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사건

[RT지영]

정인숙 사건

* 사건의 개요

 당시 보도된 한국일보의 신문기사입니다.

▲ 생전의 정인숙씨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 오빠 정종욱씨가 밝힌 「정인숙사건」 진상

◎ 정일권씨 심복이 차문 열곤 “탕탕”/“뒤봐준다”부친설득에 거짓 자백/동생에 “아들하나 낳아달라” 간청/출소후 몇번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인륜 짓밟은 부도덕에 인간적 배신감3공화국 최대의 정치스캔들로 통해온 정인숙양 살해사건.

당시 최고위권력자들의 타락한 성도덕을 엿볼 수 있게 했던 이 사건의 범인은 과연 누구며 정양의 아들 성일군(당시 3세)의 아버지는 누군가.

20여년간 숱한 미스터리속에 의문이 계속 제기돼 왔던 이 사건은 최근 정양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년간 복역하다 출소한 오빠 정종욱씨(55)가 사건발생 21년만에 처음 말문을 엶으로써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인숙이를 죽인 범인이 아니며 성일이의 아버지는 정일권씨다』 정양은 지난 70년 3월17일 서울 마포 강변3로 절두산성지 부근 강변도로에서 자신의 서울 자2­262 코로나 승용차 뒷좌석에서 권총으로 살해된채 발견됐으며 정양의 운전사로 오른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던 오빠 정씨가 범인으로 구속됐었다. 이 사건은 장안의 요정계 정상급 호스티스였던 정양의 비밀수첩에서 수많은 정·재계 명사의 이름이 발견됨으로써 당시 이른바 지도층인사들의 문란한 사생활이 일반국민에게 노출되는 계기가 됐었다.

○“나는 범인 아니다”

특히 정양 살해사건은 정양의 아들 성일군의 아버지가 정부의 고위인사,심지어는 박대통령이라는 소문까지 번지면서 「권력기관이 개입된 살인」이란 의혹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었다. 게다가 이 사건은 ▲2시간만에 돌연 치워져버린 현장 ▲현장검증의 미실시 ▲공안검사의 수사지휘 ▲사용총기의 회수실패 등 숱한 의문점을 남겨 시중의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같은 의혹을 반영하듯 당시 시중에는 「정인숙의 수첩에 오르지 못하면 유명인사가 아니다」는 유행어가 나돌았는가 하면 「성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란 내용의 개사유행가가 나돌기도 했다.

계절풍처럼 계속되는 숱한 의문의 제기에도 불구, 지난 89년 5월 출감한 뒤 20여 개월 동안 보도진의 추적을 따돌려 오다 금년 정초 불쑥 「아직 최후의 심판은 남았다」는 고백수기를 내놓아 출판계에 회오리를 몰고온 정종욱씨. 수소문끝에 덕수궁부근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사형수」 정씨는 반백의 초로로 변해 있었다. 지난 21년간에 걸친 고통의 세월을 반추하는 주름진 눈가엔 한이 물기로 배어 있었다.

­실례일지 모릅니다만 정말 범인이 아닙니까.

『절대 아닙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와 함께 조사를 받으면서 이틀간 계속 부인을 하다 면회온 아버지가 「성일이 아버지가 뒤를 봐준다고 했으니 일단 네가 동생을 쏘았다고 해 파문을 진정시키라」고 말해 거짓자백을 했지요. 성일이 아버지와의 관계등을 고려,우선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검찰과 경찰은 오빠의 자백을 내세워 동생이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는데 대한 불만과 동생의 재산·금품을 노려 범행을 했다고 동기를 발표했는데요.

『제가 왜 그런 바보짓을 하겠어요. 금품을 노리는 것보다는 동생과 성일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용하면 훨씬 편히 살 수 있는 걸요. 또 하필 집앞에서 어리석게 범행을 했겠습니까. 남모르는 으슥한 곳도 많지 않습니까. 모두 조작이에요. 그 때문에 강도살인혐의중 강도부문은 무죄가 됐구요』

○ 입원땐 독살걱정

­그러면 정확한 사건경위는 어떻습니까.

『당일밤 11시40분쯤 타워호텔에서 동생을 태우고 서교동 동생집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남자 2명이 「정총리의 심부름」이라며 세워 차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범인이 뒷좌석의 동생을 향해 권총 2발을 쏘았습니다. 그러고는 앞뒤로 탄 범인들이 절두산쪽으로 차를 몰라고 했어요. 절두산성지앞 공터에 지프가 세워져 있어 직감적으로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판단,허리춤에 대 있던 범인의 권총을 밀치고 차문을 여는 순간 총을 쏘더군요. 범인들은 지프를 타고 달아났구요』

­당시 경찰은 자동차방석 밑에서 발견된 롤렉스 손목시계와 오빠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다이어반지를 내세워 강도가 목적이라고 발표했지 않습니까. 반지는 왜 보관했습니까.

『반지는 이날 밤 동생이 타워호텔에서 춤을 추면서 실크옷이 긁힐까봐 미리 제게 보관시켰어요. 반지의 피는 관통상을 입으면서 묻었던 거예요. 시계가 왜 방석밑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사건발생직전 신모씨에게 45구경권총을 빌려 보관한 것이 이 사건 범행준비를 위한 것이란 당시발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실제 화약반응검사결과 오빠의 장갑에서 화약이 검출됐구요.

『당시 고관의 작은댁이던 동생의 처지로는 호신용권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 아저씨가 권총을 갖고 있어 부탁끝에 빌렸지요. 미군부대 PX탈취를 위해 빌렸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신씨도 부인했구요. 저의 군용장갑은 당시 운전석 앞에 얹어두었는데 당연히 화약반응이 나오겠지요. 장갑을 낀채 권총을 쏠 수 없지 않습니까. 병원에 있을때도 독살을 걱정, 집사람이 먼저 먹어보고 제가 먹을 정도였습니다』

­빌린 권총의 행방을 압니까.

