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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유석 서울중앙지법 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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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법조인대관 | 신용불량자의 실상을 공개한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문유석(36) 판사의 글 '파산이 뭐길래'가 화제다.
문유석 판사는 법원 회보인 <법원사람들> 5월호에 기고한 이 글에서 자신이 1년 동안 파산부에 근무하면서 경험한 사례들을 생생하게 공개했다. 문 판사는 특히 이 글에서 개인 파산자를 '모럴 헤저드'로 모는 사회의 잘못된 시각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문 판사의 글은 신용불량자 관련 사이트에 올라와 신용불량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문유석 판사는 '파산이 뭐길래' 에서 ▲연쇄부도가 난 중소기업 경영자 ▲큰 병에 걸려 카드로 병원비 충당했다가 신용불량자된 택시운전사 ▲친언니 빚보증 서줬다 카드 돌려막기 하다가 파산한 학원 강사 ▲채무자와 채권자가 법원에서 화해한 사례 등 파산부 판사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맡았던 실제 사건을 소개했다.
"방탕한 생활 커녕 빚 절반은 병원비 나머지 반은 카드수수료, 연체이자로...
그는 방탕한 생활은 커녕 빚의 반은 병원비, 나머지 반은 온갖 카드수수료, 연체이자로, 결국 손에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느라 심신이 다 황폐해진 채 비로소 법원을 찾은 이 답답한 아저씨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이 지경인 사람에게 끝도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사용하게 한 카드회사들에게 화가 난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문 판사는 "아직까지는 파산자들은 대부분 세 가지 종류"라면서," 빠듯하게 먹고 살다가 실업, 질병 등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 사람들 ,먹고살아 보려고 이것저것 해 보다가 망해버린 사람들, 자기 앞가림만 겨우 하는 처지에 부모형제, 친지의 빚보증을 어쩔 수 없이 섰다가 같이 망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 해 말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린 소녀 20여명이 살고 있는 종교 시설을 찾았다가 "사채업자가 깡패를 보내서 돈 갚으라고 협박할 때 어떻게 해야 돼요?",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다치게 했는데, 물어 줄 돈이 없으면 몇 년이나 감옥에 있어야 해요?","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감옥에 가면 빚 다 갚을 때까지는 못 나오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며, "이 아이들에게서 가정을, 엄마 아빠를 빼앗아 간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돈"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문유석 판사는 "우리는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이라고 쉽게 숫자로 이야기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은 숫자가 아니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가정이 있고, 부모형제가 있고 아이들이 있다"면서, "400만 명이 신용불량자면, 최소한 400만 가정이 빚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며, 그 중 상당한 수의 가정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아이들이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거친 세상에 던져졌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는 어디있나" 도덕적 해이론 반박
그는 "도대체 '모럴 헤저드'의 표본인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 신나게 쓰고는 자기 먹을 것은 다 숨겨 놓고 호화생활을 하며 파산 신청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느냐"면서, "골프장 '해저드' 안에 숨어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문유석 판사는 또한 개인 파산이 사회 구조에 기인한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는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분석한 <맞벌이의 함정>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도시치안이 불안해지고 공교육이 부실화되자,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학교가 있는 주택가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맞벌이에 필수인 유아보육비를 비롯 유치원비, 애들 교육비, 의료비가 모두 높아져, 사치는커녕 부부가 뼈빠지게 일해서 자식은 남들만큼 교육시켜 보려고 지출하는 돈이 소득의 거의 대부분이어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여유자금이라고는 없고, 아슬아슬하게 꾸려가는 이 생활이 실업, 질병 등 충격에 쉽게 파산지경에 몰리고 만다"고 중산층의 파산이 구조적 문제임을 짚어내기도 했다.
문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근래 면책율은 99%이라면서, 손에 골무를 끼고 종일 기록을 뒤적이는 평범한 머글(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마법사 아닌 사람들의 총칭' 어리석은 자라는 뜻도 있음) 판사들이 할 수 있는 마법은 한 가지 뿐이라고 고백했다.
"주문, 파산자를 면책한다"
개인 파산은 사회구조의 문제...서울중앙지법 면책률 99%
문유석 판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글을 쓰게된 계기를 묻자 "글을 쓴 취지를 이미 '파산이 뭐길래'에서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문유석 판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36회에 합격해 97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2002년 춘천지법 강릉지원 판사 시절 '성전환수술을 받은 자의 성별'이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성전환 수술을 받는 자들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 법적으로 성전환을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교육과 병역의무 이행, 결혼 및 취업, 직장 생활 등 사회 전반에서 끊임없이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면서, "사회 일반이 인식할 만큼 성공적으로 성전환이 이뤄진 경우 법률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인도주의뿐만 아니라 공공복리에도 부합한다”면서 소수자 권리 보호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다음은 문유석 판사의 '파산이 뭐길래' 전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