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문학 기행을 다녀와서
신애리
더위가 슬슬 제자리를 찾으며 제법 따끈따끈한 심술까지 부리는 6월의 첫날 아침 진주 문협에서 주최하는 문학기행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여했다.
통영의 유치환 선생의 문학관과 박경리 선생의 유택으로 난 시퍼렇게 가르마진 바닷길로 문학동인 36명이 출발을 했다.
거제와 통영이 서로 자신들의 도시가 시인의 출생지라고 주장하며 각자의 예산으로 멋진 문학관을 짓는 아름다운 소동 속에 통영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기와도 아닌 누런 초가의 단촐한 가옥형태로 유 약방 가족의 생가 터를 조성했다. 조롱조롱 하얀 종을 줄줄이 매단 섬초롱과 분홍빛 봉숭아, 바닥에 납작 엎드린 붉은 채송화가 활짝 웃으며 초여름의 여행객을 반기고, 시렁위에 매달린 누렇게 변색된 낡은 액자 안에 앉은 젊은 작가와 근엄한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다.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한 가치와 평가는 무엇으로 표현되는 걸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버는 것 인지?
많은 독자의 가슴을 울려 오래 기억되는 것 인지?
밀리언셀러로 기억되는 시인의 발자취와 삶의 향기를 찾아 청마로 작은 골목길을 다잡아걷는다.
청마가 살았던 충무교회 문화유치원 자리엔 하얀 이층집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있다. 구조도 변하고 인정도 사라졌지만, 시인이 닳도록 걸었을 마당을 따박따박 걸으며 여기저기에 떨어져 모로 누운 노란 기억들을 줍는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과 설렘, 기다림, “여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구려.”, 그렇게 독백하는 시인의 참회와 금지된 사랑을 줍는다. 그녀의 수예점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우체국 창가에 서 서 기약 없이 길고 안타까운 사랑의 편지를 쓰는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 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 하였네’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시간만 나면 지루한 줄 모르고 수예점이 마주 보이는 이문당 서점 이층과 우체국 낡은 창밖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하얗고 갸름한 얼굴과 푸르게 날이 선 곧은 가르마와 흰 저고리 감청색 치마 그녀는 걸어 다니는 선율이요, 붉은 줄이 찍찍 그어져서 수정을 기다리는 200자 원고지였다.
유치환과 이영도시인의 사랑에 곁불처럼 함께 불타는 초정김상옥 선생의 조각난 외 사랑까지 통영 좁은 골목길은 사랑의 트라이앵글로 불리면서 연인들의 장소, 설레는 그리움과 오랜 기다림의 명소로 남았다.
‘그대도 사랑 하는가?’
‘통영으로 달려가서 청마 거리를 거닐다가 1945년에 설립된 이문당 서점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할 사랑의 시집을 한 권 사고, 붉은 벽돌 우체국을 만나거든 서슴치 말고 문을 쑥 밀고 들어가 그녀의 수예점이 바라다 보이는 창가에 서 서 연분홍으로 벙글어 흐트러진 열정과 보랏빛 이별의 아픔이 가득한 편지를 써 보라.’
그대의 사랑과 시새움, 모진 그리움까지도 오랜 해풍에 씻기어 더욱 맑아지고 넉넉해 졌으니 이제 사랑의 노래는 통영 앞 바다에 지는 놀에 불타서 일렁이며 고추선 붉은 물비늘이 된다.
박경리 선생의 유택은 미륵산 뒷자락으로 희망농장에서 300M 정도 산길로 올라간 곳이다. 바튼 숨을 턱턱 몰아쉬며 산등성이에 올라보면 저 아래 바다에서부터 시작된 해풍이 짭짤한 갯내음까지 몰고 달려와선 참배객의 땀을 말끔히 거두어간다. 바다가 병풍처럼 눈앞에 쭉 펼쳐지고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되어 외롭지 말라고 길동무를 한다. 연초록 잎이 무성한 키 작은 감나무가 유택주변을 울처럼 빙 둘러 섰고, 건너편 산자락에서 ‘소쩍 소쩍’ 소쩍새 운다. “섧지 마라. 섧지 마라.”이른다.
이 땅에서 최고의 작가로 살다가 지금은 누워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긴 휴식을 즐기는 선생에게도 사랑은 걸림돌이 되어 고향땅 통영을 두고, 낯설고 물 설은 강원도 원주 땅에 문학관을 짓게 되었다는 돌고 도는 뒷이야기를 통해 말랑말랑하고 뜨거운 청춘의 선생을 만난다. 후끈후끈 유월의 땡볕처럼 달아오른 통영인의 사랑이야기에 무덤덤하게 낡아가는 나까지 가슴이 챙챙 갈라져서 바닷바람에 출렁거리며 멀미를 한다.
문학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으로 남는가? 시가의 역사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시라면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이다. 뻐꾸기의 울음에 실은 사랑의 노래였고, 공무도하가 역시 실성한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숱한 책과 시들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사랑의 노래이고 보면 문학의 기록은 사랑의 기록이다. 사랑을 기록한 문학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인구에 회자한다는 단순한 진리, 문학은 사랑으로 남는다는 명제를 통영 문학기행을 통해 배운다.
이번 문학 기행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문학을 한다는 후학들이 애써 그들의 사랑에 덧칠을 하거나 조악하게 감추고, 세상이 갖는 이성적 잣대로 교조적으로 변질 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의 사랑과 미움이, 인간적인 질투심과 어리석은 기다림이, 문학의 거름이 되어 위대한 작가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라 믿는다면 그들 몫의 어둠과 광기를 단죄하고 폄하할 이유도 없거니와 굳이 고상한 포장에 연연해 독자의 즐거움을 반감 시킬 이유도 없다. 감상은 순수하게 독자의 몫이다. 아름다운 감상자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들의 사랑을 비판하고 제 몫의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청춘, 그 열정적인 눈빛과 어리석은 기다림으로 문학을 보고 세상을 보고 그대를 볼 수 있도록 쪽빛 조각보처럼 펼쳐진 통영 앞바다를 보며 기도했다.
‘사랑의 불 앞에서 뒷걸음치지 않고 당당하게 하시고, 홀로 서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게 하시고 자신들이 선택한 사랑에 완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