조정의 태도에 격분하고 "야만왕조, 거짓말과 사기꾼왕국"이라 결론내리고, 조선원정대를 파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강화도의 미군상륙을 보도한 당시 미국 텍사스주 일간신문 '갤베스튼 데일리뉴스'(Galveston Daily News)의 6월28일자는"전쟁의 작은 얼룩" 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당시 미국사회가 알고있던 조선에 대한 시각이 잘 반영돼 있다. 기사전문을 소개한다.
"프랑스와 영국(당시 '미국'을 지칭) 군대가 같은 편이고, 그 반대편에는 조선 이 있었다. 두 나라는 아마도 '중국계 야만인'(조선을 지칭)의 못된 버릇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가운데 하나로서 무력침공을 하게 됐을 것이다.
조선인은 직업해적꾼들이 바다를 점령하고 육지에는 암살자들이 넘쳐나는 배신자와 사악한 마음을 가진 민족이다. 한국은 북동아시아 해안의 좁은 띠 처럼 생긴 나라로, 바다쪽으로 4백마일이 튀어나와 있다. 동해(일본해)와 황해로부터 분리돼 있다. 한국해안은 울퉁불퉁하고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많은 선박들이 그곳에서 연례행사처럼 파손되고, 선원들은 종종 학살됐다.
항해위험을 줄이기위한 목적으로 기독교국가(서구)들이 조선정부의 승낙을 받아 그 해안들을 측량하려했다. 미국함대가 그 목적으로 세이블강(강화해협) 에 진입하자, 위장한 조선군 포대가 발포를 했다. 물론, 땅위의 먼 발치에서 울부짖듯 경고하는 매너는 보여주었지만.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다. 실제로 그 관계는 영국과 캐나다 사이와 닮아있다. 상비군은 총 50만명에 달한다."
(원문기사)
SPECK OF WAR.
The rencontre between the French and English squadrons on the one side, and the Coreans on the other, will probably teach the “Heathen Chinee” that both nations have a good deal of fight left in them.
The Coreans are a treacherous, false-hearted race. By profession pirates on the sea and assassins on the land. Corea is a narrow strip of land on the northeast coast of Asia, jutting out into the water for a distance of four hundred miles. It separates the Yellow Sea from the Sea of Japan. Its coast is rugged and dangerous. Many vessels are annually wrecked thereon, and their crews are frequently murdered.
With a view to lessening the dangers of the navigation, Christian nations have engaged in the survey of these coasts, with the consent of the Corean Government. As the squadrons entered the river Sable in the pursuit of this object, they were fired on from masked batteries. Of course they replied in a manner that sent the Celestials howling inland.
Corea is tributary to China. In fact, its relation to China is similar to that of Canada to England. The standing army amounts to half a million. <Galveston Daily News (Galveston, Texas) Jun 28,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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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강화도 한미전쟁(韓美戰爭) - 전투일지(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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