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산수화의 병풍으로 둘러친 듯이 크고 작은 산들이 에워싸여 아늑하게 터 잡은 홍천 읍을 가운데 두고 9개면이 사방에서 변방을 지킨다.
태백준령자락인 내면 뱃재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기는 동학운동이 역사에 무덤을 남긴 서석면 과 독립만세 운동의 장터였던 내촌면 두촌면 등지의 물이 합쳐져 순민들의 마음을 빗어 내리며 화촌면을 감싸고 흘러와 공작산 푸른 깃에서 빠져나온 시린 물과 태학에서 합수되어 화양강(華陽江)이라는 이름으로 홍천 읍을 동서로 가로질러 북방으로 휘돌아 가다 서면의 팔봉산을 안고 구비 치다 마지막 남면 용수를 더하여 10개 읍 면 지천의 물을 다 모아서 당당하게 북한강에 몸을 섞어 거대한 청평댐을 이루고 넘쳐흘러 남한강과 합류 후 서울의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홍천 (洪川:넓은 내)이라는 지명에 걸맞은 화양강(華陽江)은 강변자락을 터 잡고 선사시대부터 우리조상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생생한 곳(북방면 하화계리 새둔지)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나는 강을 바라보면 가슴 벅차게 떠오르는 마음속에 태양의 밝은 빛을 볼 수 있고, 하늘이 곱게 눈감는 일몰, 붉게 물드는 강물에서 송사리 떼 높게 뛰어오를 때마다 반짝이는 고기비늘과 물비늘이 함께 석양빛에 물들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바람도 곱게 내려앉아 쉬어가고 구름도 재에 걸려 피해 가는 작은 분지인 홍천, 그래서 그런지 전국에서 겨울에는 가장 춥고 여름에는 제일 덥다고 가끔은 뉴스를 타기도 하여 아들이 이곳에서 군대 생활을 하는 집 부모들이 근심 걱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홍천 읍은 잘 짜여지고 고루 연결된 시내의 도로에 깨끗한 거리 가 자랑할만하다. 그러나 "아까운 땅 모두 길 만들었다." “도로 만들면 뭐하나 차들이 먼저 주차해서 길은 좁아지는데" 하고 말도 많지만 그러나 어쩌랴 차는 누구차고 도로라도 없다면 이 차는 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리 모두 감수하고 서로 지켜야할 부분일 수밖에 없다.
홍천 읍의 남북을 연결하는 교량은 6.25사변시 폭격으로 끊어진 것을 보수하여 지금은 인도교로 사용하는 다리까지 합하면 8개로 늘어나고 국도 44호선이 확장되어 서울이 한 시간 때로 좁혀졌다.
하이트 맥주공장이 홍천의 암반수로 술을 만들어 내고, 온천수가 솟아올라온다. 이제는 서울 친구가 점심 먹으러 온단다. 그러나 우리 고장에는 이렇다할 특색 있는 먹거리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때는 조국근대화의 연기를 토하던 남산자락 언덕에 한일제사자리가 있고. 홍천의 도약을 시도했던 영안모자 자리도 주인이 떠나버린 농가의 헌집처럼 버려져 다시 공동묘지처럼 되어버린 곳을 우리들은 돌아 가야한다. 이것도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어차피 홍천 땅이니 우리가 주인이 되어 다시 밭을 갈고 심어야할 과제다.
새로운 개발도 필요하지만 버려진 것부터 손질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논밭에 아파트가 심겨지고 동산에도 높은 아파트가 자란다. 대단한 발전이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고 넓어진다. 집 없는 서민들이 줄어들고 삶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홍천의 경제가 가물어가고 있다. 상경기가 빈곤해지는 첫 번째 이유는 홍천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상업을 하는 분들의 폐쇄적인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외지상인과 경쟁에서 우위를 창출해야하는 시장경쟁의 원리를 모르고 무조건 외지상인의 접근을 막은 것에서부터 이미 판정패한 것이다. 더불어 사는 법을 어겼던 결과라고 자성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홍천의 경제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 신축 건물의 건설이다. 전세를 놓고 집세를 받아 살던 대다수 군민들이 아파트 건축으로 인하여 구 건물들은 공동화 되어가고 있다. 물론 살기 편하고 환경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금이며 임대료가 고스란히 홍천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의하여 홍천의 경제는 날로 심각하게 고갈되어가고 있다.
