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대구에서 세례를받고 갓태어난 아들과 아내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1983년 12월 겨울.. 유달리 추운날이었다 서울 시흥동에 사는 누나집에서 머물렀다
그다음해인 1월인가 제가 여의도에 있는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면서 대기업 취업이 확정될때에
아내는 아들 그리고처제와 같이 기차로 올라오고있었고 저는 이삿짐트럭과 같이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서울 잠원동생활을 접고 회사사원주택으로 전세를 얻어서 내려왔다
그때에는 이미 내려온 누나의 영향이 컸다. 그때까지는 저는 냉담중이었다
제가다니는직장은 서울역앞에 있었고 제가살아가는 집은 지금의 의왕시내손동이었다
그래서 출퇴근시 직원들이 그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곳이 변두리인지라 때로는 가족들이 이버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새볔부터 회사에서 나와서 점검하기도 하였다
다른회사와 달리 출근시간이 8시였다 사실이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라애기할수가 있지만
저는 냉담을 풀기위해서 대림시기에 고해성사를보았다 신부님은 저에게 6개월동안 매일아침미사와
매일기도를 주문했다. 성당입구에는 매일드릴수 있는 기도문이 있는 자료들이 있어서 누구나가 가지고
다니면서 바칠수가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간단히세수하고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드리고 나서
아파트입구에 서있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때 신부님은 저에게말씀하셨다. "만약 제가하는말을 듣지 않아도 좋습니다.. 안 다녀셔도 됩니다..
한번 냉담한 사람은 또 냉담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저는 아주 절박했습니다. 그때의 마음으로는 그만둘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어려울때입니다
아기는막 백일이지나고 돌을 준비할때였지요
새볔에 일어나서 그런일을 반복하는 것은 저에게는 아주 피곤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조금다행인것은 집에서 직장까지는 버스로 30여분이 걸렸던 것이었지요 그시간동안은
버스안에서 잘수가 있었기때문이었지요
겨울이 되면 눈이내립니다. 많이 올때도 있지요
아파트단지에서 출발한 버스는 인덕원과 과천을 지나서 사당동을 넘어서
남산순환도로를 지나야 서울역앞으로 나올수가 있었는데 눈이 내리면 남산순환도로를
지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요 그래서 출근시각보다 늦은 시간에 회사에 도착하지만
회사버스를 타는 입장인지라 회사에서 지각으로 처리되지않았지요
사실 늦게 도착하는 만큼 차안에서 더 잘수가 있어서 저는 다행이라 여겼지요
그때에는 사실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것 같았지요
매일 미사를 다니고 그리고 하루2차례이상 기도도 드렸고 말입니다
그러던 차에 성당에서 견진교리가 있었다고 해서 교육에 참여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당시구역장이신 부동산을 하시는 어느분이 저의 대부가
되셨다 결국은 제가 서울로 이사오면서 그분과 연락이 끊어졌다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이었다. 교리는 몇시간을 받지않았던 것 같았다. 다만 몇차례 교리가 들어있는 프린트물을
받앗던 기억이 납니다. 자세하게읽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견진세례는 제가다니는 성당에서 하지않고 안양에 있는 호계동성당에서 한다고 했다
주일날은 주교님이바쁘시다고 하셔서 평일날 한다고 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중앙에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참석자들이 길다랗게
주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원교구장이시던 안젤로 주교님이셨다
긴장하고 어느사인인가 견진식은 끝나고 돌아갔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다닌 성당은 포일성당이었다. 지금은 새로 지어서 백운호수 뒷편에 있지만
그당시만하더라도 연립단지안에 있는 상가건물에 있었다
신부님이 오셔서 상거건물에서 미사를 드리게 됩니다. 미사가 끝나자말자
신부님은 마당으로 내려와서 신자들을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애기를 하시고 바로
승용차로 떠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신부님은 우리성당에서 살지않으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1984~5년도이었고 그이후에 제가성령기도회로 방문햇을때가
2005년이후였으니까.. 그때야 제가 연립단지에서 다녓을때의 포일성당이라고 생각한것이
공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까이에있는 백운호수에도 가족이 갔고
그당시에는 과천에 있는 백화점에서 의왕시까지 다니는 버스가 운행되었지요
그버스를 타고 쇼핑도 하고 과천구경도 했었지요
그때 저의부부에게는 꿈같은 신혼시기였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