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양말 김 곤 식
퇴근후 발을 씻은 후 물기를 말리면서 발을 본다. 매끈하며 윤기가 흐르는 청년 시절의 발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열 발가락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발톱에 시선이 가니 기분이 좋아져서 입에는 미소가 번진다. 즐거우니 그 청년 시절에 즐겨 부르던 유행가도 흥얼거린다. 저녁상 차려났으니 식사하세요? 라는 아내의 정 넘치는 목소리에 알았어요! 나가요. 대답하며 저절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군대 제대 후에 소방기구 제조 및 시공하는 중소기업회사에 취직하였다. 처음에는 생산부와 자재과를 거쳐 영업 관리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보다는 일선 영업을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에는 신도시 건설 등으로 건설업계가 우후죽순으로 창업되고, 호황을 누리려는 그런 시기이었다. 관리보다는 영업부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회사와 나의 장래와 발전에 이바지할 것 같아서 사장님한테 면담을 신청했다. 일선 영업을 해보겠다. 고 당당히 말씀드렸더니 영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며칠 지난 후 다시 면담을 신청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 보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씀드렸더니 허허 웃으시면서 “정 그러하다면 열심히 하라”고 따뜻한 미소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영업은 출근해서 간단한 업무처리하고 사무실을 나가면 하루 종일 거래처를 방문하고 회사를 소개하는 지명원과 카탈로그, 명함을 돌리면서 외근 업무를 시작하였다. 해가 지고 달이 차면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초지일관(初志一貫)으로 열심히 발걸음의 수를 늘려 나갔다. 저녁에 퇴근 후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피곤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발가락이 가려워서 피부과에 가보니 무좀 감염 진단을 받았다. 초기라 바르는 약을 처방받고 조석으로 발랐지만, 하루 종일 구두를 벗지 못하고, 땀이 나니 바르는 연고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새 발톱으로도 감염되어 보기조차도 흉하게 변색해 가고 있었다.
저는 군복무를 포병으로 근무하였다. 부대에서는 발 건강 관리를 잘해서 괜찮았지만, 문제는 여름 장마철에 며칠간 정기적인 야외 적응 훈련이다. 장맛비를 맞으면서 온몸이 젖은 채로 훈련에 임했다. 발 건강은 최악이지만, 실전에 임하는 자세로 상급 부대가 원하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지휘관을 중심으로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훈련했다. 비 맞으며 식사하면 국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싱거워진 국을 분대원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함께했으니 힘들었던 군시절이었지만 젊은 날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런 훈련에도 끄떡없이 버티었는데, 영업 활동하면서 발톱무좀까지 감염되었으니 어이가 없었고, 저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중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제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날 피부과 원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바르는 연고는 효과가 없으니 복용 약을 처방하는 것이 치료에 효과가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얼마 전에도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했는데 약이 강해서 부작용으로 며칠 만에 중단한 일이 있었다. 부작용은 팔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약간 가려웠었다. 상담해 보니 간장이 제대로 해독을 못했기에 일어난 부작용이라고 했다. 원장님은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 괜찮을 것이라고 설득하셨다. 반신반의 끝에 처방받아 복용해 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증상과 이번에는 구토까지 발생하여 도저히 더 이상 복용할 수 없었다.
