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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11. 6. 그리스 아테네 *
다음날인 11월 6일 전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6시 모닝콜이 울리기전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욕탕에 따듯한 물을 받아 족욕으로 발의 피로를 푼 다음 옷을 챙겨 입고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 팀원 중에 어떤 이는 이불이 없어 그냥자다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서 “뭐 이런 호텔이 다 있느냐”며 불평을 하였다.
그런데 사실 침대위에 담요가 펼쳐져있었는데 호텔 측에서 그것을 카바로 씌워 가장자리를 모두 침대매트 밑으로 꽉 끼워 놓은 탓에 그들은 그것이 이불인줄도 모르고 더운 지방이라 이불 없이 지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침대카바위에서 그냥 잤다는 것이다. 이집트는 가을에도 낯에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지방이었지만 밤에는 제법 쌀쌀하였다.
호텔식당에서 빵과 치즈를 주식으로 하는 간단한 양식 메뉴로 아침을 때운 후 오전 8시경 제3일차 일정에 따라 그리스 아테네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카이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 시내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자 돌을 캐어 가공하는 채석장이 나타났고 그 위로 어느 시대에 쌓은 것인지 성벽도 보였다.
사진 1) 채석장과 그 위의 성벽
조금 더 지나자 도로 양편에는 뾰족한 첨탑의 이슬람 사원과 형형색색의 납작한 건물들이 눈에 띠었다. 그곳은 술탄시대 용사들의 무덤인데 가난한 사람들과 시골에서 상경하여 오갈 데 없는 서민들이 그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하였다. 죽은 자와 산 자가 같은 터 위에서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모습은 사후 세계를 생의 연속으로 생각하는 이집트인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진 2) 주택과 공존하는 술탄시대 용사들의 무덤
우리를 태운 이집트 항공 비행기는 오전 10시 25분에 이륙하여 2시간여를 날아 12시 35분에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점심으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입맛에는 안 맞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하였다. 이슬람 국가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비행기처럼 예쁜 여승무원도 없고 거무스름한 남자 승무원들이 기내 봉사를 전담하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가이드 윤 희씨가 우리를 반겼다. 얼굴이 상당히 고운 중년 아줌마인데 태권도 사범인 남편을 따라 그리스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 주변의 벌판과 야산에는 올리브 나무들로 가득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며 느낀 그리스에 대한 첫인상은 이집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질서 있고 깨끗하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집트의 카이로도 공항주변의 신시가지는 반듯하고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있지만 기후 탓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뭔가 좀 무질서하고 칙칙하다는 느낌이었다. 아테네 시내로 들어 갈수록 도로에 차량이 증가하는데 현대, 대우, 기아 등 눈에 익은 차들이 많이 보여 마음이 뿌듯하였다. 주택가 골목 마다 한쪽 차선을 점령하여 빽빽이 주차해 놓은 모습은 우리나라와 흡사하였다. 그리스 역시 교통체증이 심한 나라라고 하면서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가이드는 크게 걱정하였다. 아테네는 유적지가 일찍 문을 닫는데 2시 30분이 지나면 입장을 못한다고 하였다. 최초 목적지인 아크로폴리스 광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입장마감시간 5분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뛰어 올라가는 가이드를 따라 우리도 모두 달렸다. 가이드 아줌마를 필두로 팀원 모두가 마치 공격 앞으로 하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언덕위로 달려 올라가니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흥미 있게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마감시간 직전에 출입구를 통과하였다. 밀려 내려오는 사람들과 서로 부딪히며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그동안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발바닥을 비비고 지나다녔는지 통행로 바닥의 돌들이 반들반들 닳아서 굉장히 미끄러웠다.
사진 3) 파르테논 신전 입구
하얀 대리석으로 견고하게 세운 성문의 계단을 지나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장엄하게 세워진 미의 전당 파르테논 신전에 이르니 아쉽게도 원형이 크게 손상되어 썰렁한 모습으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다. 파르테논은 '처녀의 방'이라는 뜻으로서 BC 488년에 페리클레스가 페르시아에 대한 전쟁에서 그리스의 승리를 기념하고 그리스 군을 한결같이 지켜준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세운 신전이라고 한다.
