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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일기
20615 이승희
짹짹! 짹짹짹!
“후암~”
벌써 아침이다. 내 눈이 따갑도록, 아니 아플 정도로 창문을 향해 쏘아대는 저 해님이 밉다. 나는 그런 해님의 조름에 결국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16살 소녀의 방 치곤 너무 커 보이는 방. 다른 집에 가면 이정도가 거실 크기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나는 영국의 뛰어나기로 유명한, ‘블랙 로즈’문장을 가진 델로즈집안의 딸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난 내 얼굴을 보러 전신거울 앞으로 달려간다.
잉크보다 새까만 머리카락, 밀가루같이 뽀얀 피부에 사파이어를 두 개 끼워 놓은 듯 한 내 눈, 볼륨감 없는 몸매에 삐쩍 말라버린 다리. 나는 서양인이지만, 눈에 까만 렌즈만 끼면 동양인이 친구하자고 말 걸 것 같다. 그래서 지어진 내 이름, ‘원화(Woon Hwa, Delrose)’이다.
잠시 내 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 나는 인테리어 관련직을 꿈꾸니깐! 나의 멋진 방을 소개 해주고 싶다.
먼저 벽지는 내가 델로즈 집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붙인 붉은 장미벽지이다. 배경은 흰색인데 그 때문에 장미가 눈에 많이 띄어서 다행이다. 커튼은 아주 연한 분홍, 가운데에 있는 카펫은 정말로 푹신푹신한 핑크빛 하트카펫이다. 침대는 일부러 창가 쪽에, 책상은 침대 좀 옆에, 옷장은 3개를 연달아 붙여놓고, 가장 중요한 전신거울은 옷장 바로 옆에 두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내방은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원!
“원~~화~~아~~~씨~~!!”
어이구! 내 유모이다. 이름은 코린 인데, 나랑 3살 차이나는 언니이다. 그 언니는 내가 밥을 거르는 꼴을 못 본다. 지금도 아마 밥을 먹으라고 내려오라는 소리 일 것이다.
“지금 내려갈게요!”
나는 부랴부랴 잠옷용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간편한 핑크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어머, 원화야! 그 차림이 뭐니? 엄마가 사준 모닝드레스는 어쩌고?”
“그걸 밥 먹는데 어떻게 입고나와? 나중에 집에 손님이 올 때나 입으면 되지.”
“음…….어차피 이따 저녁에 그레이스할머니네 댁 갈 거니까 거기서는 이렇게 입고 있으면 안 된다.”
뭐?! 그레이스 할머니 댁 이라니! 설마 우리 집안 부도가 난걸까?
그레이스 할머니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할머니이다. 마녀같이 큰 코 옆에는 본인의 콧구멍만한 점이 여드름처럼 박혀있고, 흰 머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마귀할멈 ‘유바바’를 따라한 것 같이 항상 그 머리를 고수하신다. 아무튼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할머니이다.
왜 갑자기 그 집에 가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요?”
“너도 알겠지만, 엄마아빠는 지금 세계 여러 곳곳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잖아. 근데, 이번에 해외로 나가서 몇 년 일하게 되었어. 너에게 매달 용돈을 꼬박꼬박 줄 테니까 할머니 댁에 가있어. 알았지? 코린이는 원화 짐 싸는 것 좀 도와줘.”
뭐 용돈은 준다니까 거절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대충 밥을 먹고 내 방으로 올라가 코린과 짐을 쌌다.
그렇게 짐을 싼지 5시간이 지났나, 밑에서 내 전용 자가용을 운전하는 운전사 부르크가 나를 부른다.
“아씨, 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코린, 가요.”
나는 코린과 함께 많은 짐을 싸들고 차에 올랐다. 나머지 짐은 알아서 누가 들고 오겠지.
그렇게 차를 타고 2시간쯤 갔나, 시간은 벌써 오후 5시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차는 어느 정원을 돌고 있었다. 코린은 이곳이 그레이스할망구의 저택이란다. 할망구 혼자 살기는 왠지 커 보이는 정원. 정원에는 언제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심었는지 몇 천개의 꽃송이들이 각자의 향기를 마음껏 뿜어대고 있었다. 그 향이 여러 번 섞이고 섞여 내 차 안까지 들어왔는데, 정말 너무 향긋해서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부르크는 친절하게 문 앞에 딱 내려주었다. 나는 내 옷가지와 화장도구들을 들고 내렸다. 내 키의 5배는 되보이는 문이 열리자, 그 고약한 그레이스할망구가 버젓이 서있다. 나의 양 갈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연신 째려본다.
“들어오너라.”