『평소 차안의 글러브박스에 보관해 두었는데 사건후 없어졌다 하더군요. 내가 총을 강변철책 너머로 던졌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총을 맞은채 어떻게 그렇게 멀리 던질 수 있습니까. 버린게 사실이라면 수색에서 발견돼야 했구요』

­그러면 범인들은 누군지 기억합니까. 인상착의도.

『한 사람은 얼굴에 흉터가 있어 기억합니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니 제가 자동차 중개상에서 일할때 안면이 있던 김해용이란 인물이었습니다. 가명인지도 모릅니다. 출소뒤 전국을 누비며 김해용을 찾았지만 허탕이었습니다』

신장 1백66㎝의 계란형 얼굴로 빼어난 미모에 남성을 사로잡는 화술과 뛰어난 영어회화를 구사했던 정인숙양. 대구 ㅅ여고를 졸업한뒤 서울의 ㅁ대에 입학한 그녀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출전하려다 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몇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박대통령도 만나”

한때 극작가 장모씨와 약혼,동거하기도 했으나 불화로 헤어진뒤 65년 필동 「김마담」에게 꾀어 비밀요청 출입을 시작,「혜미」「혜련」이란 가명으로 「도승」「예림」「일진」「하원」「삼미」「옥류장」「선운각」 등 요정을 전전하며 정재계인사들 사이에 밤의 꽃으로 떠올랐다.

­동생의 비밀수첩에는 어떤 인사들이 올라 있었습니까. 동생이 사귄 주요인물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지금은 밝힐 수가 없습니다. 정계·재계·영화계 등 유명인사들이 많았지요. 언젠가는 이 부분도 밝힐 계획입니다』

­동생이 정일권씨와는 언제 처음 알게됐습니까.

『공화당의원의 소개로 선운각에 나가면서 알게 된 것으로 압니다. 이때 인숙이가 최고(박정희대통령 지칭)와도 가끔 어울린다고 자랑했습니다』

­성일이가 정씨의 아들이란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한달에 한번꼴로 서교동집으로 찾아왔지요. 그리고 동생이 그이가 아들하나만 낳아달라고 한다며 상의를 해 처음엔 가족들이 극구 반대를 했지요. 출산후에는 1주일에 한번꼴로 찾아와 성일이를 안고 즐거워 했으며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소원을 이뤘다는 뜻에서 성일이란 이름까지 직접 지어 왔어요. 성일이도 자기 아빠가 TV에 비치면 「아빠」라고 소리치며 좋아했지요』

○친자확인소송 계획

­당시에도 진실을 밝힐 수 있었을텐데 20년이 지난뒤에야 말문을 열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당시로선 나의 허위자백이 무기징역형까지 가져다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재판과정에서 사실을 밝힐 경우 압력을 넣어 사형을 시켜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울기만 했지요. 출소후에 4∼5차례나 정씨를 찾아갔지만 옛비서 신모씨가 4천5백만원을 건네주었을뿐 만나주지 조차 않은데다 조카 성일마저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아 인간적 배신감에서 이를 밝히기로 했습니다. 절대 돈 때문은 아닙니다』

­수감생활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5년정도 지나도록 반응이 없어 포기했습니다. 오직 모범수가 되어 감형을 받는 길만이 제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방에서 새사육을 담당했던 명성그룹 김철호회장과 함께 지냈습니다』

­성일군은 어떻게 지내 왔습니까.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지난 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89년엔 서울에 나와 결혼식을 올렸지요. 작년 7월 서울에 다시 나와 처음 만나 동생묘소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많이 울었습니다. 자기엄마에 관한 얘기를 많이 물었습니다. 자기아버지는 만나지 못했구요』

­앞으로의 계획은.

『형님의 아들로 호적에 올라있는 조카 성일이의 아버지를 찾기 위한 친자확인 소송과 21년전 사건의 재심청구소송을 낼 생각입니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인 15년이 지나 범인을 처벌하지 못할지라도 저와 가문의 누명만은 반드시 벗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건관계자들이 상당수 작고해 버려 어려움이 많습니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감생활 6년만에 부인이 이혼과 함께 외동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가버려 출소후에도 홀아비로 친지의 안테나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정종욱씨.

「절대로 돈때문에 입을 연게 아니다」고 거듭강조한뒤 오른쪽 허벅지의 총상후유증으로 절룩거리며 재심청구 준비에 따른 상담을 위해 변호사를 만나러 떠나는 그의 허허로운 뒷모습에는 그래로 풀리지 않는 몇몇 의문과 함께 70년대 한국요정정치 문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배어 있는듯 했다. [경향신문]1991-01-16 (14면) 사회 기획, 연재 <임은순기자>

* 「정인숙사건」은 보도 통제되었다.

[그해오늘은]狂人의 狂詩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 금시계 금반지 금단추…"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재벌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도둑으로 싸잡아 풍자했으니 얼핏 제정신이 아니다. 따라서 '광인(狂人)의 광시(狂詩)'라고 한 기득권의 평가는 그럴 듯했다. 그러나 30년전 오늘 김지하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반공법으로 정보기관에 끌려간다.

이 시가 사상계 5월호에 실려 나왔을 때는 책만 회수하더니 야당기관지 '민주전선'이 이를 전재한 것이 발단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민주전선'이 '오적'과 함께 실은 정인숙 기사가 문제였다. 정인숙 아들의 아버지가 정일권이 아닌 박정희라는 소문을 옮긴 것이다. '오적'의 원조는 을사조약 직후 이완용 등 '을사 오적'이나 그 면면은 계속 바뀌고 있다. '오적'에서도 '장성'은 물러났고 '재벌'의 터줏대감인 현대도 해체된다는 소리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지지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라는 재벌의 속성은 '치자즉 도자'(治者卽 盜者)라는 포도대장의 넋두리와 함께 낯설지 않다.