사진 4) 파르테논 신전
페리클레스의 친구였던 위대한 조각가 '피디아스'가 총감독을 맡아 건립한 이 신전은 마흔 여섯 개의 백설같이 흰 대리석의 원주를 가지고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을 병용 융합해 만들었는데, 남북 30.88미터, 동서 69.5미터, 기둥높이는 10.43미터로서 세계미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명작으로 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유네스코 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까이서 보니 개개의 기둥은 각기 하나의 통돌이 아니라 몇 개의 큰 돌조각을 쌓아올려서 다듬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때로는 교회로 때로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파르테논 신전은 17세기 까지만 해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1687년 10월 베네치아 군대가 쏘아올린 포탄이 터키군의 화약고로 쓰고 있었던 파르테논 신전을 강타하면서 지붕이 날아가 버려 오늘날과 같은 썰렁한 형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예술적 창조의 자랑이며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인류의 귀중한 보물이 같은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짧은 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파르테논 맞은편 약간 아래쪽에 조그만 신전 '에렉티온(Erechtheion)'이 있었다. 6명의 여인입상이 기둥이 되어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데 그 착상도 기발하지만 그 조각 솜씨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오랜 세월에 얼굴이 다소 부서지고 팔은 더러 잘려 나갔지만 온 몸에 건강하고 싱그러운 미가 흠뻑 넘쳐흐르는 발랄한 생명력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사진 5) 에렉티온
사진 6) 에렉티온 앞에서
그 옛날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의 수호신을 정하는 자리에서 포세이돈과 아테나를 사이에 놓고 설전이 벌어졌는데, 두 神 역시 경쟁이 벌어져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소금물이 솟아나도록 하였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심어 대항하였다고 한다. 시민들은 올리브나무가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여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선택하여 폴리스 이름을 아테네로 하였다고 한다.
아테나가 심었다는 그 자리의 올리브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호각소리와 함께 고함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3시밖에 안되었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고 빨리 나가라고 관광객들을 내 쫒는 것이다. 좀 전에 들어 와서 아직 구경도 다 못했는데 벌써 나가라니, “참 별 희한한 나라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우르르 몰려 내려가는 각국 사람들에 휩싸여 정신없이 밀려 내려갔다. 유감스럽게도 신전 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관람은 아예 포기해야 했다.
사진 7) 전설의 올리브 나무
바삐 쫒겨 내려가는 중에 길가 절벽아래를 보니 오데온 음악당이 있었다.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icus)'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AD161년에 만들어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한 음악당으로 1만5천명의 관중이 들어 갈 수 있는 반원형의 계층식 야외극장인데 최근(2005.6.28)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씨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오데온 옆 아크로폴리스 남단에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디오니소스 극장의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그 곳을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 8) 오데온 음악당
사진 9) 아크로폴리스를 빠져나오며 내려다 본 오데온 음악당
아크로폴리스를 빠져나와 그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아레오파고스(Areopagys) 언덕 위로 올라갔다. 바위로 된 낮은 언덕인데 이곳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으로 돌이 반들반들하게 닳아 굉장히 미끄러웠다. 신화에 따르면 전쟁의 神인 아리스의 딸을 겁탈한 人間인 청년을 죽인 사건을 다른 신들이 문제 삼아 재판을 한 장소로, 이후 흉악범에 대한 재판정 및 최고회의나 귀족회의 장소로 활용된 곳이라고 한다.
사진 11) 아레오파고스(Areopagys) 언덕(인터넷 자료)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니 발 아래로 고대 그리스 유적지인 아고라가 보였다. 아고라란 광장이나 시장을 뜻하는 말인데 B.C 6세기경부터 건물과 신전이 들어서고 시장 겸 집회장으로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던 곳이었다고 한다.
사진 12) 아레오파고스 언덕위에서 아고라 광장을 배경으로
신약성경에 보면 전도여행 중 아테네에 들린 사도 바울이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아고라 장터에서 스토아 철학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쟁론하다가 그들에게 이끌려 아레오파고스 언덕위로 올라가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덕 입구에는 바로 이 내용이 기록된 사도행전 17장 22절에서 32절까지의 로고스가 새겨진 동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 13) 로고스가 새겨진 동판 앞에서 오찬규 실장과 함께
다음 순서로 조금 더 걸어서 아크로폴리스와 시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필로파포스(PHILOPAPPUS) 언덕으로 올라가 가이드 아줌마가 특별히 간식으로 만들어온 빵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맞은편으로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이 156미터나 되는 석회암의 대지이며 테이블처럼 네모진 큰 바위의 언덕으로서 고대 아테네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변은 아테네 사람들의 다채로운 생활무대로서 그들은 오데온 음악당에서 음악을 즐기고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그리스의 비극을 감상했으며 아고라에 모여서 인생과 철학과 예술을 논하였다. 때로는 정치토론과 투표에 참여하고, 아레오파고스에 가서 재판을 하기도 했다. 신전의 경건한 축제에 향을 피워 기도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창과 방패를 들고 국토방위에 나섰다.
