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22일 주현절 후 세 번째
성경 ; 사9:1-4, 고전1:10-17, 마4:12-22
제목 ; 오직 십자가의 예수만을 전하자!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예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①(원인)영광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
다.
ㄱ.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고 있습니다.
ㄴ.세상 눈치를 보기 때문에 예수를 즉시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ㄷ.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있습니다.
②(과정)십자가의 능력이 아닌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ㄱ.어둠 속에서 서로 싸우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ㄴ.서로가 ‘우리만이 예수의 참 제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③(결과)예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ㄱ.아직 어둠 속에 있어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예수를 조각나게 하여 영광의 빛을 가리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이 어둔 세상에 진리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①(본성)하나님은 진리의 빛이십니다.
ㄱ.하나님은 어둠을 밝히시는 영광의 빛이십니다.
ㄴ.하나님은 기쁜소식의 근원이십니다.
②(섭리)이 어둔 세상에 영광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ㄱ.하나님은 죄의 쇠사슬을 끊으시고 채찍을 부러뜨리셨습니다.
ㄴ.복음의 빛을 비추시어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셨습니다.
③(결과)백성들로 하여금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갖게 할 것입니다.
ㄱ.참마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ㄴ.예수를 따르는 자들로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우리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 전해야 합니다.
①(준비)그 지은 죄를 회개한 후에 예수를 성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ㄱ.죄와 어둠의 쇠사슬(욕심)을 끓어버리고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ㄴ.서로 싸우지 말고 참마음으로 하나(같은 목적과 생각)가 되어야 합니
다.
②(실천)오직 예수님의 복음과 그 십자가만을 전해야 합니다.
ㄱ.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영광만을 잘 드러내야 합니다.
ㄴ.예수의 제자가 된 본분과 사명을 잊지 말고 잘 감당해야 합니다.
③(결과)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ㄱ.주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않고 빛나게 할 것입니다.
ㄴ.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으로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4.파견사
목사 : 이 어둠의 땅에 진리와 영광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더 이상 어둠 속에서 헤매거나 죄의 쇠사슬에 얽매여 살 것이 아니라, 하
루 빨리 그 악한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진리의 빛으로 오신 주님만을 바
라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다른 형제들과 한마음이 되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회중 : 아멘.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절망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복음의 빛
을 비추어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어서,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을 열심히 전하고, 또한 그
영광만을 드러내며 살겠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밝은 빛을 열심히 비추도록 하겠
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시편 27 편중에서)
여호와는 우리의 빛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시니,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하
겠습니까? 여호와는 우리 인생의 요새이시니, 우리가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
까? 우리가 여호와께 간절히 구하는 오직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우리 평생
에 늘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성전에서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주님은 주님의 날개 아래 우리를 안
전하게 지켜주시고, 우리를 여호와의 성막에 안전하게 숨겨주실 것이며, 높
은 산 위에 우리를 안전하게 두실 것입니다
우리 주 여호와여,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와께서 선택하
여 부르신 주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
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할 때에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이 시간, 하늘의 양식을 넉넉하게
베풀어주십시오.
우리를 흑암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고자 영광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
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삼으시고 진리와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
도록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둠과 절망의 늪에 갇혀 괴로워하던 우리에게,
그 모든 죄와 어둠의 쇠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시고, 하
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찬양하면서 시간마다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
니,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 모두 하나
되게 하시며, 우리 생각이 더욱 아름답게 하시고, 모든 것을 품으며 조용히
사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래서 하늘의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십
시오. 우리를 생명이 되고 복이 되는 길로 인도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예수
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성시교독
목사 : 여호와는 우리의 빛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시니, 우리가 누구를 두려
워하겠습니까?
회중 : 여호와는 우리 인생의 요새가 되시니, 우리가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
까?
목사 : 우리가 여호와께 간절히 구하는 오직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회중 : 우리 평생에 늘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성전에서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목사 :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주님은 주님의 날개 아래 우리를 안전하게 지
켜주시고, 우리를 여호와의 성막에 안전하게 숨겨주실 것이며, 높은 산
위에 우리를 안전하게 두실 것입니다.
