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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
국명: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지리 및 기후우즈베키스탄은 서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동쪽으로 카자흐스탄, 남쪽으로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약간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형은 스웨덴과 같은 크기로 평평하고 단순하지만 대부분 서부지역이 국토2/3의 스텝과 사막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유일한 위안은 아무-다리아 강이 아랄해로 들어가면서 만든 삼각주이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동부는 이웃국가의 산악지대를 향해 경사가 높아지고 이곳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생명을 공급하는 강이 시작된다.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물줄기인 아무-다리아강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과의 넓은 국경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풍요로운 농장(따라서 인구가 밀집한)이 우즈베키스탄의 3개의 큰강을 따라서 산사이의 협곡인 산자락의 충적평지에 자리잡고 있다.환경계획의 재앙으로서 우즈베키스탄을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대충밖에 안될것이다. 소련 시대에 시작된 여러개의 프로그램이 여전히 우즈베키스탄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1960년대에 소련의입안자들이 엄청나게 증가시킨 관개시스템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생산을 증가시키려고 계획했으며 이것은 우즈베키스탄 북쪽의 아랄해로 흘러드는 강물을 차단하는 결과는 낳는다. 결과적으로 아랄해는 수량의 75%를 잃게되면서 면적은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 지역의 어업은 망하게되고 기후는 이상기후를 나타내고(1950년대만큼 비가 오지 않는날의 4배나 비가 오지 않는다) 있으며 토양과 물이 염분화되고 면화 농장의 화학 잔유물로 인해 사람에게는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토종 식물과 동물군도 파괴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스텝지역에 대한 관개사업은 토양을 망치고 물을 오염시키면서 대규모의 부식과 불모지, 염분화를 일으키고 있다.우즈베키스탄의 기온은 아주 다양하여 사막과 산악지대에서 밤에는 섭씨 20도(화씨 68도)씩 떨어지면서 급격한 기온차가 난다. 비는 좀더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주로 3월부터 4월, 10월부터 11월까지 아주 최소한으로 내리며 모든 것을 진창으로 만든다.
저지대는 5월부터 6월초까지, 9월부터 10월초까지 아주 쾌적하다. 한여름은 타쉬켄트(Tashkent)가 섭씨 40도(화씨 104도), 남부 우즈베키스탄이 섭씨 50도(화씨 122도)까지 올라가면서 미칠정도로 덥다. 겨울(1월에서 2월)에는 낮기온이 섭씨 영하5도에서 10도(화씨 23도에서 50도)사이를 오르락 거린다. 역사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의 상류와 지류를 따라 있는 지역은 항상 중앙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랐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BC 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거의 변화하지 않은 사회 구조와 토지 사용 방식을 쓰면서 유목생활보다는 보다 정착된 생활을 했다.
BC 4세기동안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여 사마르칸트(Samarkand)부근의 지역족장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쿠산제국(Kushan empire)하에서 불교가 전파되고 실크로드를 통해 보다 거친 세계와의 평화적인 접촉을 하게 되고도시는 점점 커지고 풍요롭게 된다.
AD 6세기에 서투르크족이 이슬람교와 기록된 알파벳을 전하면서 스텝지역을 휩쓸게 된다. 그들이 보다 푸른 안락한 초원을 찾아 이동하게되자 징기스칸과 그의 무리가 이 나라를 정복할 때까지 페르시아가 다시 점령하게 된다. 14세기에 무자비한 전사 티무르족이 일어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다시 번성하게 되고 사마르칸트는 도시의 예술적인 후광에 힘입어 화려한 이슬람의 수도가 된다.
이즈음에 일부 몽골족이 우즈벡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14세기에 그들은 사실상 티무르 제국을 정복하면서 남쪽으로의 이동을 시작한다. 1510년까지 그들은 아무-다리아강에서 시르-다리아강까지 모든 것을 통치하게 되고 그 후로도 통치를 계속하게 된다. 18세기초에 키바(Khiva)의 왕이 투르크인과 카자크에 대항하여 거대한 국토를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의 피터대제에게 원조를 요청하게 되고 처음으로 중앙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흥미를 끌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키바를 향해 행군해 오자 키바왕은 더 이상 러시아의 도움을 원하지 않게 되고 거의 전군을 학살하게 된다. 몇 차례의 사소한 침략과 별도로 1839년 당시 영국의 확장을 막으려고 애쓰던 짜르 니콜라스 1세가 대규모 러시아군 원정을 보내게 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25년후에 러시아군이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엄청난 이동을 하게 되고 1875년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1917년 러시아 혁명후에 소련 공산당은 대부분의 중앙 아시아가 스스로 국가로서가 아니라 민족적인 투르크나 페르시아인이라고 정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투르키스탄 자치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언하게 된다. 1924년 10월 우즈베키스탄이 선언되지만 다음 수십년동안 그 규모나 크기는여러차례 변하게 된다.