복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선배가 발가락양말을 추천하였다. 치료는 근본적으로 안되지만 더 이상 진행을 막을 수 있다고 신은 모습을 자랑이라도 하듯 구두를 벗어서 보여 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부자연스럽고 마치 굼벵이가 꿈틀거리는 모양이어서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무좀이 다소 완화된다니 그 양말을 착용하기로 했다. 이것이 나와 발가락양말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의 발 건강을 평소에 염려해 주던 가족들까지도 신기하다며 때로는 놀리기도 한다. 아이들도 호기심에 발을 만지며 “아빠 나도 한번 신어볼게” 하며 떼를 쓰기도 한다. 영업직은 거래처 관리가 중요하다. 휴일이나 공휴일에도 애경사로 연락 오면 달려가야 한다. 그러므로 가족 중에도 특히 아이들에게 놀아주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그중에도 애경사 참석은 필수 업무이다. 결혼식이나 환갑, 칠순, 하물며 백일이나 돌잔치까지 참석해서 얼굴도장을 찍는다. 이런 행사는 신발을 벗지 않고 축의금 내고 인사하면 된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가면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입장하기 전부터 발가락양말을 신었기에 긴장이 온다. 고인 영정을 향하여 향 피우고 절하면 상주들이 옆에서 지켜보는데 의식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꿈틀거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상주들은 엄숙한 자리에도 불구하고 꾹꾹 참았던 웃음을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진땀을 흘리며 상주들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상주들은 아직도 입가에 웃음이 남아있다. 그 외 발톱무좀으로 인한 난처한 일을 수없이 겪었다. 특히 해외 출장 중 발톱무좀으로 인한 일화도 있다. 중국 출장 가서 일도 하면서 중간에 관광도 했었다. 관광 일정으로 족욕 마사지를 하는데 마사지사가 내 발을 보고 멈칫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 어찌나 부끄러운지 어느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직장생활은 청, 장년 시절을 지나서 칠순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단골 발가락양말 가게도 생겼고, 발가락양말 덕분에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고 유지해 나갔다. 나름 요령도 생겨서 상가에 갈 때는 일반 양말을 준비해서 곤혹스러운 상황은 피해 나갔다. 양말은 서양에서 온 버선이란 의미로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을 부를 때 쓰는 ‘양(洋)’ 자에 버선을 뜻하는 ‘말(襪)’ 자를 조합해서 만든 한자어다. 양말은 추위와 신발로부터 발을 보호하며, 발의 특성상 걸음으로 인한 땀을 흡수하여 무좀 곰팡이 번식을 막아 발 건강은 유지하는데 그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경제 활성화와 산업 발전으로 많은 인구이동과 경제 활동이 분주해졌다. 기존 양말로는 발가락 사이의 땀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서 나처럼 발톱무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필요에 따라서 발가락양말이 개발되어 발 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요즘은 발가락양말이 젊은 여성들에게도 애용되고 있다. 화려한 색상과 패션 디자이너가 아이디어 상품으로 개발되어 지하철에서도 예쁘게 신은 아가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발톱무좀 완치는 포기하고, 여름철 덥고 습한 날씨로 무좀 증세가 나타나면 약국에 가서 진균 치료 연고를 사서 바르면서 일상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발바닥에서 피부가 벗겨지면서 쓰라린 증상이 나타났다. 나이 들어 피부가 건조해진 탓일까? 아내 모르게 보습제도 훔쳐 발라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쓰라림에 걸음걸이도 불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장 근처 피부과를 방문하니 원장님은 무좀균이 발바닥까지 감염되었다며 바르는 연고와 복용 약을 처방해 주었다. 전처럼 부작용을 말씀드렸더니 “모든 부작용을 대비하여 개발되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복용 약은 보름치를 처방해 주셨다. 복약 안내는 하루 한 번 복용이다. 약은 단 두 알 하나는 위장약이고 또 하나는 무좀약이다. 그동안 복용 약은 불신했는데 며칠 복용하니 쓰라림이 덜해지고 걸음도 불편함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부작용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름치를 다 복용했을 때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나타났다. 엄지발톱에서 선명히 감염되지 않은 발톱이 새로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석 달 치를 복용하니 원장님께서도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다 나았으니 축하한다고 등을 두드려 주셨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빠 발톱무좀이 깨끗해 나았다.“고 선언하자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그동안 가족도 내색은 안 했어도 무좀은 가족들에게도 감염될 수 있는 질환이기에 꺼림칙했을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가장 체면 세워주고 감내해 준 것에 사의를 표현하고 싶다. 발톱무좀이라는 가슴속에 오랫동안 응어리로 남았던 주눅을 털어버리고, 당당히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발톱무좀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마음은 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철저히 건강 관리하여 발톱무좀으로부터 더 이상 고통과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다.
첫댓글 무좀을 인내한 끝에 광명을 찾으셨네요
글은 참 마음의 순환도 되고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활력소가 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생활속에서 부족한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즐거운 명절되세요!
열심히 사신 흔적에 무좀이라는 불청객 찾아 왔었네요
완치되어서 다행이어요 나도 요가 할 때 발가락 양말 신어요 ㅎ
간결한 글에 감사를 전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은 일반 양말신는데 적응이 안돼요
발가락양말이 편하네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