회중 :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원수들을 향하여, 우리가 떳떳하게 고개를 들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다같이 : 여호와여, 부르짖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
리에게 대답해 주십시오.
8.헌금기도
주여, 민속명절인 설날이지만, 주님 전에 나아와 예배할 수 있는 은혜와
믿음을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설 명절에 성도로서 죄짓는 일이 없도
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소서. 이 시간, 마음과 정성을 모아 주께 예물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주시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예화
1)주께로 돌아가는 길
‘내가 어쩌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에서 이렇게까지 멀어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품지도 않았
기 때문이라는 것이 서글픈 대답이다.
미혹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단 하나다. 자비의 하나님이 그들
눈이 뜨이게 하시고, 당신의 진리의 빛으로 미혹의 먹구름을 흩으시는 것이
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 눈을 열어 불순종의 영역을 보게 하신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가인처럼 우리도 진리를 볼 수 없다
-존 비비어의 ‘순종’ 중에서-
2)햇빛 속으로 걸어 나오라.
존 로빈스는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런 일들을 권하고
있다.
‘눈밭을 뒹굴어라. 빗속을 달려라. 달밤에 춤을 추고, 맨발로 잔디를 밟
고, 친구와 함께 별을 보자.’
늙어간다는 우울한 기분에 갇혀 있지 말고 햇빛 속으로 걸어 나오라. 찬
란한 인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목말랐던 공부를 하고, 하고 싶던 일을
하고, 모아둔 돈으로 여유를 즐기며,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를 누릴 수 있
다.
- 이시형의《에이징 파워》중에서 -
3)빛을 가져다준 어둠
일본에 어떤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소년의 눈이 침침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을 진찰한 의사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머지않아 완
전히 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부모는 소년을 데리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했고, 굿판을 벌
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결국 완전히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자살을 하고자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의 권유로 대만 기독교 선교부에서 운영하는 맹
인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소경이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
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해서 반사원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많은 책도 저술하
였는데, 그 가운데 ‘어둠으로 빛을 찾았다’라는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 김장환 큐티365 -
4)하나님을 만난 기쁨
다원적인 사회에 살다보니 많은 신들이 있는데, 유독 기독교만이 한분
하나님을 주장하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우치무라 간조’가 그 대답을
준다.
그는 800만의 일본 신들을 신심을 다하여 섬겼다. 신들은 대개 한두 가
지 금기가 있다. 신들에 따라 들, 산, 강, 바다를 싫어한다. 콩이나 계란을
금하는 신도 있다. 800만의 요구와 금지를 지키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요
구와 금지가 너무 많고, 심지어 서로 충돌한다. 제대로 지키려면 어디라도
가면 안 되고, 무엇도 먹으면 안 된다.
신들의 벌이 두렵고, 이도 저도 못하게 된, 믿음이 깊은 간조는 점차 성
마르고 소심한 소년이 되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가장 위대한 한 신(神)만 섬기면, 다른 신들
이 정한 금기는 무용지물이다. 그는 고백한다. “많은 신이 아닌 오직 한분이
신 하나님은 내 작은 영혼에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쾌활해졌고, 지적으로 건강해졌다. 많은 신이 아니라 한분 하나님
이 전인적인 구원과 자유를 준다.
- 김기현 목사 (부산수정로침례교회)-
5)진리의 빛
늦은 저녁시간에, 한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정육점에 들렀습
니다. 때마침 정육점 주인은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
었습니다.
“아저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 좀 살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다가가서 냉장고의 문을 열었습
니다. 다행스럽게 다 팔고 딱 한 마리의 닭이 남아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닭
을 들고 와서 그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저울의
눈금은 3kg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것보다도 조금만 더
큰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다른 것으로 한 번 골라봐 주세요.” 이에,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집어넣고 다른 닭을 꺼내는 듯하면서
똑같은 닭을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닭은 딱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다시금 저울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번에는 4kg이
나왔습니다. 자기의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무게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서 아주머니는 매우 만족해하며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을
나서더니 갑자기 뒤돌아서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
금 전에 달았던 것도 마저 싸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주인은 무척 당황스러워했습니다.