살기 좋은 내 고장 홍천을 만들기 위해 살림을 맡은 분들이나 군민모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외지인들의 지갑에서 단돈 얼마라도 공식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관광수입 하나 없고, 놀이시설 또한 아무 것도 없다. 막말로 북한군이 파놓은 땅굴도 없는 관광불모지다. 인공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데 요원한 일이다.
온천을 만든다. 농산물 판매장을 만든다. 이 모든 것이 힘만 들고 구설수에만 올랐다.
밤이면 불빛이 일렁이는 화양강 둑길을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두꺼비 산으로 올라 오솔길을 등산하는 많은 군민들 스치는 사람마다 나누는 정다운 인사는 상쾌한 하루를 예견한다. 산에서 다정하게 인사하는 습관이 시내에 내려와서도 이어졌으면 더 좋겠다 싶다. 잘 가꾸어진 등산로 간간이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좋고 새들의 울음소리가 정겹고 활기차다. 바람이 있다면 휴일에 아이들 손잡고 온 가족이 하루를 쉴 수 있는 공원과 놀이시설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홍천에서 상업을 하시는 분들이 경쟁력을 키워 상권을 회복해 주었으면 하고. 내 고장 홍천의 경영을 맡으신 분들이 많은 군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홍천(洪川)뿐만이 아닌 홍농(洪農).홍상(洪商).홍부(洪富).홍인(洪人)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민주주의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될 수도 있다. 간혹 동헌(군청) 정문 앞에서 신문고를 두드리는(농성하는)백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의 하소연이 다수를 위해 희생되어야할 소수에 해당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보지 말고 소수의 권익도 살펴주어야 하는 신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소수의 희생으로 이익을 보는 다수가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하고 희생자는 손해는 보지만 보람을 얻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가장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이 민주라는 이름으로 힘없는 많은 나라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고장 넓은 내(洪川) 華陽江이 일부에서는 洪川江이라 고도 불려지고 있다. 하나의 강이 두 개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홍천에 있다고 해서 홍천강 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양강은 홍천군내에서 발원한 강이라 홍천강이라 하는지 모르나 홍천군에서 지금까지 사료 등을 통해서 밝혀낸 바에 의하면 강의 이름은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남천(南川)으로 표기된 이래 시대별 자료에 따라 남천 화양강으로 또는 홍천강으로 각기 표기하였거나 혼용되어오다 지금은 남천이란 이름만은 거의 불려지지 않고 또한 강 이름이나 유래는 1831년경 편찬된 관동지에 화양강에 대한 기록만 수록된 것으로 홍천신문에서 밝혀 게재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의 강을 두 개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모순을 하루속히 고증을 거쳐 문헌에 의한 학술연구로 체계를 잡아 주민의 여론과 미래지향적 측면에서 강 이름을 통일시켜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농자는 천하지 대본을 지켜가고, 삶의 가치를 찾고자 예술인들은 고뇌하며 살고 싶어지는 내 고장으로 만들고자 앞장선 분들이 있다. 또한 더불어 살아 가고자하는 따듯한 이웃이 있고 젊은이들의 맑은 눈빛에 희망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
첫댓글홍천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셨다고 봅니다. 저는 이곳에 돌아온지 몇 개월 안 되어 잘 모르지만 경춘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위기이자 기회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층에서 적극 나서 계몽하고 계도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문협에서도 관망만 해서는 안 되겠죠. 즉, 우리 회원들의 각성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으니 모두 보다 더 힘내시길 촉구하는 바입니다.
첫댓글 홍천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셨다고 봅니다. 저는 이곳에 돌아온지 몇 개월 안 되어 잘 모르지만 경춘 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위기이자 기회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식층에서 적극 나서 계몽하고 계도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문협에서도 관망만 해서는 안 되겠죠. 즉, 우리 회원들의 각성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으니 모두 보다 더 힘내시길 촉구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