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위의 인연
이 춘희
웃음소리가 바람 타고 흘러든다. 청량한 음에 이끌려 간 놀이터에는 싱그러운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두 아이가 시소에 앉아 오르락내리락하며 연신 웃음 가락을 연주하고, 관객으로 둘러앉은 측백나무 잎은 팔랑팔랑 손뼉을 친다. 번갈아 지르는 환호와 움직임 따라 내 눈길에도 자연스레 박자가 실린다.
문득, 곁에 멈춰 있는 다른 시소로 눈길이 옮겨간다. 침묵 속에 기울어진 널빤지 위로 건조한 바람만 머물다 지나간다. 나뭇잎 한 장 움직이는 데도 힘이 필요한데, 시소를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동력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올라간 아이가 산꼭대기에 오른 듯 함성을 지르고, 내려간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며 짓는 미소가 봄 햇볕처럼 따뜻하다. 훈훈해진 시선 너머로 홀로 시소에 앉은 유년의 아이가 보인다. 수돗물이 꽁꽁 언 날, 맨손인 나를 본 선생님이 손수 뜨개질한 장갑을 끼워 주셨다. 공부 시간 내내 손끝에서 생긴 훈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에 푹 젖었다. 수업이 끝난 후, 친구에게 평소처럼 시소 타자고 했지만,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나’ 기대를 안고 달려간 시소에 앉아 운동장을 휘돌아 온 찬 바람만 품에 안았다.
그날 이후, 마음에 생긴 흉터가 시소에서 눈길을 돌리게 했다. 놀이터를 찾지 않을 만큼 훌쩍 커버린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시소 위에서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마음의 속 시소 양 끝에는 이해와 오해, 신뢰와 불신, 기대와 실망, 사랑과 증오가 마주 앉아 있었다. 양쪽의 팽팽한 무게에 눌려 시소는 수평이 된 채 옴짝달싹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흔들리는 마음 사이로 돌아오지 않는 시간만 무심히 흘러갔다.
이십 대 중반, 한 남자와 부부라는 이름으로 시소 위에 마주 앉았다. 서로의 욕심을 판 위에 올려놓고 자존심의 무게를 더하여 상대를 끌어내리려 했다. 내가 주도권을 쥔 ’인因‘이 되고 상대방은 그에 따르는 ’연緣‘이 되기를 바랐다.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인연으로 앉을 터인데 밥을 먹을 때도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대화를 대신하고, 코미디프로를 볼 때에도 웃음소리는 섞이지 못했다.
남편의 머릿속은 가부장적 생각으로 가득했다. 맞벌이인데도 퇴근 후 본인은 쉴 곳만 찾았고, 집안일로 동동걸음치는 내게 측은한 눈빛 한번 주지 않았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가 놓이기를 기다렸고, TV 앞에 앉아 신문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집이 남편에게는 쉼표였지만, 내게는 잰걸음으로도 채울 수 없는 끝없는 말줄임표였다.
누름돌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던 불만이 마침내 열꽃을 피웠다. 출근은 물론, 일상도 멈추었다. 시간도 나도 잊은 채 침대에 묻혀 지냈다. 남편의 건조하던 눈빛에 촉촉한 연민이 서리는가 싶더니, 그가 죽 한 그릇과 수저가 가지런히 놓인 상을 내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더운 김이 얼굴에 훅 와닿자 이내 마음도 저릿하게 데워졌다.
그토록 꼼짝하지 않던 시소가 흔들렸다. 혹여라도 내려갈까 봐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던 남편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시소를 꾹 눌러 나를 높여주었다. 만개했던 열꽃도 훈풍에 이내 시들었다. 받침점에 놓인 배려가 오르고 내리기의 균형을 맞추었다. 결혼 후 수백 날이 지나 마침내 우리는 인연因緣으로 앉았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웃음소리 따라 시소 축이 삐걱거린다. 이쪽과 저쪽에서 누르는 고통을 견디는 신음 같다. 자신은 땅에 붙박여 즐겁지 않으면서 시소 판에 흥을 부려놓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양쪽의 대화를 이어주느라 얼마나 힘들까. 삐걱대는 소리가 ’삶이 때론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마음의 중심이 든든하면 괜찮다‘라는 위로로 들린다. 인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人) 둘(二)이 마주 앉아야만 비로소 놀이가 되는 시소. 어쩌면 그 판에는 처음부터 사람과 둘이 만나 이루는 어질 ‘인(仁)‘의 마음이 중심에 단단히 놓이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유년의 나는 선생님이 끼워 주신 장갑의 온기에 취해, 친구의 맨손과 서운한 눈빛을 헤아리지 못했다. 마음의 시소에 배려를 괴어주지 못해 미소가 사라진 친구의 얼굴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린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내려가서 미소 짓는 아이에서 높임의 미학을, 올라간 자리에서 넓은 세상을 눈에 담으며 내려갈 채비를 하는 아이에게서 낮춤의 미학을 읽는다. 너도 한 번 올라가서 벅찬 가슴을 누리길 바라는 배려가 인생을 ’묘한 균형의 예술품‘으로 빚으리라.
놀이터 주변의 나뭇잎이 짙푸르다. 계절도 시소 타기 중일까. 겨울이 덜어낸 무게는 연둣빛 봄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뜨거운 에너지가 되어 여름을 밀어 올린다. 언 땅속에서 웅크리던 생명들도 생의 절정을 누릴 채비에 바쁘다. 머지않아 여름의 무게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에 자리를 내어줄 테다. 끝없이 오르내리는 계절의 시소에서 번지는 웃음 가락에 내 삶도 리듬을 얻는다.
해거름의 하늘이 빈 시소를 보며 다홍빛 미소를 건넨다. 마음속 시소의 빈자리에 인연이 닿지 못했던 유년의 친구를 불러와 높이 올려보낸다. 언젠가 반대편에 앉을 누군가를 위해 받침점에 배려를 올려 두고 시소에 낮게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