광인의 광시에도 동원되는 반공법은 지금 어디서 비상대기하고 있을까. [세계일보]2000-06-02 40판 02면 631자 종합 기획, 연재 <양평 문화전문기자>

셀리그 해리슨이 밝힌 군부정권 비사/박정권 외신보도 통제 안간힘

◎ 주미대사관 동원

“정인숙기사 빼라”/외국특파원들 환심사려 기생파티도〈한겨레신문〉에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셀리그 해리슨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이 군사정권 아래 있던 한국에서 정권의 비리, 자의적 통치 행태를 취재해 지면에 반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보내왔다. 60, 70년대 〈워싱턴 포스트〉의 도쿄지국장으로서 한국을 취재했던 그의 글에는 군사정권이 정보기관의 하수인들을 통해 그의 취재활동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뿐만 아니라 주미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까지 동원해 그의 소속 신문사의 고위층에도 압력을 가한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제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민족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시대처럼 묘사되고 있는 군부독재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새삼 일깨워주는 그의 글을 소개한다.

한국 정부가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것은 외국인 저널리스트로서 군사통치 아래의 부패와 억압을 보도하는 것이 어떤일이었던가를 새삼 일깨워줬다.

나는 68년 〈워싱턴 포스트〉의 동북아시아 책임자로서 한국을 처음으로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박정희 정권은 도쿄에 있던 외국 특파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썼는데, 우리는 서울 방문 때마다 호사스런 기생파티를 제공받았고 고위층과도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 고관 23명 명단 나와

내 경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통령과의 단독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기생파티는 내가 박 정권의 3선개헌안에 대한 대중적 반대투쟁을 광범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69년 7월 끝났다.

그 뒤의 박 정권 10년과 전 정권 시절 동안 나는 자주 한국 정치활동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탄압과 고초의 맛을 보았다. 전화를 도청당하고 중앙정보부(나중에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 요원들이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 일일이 조사하는 것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의 입국비자 발급은 종종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지연됐다. 내가 박 정권이 싫어하는 주제로 기사를 쓰고 있을 때면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 관리들이 기사가 나갈 경우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에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기사를 삭제하도록 신문사 편집담당자들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내 기사를 모두 실었으며 비판의 강도를 낮추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딱 한번 중요한 기사가 6개월 동안이나 나가지 않은 채 보류된 적이 있다. 70년 3월의 정인숙 살해사건과 관련한 추문을 다룬 기사였다. 정인숙은 정일권 당시 총리와 관련이 있는 기생으로 일부에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나돌았다.

중앙정보부는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룬 지 하룻만에 국내 신문발행인들에게 “한 저명한 한국인을 해치지 않고 국가안보를 손상하지 않도록” 이 사건을 더 이상 보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하룻동안 언론은 살해된 사람(정인숙)의 오빠가 사건 발생 직후의 아침에 경찰과 얘기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을 보도했으며, 〈조선일보〉는 “(얘기하기를 거부하는) 대신 그는 그들에게 ○○○씨를 부르도록 요구해, 우리 정부내 매우 중요한 인사를 언급함으로써 경찰을 놀라게 했다”고 썼다.

언론은 또 뉴스 보도금지가 떨어지기 전에 정인숙이 3살된 아들을 두고 있고 운전수가 딸린 대형 리무진을 타고 다녔으며 밍크코트와 프랑스제 야회복으로 가득찬 저택에 살았다는 것도 보도했다. 또 경찰은 기자들에게 정인숙의 저택에서 정부 고위관리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형태의 특별외교여권과 이름이 공표되지 않은 정부 고관 23명의 전화번호가 기록된 노트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에게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3살된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뒤 몇달 동안 지하언론과 시정에서 열띤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나에게 정인숙 사건은 단순히 범죄·섹스·정치가 결합된 ‘좋은 기삿거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70년 8월 3천단어 분량의 기사를 보냈을 때 나는 이 기사와 관련해 편집진에 떨어질 압력을 미리 피하기 위해 정일권이 이 살인사건에 관련됐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점과 그가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사에서 강조했다.

내가 관찰한 바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은 정일권이 아이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한국내 널리 퍼진 믿음과 살해 혐의로 오빠를 유죄 확정한 법원판결에 대한 광범한 일반의 불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외로 나가던 모든 언론을 감시하고 있던 박 정권은 이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71년 4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의 전망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한국 정치에 간섭하는 행위라며 〈워싱턴 포스트〉의 한 편집 간부를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기사는 정일권이 선거 전 내각 개편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추문 때문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인 71년 2월까지 보류됐다.

〈워싱턴 포스트〉를 떠나 카네기재단에 몸담은 지 한참 뒤인 전두환 정권 시절 나는 전씨의 부인 이순자, 그리고 동생 전경환에 초점을 맞추어 전 정권하의 부패를 상세히 폭로하는 글을 썼다. 〈워싱턴 포스트〉는 주말매거진판에 싣기로 하고 이 글을 받아들였으나, 먼저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이 기사에 관한 공식적인 논평을 받아낼 것을 요구했다.

○ ‘전씨일가 비리’ 저지시도

나는 이런 행위가 곧바로 이 기사가 실리지 못하도록 압력을 받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고 결과는 내 말 그대로였다. 대사관 고위관리가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을 찾아와 기사가 부정확한 것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이 기사가 친미 정부의 기반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레이엄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이 항의를 물리쳤다고 들었다. 이 기사는 전 정권을 끝장낸 대규모 항쟁의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던 87년 1월25일자에 실렸다.

