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는 더러움을 응시하며 바라보는 힘이다
-베이유, 고통과 박탈을 통해 빛나는 영혼의 진주를 만든 세속의 신비가-
과거의 영성이 일치와 밝음을 통해 빛을 드러내었다면 현대의 영성의 한 줄기는 어둠과 고통이라는 음각법을 통해 빛을 드러내는 영성의 흐름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전형이 바로 34세의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시몬느 베이유(1909-1943)의 삶이다. 철학 선생이자 노동자로서 불의를 미워하고 사회적 약자들과의 진실한 유대감으로 일생을 사회참여에 투신하였던 그녀의 삶은 단순히 약자들에 대한 한결같은 에고없는 헌신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다. 더 깊게는 관상과 행동의 일치, 노동이 성사(sacrament)에로, 박탈과 고통이 신이 거하는 새로운 장소로, 불행을 은총으로, 무를 통해 투명한 빛을 품어내는 영혼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에게 지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제는 영혼의 ‘뿌리뽑힘’에 있다
20세기중 가장 혁명의 시기였던 1909년 2월 3일에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은 프랑스 파리의 유태계 유복한 의사가정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아이로 자란 베이유에게는 여러 병 특히 두통은 죽음의 때까지 따라다니게 된다. 병상에서 시몬느에게 들려준 엄마의 동화 이야기중 계모에게 쫓겨나 숲속에 들어간 마리이야기가 의식의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마리가 타르로 된 문을 열어서 금이 쏟아져 내렸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계모의 딸이 금으로 된 문을 열어 타르가 쏟아져 혼이 났다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뇌리에 박혀서 남게 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특질이었던 이기심의 결여와 약자에 대한 헌신이 두드러졌었다. 예를 들면 철학교수로서 학교의 정원사, 사환, 캠퍼스 바깥의 노동자들, 실업자들과의 사적인 친밀한 사귐이 그 단적인 예이며, 이로 말미암아 학교나 정부 당국자들이 골치를 썩는 일이 종종 있게 되었다.
사실상 시몬느의 생애는 불행한 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시몬느는 불의를 미워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진실한 유대감으로 맺어진 참다운 인간관계를 열망했다. 대학시절에는 비극적인 기근이 중국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에 접하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같은 대학의 동료들이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고, 농부와 노동자의 가난을 생각해서 먹는 것과 자는 것을 그들 수준이하에 맞추었으며 방에 불 때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어떠한 특권도 거부하였다.
시몬느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시대의 “뿌리 없는 자들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들은 주로 근로자 계층에 산재하면서 소속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사람들로서 내적으로 소외와 공허한 감정에 빠져 있고 영적 권태로 낙오되거나 아웃사이더로 전략하여 정신적 죽음을 향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재앙은 자본주의만큼이나 마르크스주의로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구원은 인간이 가진 최악의 곤경속에서도 오직 영혼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대하다’는 개념의 그릇된 이해, 정의감의 결여, 돈의 숭배 그리고 우리의 신심결핍증 이라는 근본적인 것 네 가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 식민주의, 관료주의에 의한 잔인성, 폭력 그리고 비인간성의 회오리바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선과 양심의 지속성이 필요하고, 이는 혁명이나 힘의 숭배가 아닌 탁월한 정신/혼의 뿌리박음으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단지 사회적인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영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이고도 자발적인 자기희생이 요구된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것을 전도된 상태로 재현 한다
오빠인 앙드레의 명석한 두뇌를 따라가지 못한 시몬느가 한때 열등감에 빠져서 자살을 심각히 생각하던 13세 때에 절망을 넘을 수 있는 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 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온 마음을 다하여 진리를 갈구하고, 정신을 집중하게 되면 마침내는 진리의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유명한 학교의 교육과정을 잘 마치고 철학교수로서 학생들과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꽤나 안정적일 수 있었던 개인적 성공의 삶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들어가게 되는 정신적 이유가 된다.
시몬느의 손은 유달리 작은 일종의 기형이었다. 또한 일생을 심각한 만성두통으로 고생을 하였다. 1934년 25세에 시몬느는 뿌리없는 노동자의 운명을 알고자 르노 자동차 회사의 근로자 보조원으로 입사하여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수고, 절망, 공허를 실제로 함께 겪게 된다. 그녀의 저작『노동일기』속에는 작업량, 시간 임금 그리고 그에 따른 심리적 정신적 박탈감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몸은 축 늘어지고 머리는 사고를 잃게 된다. 가슴에는 서글픔과 분노와 무력감, 그리고 굴욕감이 고인다. 유일한 희망은 내일도 이렇게나마 일할 수 있게 되어 주십사 하는 것이다.” 이는 권리를 박탈당한 작은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비참한 운명에 융화되고자 한 그녀의 비이기적인 헌신의 표현이었다.