들어가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레드카펫이 2층으로까지 이어져있다. 천장에는 너무나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석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고, 두 갈래로 이어진 계단 양 옆에는 우리 가문의 문장이 큼지막하게 달려있었다. 그 주변에는 여러 가지 동상과 초상화들이 있고, 계단 오른쪽에는 향긋한 냄새가 풍겨오는 주방이, 왼쪽에는 응접실이 있다. 계단이 갈라지며 그 가운데 빈 공간에는 붉은 장미들이 조금씩 예쁜 얼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숙녀가 입 그렇게 크게 벌리는 거 아니다. 어서 네 방이나 찾아라.”
나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층으로 달려갔다. 뛰지 말라는 코린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1시간을 이 저택을 돌았으나, 돌면 돌수록 촌스러운 저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 똑같은 형식의 방들, 전에 있던 집보다 작은 방들, 이런 방들이 10개도, 20개도 아닌 50개나 있다. 이 많은 방들은 티끌 하나 없이 정돈되어있다. 나는 이런 걸 싫어한다. 기계적인 방들, 너무 정돈되어있어서 차마 건드릴 수가 없는 방들. 나는 이런 방보다는 차라리 거미줄이라도 쳐있는 방을 원했다. 예를 들면, 다락방 말이다.
원한 걸 찾지 못해 그냥 아무 방이나 쓰려고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탁!’ 이런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복도 끝을 보니 웬만한 영어사전 뺨치는 굵기의 책이 놓여있다. 거리는 멀지만, 양쪽 시력 2.0을 자랑하는 나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먼지가 잔뜩 쌓인, 금색 표지의 오래된 책이 있었다.
“후~~~~~”
먼지를 불어 보니 알아보지 못하는 괴상한 문자들이 쓰여 있다. 도대체 이런 책이 어디서 떨어진 거지?
“설마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내 장난에 내가 웃으며 천장을 보았다. 거기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래, 이거야!”
나는 옆에 있는 사다리를 놓고 바로 올라가보았다. 마치 먼 바다를 항해하던 해적이 너무 힘들게 보물섬을 찾은 그 기분으로.
올라가보니 거기에는 내가 바란 대로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러나 짐은커녕 쥐 한 마리도 없었다. 뭐, 괜찮다. 내가 여기서 앞으로 살 테니깐!
“거기서 뭐하세요?”
코린 이다.
“저기, 내 짐 좀 여기다가 가져다주세요.”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서 다시 방을 확인하였다. 그곳은 우리 집 거실만한 크기였다(일반 집에 비유하자면, 방 2개+거실 크기 정도이다.). 나는 끙끙대며 짐을 가져올 코린을 생각하며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달려갔다. 코린은 정말로 끙끙대고 있었고, 나는 그 짐들을 나누어 들고 다락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이 집에서, 아니 내 보물섬 다락방에서 살 생각을 하니 저절로 힘이 생겨 4층 계단을 2칸씩 올라갔다. 나머지 가구들은 부르크가 날라주었다. 아무리 힘이 나도 그건 들어올리기 힘들다. 아무튼 가구들이 올라오는 즉시, 나는 짐을 옮겼다.
저녁 10시가 돼서야 짐 정리가 끝났다. 전 집과는 조금 다르게 해보았다. 천장에는 전등 대신 미니 샹들리에가, 벽지는 매우 연한 핑크색에 흰색 왕실무늬가 그려진 벽지, 바닥은 마루로, 창문에는 전에 쓰던 커튼을 옮겨놓았고, 침대와 책상은 각각 큰 창문 옆에, 옷장은 구역을 나누어 각각 한 개씩, 카펫은 가운데에, 전신거울은 들어오는 입구 맞은편에 놓았다. 이렇게 보니 전에 있던 집 보다는 훨씬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나는 그레이스할망구에게 인사도 채 하지 않고 잠에 빠져버렸다. 오래된 그 책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다음날 아침, 오늘은 햇살도 따스하다. 조금 열어둔 창문 틈새로 꽃향기와 아카시아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나는 창문들을 활짝 열고서 밖을 내다보았다. 큰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의 큐피드가 날 향해 사랑의 화살을 쏠 것만 같았다. 한참 그렇게 경치를 즐기고 있는데 또 낯익은 목소리가 날 부른다.
“원화아씨! 얼른 내려와요! 어제는 점심, 저녁 둘 다 안 먹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나는 이런 보물을 준 그레이스할망구에게 조금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엄마가 원하던 그 모닝드레스를 입고 내려갔다. 물론 양 갈래는 하고 말이다.