한국어를 몰랐기 때문에 군사정권 시절 내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매우 심각한 도덕적·정치적 고충은 어떻게 하면 곤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한국인 통역과 저널리스트를 얻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청와대의 분노를 무릅쓰고 나를 도와준 많은 한국인 동료들, 특히 옛 〈합동통신〉의 김만기 전 국제국장과 리영희 현 한양대 교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딜레마를 인식하게 된 것은 3선개헌 반대투쟁 시절 가장 영향력 있는 개헌 반대자 중 한 사람으로 당시 공화당의 당의장이었던 원로 정치인 정구영(당시 84살)씨와 회견했을 때였다. 정씨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집 밖에 배치된 가운데 실질적인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내가 “단 한 사람을 위한 헌법 개정”이라는 정씨의 3선개헌 공격을 보도한 뒤에 나와 동행했던 〈합동통신〉 기자들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19시간 동안 신문을 받았다.

9월14일 오전 4시 3선개헌안의 가결로 끝을 본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동안 내 옆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인 통역에게도 비슷한 운명이 닥쳤다. 개헌안 통과를 보도한 내 기사의 머릿말은 어떻게 박정희 지지자들이 국회 본회의실 밖에서 몰래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고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는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는 통역이 김영삼, 장준하, 그 밖의 다른 야권 지도자들과 회견하는 나를 도왔다는 이유로 그를 구타했으며, 나를 다시 돕는다면 직장에서 쫓아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정인숙 살해사건을 더 파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나는 옛 친구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해주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밤과 다음날 사건을 취재했던 대다수 기자들은 “아프다”거나 “부재중”이었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역을 찾으려 했지만 한국어를 아는 미국인들조차 비자가 취소될 것을 두려워해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 내 통역인에 구타 압력

결국 비즈니스맨으로 가장하고서야 나는 통역회사에 선금을 주고 통역 한명을 구했다. 통역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정인숙이 살던 집에 도착해 그의 가족에게 질문을 시작했을 때 통역이 얼마나 떨면서 두려워했는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몇번이나 회견을 중단시키려 했으나 나는 우리가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따돌렸고 그의 신원을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설득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가 낳은 직접적인 결과로, 억압의 인간적 비용과 부패의 악취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시기의 가장 해악적인 면은 군부통치를 정당화하고 연장하기 위해 북한과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사실이라고 결론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겨레]1996-01-15 05면 4110자 컬럼,논단

* 정성일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정인숙 여인 살해사건(격동의 50년 정치사 기행)

◎권력­부­성 뒤엉켜 3공 도덕성에 치명타/“사생아 친부 밝혀라” 야의원들 추궁… 25년 지나도 범인­동기 미스터리권력과 부,성과 여자가 총체적으로 뒤엉킨 정인숙 여인 살해사건은 해방 50년사에 있어 최대의 정치스캔들로 손꼽힌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제3공화국 주역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 정여인사건을 놓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여야간 첨예한 공방전이 벌어져 정국이 경색되기도 했다. 야당의원들이 연일 국회 대정부질의를 통해 정여인이 낳은 아들(정성일)의 친부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강하게 추궁해 공화당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사건발생후 2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범인과 범행동기,범행과정등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등 이 사건을 둘러싼 미스테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70년 3월17일 밤11시가 넘은 시각,서울 양화대교 부근 한강북단 강변로(마포구 합정동 319번지·절두산 성당 인근)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앞문이 열린채 서있는 코로나 승용차 속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건발생 신고를 접수한 마포경찰서(서장 이거낙) 수사팀은 현장에서 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선 뒷좌석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밤의 꽃」 정인숙(당시 26세)은 값비싼 밍크코트를 입은 차림 그대로 죽어있었다. 두 발의 총알이 목과 가슴을 관통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신음소리는 운전석에 앉아있던 오빠 정종욱(당시 34세)한테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정여인은 서울 장안의 특급 요정들이 서로 「모셔 가려고」 혈안이 돼있을 정도로 주가가 높은 얼굴마담겸 호스테스였다.

대구의 모여고를 졸업한 뒤 그녀는 선천적으로 빼어난 미모와 몸매,세련된 매너를 장기로 내세워 당시 정치권이나 재계의 고위인사들이 출입하던 요정에 진출,손님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했다. 수입이 늘고 활동반경이 넓어진 정여인은 친오빠인 종욱씨를 매니저겸 운전기사로 채용,늘 옆에 두고 다녔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도 그녀는 타워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코로나 승용차를 타고 서교동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단순한 치정살인 정도로 여겨졌던 정여인사건은 다음날 그녀가 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인데다 그녀의 수첩에서 정­재계 거물 26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발견되면서 발칵 뒤집어진다. 여권발행이 매우 힘들었던 시대에 그녀는 불법발급된 복수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미화 20달러지폐 1백여장을 소지하고 있는등 「보통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각종 소문이 꼬리를 물고 증폭되기 시작했다. 아들 성일씨의 아버지가 박대통령이라는 소문과 그녀가 정일권 국무총리의 애첩이라는 풍문등이 끊임없이 세인의 입을 통해 나돌았다. 이에 당황한 3공정부는 수사를 이례적으로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담당토록 했다.

