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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적혀있는 번호는 앞으로 글이 진행되면서 찿기쉽게 하기위한 것입니다.(예:3-5~3번째 글의 5번째 그림)
*본글은 복사나 퍼가기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3-1
4천600여 년 전에 축조된 세계 최고(最古) 피라미드인 '사카라'.계단형으로 된 이 피라미드는
자연의 부식작용으로 인해 일부가 허물어져 최근 수년째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 이집트 미술
왕과 군주의 영혼을 위한 미술 - 망자(亡者)를 위한 미술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태어날때 KA(카)라는 영체와 함께 태어나며
죽어서 육체가 썩으면 이 KA가 소생할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내세관은 이집트 미술을 만드는 근원이 됩니다.
이집트미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 영화 "인디아나 존스" 와 "미이라"
피라미드 내부를 지키는 전갈, 뱀, 바퀴벌레같이 생긴 기분나쁜 곤충들, 함정과 부비트랩
싸구려 미국영화가 이미지 메이킹해놓은 덕에
이집트미술에 대해서는 왠지 음습하고 눅눅하고
비밀스럽다는 선입관이 앞섭니다.
3-2 銀으로 제작된 쌍가락지 몇천년전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 똑같이 만들어도 제법 판매가 될것같은,,
하지만 실제 이집트지역은 사막기후라 상당히 건조하고
기온이 높기는하지만 11-3월의 동계기간에는 밤에 서늘할 정도입니다..
4-10월은 하계이며 이집트에서의 기후는 이 두기후 뿐입니다. 지중해 연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서 온화하고 낯에 고온현상만 제외하면 쾌적한 기후 환경이라 할수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 다녀온거 같죠? 하하 사실은 저 미국갈때만 빼고 비행기 4시간이상 타본적 없습니다 ㅋㅋ)
이러한 극단적인 건조한 기후덕분(?)에 이집트인들은
고대부터 미이라를 만들수가 있었습니다. 생선도 내장을 깨끗히
제거하면 장기 보관이 용이 하듯 이집트인들은 죽은자의 내장을 갈코리 같은걸로
입과 항문등을 통해 신체에서 분리하여 신체는 단단히 파피루스등으로 여미고
끄집어낸 내장들도 항아리에 보관하여 미이라와 같이 보관하였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엽기적인 방법으로 수고스럽게 미이라를 만들고 내장까지 보관했을까요?
3-3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믿었습니다.
죽은후 다른세계에서 온전히 다시 살려면
지금가지고있는 모든것들을 최대한 원형대로 유지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미이라라는 장례절차는 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왕이 사후에도 다른세계에서 편안히 살기위해 생존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것이 피라미드입니다.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이라기 보다는 왕의 사후
제2의 왕국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합니다.
이집트의 대부분 건축과 미술은 왕의 사후세계를 위해
존재했다고도 할수있습니다. 왕은 생존시에 이미 자신의 피라미드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워낙 큰 공사니까 당연히 미리미리 지어놔야겠죠)
그시대의 예술가들은 이미 정해진 규범과 양식에 따라 아직 살아있는 왕의묘실을
장식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독창성이나 진보적 예술관을 찿는것은 무리입니다.
이집트 시대 미술의 특징은 작가미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집트미술을 죽은왕과 군주를 위한 망자의 미술이라고 칭하는 겁니다.
이집트미술의 가장 커다란 세가지 특징은
1."정면성의 원칙"입니다.
이집트인들에게 현실의 생동감은 의미가 없는것이었습니다.
중요한것은 사후세계의 영원한 삶이었기때문에 인체가 좌우로 평형을 이루는 부동성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러한 표현을 하다보니 인체의 중앙선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을 이루었기에 이를 정면성의 원리하고 합니다.
3-4 BC1920-1880 목조에 채색
2."이상화의 원칙" 입니다
대상의 본질적인것에만 관심을 두어 얼굴표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생략하였습니다.
3-5
3."종합성의 원칙"입니다
눈에 보이는대로의 묘사보다는 대상을 완전하게 표현하는것이 중요하였습니다.