사진 14) 필로파포스(PHILOPAPPUS) 언덕 위에서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언덕아래 오솔길로 100여 미터 들어가니 소크라테스 감옥이 나타났다. 친구 크리톤의 탈출권고에 대해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신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갇혔던 감옥으로 벽면엔 앞쪽에 관리 건물 등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기둥 고정용 구멍들이 눈에 띠었다.
사진 15) 소크라테스 감옥
사진 16) 소크라테스 감옥 안내판
다음 순서로 버스를 타고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올림픽스타디움으로 이동하였다. 말굽처럼 생긴 형태에 좌석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수용규모는 약 5만 명이라고 한다. 원래의 경기장은 기원전 331년에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모습은 그리스의 부호 아베로프의 후원으로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복원된 것이라 한다.
경기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키가 훤칠하고 이쁘게 생긴 덴마크 아가씨 두 명이 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하동교육청 하계장이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말을 붙였으나 거절당하여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왔다. 아마 콩글리시로 “위 포토 찰칵 투게더”라고 말했던 모양인데 이를 알아들었을 리가 만무하였다. 내가 다시 그녀들에게 가서 이집트에서 한번 써먹었던 말로 “아이 워너 테이커 픽쳐 위듀”라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좋다고 하였다.
나보다 키가 더 큰 두 아가씨를 양옆에 끼고 키를 맞추려 발꿈치를 살짝 들고 폼을 잡고 있는데 이를 보고 있던 남자팀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아가씨 옆으로 붙어 섰다. 누구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지 디카 주인이 사진을 보내주지 않아 그 증거를 여기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
사진 17) 제1회 근대올림픽 경기장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SYNTAGMA) 광장으로 갔다. 신타그마란 그리스어로 헌법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1843년 이곳에서 최초의 헌법이 공포되었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건물을 받치고 있는 벽면 가운데는 1923년, 약 400년 동안의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은 독립 전쟁 때의 전사자와 그 후에 일어난 몇 차례의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영령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진 “무명용사의 비”가 있었다.
거기에는 땅에 묻힌 병사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양 옆에 알 수 없는 헬라어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인 “영웅은 세계가 그들의 묘가 될 수 있다”, “누워있는 무명용사에게 빈 침대가 운반되어 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앞에는 ‘에브조네스(Evzones)’라는 중세의 전통 복장을 한 근위병이 좌우에 1명씩 눈 한번 깜작이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매 시간 교대식을 하는데 마침 그 시간 되어 특이한 교대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사진 18) 그리스 국회의사당
사진 19) 국회의사당 입구 근위병
사진 20) 교대식을 하고 있는 근위병
사진 21) 무명용사의 비 앞에서 교대식을 하는 모습
병정들의 교대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잠시 들렸던 신타그마광장앞 지하철역에는 여러 가지 조형물과 지하철 공사를 하면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사진 22) 신타그마광장앞 지하철역
다음으로 플라톤이 아테네에 설립한 철학학교라는 아카데미아(Akademia)로 갔다. 여기서는 수학, 철학, 체육을 가르쳤으며 대화를 중요시 하였다고 하였다. 입구 양쪽으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조각상이 기둥 상단에 앉아 있었다. 아카데미아 옆의 아테네 대학 건물 전면 상단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사진 23) 아카데미아(Akademia)
사진 24) 아테네 대학
현지 가이드 윤 희 아줌마의 부지런한 안내 덕분에 자투리 시간 없이 여러 곳을 알차게 관람 하였다. 저녁이 되니 날씨가 쌀쌀하였다. 6시로 예약된 저녁 시간까지 상당히 여유가 있어 잠시 거리를 둘러보았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거의 모든 상점이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고 있었다. 어느 상점 안에 사람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반기기는커녕 어서 나가라고 손짓하였다. 저녁 6시에 도시락이라는 이름의 한국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잎이 큰 상추가 인상적이었다. 7시가 되어 DIVANI Palace Acropolis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공식적인 하루 일정을 마쳤다.
호텔에 들어가 짐을 정리한 후 그냥 시간을 보내기가 아까워 몇 사람이 하동교육청 하계장을 따라 아크로폴리스 광장 주변 거리를 3시간 동안이나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돌아다녔다. 조명으로 밝힌 파르테논 신전은 참 아름다웠다. 낮에 보았던 아레오파고스 언덕위에는 그리스 젊은이 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어둑한 오솔길에는 남녀가 쌍쌍이 앉아 진한키스를 나누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주변 골목길엔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불을 밝히고 있었고 간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노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어느 골목 코너를 돌아가니 하계장이 감탄을 했다는 그리스 팔등신 미인이 우리를 보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내일 밤 다시 와서 그녀를 만나 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 25) 야간 조명으로 환희 빛나는 아크로 폴리스를 배경으로
사진 26) 조명 불빛에 환희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
사진 27) 아레오파고스 언덕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