간첩수사를 맡는 부서가 정여인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공안팀은 사건발생후 6일째인 3월23일 오빠 종욱씨를 살해범이라고 공식발표했다. 수사본부는 살해동기를 『오빠가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수모를 당한데다 여동생의 방종한 사생활을 나무랬으나 오히려 창피만 당해 범행을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구체적 범행과정에 대해서는 『종욱씨가 서교동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운전석 방석 밑에 있던 권총을 꺼내 동생에게 두 발을 쏘았고, 자신의 허벅지에도 쏘았다』고 주장했다. 수사본부는 문제의 권총에 대해 『정씨가 미군PX를 털기 위해 육군장교 출신 친구 신모씨로부터 입수해 범행에 사용한 후 강변대로에서 한강에 집어던졌다』고 발표했고 정씨가 동생으로부터 탈취했다는 다이어반지와 롤렉스 손목시계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정여인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다는 점,권총도 발견되지 않았고 오빠가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한강 밑으로 총을 던질만큼 힘이 남아있느냐는 의문,사건현장이 보전되지 않고 훼손됐다는 점등 때문에 설득력을 잃어갔다.

이같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씨는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여년간 복역하다 지난 89년5월 석탄일 때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아무튼 정여인 사건은 시중에 떠도는 의문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채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당시 신문에 『정인숙의 수첩에 오르지 못하면 유명인사가 아니다』는 유행어가 소개되는가 하면 가수 나훈아씨의 히트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고관의 ×라고 말하겠어요』라는 풍자곡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그치지 않자 박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그는 정총리를 불러 『정여인과 무슨 관계냐』고 직접 「취조」했고 중앙정보부장에게 『언론사의 관련보도를 통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박대통령의 장녀인 근혜씨는 88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때 정여인과 관련된 당사자를 알고 있었다. 물론 상당한 고위층이었다. 그 사람은 사표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찾아와 「제가 관계했던 여자지만 결코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울면서 사죄했다. 아버지는 그때 당사자를 문책하게 되면 살인자로 비쳐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같다』고 뒤늦게 당시 상황을 해명한 바 있다.

70년5월 임시국회가 열리자 제1야당인 신민당 유진산 당수는 이같은 박대통령의 우유부단한 행동에 반발,『박대통령이 각료를 시켜 정인숙이라는 여인 살인사건을 장시간 보고토록 한데는 필경 새로운 의문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조윤형 의원은 본회의장 단상에서 풍자곡 「눈물의 씨앗」을 불러제꼈다. 그러자 공화당의원들이 이를 제지하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졌고 삿대질과 고함,욕설 등이 난무하면서 본회의장은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게다가 반정부 시인인 김지하씨는 사상계에 「오적」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사회정화다,정인숙을 철두철미 본받아라…』는 내용을 게재,김씨는 구속되고 사상계는 폐간조치를 당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정여인사건은 71년의 7대 대통령선거와 10월유신조치등을 거치면서 잊혀졌다. 하지만 오빠 종욱씨가 89년 출소하면서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그는 91년초 한 일간지와의 회견을 통해 『나는 진범이 아니다. 성일이의 아버지는 정일권 전총리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수사본부의 사건발표 내용에 대해 『당시 여동생과 나는 서교동 집부근에서 무교동의 건달 김해용(가명)등 2명으로부터 총격을 입었으며 진실을 밝히면 살해될까 봐 두려워 거짓자백을 하게 됐다』고 정면으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사건 직후 아버지(정도환씨·78년 사망)가 면회와서 「성일이 아버지가 뒤를 돌봐주기로 했으므로 일단 네가 동생을 쐈다고 진술해 파문을 진정시켜라」고 종용했다』면서 『그러나 정 전총리는 약속과 달리 출옥후에 나를 만나주지 않는등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줘 재심청구와 친자확인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또 『출소후에 정씨의 비서였던 신모씨가 나를 찾아와 「고생했다. 조용히 있어라」면서 4천5백만원을 건네준 일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정여인과 정 전총리가 요정 선운각에서 알게된 뒤 「은밀한」 관계로 발전했고 정씨가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집까지 얻어주고 매달 한번씩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 성일씨가 93년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라는 자전적 고백록을 출간하면서 『어릴때 외할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네 아버지는 정일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또 박대통령의 공보비서관을 지낸 선우련씨도 『정총리가 71년 형님인 선우휘씨를 찾아와 「정여인을 우연히 알게됐고 내 아들을 낳았으나 공개할 수 없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고 증언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정 전총리는 이같은 주장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성일씨가 92∼93년 매스컴에 직접 등장해 자신의 아들임을 계속 주장하자 아예 한국을 떠나 하와이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성일씨는 93년 모방송국에 출연,『최근 정 전총리와 통화했는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혈육이기 때문에 내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다소 「모호한」 주장을 밝혀 또다른 혼동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도 했다.

더구나 정 전총리 측으로부터 확실한 보상 약속없이 힘들게 제기한 친자확인소송을 철회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이같이 석연치 않은 점은 오빠인 정씨도 마찬가지다. 살해위협과 사후 보상약속을 단지 구두로 약속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진실을 명백히 밝혀내기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정 전총리와 박대통령등 사건의 주연급들은 모두 타계했다. 생존해있는 유일한 목격자 정씨도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단순한 「조연」에 불과할 뿐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판­검사,수사관등은 양심을 걸고 『범인은 오빠가 확실하다』며 맞서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여인사건은 정치권 최고위층의 문란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국민에게 노출됐다는 점,한 여인의 살해사건에 국가권력 일부가 개입했다는 의혹,그리고 당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요정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요정정치」의 폐해를 한꺼번에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많은 경종을 울려준 사례다. [세계일보]1995-10-09 05면 4491자 기획, 연재〈하준 기자〉

친자 확인소송 정인숙 아들/“박 대통령 핏줄일수도” 주장(여울목)

○…정일권 전국무총리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진행중인 정성일씨(23)가 3일 녹화한 SBS TV 주병진쇼에 출연,자신이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해 눈길.정씨는 이 자리에서 『최근 정씨가 나와의 직접 통화에서 「당신은 나의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아들」이라고 밝혔다』며 『당시 그가 국가 2인자였음을 생각할 때 모시던 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던 것.

