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량 / 시인·정신과 의사
'집단심리'라는 말에는 대체로 중립적인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군중심리'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동물적 냄새를 풍기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커다란 들소를 공격하는 아프리카의 들개 떼거지를 상상해보라. 개 한 마리 한 마리의 독특한 개별성이란 전혀 없이 오로지 집단의식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저 왁자지껄한 들개 패거리를.
군중심리학의 원조는 의사이자 물리학, 고고학, 인류학의 대가이면서 사회심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귀스타브 르봉(Gustav Le Bon, 1841~1931)이었다. 르봉은 군중심리의 특질을 세 가지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첫째, 군중은 '익명성(anonymity)', 즉,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한 개인의 개별적인 특징은 각광을 받지 못하고 한 집단행동이 부여하는 안전성이 판을 친다. 개인주의가 발을 디밀 틈이 없이 전체주의가 있을 뿐.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가 따로 없다.
둘째로, 군중심리에는 강력한 '전염성(contagion)'이 있다. 유행이나 다름 없다. 한 남자가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면 모든 남자들이 머리칼로 이마를 감출 뿐더러 한 여자가 하의실종 패션을 보이자 모든 한국 젊은 여자들이 치마를 최대로 짧게 입고 싶어서 안달하는 유행의 어쩔 수 없는 전염성!
셋째로는 저 무서운 '피암시성(suggestibility)'이다. 서울 거리에서 고함치는 군중의 함성을 들어보라. 당신도 그 무리에 합세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군중 전체에서 오는 암시작용도 있지만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가 강력하면 할 수록 우리는 신비한 최면술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동서양의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슬로건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어찌하여 히틀러는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독일 국민을 감동시켜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학살시키는데 성공했는가. 그는 군중심리를 발동시키는 사악한 최면술사였던 것이다.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 심한 경우에 군중심리는 집단광증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군중심리를 쥐락펴락하는 저 숨겨진 손은 누구의 손이냐?
군중심리가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군대도 군중이다. 용감무쌍한 젊은 병정이 집단의식이 없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가.
군중이라는 뜻의 영어 중 보편적인 말은 'crowd'. 길거리나 스포츠 경기장 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을 뜻한다. 'crowd'는 고대영어에서 '빽빽하다'는 말이었고 더 나아가서 한자어로는 밀집(密集)하다는 뜻이었다. 그야말로 좁은 땅에서 빽빽하게 몰려 사는 당신과 내 형제자매와 부모님들의 삶이다.
'mob'는 '떼거리'라는 뜻으로 'crowd'에 비해 질적으로 한참 떨어지는, 소위 폭력을 휘두르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무리를 일컫는다. 이 짧은 단어는 'mobile'의 축소형.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 첫 구절 '라 돈나 에 모빌레'의 바로 그 '모빌레'에 해당하는 말. 미국에 사는 당신이 조석으로 휘발유를 넣으려고 차를 대는 주유소 이름, '모빌(mobil)'과 말뿌리가 같다. 군중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도 같은 법. 'mob'는 1927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조폭'이라는 뜻이 됐다. 각목을 휘두르며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하는 한국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귀스타브 르봉은 말한다. --군중 속에 끼어든 개인이란 지 멋대로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한줌 모래 속 모래 한 알에 불과하다.-- 자, 어떠냐. 비좁은 땅에서 어제도 오늘도 정치적 이념적 돌풍에 좌지우지 당하는 모래알 같은 당신의 존재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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