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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제왕시 : 2편
1. 시편 2편의 특징
시편 2편은 1편과 함께 시편의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는데, 1편은 시편의 서시로 그리고 2편은‘제왕시’로 장르를 분류한다.‘제왕시’인 시편 2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으로 묘사하고 있는 시이나, 메시야 되신 그리스도를 예언한 시인 까닭에‘메시야시’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시편은 이 중 일부에서만 메시야시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시편 1편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시편 전체가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에 시편 속에는 그리스도를 말씀해 주시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 메시야시가 아닌 것은 없다. 모두가 메시야 시이다. 그럼에도 시편의 일부를 따로‘메시야시’로 묶는 것은 그 시에서는 메시야 언약과 이를 예언해 주시고 있는 직접적인 언급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본 시편 2편의 모든 것은 상징적인 것으로서 거기에는 장차 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것에서 시편 2편은‘메시야 시’로, 메시야 되신 그리스도를 예언한 시이다. 그리스도께 온 열방이 돌아와 그분의 가르침을 좇아 섬기며 복종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한다. 결국 복 있는 자는 어떤 자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으니, 12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이다. 그것은 신약에서 메시아 언약의 성취에 따른 그리스도를 믿음에 있는 것과 연결된다.
이러한 시편 2편이‘제왕시’(또는 신정시)라고도 불리는 것은 이 시가 왕이 주된 주제로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편은 사용된 정황으로 보아‘등극시’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시편은 모두 12절로 되어 있으며, 내용상 네 단락으로 구분된다.
․1-3절 /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열방과 민족들의 사악함
․4-6절 / 하나님께서 왕(메시야)을 시온 위에 세우셨음을 선포하심
․7-9절 / 왕(메시야)이 하나님의 선언을 전함
․10-12절 /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왕(메시야)을 섬기지 않는 열왕과 민족들에게는 화가 임 할 것을 경고함
2. 시편 2편 해설
2-1.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열방과 민족들의 사악함(2:1-3)
1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
시편 2편은 표제가 없기 때문에 이 시를 지은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에서 미상의 시인은 이방 나라들과 민족들이 분노하며 헛된 일을 꾸미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1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에 사용된 단어는 ‘떠들썩하다’는 뜻을 지닌 것으로, 원문의 뜻이 본래 떠들썩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마음속에 원한을 표출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다윗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광분하는 주변 나라들의 행위를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대적하며 그의 사역을 집요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버릴 흉계까지 꾸민 사단의 세력들의 준동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민족들의 ‘헛된 일을 꾸미는가’는 ‘분노하며’에 상응하는 표현의 동의적 평행 대구법으로, 헛되고 가치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인데, 현대어성경은 “민족들이 어찌하여 군대를 모으는가”라고 번역하였다. 다윗 왕국 주변의 이방 민족들이 군대를 모아 연합하여 다윗 왕국 및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방해하기 위하여 노심초사 하는 사단의 세력의 집요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윗은 그의 나라가 비록 현재는 강력한 원수들에게 무수한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손길과 능력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그것이 영속적일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2절은 표현을 달리하여 1절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데, 1절에서보다 자세하게 제시되며 이들이 대적하는 대상도 보다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분노하며 헛된 일을 꾸미는 주체가 열방과 민족들에게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로 표현되었다. 이들이 ‘나서며’, ‘꾀하는 것’은 1절에서와 같이 동일 표현 대구법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다윗 왕국과 싸우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서로 힘을 합하여 결집을 도모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 이유가 2절 하반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는 이방 나라의 민족들이 여호와이신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상으로 삼아 대적하기 위하여 연합하여 군대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인데, ‘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거룩한 사역을 감당할 자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중에서 기름 부어 성별한 지도자들인 왕, 선지자, 제사장들을 이르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 및 다윗 언약에 따라 신정왕국의 통치자가 된 솔로몬과 그의 후손인 남유다 왕국의 왕을 지칭한다. 따라서 왕이 ‘기름부음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왕은 모두 하나님이 거룩히 기름 부어 세운 자들인데 이들을 대적하는 행위는 그들을 세우신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러한 행위를 1절에서는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라고 하였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 ‘허사를 경영하는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향한 대적에 있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다윗 왕가가 예표하는 메시야 왕국을 대적함에 있을 것임을 의도하고 있다.
