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 生.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지중해 에메랄드 물빛에 반한 사람이 많듯 나 또한 지중해, 특히 산토리니는 버킷리스트였다. 그렇다고 어쩌겠다는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다. 마침 아들의 크루즈여행 제안이 있어 인생에 오는 덤이다 생각하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여행 전 정박할 항구에 대해서 좀 알아볼까 검색하다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카잔차키스가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는 글을 읽었다. 이 말이 궁금했다. 여행 전 읽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나는 복이 있구나 생각하며 여행을 다녀왔다.
이 소설은 카잔차키스가 실제 조르바를 만나 갈탄 사업을 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일명 책벌레인 주인공은 고향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항구(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만난다. 그리스 독립과 자유 투쟁을 위해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몸으로 무언가를 해 볼 생각 다시 말해 행동하는 삶을 위한 행보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르바는 세상이 말하는 배움은 깊지 않지만, 60 넘는 생을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가 남다르고 인간 존재에 대한 예의와 대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말보다는 춤과 노래로 찬탄할 줄 아는 품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인간"은 "자유"라고 말하는 조르바의 거침없는 말과 자유로운 행동, 그때 그때 현실에 충실하는 그를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라 표현하며 매료된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p.328)'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모든 문제는 어정쩡하게 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우리는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뭐든 할 때는 화끈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시간은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으로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이란 바로 지금 흐르는 순간순간을 말하며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살아있는 잠깐의 시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고 세상에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니 자신을 믿고 자연의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이란 얼마나 잔혹한 신비인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는데, 우리의 눈은 하릴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붙잡으려 애쓰니......부질없어라, 몇 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p426)'
소설은 터키 지배하에서의 박해 받는 민족과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크레타의 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인간 삶에 대한 물음과 인식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라는 인물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인간의 나약함, 존재의 이유까지 인간 삶의 다방면을 들여다 본다. 마을 사람들, 수도승, 오르탕스 부인, 과부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밟아 다져진 길들을, 신성불가침의 반복적 일상을 따라야 하며, 안전하고 단순한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p.423~424)'
'이 모든 메세지는 우리의 내적 불안에서 태어나, 우리가 자는 동안 상징이라는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나타난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방벽을 뚫고 들어온 저 무서운 적은 내 영혼을 막는 제2방어선에서 저지당한 것이었다.(p.424)'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는다니, 어림없는 수작!" 나는 강력하고도 맹목적인 필연이라는 것에 맞설 때 인간이 어떤 태도와 어조를 취해야 하는지를 감득했다.(p.417)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는다.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p.416)'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섬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지중해에 이는 물결, 하늘, 햇살, 구름들을 그의 서정과 상황의 감각에 따라 비유를 통해 마음껏 펼쳐 놓는다. 날씨와 기분 등을 표현하는 다양한 문장들은 읽는 이의 감성을 풍부하게 자극할 정도로 시적이고 감미롭다. 글을 읽다 보면 여행을 다녀 왔는데도 아직 지중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듯 마음이 그가 그려놓는 물결따라 일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크레타 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훌륭한 산문을 닮아 보였다. 세심하게 흐름이 잡히고, 과장이 없고,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힘이 있으면서도 절제된 글, 최소한의 것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표현해 낸다.(p.49)'
'갈매기 한 마리가 물에다 가슴을 대고 출렁거리며, 파도에 송두리째 몸을 맡기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p.51)'
'별은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밤과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p.83)'
'바다는 그의 관자놀이에서 부서졌다(p.199)'
이 외에도 수많은 문장들이 읽는 내내 감각적으로 자극해 왔다. 이는 한강의 멘부커상, 노벨상 수상이 말해주듯 소설을 번역한 이윤기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윤기는 소설부문에서 신춘문예 등단했으며 많은 저서 활동으로 활발한 작가이자 얼마 전 읽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실력가이다. 그가 번역한 <장미의 이름>을 잠깐 살펴보면, 책 안의 종교적 역사와 사상, 그리고 철학 등 그가 녹여낸 해박함과 유려한 문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이러한 시적 문장들의 번역을 통해 그 역량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철학적이고 시적인 문구, 삶의 의미를 묻는 메세지 등 필사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구도 많았지만 그 시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감상 초반부터 개인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 혼자 사는 여자를 쉴 새 없이 넘보면서 막상 잘못은 여자에게 떠넘기고 죽임까지 스스럼없이 행하는 이중적인 행태들. 여성도 인간임을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읽는 동안 불쾌했고 마음 아팠다. 과부를 살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분노하고 관계를 가진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조르바를 인간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지만, 여성을 무시하고 희롱하는 말은 그의 입을 통해 무시로 나오고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 시대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기쁨을 받는 것보다 자기가 기쁨을 주고 있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법이에요.(p.391)" 이 말은 여성에 대한 소설 속 여러 표현들 중에서 그래도 꽤 점잖고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될 법한 표현에 속하지만, 차별적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해 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으며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은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라고 <영혼의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 가고 싶어 하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하나의 육체를 부여했다.