71년 오빠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던 정인숙(당시 26)의 아들인 정씨는 그동안 미국에 살다 지난해 11월 영구 귀국,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이 프로그램은 6일 밤10시55분 방영된다. [국민일보]1993-02-04 19면 328자 사회 가십

“정성일이는 내아들/정일권씨 71년 고백”(돋보기)

◎선우연씨 잡지기고◇…최근 정성일씨(26)가 정일권씨를 상대로 낸 친자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0년 「정인숙여인 사건」과 관련,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 여인,정일권씨와의 관계를 밝힌 증언이 최초로 공개되어 눈길. 70∼78년까지 8년간 박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으며 소설가 고 선우휘씨의 동생이기도 한 선우연씨(64·현 언론인금고 이사장)가 당시 8년간 기록했던 일기를 한 월간지 최근호에 「박정희 육성증언」이란 기사로 게제하면서 『정일권씨가 71년 봄,형님인 선우휘씨를 찾아와 「이동원 외무장관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정 여인을 알게되었으며 내 아들을 낳았으나 공개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고 공개한 것. 선우씨는 이 일기를 통해 『박 대통령도 역시 이 사실을 알았으나 묵인했었다』고 술회. [경향신문]1993-02-20 23면 396자 사회 가십

김충식이 쓴 「남산의 부장들1」이란 책에는 김재규가 1980년 1월 15일에 한 발언이 실려있다.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백 여명 정도가 된다. 임신해서 낙태한 사람도 있고……징징 울고 불고 불응하겠다고 해서 배우K, H모양은 오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간호여성이 임신해서 애를 먹기도 하고……”

또한 박정희의 채홍사 노릇을 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달력을 가리키며)저기 나온 미녀는 모두 안가에 다녀갔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유산」을 쓴 김재봉은 궁정동 안가 행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과 국가 공직자들이 외부와는 일체 차단된 안가에서 주연을 벌이는 자리에 주흥을 돋구고 술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젊은 여자를 불러 들인 것이다. 이런 술자리가 한달에 열번 다시 말해서 사흘에 한번씩 벌어졌다. 그 자리에 한번씩 왔다간 여자들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TV탈렌트와 가수 등 연예계의 일류 스타들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술판은 소행사와 대행사로 구분되었다. 소행사는 대통령 혼자 즐기는 것이며 대행사는 측근 권력자 2~3사람이 함께 하는 것을 뜻했다”

박정희식 경제 부흥은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구도였다. 그래서 외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기술이나 자본 투자없이 쉽게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으로 '관광산업(일명 기생관광)'을 활성화 시켰다. 이러한 관광정책은 1970년대 초 세계경제 불황의 여파로 수출이 부진하고 외자 관련 기업이 부실을 겪자 외환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나왔다.

1962년 특정 지역내에서 성매매는 사실상 허용했고 특수 관광호텔에서 외국인 상대 매춘 여성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1973년 부터는 관광기생들에게 허가증을 발급해서 호텔출입을 자유롭게 했으며 통행금지에서도 제외 되었다.

정인숙 사건은 아직도 수수께끼이며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인숙이 정치적 희생양이었다는 설도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다만 정인숙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요정정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가의 주요 현안을 요정에서 결정하지 않았다면, 외국의 주요 귀빈을 요정에서 접대하는 형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정인숙의 죽음에 그처럼 많은 의혹은 쏠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3월 17일 밤 11시30분께. 서울 강변3로서 울린 3발의 총성은 죽은 정인숙(鄭仁淑)양의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뜻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저명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지지않은 3살짜리 어린애를 가진 처녀 엄마라고해서 이러쿵 저러쿵 파다한 후문을 일으킨 것. 타고 난 미모 하나로 밤의 요화로 군림, 각계 실력자들과 어지러운 관계를 가졌던 정인숙(鄭仁淑)양. 45구경 권총탄환 2개로 26세의 나이로 비명에 숨져야했던 그녀의 「짧고도 긴 생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은 가족 ·친구들의 말을 바탕으로 한 「정본(正本) 정인숙전(鄭仁淑)傳).」

▲ 정인숙(鄭仁淑)양
「베일」 속에 싸여 무수한 억측을 자아내게 한 죽은 정인숙(鄭仁淑)양.

옛 이름은 정금지(鄭金枝). 해방되던 해인 1945년 2월 13일 대구시 남산동 681의 2에서 전 대구부시장을 지낸 정도환(鄭道換)씨(65)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인숙(仁淑)양의 아버지 정(鄭)씨는 12살 때 일가 중 후손이 없었던 정남수(鄭南洙)씨의 양자로 입양했다. 그러나 입양한 해에 양부 정남수씨가 돌아가자 정(鄭)씨는 호주상속을 받아 바로 그해 11월 인숙양의 어머니인 전(全)씨(61)와 결혼했다. 당시 정씨가 살던 곳은 경북(慶北) 김천(金泉)군 (금릉군) 개영(開寧)면. 정(鄭)씨 일가는 해방되기 전 해까지 줄곧 이 곳에서 살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 이 4형제 중 4남이 바로 인숙양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종욱(宗旭)씨다.

생전 인숙양이 주장하던 것처럼 「뼈대있는 집안」은 아니었다는 게 김천(金泉)일대 주민들의 말이다. 정씨는 행정관리로 출발, 대구(大邱)부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숙(仁淑)양의 출생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아들만 넷을 둔 정씨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딸자식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렸다는 것. 과연 불공의 효험이 있었던지 45년 정씨의 아내 전씨는 딸 자식을 낳았다. 그것도 인숙양 하나가 아닌 딸 쌍동이였다.