“어서 와서 밥 먹어라”
아침에는 할망구도 꽃향기를 맡아서 그런지 왠지 온화해 보인다. 매일 이런 식이라면 그레이스 할망구를 엄청 존경할 텐데. 주방은 천장이 이색적으로 높았고, 원형 모양이었다. 주방기구들이 있는 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 가득히 우리 조상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거기에는 그레이스 할망구는 물론 우리 엄마아빠도 있었다. 나는 없지만 말이다.
“여기 있는 사진 중에 할망...아니 할머니 친척 분들도 있나요?”
그러더니 그레이스할망구는 웬 사진 한 장을 벽에서 떼어왔다. 그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Darina, Delrose 1949 ~ 1981 / 델로즈가문에서 천년에 한번 나올 절세미녀]
절세미녀? 수식어 한번 독특하다. 그런데 얼굴은 나와 너무 비슷하였다. 까만 머리카락에 푸른 눈, 흰 피부에 잡티 없는 피부까지. 나랑은 닮았으나 그레이스할망구하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나이를 보니 그레이스할망구보다는 2살 어리다. 도대체 누구지?
“이 다리나 계집 같으니라고……. 도대체 그 때 무엇을 남긴 거냐고!”
갑자기 '꽥! ‘하고 소리 지르는 바람에 나는 놀라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레이스할망구의 얼굴은 굳게 굳어있었다. 거기 더 있다가는 맞을까 두려워 나는 급히 도망 나왔다.
다락방 문을 닫고 보니 문 옆에 놓여있는 그 낡은 책……. 이제야 이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금색 테두리도 둘러싸여있으니, 아마 우리 가문의 비밀? 아니면, 우리가문만의 요리비법?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호기심에 둘러싸여 나는 그 대단원의 첫 페이지를 열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의 일기장이다 이것은 아무나 볼 수가 없다 만약 내 후손이나 언니가 읽게 된다면 아래의 비밀문자를 사용하여 읽어주길 바란다]
비밀문자? 밑을 보니 정말 비밀문자들이 알파벳순으로 해석되어있다. 나는 그날 밤 밤이 새도록 그 책을 읽었다. 읽으려 하지 않아도 그럴 수가 없었다. 책에서 뿜어나는 호기심의 손들이 나를 책 안으로 벌써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 책을 읽은 지 3주가 지났을까, 나는 이 일기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기는 잘 진행되다가 한 페이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위 아래로 훑어보아도 전혀 답이 나오지 않는 136페이지. 이 페이지를 해석하려 어느 만화에 나온 것처럼 불을 붙이려 하다 몽땅 태워 버릴 뻔 했다. 또한 나는 이 일기장을 가진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이 책은 내 것이 아닌, 그것도 일기인데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에 대한 이유는, 나는 여기서 일기의 주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로썬 이걸 경찰에 알려야 할 것도 같고, 같은 집안인 그레이스할망구에게도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끝내 결심을 한 나는 하는 수 없이 주인 없는 이 일기장을 그레이스 할망구에게 가져다주기로 하였다.
4층부터 계단난간을 타고 ‘쪼르르르-’ 내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으면 분명 그레이스할망구가 난리를 치겠지만,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점잖게 하나하나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온갖 생각이 교차되었다. ‘이 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레이스할망구가 자기가 아닌 것처럼 꾸며 쓴 이야기일까?’ ‘이런 비밀문자는 어떻게 쓴 걸까?’ ‘136페이지가 마지막일까? 뒤에 남은 페이지도 좀 있던 거 같은데. 아니지. 그 페이지에 마지막에 -THE END-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그게 마지막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벌써 1층에 왔다. 주방에서는 코린이 고소한 초코 쿠키를 만드는지 쿠키 굽는 냄새가 계단 까지 솔솔 풍겨왔다. 할망구가 있을 곳은 응접실과 서재 밖에 없으니 일단 응접실부터 들어가 보았다.
응접실 안에서 그레이스할망구는 성격에 맞지 않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실로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거의 반 정도 만든걸 보니 4주 정도 된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레이스할망구에게 말을 걸었다.
“저....할머니”
그레이스 할망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
“어! 그래.”
나는 그레이스할망구의 얼굴을 보고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잔주름이 잡힌 볼을 타고 투명한 눈물방울들이 주체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잃은 아이가 우는 것처럼. 나는 그레이스할망구의 눈물을 닦고 왜 우느냐 이유를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나를 품에 안았다.
“..........잠시만 안을게. 갑자기 다리나 생각이 나서 그랬단다.”
나는 그때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 떠올라 그레이스할망구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저....할머니 이 책.......”
할망구의 주름진 손에 이 책을 쥐어주었다. 할망구는 울음을 그치고 깜짝 놀란 사람처럼 눈을 정말 크게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책을... 어디서....”