'추상적 생각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으면! 그러나 오직 위대한 시인만이 그 경지에 이르고, 범부는 수백 년 묵묵히 노력해야만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걸 어찌하랴.(p.399)'
인간의 영혼이란 어떤 기후, 어떤 침묵, 어떤 고독, 어떤 무리 속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먹고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비계와 똥을 만들고, 어떤 이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고, 어떤 이는 신을 만든다.
카잔차키스는 핏기 없고 냄새도 없어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책에서만 봐 왔던 세상. 추상적인 관념으로 승화시켜 버린 지적인 곡예, 세련된 협잡에서 벗어나, 현실적 상황 혹은 인간과 직접적이고 확실한 접촉을 하라고 이야기 한다.
'나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거의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말에 어떤 가치라도 있다면 다만 그 핏방울 덕분이었다.(p.399)'
소설은 1964년 그리스에서 '조르바' 역에 '안소니 퀸'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의 메세지같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필요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 머물렀던 단락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두목, 날 용서해 주어야겠소. 나는 시커먼 촌놈이오. 하려는 말이 구두에 진흙 들러붙듯이 자꾸 이빨에 들어붙어요. 나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인사치레 같은 게 안 돼요.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해하겠지요."
그는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해라는 걸 해요!"
그는 갑자기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이 부르짖었다.
"이해를 한다고요. 그래서 당신에겐 평화가 없는 거요. 이해하지 않으면 행복할 텐데! 뭐가 부족해요? 젊겠다, 돈이 있겠다, 건강하겠다, 사람 좋겠다, 만고에 부족한 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무식말예요. 그게 없으면 두목, 글쎄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조르바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어릴 때에는 나도 미친 충동과 초인적인 욕망이 넘쳐, 세상이 못마땅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연鳶을 꼭 붙들고는 놓치지 않으려 했다.(p.429)
첫댓글 이 방대한 소설을 읽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데 읽으면서 느낌까지 옮겨 적었다니 놀랍네요.
아주 아주 오래전 화재로 삼았던 책인 게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인간은 불운한 존재이며 자신의 삶 둘레에 자신만의 방벽을 쌓아 올린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상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저항과 마주해야 함도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쉽게 접하기 힘든 소설을 소화해 내는 저력도 대단하지만 여행으로 마음 안에 커다란 감성의 영역을 그려낸 것 또한 축하드려야할 일입니다.
좋은 글 감상하게해 줘서 고맙습니다.
회장님^^ 따뜻한 격려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 무척 반가운 리뷰입니다. 숱하게 밑줄을 그어대며 읽었었지요. "자유로움"을 빼면, 조르바를 설명하기 어렵겠지요? 제겐, 거침없이 살아가는 그의 삶의 방식이 많이 낯설었답니다. 제게는 살아가는 매 순간이 조심스럽고, 어렵고 그랬는데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참 많이 부러웠던 인물이었답니다. 이렇게 자세한 내용과 사유가 담긴 리뷰를 읽으니, 잊혔던 조르바가 떠오릅니다. 그 책을 읽으며, 제 속에도 자유를 갈구하는 한 가닥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행복하세요~~~
이런 정성스런 댓글. 부회장님께 많이 배웁니다^^사실 조르바라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담기에 제 그릇이 작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함께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듯요😅 그래도 책을 통해 이렇게 살짝 엿봤으니 자유로운 삶에 대해 고민해 볼 틈이 제게도 조금은 생겼겠죠? 소중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