그래서 바라던 딸을 한꺼번에 둘이나 얻게 되자 「금이야 옥이야」기르며 이름조차 금지(金枝)·옥지(玉枝)로 지어주었다.

아들 4형제의 막내딸로 태어난 금지·옥지 두 쌍동이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났다.

그러나 생후 1년 반만에 옥지는 죽고 금지만 살아 남게 되었다. 옥지가 죽은 다음해 정씨는 자식을 또 보았으나 이번 역시 아들. 그래서 금지의 외동딸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를 아끼는 일가의 귀여움을 독차지. 특히 어머니 전씨가 금지를 위하는 것은 딴 가족들보다 더 심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난 인숙(仁淑)양이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인숙(仁淑)양이 대구(大邱)서 국민학교 다닐 시절 인숙(仁淑)양에게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하나를 따로 두었다. 학교 갈때 따라가는가 하면 세수할때, 밥먹을때 등 노상 인숙(仁淑)양의 옆에 붙어 잔심부름과 시중을 들게 했다.

인숙(仁淑)의 성격은 더욱 오만해 졌다. 인숙(仁淑)양의 윗 오빠 네 사람은 이런 인숙(仁淑)양을 가리켜 『어머니가 너무 쟤만 위해 주니까 계집애가 버릇이 나빠진다』며 불평, 이따금 여동생 인숙(仁淑)에게 기합을 주었으나 그때마다 인숙(仁淑)양을 감싸고 도는 어머니 때문에 인숙(仁淑)양의 성격을 끝내 뜯어 고치지 못했다는 둘째오빠 종구(宗九)씨의 말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대구(大邱) S여중에 진학했다.

이 때 아버지 정(鄭)씨는 경북(慶北)도청의 고급 관리로 집안형편이 넉넉할 때였다. 인숙(仁淑)양의 오만한 성격은 더욱 심해지고 이에 따라 오빠들과의 의는 점점 나빠졌다.

호랑이같은 오빠 4명이 인숙(仁淑)양이 조금만 늦게 귀가해도 때리고 꾸지람하기 일쑤.

이래서 정(鄭)씨집은 오만한 인숙(仁淑)양의 기를 꺾으려는 오빠 4명과 인숙(仁淑)을 편들어 주는 어머니 전(全)씨와 인숙의 두 패로 갈리게까지 되었다.

대구 S여고시절 인숙(仁淑)양의 학교성적은 중 이하.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대단해 이때부터 이미 외국손님이 오면 안내역을 맡곤 했다. 인숙(仁淑)양이 영어에 능하게 된 데는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현재 일본「도꾜」 의 「아까사끼」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고 있는 큰오빠 종원(宗源)씨나 H무역의 대표로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모두 영어라면 귀신. 이런 오빠 밑에서 익힌 인숙(仁淑)양의 영어실력이 뒷날 요정 「선운각」 에서 외국인들에게 술을 따르며 쓰이게 될 줄이야.

▲ 서울 서교동에 있는 싯가 700만원이 넘는 정양의 집.

S여고에 남은 인숙(仁淑)양의 학적부를 들추어보면 『명랑하고 성실하나 안일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되어있다.

인숙(仁淑)양이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가 터졌다.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鄭)씨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가세는 기울기 시작.

이 때무터 인숙(仁淑)양의 집 살림은 어머니 전(全)씨가 계 등으로 꾸려 나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인숙(仁淑)양에게도 심한 충격을 주었다. 낭비벽 심하고 화려했던 인숙(仁淑)양의 생활은 집안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살고 있던 대구(大邱) 남산(南山)동 집을 팔고 삼덕(三德)동으로 이사, 집 규모를 줄여야 하는 등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

62년 S여고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E大 영문과에 진학하겠다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서울엔 인숙(仁淑)양의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S 무역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응시했던 E大 영문과 입시에서 인숙(仁淑)양은 깨끗이 낙방. 세째 오빠 종인(宗仁)씨가 주는 돈으로 M초급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만 내고 학교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직, E大 낙방 등의 겹친 불운은 콧대 센 아가씨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집안의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온 인숙(仁淑)양이 두차례에 겹친 좌절끝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곤 태어날 때부터의 타고난 미모뿐.

콧대 꺾인 방년 19세의 아가씨 인숙(仁淑)양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미모를 마음껏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요정의 「호스테스」란 생각지도 못했고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느냐?』하는것.

그래서 인숙(仁淑)양은 등록한 M여대엔 나가지도 않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렸다.

이 때 만난 사람이 「시나리오」작가인 장(張) 모씨.

당시 장(張)씨는 KBS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인숙(仁淑)양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야』하며 뽐냈다. 張씨 자신도 張씨가 인숙(仁淑)양의 첫 애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콧대꺾였던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은 유명작가를 애인으로 둠으로써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듯 했다는게 그녀 친구들의 이야기다. 당시 인숙(仁淑)양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張씨를 자랑했다고.

인숙(仁淑)양은 1년남짓 장(張)씨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겐 『장(張)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했다.

장(張)씨와 동거할 때도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사치벽은 버리지 못했다. 이래서 이따금 장(張)씨와 말다툼을 하고 장(張)씨 집을 뛰쳐나온 인숙(仁淑)양은 친구들 집을 찾아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그러면서 옛날 외동딸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것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상처입은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알게 된 것이 지금 신촌(新村)모처에서 비밀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K「마담」. K 「마담」은 한때 배우 윤(尹)모씨와 동거, 「패션·모델」생활도 한적이 있는 멋장이 「마담」으로 인숙(仁淑)양은 K 「마담」의 소개로 「디자이너」조(趙)모씨를 통해 「패션·모델」로 몇차례 나서기도 했다. 인숙(仁淑)양과 K 「마담」의 관계는 그뒤 줄곧 계속되어 K 「마담」이 경영하는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에 인숙(仁淑)양은 1급 「호스테스」로 나갔었다.