나는 이집 처음에 왔을 때부터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망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네가 그렇게 이 책을 발견하고 내용을 읽었다면,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마. 날 따라오너라”
할망구는 그렇게 말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나는 그 책을 들고 조용히 할망구를 따라갔다. 할망구는 아무 말도 없이 점점 올라갔다. ‘뚜벅 뚜벅’소리만이 이 집에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한참을 올라가 4층까지 올라갔다. 할망구는 다락방 계단 바로 전 방의 문 앞으로 갔다. 약간 금빛을 띄는 신비로운 방, 문을 열면 다른 고차원의 세계로 갈 것 같은 방. 그 방은 문고리가 매우 녹슬어 보였다. 나는 할망구를 지켜보았다. 주머니에서 왠 낡은 열쇠를 꺼냈다. 우리 가문의 문장이 표시된, 신비로운 기운이 도는 흰색 열쇠를 문고리에 꽂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자, 문이 열렸다.
“자, 들어가 보아라.”
나는 눈을 꼭 감고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녹색에 황실무늬가 황금으로 새겨진 벽지의 반엔 수백 장이 넘는 조상들의 사진이, 나머지 반에는 왕실에게서 받은 상장이나, 가족들이 남긴 유서, 업적들이 기록된 책들이 빼곡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레이스 할망구는 그 책을 들고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책상으로 갔다.
“이리 오너라.”
나는 조심조심 그곳으로 갔다. 왼쪽에 걸린 조상들의 얼굴을 보며. 거기에는 다리나할머니도, 그레이스할망구도 다 있었다. 할망구에게 가자 할망구는 다짜고짜 잉크를 책에 미련없이 부어버렸다.
“할머니! 뭐하시는거예요!”
“쉿, 가만히 있어봐.”
잠시후, 책은 잉크를 가득 머금고 거기에 담긴 내용을 띄어내었다.
[이 내용을 읽을 사람은 아마 그레이스 언니밖에 없겠지? 나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우리 어릴 때 조상님들 사진 걸린 방에서 자주 놀았지? 그때마다 언니가 뭐냐고 해도 내가 알려주지 않은 게 있잖아. 그게 바로 이거 썼던 거야. 언니, 항상 내가 일을 저지르면 언니는 그 일을 대신 혼났지, 언니에게 보답하고 싶은 게 있어. 가장 구석진 책상 근처로 가보면 알거야.]
“이렇게 말해서 나도 한참을 찾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만약, 다리나 할머니가 그레이스할망구에게 무언가를 남겨주려면, 어떤 걸 남겨주었을까? 그게 만약 나라면? 나라면 아마 인테리어 가구를 선물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나는 바닥이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할망구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 바닥 뭘로 만들었어요?”
“아, 오래된 바닥이라 나도 잘 모른단다.”
“그런데 여기 이상하지 않아요? 오래된 바닥 치고는 너무 새 바닥 같잖아요. 새로 깐 마루바닥.......우리 여기를 뜯어봐요.”
나는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박혀있던 나사들이 오랜 시간 끝에 다 풀렸다. 그리고서 할망구와 같이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 하면서 바닥을 열었다.
“어머나!”
“우와~!”
그 바닥에는 빈틈없이 금화가 채워져 있었다. ‘이 많은 돈을 어따 쓸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할망구와 같이 금화를 꺼냈다. 맨 바닥에는 예쁘게 접힌 편지지가 놓여있었다. 그 편지의 내용을 난 알 수 없었지만, 그레이스할망구는 폭포보다 많이 눈물을 쏟아냈다. ‘흑흑흑.......’ 그레이스 할망구 때문에 나까지 울 것 같았다. 하긴, 이 금화를 찾게 된 원인은 나의 뛰어난 인테리어감각 때문이겠지?
비밀의 방에서 금화를 찾은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레이스할망구를 할망구라 부르지 않았다. 할머니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그 금화의 반을 내가 인테리어에 쓸 수 있게 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 쿠키를 굽고 있던 코린은 나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그만 차와 쿠키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둘은 계속 웃었다. 이 웃음이 할머니가 죽을 때 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더 이상 다리나 할머니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지 말고, 나와의 즐거운 기억들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흐음~ 오늘도 꽃밭의 향기는 나를 맴돌다 하늘로 향해 올라간다. 꼭 다리나 할머니의 부름을 받은 듯이.......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다리나 할머니! 드디어 찾았어요! 그 보물을요!”
하늘에서 다리나 할머니가 마침 이걸 본 듯이, 하늘에서는 기분 좋은 햇살들이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후기>
와우 드디어 끝났다!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이 정도라면 만족스러운 결과 같다. 처음에 쓴 걸 몇 번 고쳤는데, 착상에 썼던 결말과는 조금 다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슬픈 결말보다는 행복한 결말이 좋으니깐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