3절인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는 앞선 1절의 열방과 민족들, 그리고 2절의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하나님과 그 기름부음 받은 자(유다 왕)를 대적하기 위하여 함께 하나가 되어 꾀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원문에서는 상반절에서의 세 단어와 하반절에 그에 대응하는 세 단어를 사용하여 운율을 유지하는 3+3의 동의 대구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서,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는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에 있는 것이다. 이는 열방과 민족들 곧 세상의 군왕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함께 공동전선을 펼치고 계략을 짜내며 음모를 꾀하는 것이니, 새번역성경에서는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1) 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어성경에서는 “더 이상 노예살이를 하지 말자”라고 번역하였다. 이 외에 한글 성경의 각 번역에서 알 수 있듯이 열방과 민족들, 그들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모의하여 그의 결박과 사슬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실제 역사에서 찾는다면, 예컨대 솔로몬 시대에서의 경우처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편 기자가 어떤 특별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해서 언급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참조. 시 83). 이것은 어떤 민족이나 왕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과 그의 존귀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기름 부어 세운 왕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바로 이같이 하나님과 그의 왕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과 열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선민 삼아 하나님을 만방에 선양하게 한 이스라엘의 종교가 갖는 이상인데,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방은 알지 못함에 따라 매번 이스라엘에 새 왕이 등극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종교가 띤 이상을 거역하고 있음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에서 이방의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 도다”는 기름부음 받은 왕의 실체이신 메시야 –그리스도 - 가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2) 그러나 약속된 메시야가 오심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5-16)에 있게 되며, 이는 예수님이 사도로 세우신 열두 제자와 바울에 의해서 유대와 이방의 온 땅으로 확장되어 그들이 거부해왔던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 끓어 굴복하고 복종함에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이스라엘의 종교가 지닌 이상이 실현된다.
2-2. 하나님께서 왕(메시야)을 시온 위에 세웠음을 선포하심(2:4-6)
4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편 2편의 4-6절은 하나님께서 왕(메시야)을 시온 위에 세웠음을 선포하신다. 4절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에서 ‘하늘에 계신 이’는 문자적으로는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분’이다. 이는 ‘하늘보좌에 왕으로 앉으신’이란 뜻이다. 그 하나님께서 웃으심은 이어지는 후반절에서 알려주고 있으니, 열방과 민족들, 곧 세상의 통치자들과 관원들이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대하는 오만한 말을 듣고 하도 기가 차신 것에서 그들을 비웃으심에 있으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발하신다. 이처럼 지상 왕들의 반역과 오만함으로 인하여 조롱과 분노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경고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온’은 다윗 시대에서는 예전에 여부스 족속의 성읍이 자리하고 있던 곳으로 예루살렘 도성의 남동부에 위치한 언덕으로, 시온 산이 예루살렘 도성의 남서부에 위치한 것으로 보는 후기의 일반적인 전승과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적으로 ‘시온’이란 용어는 그 위치 여부에 상관없이 '예루살렘’이라는 용어와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이 시온 위에 세웠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는 선언에 있으신 것을 의미한다.3)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 시온 – 예루살렘 - 을 다스릴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2-3. 왕(메시야)이 하나님의 선포를 전함(2:7-9)