인숙(仁淑)양은 몇차례 「패션·모델」로 나가는 한편 동거하던 장(張)씨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촌(新村), 수유리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인숙(仁淑)양과 장(張)씨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허영과 장(張)씨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원인이 되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거 1년만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그러나 장(張)씨가 인숙(仁淑)양으로선 첫 남자였던 만큼 장(張)씨를 향한 인숙(仁淑)양의 마음은 어지간히 강했었다. 피살되기 한달전 인숙(仁淑)양을 만난 한 친구는 『여러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張)씨가 제일 잊혀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장(張)씨와 헤어진 인숙(仁淑)양이 다음에 발 디딘 곳이 바로 요정 선운각(仙雲閣). 타고 난 미모와 영어실력이 그녀를 선운각(仙雲閣)의 1급 「호스테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선운각(仙雲閣)에서 인숙(仁淑)양이 만난 사람이 바로 A씨. 미남이자 이름이 알려져 있는 A씨라 인숙(仁淑)양의 허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A씨를 만나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은 저명 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A씨와 인숙(仁淑)양의 관계는 석달남짓 계속되었다는게 당시 인숙(仁淑)양 동료들의 이야기다. A씨를 알게 될 때 인숙(仁淑)양을 가운데 두고 A씨와 역시 A씨만한 실력자 B씨가 한달 남짓 열띤 각축전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 뒤 인숙(仁淑)양은 선운각(仙雲閣)을 떠나 활동무대를 비밀요정으로 옮겼다. 전부터 아는 K 「마담」이 경영해 오던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을 주무대로 2류급 여배우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 「마담」집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호스테스」로 나가는 동안에도 인숙(仁淑)양은 콧대가 높아 반드시 「마담」들에게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밤이면 이름있는 사람들과 접하는 인숙(仁淑)양은 낮이면 필동2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다.

어렸을 적부터 인숙(仁淑)양 편이었던 어머니 전(全)씨는 남편 정(鄭)씨가 일가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도 남편집에서 살지 않고 인숙(仁淑)양과 단둘이 살며 딸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필동에서 살때 인숙(仁淑)양은 아들(3)을 낳았다. 인숙(仁淑)양의 가족들은 그 아이가 인숙(仁淑)양의 아이가 아니고 인숙(仁淑) 양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①가족 주장대로 배다른 동생이며 대구(大邱)서 낳아 서울로 데려다 길렀다면 최소한 5살은 되었어야 하는데 3살이라는 점 ②배 다른 동생이라면 미국 갈때 굳이 인숙(仁淑) 양이 아기를 함께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등을 보면 인숙(仁淑) 양의 아이로 볼 수 밖에 없다.

▲ 미혼엄마 정인숙(鄭仁淑)양의 어느날.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시체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인숙(仁淑) 양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바 있다. 더우기 비밀요정가에선 「호스테스」가 아이를 낳는 것은 「터부」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仁淑)양이 아기를 낳았을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충분한 이유란 사후보장. 처녀(?)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할 아기를 낳을땐 어딘가 굳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란건 틀림없는 일이다.

워낙 남자관계가 복잡한 인숙(仁淑)양이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인숙(仁淑)양 자신만이 알 일이지만 항간에선 일본에서 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갑(甲)씨, 을(乙)씨, 병(丙)씨등 알만한 이름들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인숙(仁淑)양이 아이를 낳은 후부턴 『내 말 한마디면 안되는 일 없다』혹은 『 서교동집도 아기 아빠가 사준 거야』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세사람중 한사람일것이라는 소문.

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수속서류 없는 회수여권 MA 10647이 발급된 경위만 하더라고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란 것.

어쨌든 아기를 낳은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본거지인 비밀요정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68년 8월엔 싯가 7백만원이 넘는 단층 석조주택을 사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평소 친하던 K 「마담」 이외엔 좀체로 그녀를 만날 수 가 없었다.

비밀요정 대신 「타워 · 호텔」, 「사보이 · 호텔」,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 자주 나타났다.

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인숙(仁淑)양은 그해 5월에 K 「마담」의 소개로 한남동 조(趙)모씨로 부터 문제의 「코로나」를 사들였다. 이 때 부터 인숙(仁淑)양은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쓰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인 갑(甲)씨 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인숙(仁淑)양을 거쳐 갔다.

아마도 『 아이를 낳고 보니 무엇보다 돈 걱정이 앞섰던것 같다』는게 인숙(仁淑)양을 아는 친구와 「마담」족의 중론이다.

지난 69년 10월 10일 인숙(仁淑)양은 아기를 데리고 미국행을 했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친구에게 밝히기론 『 잠시 골치아픈 일이 있어 외국에 나갔다 와야겠다』는 것.

인숙(仁淑)양은 미국서 석달 있다가 되돌아 왔다.

1월21일 다시 돌아온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의문투성이뿐.

『 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 『 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하기도 했고 한때는 『 이젠 미국 안갈래』하기도 했다.

사건당일만 해도 자동차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6기통 짜리 흥정을 했다는데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면 한국에서 차를 바꿀 이유가 없다.

이래서 그녀의 주변에서 『 미국에 가 있으라』는 「그이」의 요구와 이를 선뜻 응낙치 않은 인숙(仁淑)양의 태도에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지않나 보기도 했다.

어쨌든 3월 17일밤 11시 20분 한강변에 울린 3발의 총성으로 한때의 요화(妖花)정인숙(鄭仁淑)양은 비명에 갔다. 아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홀로 남겨 놓은채.

[선데이서울 70년 3월 29일호 제3권 13호 통권 제 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