10.설교예문
♣주현절 후 세 번째 주일
성경 ; 사9:1-4, 고전1:10-17, 마4:12-22
제목 ; 이 어둠의 땅에 영광의 빛으로 오셨다!
지난 21일, 청해부대 소속 UDT대원들이 벌였던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
공은, 답답했던 우리의 가슴을 아주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의 자랑스러운 UDT 대원들은, 이 작전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해적에 의해서
납치되어 끌려가던 삼호주얼리호(號)의 선원 21명을 구출하게 되었습니다.
구출 작전을 하는 동안, 우리 측에서는 해적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
명은 생포했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 측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삼호주얼
리호 선장만 해적이 쏜 총에 맞기는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 밖에, 다른 인질들과 우리 측에서는 단 한 사람도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
다.
그동안,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서 우리나라 상선들이 납치를 당할 때마
다, 우리 측에서는 그 나쁜 해적들에게 어마어마한 협상금을 주어야만 했습
니다. 물론, 그들에게 그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습니
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
니다. 그러나 이번에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함으로써, 다시는 그처럼 억울
하고 속상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참 많이 겪
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
람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 반대라는 생각을 갖
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힘들게 사
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억울하
게 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
무 탈 없이 편안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는, 개그맨 박성광이 나와서 ‘이
세상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목청을 높인 일이 있습니다. 그
래서 그는 날마다 술을 퍼먹지 않으면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살 수 없
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부정부패가 너무나 심한 고급 공직자와 정치들인들, 그
리고 경제인들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
람들은, 자기들만 의로운 척 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는 예수
쟁이들이 꼴 보기 싫어서, 하루속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는 억울하다고 말하거나 속상해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그처럼 억울하게 하거나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그 누구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나
는 다만 피해자일 뿐이지 타인에게 피해를 준 일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데,
과연 누가 그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위트와 유머가 아주 많은 분입니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배꼽을 잡고 웃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농담을
많이 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 때가 많은 것입
니다.
어느 날, 하루는 그가 저를 소재로 해서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를 소재를 해서 웃기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뚱뎅이’이라
고 하면서 놀렸습니다. 그 사람의 몸집이 대단했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빴던지 ‘말이
면 다냐?’고 하면서 버럭 화를 냈습니다. 자신은 나를 가지고 농담 삼아 맘
껏 놀리더니, 내가 자기에게 ‘뚱뎅이’라고 했다고 해서, 그처럼 화를 냈던 것
입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
들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속상하게 한 일들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한다. 제발 싸우지 마라.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라. 아무쪼록 같은 생각과 같은 목
적으로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전1:10)’고 간절하게 권면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다툼과 싸움이 많았으면, 사도 바울이 그처럼 ‘제
발 싸우지 말라.’고 호소했겠습니까?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왜 그처럼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원칙대로 올바르
게 살려고 애쓰는데, 아무개가 틀려먹었기 때문에, 내가 믿음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대다수가 ‘교인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고 말하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만이 참으로 예수의 제자다.’라고 떠들지 말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깨끗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내가
어찌 그 더러운 곳에 끼일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世上)이라는 말의 한자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통틀어
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람이라면, 나도 그 더러운 세상을 이
루고 있는 한 구성원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된 책
임이 나에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 교회의 한 구성원인 나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다른 이웃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
나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
람보다 그 자신이 더 많은 손해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이 사회와 교회, 또는 가정을 더욱 분열
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다라고 떠들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조각나게 하는 일이 된다(고전1:13)’고 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짓거나 잘
못을 행한 일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당시의 죄인들
에게 행하는 형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형을 당하셔서 돌아가
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당시의 권력자들인 제사장 그룹과 율법
학자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고, 또 그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그룹과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하기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불의한 이득을 취하
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
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따지기보다는, 그들 때문에 고통
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과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멀리하고 예수님을 가까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더욱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었습니
다. 감히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던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멀리하고 주님을 따라가자, 그들은 위기의식을 느
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랐더라
면, 세계 역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리라고 여겨집니
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권력이나 재물이 있을 경우,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
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죽였습니
다. 예수를 죽일 만한 죄목이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신성
모독죄’로 얽어매어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조차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요18:38)”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기들 뜻대로 예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죽자, 그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다시 그들만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어 공격하던 예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권
