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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30일, 일요일, Tbilisi, Nasi Gvetadze's Homestay
(오늘의 경비 US $30: 숙박료 20, 점심 8, 저녁 4.8, 간식 0.6, 식료품 7.5, 버스 6.5, 지하철 0.4, 입장료 0.8, 카메라 5, 환율 US $1 = 1.8 lari)
어제 밤에는 아침 일찍 없어져서 소동이 났던 20대의 동양 친구가 나타났다. 도망 간 것이 아니고 일찍 나간 것뿐이었는데 말도 없이 나가고 짐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나갔으니 소동이 났던 것이다. 가냘프게 생긴 20대의 일본 청년인데 배낭이 무겁다고 계속 어깨를 주무른다. 나중에 보니 본체만도 1kg은 될 만한 대형 카메라를 둘이나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필름 카메라라 필름도 조그만 가방으로 하나다. 어제는 어딘가 멀리 다녀온 모양이다. 영어를 잘 한다 했더니 조끔 밖에 못한다고 한다. 별로 말이 없는 친구다.
어제 밤에는 20대 미국친구들 세 명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미국 사람들을 만나니 고향사람들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부터 중국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중이라 한다. 씩씩하게 보이는 친구들이다. 내가 말을 걸자 손을 내밀며 “I am Tom." 하면서 인사부터 청한다.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만의 습성이다. 워싱턴 D.C.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로부터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었다. 터키 수도 Ankara에서 5일 통과 비자를 (transit visa) 좀 어렵게나마 받았다 한다. 5일 안에 나가야 하는데 일단 입국한 후에 연장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한다. 그러나 현재 계획은 5일 안에 출국을 할 생각이라 한다. 나도 이 나라 비자를 아직 못 받았는데 이 친구들처럼 터키의 Istanbul이나 Ankara에서 통과 비자를 내봐야겠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비자 받기 까다롭기로 이름난 나라다.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내면서 그 나라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비자 받기 힘들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비자에 관한 한 외국 배낭여행자들 만큼 최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본국 사람들은 오히려 모른다.
오늘 날씨는 아침에는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더니 오후에는 해도 잠깐 나왔다. 오늘은 Stalin의 고향 Gori 구경을 가는 날이다. 아침 9시쯤에 숙소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Didube 버스 정류장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Gori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를 잘 못 탔다. Gori 시내로 가는 차가 아니고 Gori 근처를 지나가는 미니버스다. Gori에 간다고 해서 탔는데 Gori 시내로 가는 것이 아니고 Gori 시내에서 4km 떨어진 길가에서 차를 세우더니 저기가 Gori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릴 수밖에 없는 일이라 내리니 어디서 택시 기사가 나타나서 Gori까지 택시를 타란다. 날씨도 좋고 멀어 보이지도 않아서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이상한 사람 다 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버렸다.
걸으면서 Stalin에 대한 생각을 좀 했다. Stalin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나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구소련에서도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전쟁을 일으킨 책임자로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조지아에서는 아직도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자기 나라 사람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 나라 사람들은 Stalin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 것은 Stalin 때문에 이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Stalin이 아니었더라면 나치 독일이 이겼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마 거기에 반대를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Stalin의 작품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만약 이차대전에서 독일이 이겼다고 치자.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 것일까. 서양에서는 독일이 최강국이 되었을 것이고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는 소국이 되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말살되었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최강국이 되었을 것이고 시베리아는 일본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분해되어서 역시 소국이 되었을 것이다. 만주, 내몽골, 외몽골, 신강, 티베트, 그리고 중국 남서지역에 있는 소수민족 지역은 독립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아마 일본 그늘 밑에서 독립국이 되었을 것이고 한국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쓸데없는 공상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Stalin의 업적은 부인하기 힘들다.
Stalin에 대해서 한 가지 이해 못할 것이 있다. Stalin이 이 지역 출신인 것은 옛날부터 알았지만 러시아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순수한 조지아 사람이다. 조지아 사람이면 소련 내의 수많은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소수민족 출신이 전 소련의 지배자가 되었을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중국의 모택동이나 등소평이 중국 남서 지역에 사는 장족이나 묘족 출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일이 소련에서는 일어났는지 이 여행이 끝나면 한번 알아 봐야겠다.
