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파즈처럼》은 한국현대수필 100년 100인선집 제11번째이다. 2023년 3월 수필미학의 신인 공모전에 당선, 등단 후 수필집 《그게 바로 사랑이야》, 《청산도를 그리며》, 《혼자 걷는 길》, 《서해의 일출》, 그리고 암투병기 《봉선화 붉게 피다》를 남겼다. 이 책은 작가 김국현의 2023년 작품이다. 저자인 문학평론가 김국현은 ‘일흔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라 적고 황옥(黃玉)이라 불리는 토파즈(산스크리트어로 불 또는 홍해의 토파지오스섬에서 나는 보석)를 닮고 싶다 하였다.
《토파즈처럼》 은 작가가 날마다 찾고 벼려낸 해학적 비평들이 한상 그득하다.
‘나답게 살기’ 처음부터 수필공부를 하자 조르지는 않았다. 다만 따라나선 이들을 끌고, 비 내린 아침 풍경 속을 조용히 걸어간다. 시선이 머물다 흩어지길 몇 차례, 길 가 건물 간판을 헤아리다 우체국 소포 선물을 보내보는 소소한 행복도 오랜만에 만나 흥겨웁다. 작디작은 공원 한 켠은 평소 어둑해서 잘 찾지도 않던 길. 산책길에 만난 노부부의 다정함을 이제서야 찾아낸 기쁨으로 앞으로 늘 정겨운 장소로 기억될 듯하다. 오늘의 이 느린 걸음으로도 매일, 매 순간이 만들어질 테니, 앞으로 더 소중히 여겨보라 말도 걸어온다. 기어이 만원버스까지 함께 올라탔다. 물끄러미 지나쳐 온 버스승강장들. 작가의 수필 수업장 앞까지 다가선다.
한평생을 사는 사람들과 닮아있기에 ‘우리 곁을 지키는 가장 흔한 나무’ 개나리 피기만을 기다린다. 노랑나비가 개나리에 앉은 모습에서 온통 노랗게 물든 봄이 만개한다. 봄 꽃의 전령사라 사랑받는 개나리가 꽃피기까지, 다시 다음해 꽃피우기까지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10여 년의 암 투병기라! 아슬아슬한 기대로 개나리를 다시 만나기까지! 비록 조금은 흐트러질망정 약속처럼 꿋꿋이 피어날 개나리를 맞이할 때의 기쁨이 엿보이는가? 삶은 연습이 없다고들 한다. 각자의 어려움들, 각양각색의 어려움을 딛고 무사히 살아낸 스스로의 노력이 새삼스럽고 반갑다. 마침내 ‘아름다운 승부’ 테레사 수녀의 ‘우리 중 누군가가 괴롭힌다 해도,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겠다’ 기도같이, 삶을 사랑하며 살고자 한 작가의 기도에 경건한 찬사가 함께 덧그려지기도 한다.
작가는 4부 「타인의 방」을 통해 ‘외갓집 이야기’, ‘피아노’, ‘아내의 등’, ‘지하철에서 생긴 일’, ‘타인의 방’, ‘아버지의 유산’, ‘응급실 풍경’ 등으로 몸과 마음의 방을 떠나 유형한다. 어머니의 친정집, 추석날 방문한 큰아들 집, 아내와의 집에서의 시간, 지하철, 그리고 다른 타인의 방으로 옮겨다닌다. 타인에 속한 방은 투병 중 죽음을 맞는 준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깝든 멀든 이 세상 떠날 때 내 모습도 같을 텐데, 그때 타인의 방에 남겨질 수 있는 나에 대한 기억들은 지금 이 순간에 달려있다.
그것들은 토파즈의 겉멋이 아닌 오래 닳아 녹진해진 내면을 닮고자 한 이의 살며 익힌 지혜까지 담아내어 한층 멋스럽다. 부조리한 사회라 배척해 온 젊은 시절을 기억 속에 되살려보자.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정성스럽게 나누려 노력하였었나? 금새 끄덕여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쉽게 보일까봐,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가 본다. 무난하면서 잘 정돈된 작가의 걸음들은 강요하지 않는데, 어느사이 조였다 느슨해지는 속도감, 읽는 재미에 정중한 독자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작가가 토파즈를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한 것과 같이, 우리 각자에게도 그만큼 가슴 뜨겁게 바라온 무엇이 있는가 질문을 되돌려본다. 마음과 몸을 다해 꼭 가져보고 싶었던 것은 크거나 작거나 어린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들 모두에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얻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지금도 달리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살아가는 목표까지 가는 길은 분명한 기준이 있는가 하는 새로운 질문 하나가 다시 생겼다.
목표라고 여겼었는데 겉표지를 훑고 집어던지거나, 모아두지는 않았던가?
p.162.
“나는 어느덧 그 둘을 나룻배에 함께 태우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남쪽을 향해 노를 젓는 뱃사공이 되어 있었다.”
인생의 거창한 목표를 단숨에 못 정해도, 아니면 다 이루어서 바라는 것이 더 없다해도, 단 한가지, ‘작가의 토파즈’와 같은 ‘살아가는 기준’만을 다시 한번 함께 찾아보지 않겠는가? 앞으로 좋은 일을 하나라도 더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해볼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도 좋다. 기회가 닿으면 ,꼭 보석이 아니어도, 소중한 것을 찾고자 부지런 떨었던 노력들이 알차게 쌓여질 것이다. 매 순간, 매일이 쌓여 바라는 내일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매 걸음, ‘선택의 기준’만은 일관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조금씩만 적게 헤매면 기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작가만큼 만족감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하나만 더 허락된다면, 그것이 가족, 친구, 일상 속 만나는 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보석 같은 마음이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경주 반월성, 꽃 물들다/ 사진 서강>
- 2기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水月 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