력과 재물의 단맛을 맘껏 즐기면서 세상을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해요, 아주 큰 착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미약하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잠깐 살
다가 갈 인생은 결코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미처 깨
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물주
이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으
로서 누리게 될 축복을 누리지 못하지 못할뿐더러, 마지막에는 비참한 최후
를 맞이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느
냐, 불순종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뜻대
로 산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거니와,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실
패로 끝나고 말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권력과 재물을 갖게 될 경우, 잠시 동안에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착각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에
빠지게 하고, 그 결과 재물과 권력에 더욱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재
물과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권력과 재물을 의지했던 사람들
은, 그 권력과 재물이 다했을 때에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가지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든,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만 없으면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는, 죽으신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그런 생각과 그 인생이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그동안 그 사는 재미가 솔솔 했을 것입니다. 단 한
번의 해적질로 참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한민
국의 상선을 납치했을 경우에는 100%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상선은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
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납치범들
이 대부분 사살되거나 생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대한민국의 상선을
건드리면, 그들이 원하는 돈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다
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뼈저리도록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9장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토록 어둡고 절망
에 가득 찬 시대도 영구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왜
냐하면,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그 큰 빛은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서 캄캄한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비춰질 것이다(2)’라고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란, 영원한 죽음의 그림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세상 불의와 죄악 때문에 갖게 되는 절망과 좌절
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맛을 잃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큰 빛을 보게 되면, 다시 말해서, 진리와 영광의 빛으
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게 될 경우,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새롭
게 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야말
로 왜 무엇 때문에 산다고 하는 ‘인생의 확실한 목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쓰다가도,
세상에서 이루지는 일들이 너무나 불공평하고 실망스럽기 때문에, 인생을 바
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처럼, 사람을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말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를 알고 믿게 됨으로써 새로운 소망과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어떤 평
가에 따라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언제는 좋다고 말하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좋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 나
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요 시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불변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
다. 더군다나, 이 세상의 주관자는, 그 어떤 권력자나 돈 많은 사람이 아니
라,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세력이 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
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성경말씀을 보거나 세계 역
사를 살펴보면,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정육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 정육점에서는 쇠고기와 돼지
고기는 물론, 닭고기까지 팔았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저녁나절, 한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이 정
육점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정육점 주인은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정육점 주인에게 “아저씨, 늦게 와
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 좀 살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다가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
다. 냉장고 안에는 딱 한 마리의 닭이 남아있었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그 닭
을 들고 와서 그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저울 위에다가 닭을 올려놓았습니
다. 저울의 눈금은 3kg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것보다도 조금만 더
큰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다른 것으로 한 번 골라봐 주세요.”하고 부탁했
습니다. 이에,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집어넣고 다른 닭
을 꺼내는 것처럼 하다가 똑같은 닭을 다시 꺼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닭은 딱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다시금 저울 위에 올려놨는데, 이번에는 4kg이 나
왔습니다. 자기 손가락으로 저울을 살짝 누르면서 무게를 달았기 때문입니
다. 그것도 모르고, 아주머니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을
나섰습니다. 주인은 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
습니다.
그런데, 문밖으로 나가던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다시 문안으로 들어서면
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
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 달았던 그 닭마저 함께 다 싸 주셨으
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었는지, 아쉽게도 그 뒤의 이야기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짐작하건대, 그 정육점 주인은 큰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정육점은 아예 문을 닫고 폐업을 했거나, 아니면 그
주인이 바뀌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고기 무게를 속여 팔았으니, 어찌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정육점 주인이 거짓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폐
업을 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속
일 경우에는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
론,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인 고로, 우리의 잘못을 뉘우쳐 고백
할 경우, 우리의 거짓된 생활을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만,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을 진심으로 모셔 들여서 살게
될 경우, 우리가 행하는 아주 작은 거짓조차 다 드러나게 되어 있음을 기억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짓된 인생을 계속 살아가면서도 자기 잘못
과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도록
합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고쳐 살도록 합시다. 아무쪼록, 우리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신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