그결과 하나의 시점보다는 여러시점으로 대상을 파악하였습니다.
보통 인물 묘사시 눈과 몸통은 정면이며 얼굴, 팔,다리등은 측면인데
이는 최대한 인물의 특징을 잘살리고 완전한 모든 부위를 표현하기위함입니다.
3-6
이러한 종합성의 원칙은 피카소의 큐비즘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집트인들이 여러초점을 이용해 완전한 인체의 표현을 이루어 냈듯이
피카소도 다초점으로 인체의 여러면을 한화면에 종합하여 동시에 표현한것입니다.
3-7 3-8
좌측)1907년 피카소이"아비뇽의 처녀들" 우측)기원전 1319년부터 1292년까지 재임했던 파라오인 호렘헤브왕 분묘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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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르나크에 있는 신전
3-10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부속 건물로서 람세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6개의
람세스2세를 나타내는 거상과 2개의 오벨리스크가 전면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 거상은 3개가 남아 있으며
한쪽의 오벨리스크는 프랑스의 콩코디아 광장에 있습니다.
3-11
이집트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을 들어서 가장 먼저 보이는 람세스 2세의 거상 발밑에 있는
여자는 람세스2세 부인(Queen Nefertity)입니다.
이집트유적중 대부분이 이목구비가 심하게 손상된것을 볼수있습니다.(특히 코)
이는 이교도들에 의한 훼손입니다.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양측 모두에게 그리고 나폴레옹등 제국군대에게도,,
반달리즘(Vandalism)
도시의 문화·예술이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5세기 초 유럽의 민족대이동 때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 족(族)이 지중해 연안에서
로마에 걸쳐 약탈과 파괴를 거듭했던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최근에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서 약탈과 살인, 공공시설의 파괴·방화 등의 도시범죄가
급증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이러한 명칭을 사용 하기도 합니다.
3-12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부속 건물로서 람세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3-13
이집트 룩소르. 아멘호테프 3세에게 바쳐진 거상으로 테베 근처 왕실 무덤군인 네크로폴리스의 입구에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각광받았던 관광지라고 전해집니다.
3-14
3-15
3-16
(상:3-15) 이집트 룩소르.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에 있는 벽화로 하토르가 암소로 표현되어 하트셉수트에게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하:3-16) 로마의 건국신화인 로물루스. 레모스형제를 소재로한 청동 조각작품 입니다.
비슷한 양식과 스토리인데 많은 시간차가 나지만 이집트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수 없습니다.다. 하긴 로마인들은 워낙 흡수를 잘하고 오픈되어있는 민족이었으니.
3-17
이집트 룩소르. 아몬신을 모시는 카르나크신전 곳곳에는 제사 장면을 비롯한 옛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부조
위에서 설명한 정면성과 이상화, 종합성의 원칙을 모두다 볼수있는 작품입니다.
모든이들이 정면을 향해몸을 돌린듯 표현되어있고 (정면성)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얼굴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규격화된 몸통을 유지하고있고(이상화)
여러 시점을 이용해 모든 몸을 완전히 표현한것을 볼수있습니다.(종합성)
3-18
어린 나이로 숨진 소년왕으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 투탕카멘왕의 유물입니다.
룩소르 왕들의 계곡의 무덤군에서 발견되었고 붕대로 감은 미이라의 얼굴에
파라오 얼굴 모양대로 만들어져 씌워져 있었습니다.. 얼굴 위에는 어퍼와 로어 이집트의
수호신인 대머리수리와 코브라가 이마 위에 조각되어 있습니다.(소재: 금, 유리등)
3-19
BC304-30 청동으로 제작 CAT 냐~오~~옹~~나비야,,일루와,ㅋㅋ
3-20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식물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뒤,
엮어 말려서 다시 매끄럽게 하여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제지법이 유럽에 전파되기 전에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많이 재배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뿐 아니라 보트·돛대·매트·의류·끈 등을 만들었고 속[髓]은 식용하였다고도 합니다.