여기에 뿌리뽑힌 인간군상들의 가장 어두운 실태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박탈의 음각법을 통해 역설적으로 빛을 드러내는 현대적 고행자의 삶이 드러난다. 직접적인 체험이후 그녀는 노동자로서 일종의 노예들이 갖는 낙인 같은 내적 상처를 입었고 그 쓰라림이 기독교의 십자가의 영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제 영혼과 살속에 파고 들어왔습니다 그 어떤 것도 제게서 그 고통을 떼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과거를 완전히 잊었고, 미칠듯한 피로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조차도 생각할 수 없었으며 완전히 미래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영원한 노예의 낙인을 받았습니다...그 이후부터 저는 항상 제 자신을 노예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현대적 무신성의 공허속에서 ‘굴욕과 타락과 노예화와 죄와 잘못’이라는 삶의 자리가 새로운 속죄와 성사화(聖事化)의 자리가 되는 길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노예라는 실존적 체험을 통해 박탈과 고난을 통해 아무것도 자기주장이 없는 무(진공)의 경험속에서 신의 뜻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의무와 빛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후 1937년 그녀는 성 프란체스코가 있었던 아씨시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고, 그 이듬해 일주일간 지속된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면서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속에 극도의 노력을 기울여 육체적 고통을 초월한 상태에서 예배 중의 노래가 빚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 속에서 그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고통속에서도 불행이 신의 사랑의 가능성으로 전환됨을 확연히 경험하면서 영혼이 온화해 지고 빛으로 채워지면서 신의 사랑에 대한 성실한 의무에 대한 순수한 정열로 승화되었다. 그녀의 노트의 기도문의 하나는 이렇다. “신이여 내가 무가 되게 해 주소서. 내가 무가 됨에 따라 신은 나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고통과 박탈을 통해 빛나는 영혼의 진주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부스러짐으로 영원에로 침투된다
시몬느는 종교와 도덕을 일치시켜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신앙은 용기와 미덕의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한 때 “붉은 처녀 (Red Virgin)"로 불렸던 시몬느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와의 연대, 공장에서 노동, 좌익계의 스페인 내전 참전 등의 활동을 통해 성전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앞에 거닐면서도 지적인 성실성과 신비체험을 각인하였다. “복음서의 그리스도의 수난, 일리아드의 비극-힘의 지배를 깨달은 사람만이 어떻게 해야 힘을 숭배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녀는 상상적인 미래의 깃발을 위하여 싸우는 혁명가가 아니라 영원불변의 것을 위하여 나아가는 혁명가로 변신하였고, 불행한 자들과 남기위해 안전의 확증을 주는 영세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교회밖에서 자기 성실성을 지키며 살았다. 런던에 있던 마지막 기간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나누고자 배급표를 다른 피난민들에게 주도록 하였으며 기아와 폐결핵으로 약해져 더 이상 다른 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슬퍼하였다. 시몬느는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영원에 대한 감각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모든 불행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아무 위로없이 사랑하는 데에 있다.” 시몬느는 무신론적인 불행의 상황을 통해 정화되어 빛을 발하는 성화의 길을 몸소 보여주었다. “신의 자비가 빛나는 것은 고통 그 자체 속에, 즉 위로받을 수 없는 통렬한 비통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속의 한 가운데 존재하면서 더럽고 누추한 것에 침투되어 자기 부정과 성실성으로 영적 물을 길러내었다. “... 이 몸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 당신을 위해 쓰게 하시고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주목하기-불행을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바꾸는 힘
시몬느가 우리에게 남겨 준 한 가지 교훈은 그녀의 굳건한 의지와 에고없는 성품이 아니다.오히려 어떻게 공장, 농장의 생활속에서 얻는 박탈감이 초자연적인 사랑에로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과 실험에 있다. 그것은 바로 주목하기의 힘에서 나온다. 시몬느가 스승 알랭에게 칭찬받은 첫 작문은 “여섯 마리 백조의 이야기”였다. 계모의 마술에 걸려 백조가 된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막내인 공주가 6년간 침묵으로 아네모네로 의복을 만들어 사형장에 가는 때 완성하여 백조들을 구해내고 공주도 구해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불행당한 자에 대한 집중과 이를 보상없이도 실천하는 영혼의 순수성(소명, 순종, 가난, 순결) 대한 강조를 하였다. 이것이 환상으로 얼룩진 어느 혁명보다 더 현실성있는 대책이라고 보았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였다.
뿌리뽑힌 자, 불행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충독 그리고 동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라져 버린 인간성에 시종여일 순수한 주의집중이 필요하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귀성을 앗아가는 중력들(억압, 고통, 궁핍, 박탈감)속에서 자신을 진공으로 비워 순수한 집중에 머무르면 빛이 영혼에 넘치게 된다. 그 주의로 우리안의 악마를 죽이고 악의 전파를 막게 된다. 이 집중이 영혼의 변화를 꾀하는 철학과 종교의 핵심이 되며 기도의 본질이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주의(注意)는 신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뇌는 자기혐오, 경멸, 죄책감, 모욕감을 영혼 깊숙이 새겨 놓는다. 그러나 선을 위한 순수한 주목을 통해 나의 내부에는 변질되지 않는 우주와 접촉하게 된다. 영혼의 비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은총)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시몬느는 심지어 말한다. “완전히 집착을 버리는 것에 이르려면 불행을 겪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행이 아무런 위안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집착은 환상을 가져오고 이는 실재를 가리며 영혼의 정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뇌, 암흑의 밤을 통해 절대적인 순수성의 힘이 주어진다. 이로서 중력의 지배를 벗어나 은총의 빛이 밝혀지게 된다. 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음이 역설적으로 가장 가까운 길이 되는 것이다.
신을 기다리며』『중력과 은총』등의 말기 저작을 통해 시몬느는 악과 평범성, 박탈과 추락의 경험이라는 신의 부재가 어떻게 역설적인 신의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지를 밝히고, 존재의 의미를 잃은 곳과 인간성의 부재의 상황에 대한 ‘절대적 주의집중’이 어떻게 영혼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진정한 사랑의 경우, 신안에서 고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신이다... 신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눈이 마주치는 곳에 존재한다. 고통당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을 통하여 서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