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조정순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왔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낳은 자식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하고, 설거지하면서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생각하고, 어렵게 어렵게 낳은 자식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나도 큰 소리로 환호했다.
내가 글공부를 시작하고 컴퓨터가 필요했다. 궁핍인지 궁상인지 애들이 쓰다 밀어놓은 것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워드만 조금 하는 나는 다양한 기능도 필요 없고 속도 또한 좀 느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낼 수만 있으면 된다. 그동안 별문제 없이 사용했는데 손자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뭐가 안 된다고 컴퓨터를 바꿨다.
저장된 파일을 새 컴퓨터에 옮기면서 문제가 생겼다. 딴집살림을 하고 있던 수필 몇 편이 빠진 것이다. 다행히 본체를 버리지 않았으니 거기 있겠지 하고 찾아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버릴 거라고 다 지웠다는 것이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떡하나, 남 보기에 번듯한 잘난 놈은 아닐지라도, 많이 부족할지라도 몇 날 몇 밤의 진통 끝에 낳았는데 헛수고가 되다니, 다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없고 어떡하나,
재생을 생각하며 돈이 얼마가 들어갈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딸이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다행히 몇만 원에 살려왔다. 다른 사람의 수고로 부활하여 돌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고통을 겪지 않으셨으면 부활도 없다. 그 고통과 죽음을 겪으셨기에 부활하셨고 부활의 영광으로 인류를 죽음에서 살려내셨다.
사람은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이것이 부활이 아닐까? 그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부활의 기쁨도 큰 것이고 부활의 기쁨으로 여러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조카딸은 눈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랜 병원 생활과 시부모님을 비롯해 가족 모두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지만, 하반신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있다. 하지만 본래 긍정적인 조카딸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웃음과 유머도 되찾았다. 웃으며 수영장을 가고 탁구장을 가고 열심히 쫓아다니더니 드디어 장애인 탁구 국가대표가 되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그 보상으로 연금도 받고 있다. “이모 나 국가대표 되었어.” “이모 나 메달 땄어.” 전파를 타고 온 그 밝은 소리가 나는 아직도 아프다. 감각이 없어 시간을 정해놓고 화장실을 다니는 사람이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도록 휠체어에 앉아 열심히 한 노력의 대가(代價)이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어떤 메달이든 수많은 땀과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얻은 장애인들의 메달이야말로 부활 중의 부활이 아닐까? 그렇게 부활하여 가정에 웃음을 되찾아 주고 그 가정을 지켰으니 가족 모두를 살린 것이다.
한국에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님도 부활하셨다. 신부님은 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어 내전으로 고통 받는 남수단으로 날아가셨다. 거기에서 학교와 병원을 지어 주민들을 도우며 선교 활동을 하셨다. 모교에는 신부님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이태석 기념과정”이라는 교육과정이 있다. 신부님은 가고 안 계시지만 신부님의 정신인 희생과 사랑을 기리며 가르치고 있으니 부활하신 것이 아닐까.
남수단의 신부님의 제자 두 명도 부활하였다. 복사를 하던 두 사람은 의사가 되고 싶다 했고 신부님은 이들이 꿈을 이루도록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연락하였다. 두 사람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신부님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에 들어가 드디어 꿈을 이루어 의사가 되었다. 두 사람은 교정에 세워진 신부님 흉상에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그 앞에 꿇어 펑펑 울었다고 한다. 신부님도 하늘에서 감동에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두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니? 장하다 정말 장하다.’라고 칭찬하실 것 같다.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고향을 떠나 말도 글도 모르는 머나먼 이국에서 한국 사람도 힘들다는 의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이들은 한국에서 경험을 더 쌓은 다음 고국으로 돌아가 신부님 닮은 의사가 되겠다고 하니 부활의 영광으로 고국에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
밤잠을 줄이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좋은 성적으로 자존감을 살리고, 여름내 땀 흘린 농부는 좋은 먹거리로 자신과 이웃을 살리고, 좋은 선생님은 우리 정신을 살린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흘린 땀과 과학자들의 땀은 우리 산업을 살린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로 인류를 죽음에서 살리셨듯이 우리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룬 선한 성과 또한 나와 너를 살리는 부활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되살아나 내게 돌아온 몇 편의 글, 부족한 자식이지만 더없이 소중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또 보며 부활의 기쁨을 살고 있다.
복사=미사나 전례에서 사제를 도와 보조하는 사람
첫댓글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근형선생님 고맙습니다
이호윤선생님 어제 체크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늘 하던 생각이지만 한번 보고 어떻게 그렇게 집어내는지 나는 그저 놀랍기만 하네요
저는 몇십번을 읽고도 인쇄하고 난 다음에서야 모교를 인제대 의대라고 할걸 그랬나 했어요 그리고 에와 의는 여러번 설명을 들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이예요 정말 감시해요
다른 선생님들도 부분부분 집어줄려고 체크한 곳이 있을텐데 시간이 없어 듣지 못해 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