시골의 우즈벡인에게 소련의 통치는 자신들의 농장을 강제적으로 집단화하여 면화 경작지로 대규모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지식인들에게 그것은 또한 무서운 숙청을의미하는 것이었다.첫 번째 격렬한 반공산주의 민중운동은 면화 농장과 공식언어로서 우즈벡어 사용에 대해 꺼리낌없이 얘기하기 위해 1989년에 형성된다.
이 운동이 아주 인기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또는 높았기 때문에) 경쟁선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1991년 모스크바가 붕괴한 후로 우즈베키스탄은 독립을선언하게 되고 공산당은 이름을 변경하지만 다른 것은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대부분 진짜 야당진영의 경쟁선거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 지도자인 카리모프(Karimov)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사실 독립이후 여행금지, 정치적 활동과 출판 금지, 사실상의 경찰국의 도입, 계속되는 폭력협박덕분에 그의 권력은 커지고 있으며 반대자들은 움찔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은 복합당의 민주주의지만 실제로 야당은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다. 1995년 선거에서 카리모프가 경쟁자없이 승리하게 된다. 경제국민 총생산: US$58억 문화세계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슬람교의 건축물을 우즈베키스탄의 부카라, 키바, 특히 사마르칸트에서 접할 수가 있다. 대부분의 기념비적인 모스크사원, 첨탑, 모슬럼(영묘), 수도원은 티무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화려하고 눈부신 중세풍의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민속예술은 복장, 무기, 보석, 뜨개품, 수장식, 양탄자같이 반유목적인 생활에 맞는 이동가능한 것에 많이 나타난다. 이슬람에서는 살아있는 것의 묘사를 금지하므로 전통예술은 이슬람 문자를 아라베스트와 결합하여 문이나 장막 등에 새겨놓은 문자의 형태로 개발하였다. 그림은 소련통치하에서 소생하여 사회주의자의 리얼리즘과 거짓 전통주의가 기이하게 혼합된다.
배경으로 하늘로 밀어올려진 미래적인 굴뚝이 있는 찻집에서 미소짓는 우즈벡인에게 물어보길 시도해보라.우즈벡 남자들은 보통 나이든 남자들이 길게 누벼만든 코트를 여미기 위해 사용하는 밝은색의 띠를 제외하고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는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검은색에 사면에 하얀색으로 수를 놓은 두건을 쓴다.
우즈벡 여자들은 화려한 옷을 좋아하며 가끔 같은 소재의 바지와 함께 무릎길이의 가운을 입기도 한다. 머리를 하나 또는 두 개로 땋은 것은 결혼한 여자라는 표시이며 보다 여러갈래로 땋은 것은 미혼이라는 표시이다. 콧등위까지 자란 눈썹이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가끔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 펜슬로 덧그리기도 한다.
우즈벡어가 우즈베키스탄의 공식어이지만 러시아어가 여전히 정부나 학교에서 사용되며 타지크어가 사마르칸트나 부카라에서 사용된다.중앙 아시아의 음식은 쌀과 향기로운 양념, 야채와 콩, 요구르트와 구운 고기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중동이나 지중해의 음식과 유사하다. 북부 우즈베키스탄에서 식사는 종종 필라프, 케밥, 국수, 파스타, 스튜, 정성들인 빵과 패스트리로 구성된다.