Stalin의 손자 한 명이 Tbilisi에서 인터넷 카페를 경영한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일까? 35세 정도라 하는데 사실이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Stalin 큰 아들의 아들인가 작은 아들의 아들인가, 아니면 미국으로 망명한 외동딸의 아들인가. Stalin의 큰 아들은 이치대전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한다. Hitler가 졸병인 Stalin의 아들과 독일 장군 포로 한 명과 교환하자고 제의를 하니 Stalin이 거절했다 한다. 장군을 어떻게 졸병과 교환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Hitler가 Stalin에게 한방 맞은 것이다.
Stalin 박물관에서 네덜란드 부부 여행객을 만나서 같이 구경을 했다. 여행을 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미국사람들 만큼 반가운 사람들이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 축구 감독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른 유럽 사람들에 비해서 친절하고 마음이 트인 사람들 같다. 한 번도 마음에 안 드는 네덜란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박물관 입장료는 80전인데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한 장 찍는데 50전씩 받는다 (이 나라 돈으로). 알고 보니 박물관에서 일 하는 여자들 수입인 것이다. 외국 사람들에게만 받는 모양인데 우리에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300원 정도) 이들에게는 큰 수입인 모양이다. 인도에서는 카메라 사용료를 입장할 때 미리 받는데 이곳은 안에서 사진 당으로 받는다. 카메라 사용료를 받는 것은 외국 여행객들 주머니를 털자는 제도인데 외국 여행객들에는 반갑지 않은 제도다. 숙소 주인 Nasi 얘기가 이 나라 월급은 너무나 적단다. 수십 년 동안 독일어 선생 일을 하고 은퇴 연금으로 받는 돈이 월 $15 정도란다 (고기 1kg 가격이 약 $4이란다). 자기 아들이 의사로 병원에서 일하는데 월급이 $100 정도란다. 의사인 아들보다 80 고령의 Nasi의 수입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어제 열 명이 잤으니 아들의 한 달 수입인 $100을 번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아들에게 매달 보조금을 준단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돈을 보태줘야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이런 나쁜 경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다가 경찰한테 걸렸다. 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어떠랴 싶어서 찍었는데 보고는 달려와서 지우라고 한다. 내가 지우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다시 찍지 말라는 주의와 함께 간다. 인도에서 다리 사진을 찍다가 경찰도 아닌 어떤 놈에게 걸려서 몸 쌈을 한 기억이 난다. 이곳 경찰은 그래도 신사적이었다.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나중에는 오히려 미소까지 짓는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싫어하는 것 할 필요가 없다.
Gori에서 돌아올 때는 미니버스가 아니고 큰 버스를 탔는데 한 친구가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워댄다. 불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중에 내릴 때 보니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사인이 조그만 하게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잘 먹고 술 많이 마시고 담배 많이 피면서 산다. 남자나 여자나 뚱뚱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인도 거지는 바짝 말랐는데 이곳은 거지도 뚱뚱하다. 먹는 걱정은 없단 말인가 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못 살았을 때는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세계 아무리 다녀 봐도 옛날 우리나라처럼 못 사는 나라는 없다 (아직 아프리카는 못 가봤으니 장담하는 것은 이를지 모르지만). 50년 전의 한국을 생각하면 가끔 가슴이 찡해진다. 다시는 그렇게 가난하게 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북한 동포들 생각이 나서 또 가슴이 찡해진다.
오늘은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 음식점은 이제는 담배연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무섭다. 맥도날드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모양인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저녁때는 이틀 전에 저녁을 푸짐히 먹은 곳에서 먹었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심히 체크하고 다행히 별로 없어서 빨리 먹고 나왔다. 만두와 전 번에 먹은 내장탕을 시켰는데 무어라고 하더니 가져오는데 보니 계탕이다. 맛이 좋아서 아무 소리 없이 잘 먹었다.
Gori 가는 길
Gori 시내 전경, 중간에 보이는 조그만 탑이 있는 건물이 Stalin 박물관이다
Stalin 박물관 본관
별관에는 Stalin이 살던 집이 보존되어있다
Stalin이 살던 집
지하실에서 Stalin의 아버지가 구두수선을 했다
Stalin이 Potsdam 회담에 갈 때 타고 갔던 기차
기차 안 복도
기차 안 회의실
기차 안 Stalin의 침실
Stalin 열 살 때 사진, 옆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다
Stalin의 가족사진, 아래는 두 부인, 위에는 이차대전 동안에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큰 아들
Stalin의 작은 아들, Khrushchev 집권 동안에 유배지에서 죽었다 한다
Stalin의 작은 아들과 외동 딸, 딸은 1960대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Stalin의 사무실 집기, 물건 욕심은 없었던 사람 같다
Stalin이 사용했던 외투, 모자, 장화
모택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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