7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본 절들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시온에 왕을 세우시는 것이 왜 열방과 민족들, 세상의 통치자들과 관원들을 무서움을 갖게 하며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되는지를 알려 주신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전령에 의하여 전해지게 되는데, 그 전령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기름 부어 세우시는 왕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에서의 ‘내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은 ‘다윗’을 지칭한다. 이는 칼빈(John Calvin)을 비롯한 각 학자의 성경주석에서 확인된다. 그러하긴 하지만, 카일ㆍ델리취(C. F. Keil and F. Delitzsch)는 이 ‘내가’에서의 ‘나’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자신의 확신 속에서 의견을 달리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논쟁을 잠재웠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왕위를 세우시고기름 부음에서, 또 그에 의하여 왕을 삼으신 하나님의 힘이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윗이건. 다윗의 아들이건, 아니면 다른 다윗이건 간에 삼하 7장이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이러한 신명을 선언한 기록이었다고 생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며, 영원히 지배하게 되리라는 언약을 받으면서, 또 야훼께서 다윗의 후손에 스스로 아버지가 되는 영원한 아들의 관계를 맺으리라는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파 그의 후손은 야훼에게“주는 나의 아버지이십니다”(시 89: 27)라고 말할 수 있었고, 야훼는 그에게“너는 나의 아들이니라”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4)을 받았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2:7-9)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자는‘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나님에 의해서 선포되고 있다. 이 문구는 문서의 공식적인 선언적 표현으로,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인 다윗 언약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 언약을 주실 때 그의 뒤를 이어 그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는데(삼하 7:12-14), 본문의 구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요약하여 진술한 것이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구약 역사에서 ‘솔로몬’의 출생에 의해 성취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솔로몬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예언이 아닌 장차 메시야를 보내실 하나님의 아들을 담고 있는 예언으로 주신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선포의 문구를 신약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바로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야이심을 논증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한 것에서 본 구절에서의 선포는 궁극적으로 다윗의 후손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동시에 바라봄에 있게 하신 이중 성취의 성격을 함축하는 메시야 예언이다. 그런데 다윗 언약이 기록된 사무엘서에서는 ‘오늘날’이란 표현이 없다. 그러한 것을 시편 기자는 이 문구를 집어넣어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을 선포하는 바로 그 날을 지칭하여 강조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날은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날로 있는 것이기에 종말적인 날의 관점에 의해서 항구적이며 현재적인 의미를 가진 날로 선포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자에게는 그의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왕 된 많은 특권이 부여된다. 그런 특권은 땅 끝까지 모든 나라를 지배하고(8절), 그들을 ‘깨뜨리며’, ‘쳐부수는’ 모든 힘과 권세를 부여 받은 것으로 표현된다(9절). 그에 따라서 그 힘과 권세는 ‘철장(쇠몽둥이)’와 같이 매우 강력하여 반역적이며 오만한 나라들(2:1-3)에 행사되어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술 것”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선포를 들음에 있는 지상의 왕들과 나라들이 어떨 것인지는 오금이 저려 발이 땅에 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사지가 벌벌 떨림에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 떠올려진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그 날에 사단의 머리는 깨져 산산이 부숴져 있고 그를 따른 악한 귀신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처지를 인하여 울부짖으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좇아 그리스도께 대항하였던 오만한 무리들은 추종하던 세력들과 함께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영영히 불못에 내던져짐에 애곡하며 고통에 있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다”는 언약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에게 주어진 왕권에 의해서 그를 따르는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양자’로 받아들임에 있게 된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 의해서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삼하 7:14)가 있고, 다윗은 이에 대해 “주는 나의 아버지이시다”(시 89:26)에 있은 응답이 천하 만민에게서 나온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서 있게 되는 것이다.