이집트 인들은 최초의 파피루스 발명자로서 본격적인 기록의 장을 연 사람들이었습니다.
파피루스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라는뜻인 페이퍼의 어원입니다.
이상으로 이집트 미술을 살펴 보았습니다.
다음은 그리스 미술로 넘어 가보죠.
첫댓글 저는 이집트미술을 보면 사람들이 감성적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굉장히 원칙적이구나. 하는 생각과 조각된 돌의 재질이 무엇일까하고 궁금했지요. 앙코르왓의 부조를 보면 화강암이아니니까 저렇게 정교할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대요. 그 당시 조상들은 힘들었겠지만 조상덕에 수입이 꽤 짭잘한 나라중 하나네. 미술을 감상할 자격이 없나 요런 생각이 들다니
어떤 양식이던지 처음부터 자유롭고 다양한 패턴이 나오긴 힘들죠,,더군다나 당시의 예술은 왕실을 위한 예술이었지 작가의 자유로운 작품을 선보일수는 없었습니다. 오랜세월동안 이집트 예술이 원칙적이고 경직될수밖에 없었던건 바로 예술초기의 자리잡아가는 과정이었던데다가 그예술이 왕을위해 봉사하는 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권력자에 의한 경직된 예술은 몇천년후 로마시대이후 중세이전의 6-11세기경에 유럽에서 나타납니다. 바로 종교예술의 등장이죠,,역시 교황과 왕에의해 주도된 초기 기독교미술의 시대 혹자는 이시기를 미술의 암흑시대라고도 칭합니다.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가장 먼저 거보고 싶은곳이 이집트였는데 형님덕에 먼저 와보네요!! 오랜시간이 지난 문명을 이해하기에는 그림이나 미술품들을 통해서가 가장 근접하고 빠른길이겠지요... 여러가지 작품 감상 잘 했구요 이집트 2편도 있나요? ^^
갈길이 멀어 2편은 없습니다,,^^::,,무작정 가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보다는 약간이라도 시대적 상황이나 이론을 갖추고 가시면 아마 훨씬 큰 감동을 받으실수있으실 겁니다..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이집트의 문화는 종교색이 짙다는 느낌이고 신전이 많아서인지 신비스러워요~이집트 군사들의 강인함과 파라오의 오만한 인상이랄까? 율부린너 덕택으로~이집트 문명은 낯이 익어요~늘 우리 성경에서 언급되어서 그런지.그리고 이집트 인들의 성격이 강인하고 미이라 때문인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섬찟한 느낌~벽에 조각된 그림들도 전쟁을 연상시키고.항상 움직이고 왕의 동상의 권위가 신의 위대함과 동격인 것처럼도 느껴지고~암튼 노래도 주술을 외는 것 같아요~좀 으시시한~신비스런 문화에 초대받아서 감사합니다~ㅎㅎㅎ
이집트는 다신을 섬기는 민족이었습니다,,물론 이런 전통은 그리스에도 연결되지만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집트는 그야말로 절대신의 성격이었다면 그리이스의 신은 종류도 훨신 많아지고 인간과 친근한 신의 개념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집트인에겐 아마 신도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몇천년을 이집트뿐만 아니라 지중해와 유대지방 후에 이슬람지역이 되는곳까지 엄청난 지역을 통치했던 막강한 제국이었던것은 잘 아시죠?
여기 나오는 음악은 이집트 카이로 출신인 아샤라프 스왈리암이라는 성악가가 부른 곡입니다(자장가라네요,,잠이올라나?) 사실 이가수는 민요가수가 아니라 꽤유명한 정통 클래식 성악가 입니다,,파트는 베이스-바리톤이라고 나와있는데..이런 파트도 있나보죠? 지휘자님한테 한번 여쭈어봐야겠네요,,아직 젊고 2007년부터 많은 활동을 해왔으며 주 활동은 미국에서 합니다..출연작은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등 다수,,뉴욕에있는 세계적인 메니지먼트 회사 소속이네요,,데뷔는 2004년 돈 지오바니로 콜로라도에서 했습니다..
