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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설 - 이어령 교수의 글..
개화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花旗)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 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星座圖)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人體)를 도안화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표)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人體와 天體(별)를 동일시하고자 한 인간이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별표 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싱앙이나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별'(시) 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나 [별 헤는 밤]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古態形)을 지닌 별이다. [서시]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인유(引喩)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경천(敬天)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神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 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의 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보다는 [굽어보다]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對位法)으로 구성된 음악처럼 [하늘의 별]과 [땅의 잎새]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은 [별]로 응축되고, [잎새]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로 대치되면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5-6행)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가 [사랑해야지]로 바뀐다.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
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①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가 일련의 계기성(繼起性)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의 공간구조가 하늘, 땅,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1-4행[괴로워했다]), 미래(5-8행 [[사랑해야지]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현재(9행 [스치운다])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7-8행)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길]은 바로 [서시]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늘-땅)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 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은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서 하늘(별)로 오르는 언덕길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途上)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聯)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聯)만이 [스치운다]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라는 [도]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ㅂ]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없이는 빛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읕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와 [스치다]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오늘]이라는 그 도상성(途上性)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가 '노래하다'로, '노래하다'가 '사랑하다'로, 그리고 '사랑하다'가 '걷다'(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낮은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잎새]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 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壓制)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애(民族愛)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博愛) 정신과 직결되고 그 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에서 읽는 그 별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별)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그램이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는 정치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 [별을 노래하는 마음]의 시론(詩論)이 되는 것이다.
펀글 : 책을 읽어주는 친구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집필 의도 및 감상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반이었던 윤동주(尹東柱)는 그 동안 써 놓은 시 19편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려고 하였다. 총 77부 한정판으로 하여 <병원>이란 제목으로 출간하려고 했으나 시집 제목이 좋지 못하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으로 시집명을 고치었다. 그러나 그의 시 가운데 <슬픈 족속>, <십자가> 등이 일제 검열에 통과하기 어렵겠다는 이양하(李敭河) 교수의 충고로 시집 출판을 포기하고 수제본(手製本) 시집 3권을 만들었다. 그 중 한 권은 이양하 교수에게, 다른 한 권은 후배 정병욱(鄭炳昱 ; 1922~1982)에게 주었는데, 결국 정병욱에게 준 시집이 살아남아 해방 후 1948년에 유고 시집(遺稿詩集)으로 발간되어 유동주란 시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서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로 윤동주 시 세계의 모든 요소가 이 한 편에 반영되어 있다. 윤동주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美學)인데, 시대 현실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인생 태도가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여 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순교자적 의식은 ‘부끄러움’의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굳은 의지와 결의를 <서시>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의 모티프가 되는 시어는 ‘부끄럼•죽음•별’인데, ‘부끄럼’은 현실에 대한 시적 자아의 반응이고, ‘죽음’은 수단으로서의 자기 희생을 뜻하며, ‘별’은 시적 자아가 목표로 삼아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세계를 뜻한다. 이 세 시어야말로 윤동주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윤동주의 시 정신을 분명하게 상징한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부끄러움 없는 삶을 소망함.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참여적, 자기 성찰적, 감각적.
어조 : 고백적, 의지적 어조.
이 시를 이해하는 관점 : 반영론적 관점.
시상 전개 방법 (제1연) : 시간 이동에 따른 전개.
[현재(제1,2행)→과거(제3,4행)→현재(제5,6행)→미래(제7,8행)]
창작 연월일 : 1941년 11월 20일.
출전 :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시어 및 구절 풀이
죽는 날까지 ㅡ 평생, 일생 동안, 살아 있는 동안.
하늘 ㅡ 1) 절대적 가치관의 표상. 2) 자기 성찰(自己省察)과 반성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러러 ㅡ 시적 자아가 지상의 현실에 위치하여 천상(天上)의 영원한 가치를 찾고자 함을 알 수 있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시대 현실 속에서 치욕적인 자세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청교도적인 자세를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끝까지 자기의 양심과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인 스스로의 결의와 소망을 나타낸 의지의 표명이다. ‘ ~없기를’ 다음에 ‘기원한다’, 혹은 ‘바란다’가 생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ㅡ 이 구절은 <맹자(孟子)>의 ‘진심장구(盡心章句)’ 중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제2락인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ㅡ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어 남에게 부끄럼이 없는 것”의 구절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ㅡ 1) 섬세한 심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2) ‘잎새에 이는 바람’은 보통 사람은 인식하기 어려운 미세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그 바람이 지금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앞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리한 시인의 감각으로 예감하고 있다. 3) 시적 자아는 시대 현실과 맞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4) 불안의 시대에 시인의 사명은 현실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여 시를 통해 이것을 나타내고,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미래상(未來像)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플라톤이 이상국(理想國)의 제도와 구조를 설명한 저서 <국가>에서 주장한 ‘시인 추방론(追放論)’은 이와 같은 시인의 본질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영원한 이상을 추구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상국’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국’에 시인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이상국’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통해 윤동주는 시인으로서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ㅡ 시에 나온 별은 대체로 ‘이상•동경•영원성•아름다움’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구절의 ‘별’은 ‘영원한 가치’를 뜻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원한 가치를 기리는 심정으로’로 풀이할 수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 ㅡ 이 시가 씌어진 일제 말엽의 암흑기에 우리 민족이 처한 곤혹(困惑)한 시대 상황을 말한다.
사랑해야지 ㅡ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죽어가는 민족을 살리고 싶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나한테 주어진 길 ㅡ ‘길’은 시적 자아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적 자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시적 자아에게 명령한 소명 의식(召命意識)을 말한다. 그 ‘길’이란 어두운 시대 현실에서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자기 희생의 순교자적 의지를 말한다.
걸어가야겠다 ㅡ 확신과 결의를 표명하여 시적 자아의 미래 지향적 실천 의지를 분명히 나타낸다.
제2연 ㅡ 한 행으로 된 제2연을 독립시킨 것은 제1연의 주관적 관점이 제2연에 와서 객관적 관점으로 바뀌는 것을 구분하여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ㅡ ‘오늘 밤’과 ‘바람’은 암흑의 시대 현실을, ‘별’은 이상과 동경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객관적 관점에서 고도의 상징으로 시화(詩化)한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구절을 윤동주의 시 구절 중 절조(絶調)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