2-4.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왕(메시야)을 섬기지 않는 열왕과 민족들에게는 화가 임할 것을 경고함(2:10-12)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에 의해서 열방과 민족들을 심판하신 선포는 매우 엄중하며 그 화를 피하여 받지 않을 자들이 아무도 없기에 아주 급박하게 경고를 주신다. 10절에서 ‘그런즉’은 ‘그러므로’(therefore)를 뜻하는 접속사와 ‘지금’(now)을 뜻하는 부사가 결합되어 ‘그런즉 지금’, 혹은 ‘그런즉 당장’이란 매우 긴박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것은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는 즉위식 때 이스라엘 왕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의미를 주의 깊게 숙고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섬기라”는 권면을 받는데, 여기서 ‘섬기다’는 용어는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 속하여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께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을 뜻을 가지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즉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들은 복종과 경의의 표시로 “그(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러한 명령이 주어지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길에서 망하리니”에서 보게 되는 바 길에서 갑자기 요절하는 급사를 당한다든지 집에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든지에서 보게 되는 재앙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급한 진노가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복이 있다”는 약속이 주어진다. 이러한 경고와 약속이 주어지는 것은 이방의 열방과 민족들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관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아들 – 이스라엘 왕 – 에게로 나아와 복종하고 하나님을 자신들의 참된 신으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이 경고와 약속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 하나님의 아들에 함축된 종말적 계시에 관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 시편이 메시야 언약의 시로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온 세상으로부터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와 경외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예언된 메시야 사역을 성취하심으로써 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그분 안에서 비로소 열방과 민족들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관원들이 무릎을 끓고 자신의 나라를 바치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복종에 있으며 경배를 세세토록 올리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급하신 진노로부터 피함에 있으니,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피난처가 됨에 따라 재앙의 화가 영원히 제거됨에 있다. 이런 그들에 대하여 마지막 구절인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12절)를 현대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알려준다. “그분을 시원한 그늘로 삼는 이, 얼마나 복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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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동번역) “이 사슬을 끊어버리자! 이 멍에를 벗어버리자!" (바른성경) ”우리가 그 멍에를 벗어 버리고 그 결박을 끊어 버리자” (우리말성경) “저들의 사슬을 끊자. 저들의 족쇄를 던져 버리자” (쉬운성경) “우리를 묶은 쇠사슬을 끊어 버리자. 우리를 동여 맨 밧줄을 던져 버리자” (현대인의성경) “자, 우리가 그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자” (한글킹제임스) “우리가 그들의 결박을 끊고 그들의 멍에를 벗어 버리자” (킹제임스흠정역) “그들이 결박한 것을 우리가 끊고 그들이 묶은 줄을 우리에게서 내던지자” (가톨릭성경) “저들의 오랏줄을 끊어 버리고 저들의 사슬을 벗어 던져 버리자”
2) ‘기름부음 받은 자’란 칭호는 왕이 즉위할 때 기름 부음을 받은 사실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왕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에서 ‘메시야’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신약에서 헬라어로 ‘그리스도’로 표현된다. 이 메시야 사상은 후에 다윗 왕가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신다는 독립적인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이 시편이 메시야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즉위식이 궁전에서 이루어졌는지 성전에서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즉위식의 절차로 미루어 보건대 두 장소에서 나누어 거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4) 시 2:7에서의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를 개역성경은 ‘내가 영을 전하노라’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원문에 의하면 ‘여호와의 영’이다. 그러한 것을 ‘영’과 ‘여호와’를 분리시키고 여호와를 생략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영’을 문맥에서 ‘하나님의 영’을 의식할 것으로 본 데 따른 것으로 보여 진다. 하지만 맛소라 사본(MT)에 의하면 ‘영’과 ‘여호와’가 연계형으로 이어져 ‘여호와의 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의 ‘영’은 ‘새기다’, ‘정하다’, ‘발포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정하여지고 기록되어지고 선포된 법령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KJV을 제외한 대개의 영역 성경은 ‘여호와의 명령’(the decree of the Lord; the decree of Yahweh, NAB, NASB, NIV, NRSV, RSV)이란 의미로 번역하였으며,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역시 ‘야훼의 칙령’, ‘주께서 내리신 칙령’으로 각각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