성악가라고요? 전혀 분위기가 안 떠오르네~ 신전 앞에서 이상한 의상을 입고 주술을 외는 교주 같아요~목소리는 편안한데 잠이 더 달아날 것 같은 분위기로 끌고 가는 목소리~ㅎㅎㅎ
그림들이 좋아 몇점 가져 갑니다,몇천년이 지난 쌍가락지는 십여년전에 우리나리에서 유행했던 은쌍가락지 우리네 작품보다 못하지 않은 칼라와 무늬네요..3-5 완벽한 8등신들의 단순하고 절제된 분위기가 오히려 아름다움을 더해주고..그에비해 얼굴과 머리모양은 지나치리만큼 섬세하고 과장된 느낌도 있구요.얼굴의 섬세함 때문인지 역동이 느껴집니다.몇천년을 넘어 이들의 모습을 본다는것 대단한 감격이예요!.이들이 특별히 신경쓴 머리모양으로 그들의 신앙이나 지위를 말하고자 했을까요!,,,저 암소는 석기시대 인도의 동굴벽화에서도 본것같은데..우리가 보는 성경이 파피루스에 쓰여진것이 발굴되기도 했지요,감사해요,더운데!
3-6번의 색의 느낌이 너무 좋아요, 많은 그림들은 글도같고,, 여인네인지 남정네인지 구분이 안되는 자의 오른손 표정이 독특합니다,당대 최고의 문화를 자랑했던 이집트,,메소포타미아지역은 성서의 에덴동산이고 수메르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는구약의 우르, 아브라함과 그의 선조들이 살았던곳, 이방인 요셉이 통치를 도왔고 아버지 야곱과 그형제들을 살린 이집트.글고 블랑님 수메르인들의 대표음료가 맥주 였다네요? 맞나요! 우리가 지금사용하는 1년은 12달~~하는 태음력도 예서 나왔다는데... 암튼 지금은 그영화가 다 어디에...지구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보스코님 컴 바이러스먹어 입원한다카더니 어때요?
컴,,1박2일 입원하고 정상회복했습니다.. 바이러스가 아니고 조립할때,,C드라이브와,,D드라이브를 잘못 연결했다더군요,,세상에 이런일이,,ㅋㅋ,,암튼 잘 처리됐네요.
세상에 이런일이 어제티비에서 이런걸하데요 수술하는 도중에 환자가 마취가 깬겁니다 ,마취,근육이완제,수면제3가지주사를 놓기때문에 사지가 움직이질않아 상황을 알릴수가 없는겁니다..고통,수술이 끝난후 외상후유증이 말할수 없답니다 ,,미이라 죽은자는 창자를 끄집어 내도 말이없고 고통도 없지요...
세계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이지만, 지금 유럽 문명의 기반이기도 하지요. 인디아나~ 미이라~ 같은 영화가 이집트에 대한 오해도 남겼지만 관심을 끌게 하기도 했으니, 너무 나무라지만 마세요. 좋은 내용을 보고 갑니다.
3-2의 은 쌍 가락지가 맘에 드네요. 3-5의 조각품에서" 남매지간 인가벼요." 얼굴이 통통한게 닮았지요. 로마에는 거리에 조각품들이 많아서 로마 시내 전체를 전시장 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더만요. 이십여년 전에 우리 프란치코씨가 로마에 출장 다녀 오면서 비디오 테이프를 사왔더만요. 혼자 보고 오기가 미안해서 식구들은 비디오로라도 보라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봤지요. 교수님! 감사 합니다.
당시에는 인물이나 표정의 묘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성을 살린 조각은 이집트 후기미술에 가서야 나타납니다. 대부분 체형과 얼굴은 동일하고(남녀의 구분만있었죠)의상이나 엑서서리로 신분의 구분을 나타냈었습니다. 머리위에 상형문자같은것이 보이시죠? 그것이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제거 공부가 짧아 정확한 신분표시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