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되, 나와 비교하지는 말 것
<우리 딱 한 달 동안만, 윤나리, 조성형 지음>
핀란드로 떠난 두 사람
핀란드가 우리 나라 사람들의 관심사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남한의 3배, 인구는 1/3정도, 주로 호수와 숲으로 이루어졌다는 그곳. 열심히 놀면서도 최대의 성과를 내면서 공부하고 있으며 행복지수도 높다는 그곳. 교육계에서도 여행계에서도 핀란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화두처럼 다가온다.
그들이 핀란드로 간 이유는
<우리 딱 한 달 동안만, 윤나리, 조성형 지음>은 늘 꿈꾸던 여행을 실행에 옮긴 멋진 젊은이들의 체험담이다. 두 젊은이는 자기 전공을 찾아 열심히 공부했던 모양이고, 기특하게도 모두들 가고 싶어하는 직장에 떡하니 합격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들은 늘 헉헉대며 살았고 행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남들이 모두 행복하겠다고 입을 모아 말해주었고, 부러워했지만,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직장이라는 조직에 열심히 충성할수록 점점 소모되는 느낌. 점점 낡고 지쳐서 쓸모없게 되었을 무렵 새 일꾼으로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들. 신세대 젊은이라 그런지 고민에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비교적 짧은 것도 흥미롭다. 나는 한 7-8년의 직장생활을 한 다음에 이런 고민에 빠졌고 아직도 고민 중인데, 이들은 2-3년 사이에 고민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이들에 비해 나는 참으로 둔한 인간이다.)
함께 할 친구가 있었던 두 사람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며 미래의 행복을 기다리기 보다는 그냥 지금부터 행복하면 안될까?’하는 생각으로, 젊은이들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보수도 낮고 안정되지도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본인의 행복지수는 올라갔는데 주변의 시선은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던 모양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핀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혼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는데 의기투합할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겠다.
느리게 느리게
두 남녀는 자전거로 핀란드를 도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들이 책에서 말했듯이 핀란드는 호수와 숲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 책은 한 챕터,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읽을수록 여행의 느린 속도감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꼭 무엇을 보려고 간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자신을 충분히 즐기고 느끼는 듯하다. 그런 부분이 참 부럽다.
책읽기와 천천히 걷기, 자전거타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꼭 여행할 나라 목록 제일 위에 핀란드를 적어 넣었다. 해가 지는듯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백야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호수와 숲 속으로 나도 가고 싶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핀란드 공공도서관이다. 넓은 창과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막 뽑아 놓고 이 책 읽었다 저책 보았다 하며 산만하게 책을 읽고 싶다. 딱 한 달 동안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다시 돌아올 날이 다가올수록 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처음 도착했을 때 한 나라의 수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고 생각했다는 헬싱키에 여행 끝에 다시 도착했을 때 그들은 헬싱키가 복잡하다고 느껴진다. 그간 다녔던 여러 곳들에 비해 헬싱키는 비교적 도시다웠을 터인데. 서울에 돌아왔을 때 둘은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용기가 아름답다.
누가 하는 여행이든 여행은 아름답다. 이들의 여행이 봄날 관광버스 대절해서 꽃구경가는 할머니들의 여행보다 더 멋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꽃구경 떠나는 할머니들이 색깔 요란한 등산 점버를 입고 관광버스 춤을 추는 것도 삶의 한 모습이다. 또한 이들이 겪은 여행이 시계 보면서 버스에 탔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중고생 수학여행 보다 더 품격 있는 여행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실 모든 게 다 때가 있게 마련이니까. 중학생들은 친구와 함께 수학여행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죽치고 앉아 엠피쓰리 귀에 꽂고 핸드폰질을 할 지언정 나름 행복하리라. 중학생을 억지로 데려다 핀란드 자전거 여행을 시킨다고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숲과 호수를 보고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그들이 핀란드에 갔다는 점이 부럽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자신이 떠날 시기를 감지해내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용기가 멋지다. 그랬기 때문에 호수, 숲, 작은 마을, 끝없이 이어진 길이 다 아름답게 마음 속에 알알이 들어와 박혔던 것이다.
더불어 내가 훌쩍 한 달 짜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 어린 딸이 있다. 어린 딸을 한 달씩 두고 떠날 만큼 간이 크지 못하다. 또한 함께 여행할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 남편은 한 달씩 휴가를 낼 상황이 아니다. 난 남편이 그 회사에 오랫동안 다니기를 소망하고 있는 터라 남편이 한 달씩 휴가를 낸다고 하면 덜컥 겁을 먹을 게 분명하다.
이유가 이렇게 술술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난 아직 떠날 때가 아닌 모양이다. 부러워하되 나와 비교하지는 말 것. 사람마다 알맞은 속도가 있고, 때가 있으니까. 나도 언제가는 분명 핀란드 호수가를 달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