미묘한 양념과 환상적인 단맛이 남부 우즈베키스탄 요리의 특징이다. 차는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대개 우유없이 제공된다. 무슬림 전통에도 불고하고 대부분의 우즈벡인은 적어도 손님과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한다. 폭음(대개 보드카)을 즐기지 않는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명절은 대개 춘분(3월 21일)을 축하하는 옛-이슬람 춘분이나 만물의 소생을 축하하는 나브루스(새로운 날들)의 봄축제이다. 이 축제는 이틀간 전통 게임, 음악,연극 페스티벌, 거리예술, 다채로운 박람회로 구성되며 이 축제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은 사마르칸트이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단식을 하는 달인 라마단은 대부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작은 팡파르와 함께 치뤄지며 여행자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접할 수 있다. 성찬제에는 동물을 도살하여 친지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지낸다.매 짝수년마다 5월에 타쉬켄트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필름을 상영하는 영화제가 개최된다.
사라르칸트에서는 매년 10월 23일에 어린이 평화 및 군비축소 축제(Children's Peace & Disarmament Festival)가 열리며 국제 평화와 단결을 생각하는 축제로서 기억할만한 사건이 상당히 벌어진다. 12월에 카라칼팍(Karakalpak)에서 개최되는 누쿠스 파크타-바이람 추수축제(Nukus' Pakhta-Bairam harvest festival)는 일라크 오이니(ylaq oyyny) 경기를 볼수 있는 세계에서 몇안되는 곳의 하나이다.
중앙 아시아의 폴로 형태로 선수들은 들판에서 염소몸통을 공처럼 치며 영국왕자 찰스라면 정확하게 맞췄을 것이다. 아드레날린 수치가 올라가길 원한다면 레슬링, 양싸움, 수탉싸움을 둘러볼 수도 있다.
여행자 정보비자: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자는 비자가 필요하며 우즈벡 시민, 외무부가 인정한 기업이나 조직이나 믿을만한 우즈벡 여행사로부터의 초청장이 필요하다. 시간대: GMT/UTC + 5시간
경비 및 환전통화: 섬(S)
친구와 함께 여행하면서 중급호텔에 묵고 저렴한 식당을 이용하면서 버스나 기차로 여행한다면 하루에 미화 약$30-40정도를 소비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값이 싼 숙소를 구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값비싼 여행자 호텔에서 묵어야 할 수도 있으며 좀더 현실적으로 알뜰한 예산은 하루에 미화 $50-60정도이다.
자동차를 렌트하고 관광을 한다면 비용는 상당히 더 추가될 것이다. 외국인은 또한 현지인보다 훨씬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우즈베키스탄에서 현금외의 다른것으로는 거의 운이 없을 것이다. (아주)적은 장소에서 여행자 수표를 바꿔주지만 그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미국 달러는 환전하기에 가장 쉬우며 독일 마르크화가 두번째로 인기있다. 많은 사람들이 받으려하지 않는 많은 위조지폐가 떠돌아 다니므로 실제로 큰금액의 돈을 받는 곳이 많지 않다. 미화 $10짜리 뭉치를 가져가도록 조정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돈이 빳빳한 새돈인지 확인하라. 그렇지 않으며 아무도 그돈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자 센터에 있는 우즈벡여행센터의 호텔에서는 주요 신용카드를 받으며 타쉬켄트에서 현금서비스(번역주:cash advance?)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계산서에 5-10%의 서비스비가 붙는 최고급 식당이 몇곳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팁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슬람적인 호의에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반면에 뇌물은 매우 일반적인 것이지만 뇌물을 주기로 결정했다면 여행자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시장에서는 가격을 흥정할 수 있으며 식품값을 물으면 판매가격에 거의 가까울 것이지만 수공예품은 더 많이 깎을 필요가 있다. 여행 시기봄(4월부터 6월)과 여름(9,10월)이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행하기에 가장 쾌적한 시기이다. 날씨는 온화하며 4월에는 사막에 짧게나마 꽃이 핀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로 시장에는 신선한 과일로 가득하다. 산악지대에서의 트레킹에 관심이 있다면 여름(7,8월)에 가장 좋은 시기이며 다른 때에는 날씨를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통과루트에는 눈이 올수도 있다. 주요 여행지구 소련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던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쉬켄트는 중앙 아시아의 중심으로 이 지역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국제 항공기가 잘 연결된다. 타쉬켄트는 그림엽서같은 목적지는 아니라고들 한다. 1966년의 대규모 지진과 소련 정책입안자들의 계속되는 열정덕분에 2000년된 역사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타쉬켄트가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소련다운 분위기의 도시라는데 동의하며 모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거나 돌아갈 수 없는 불안스런 슬라브인들이 적어도 타쉬켄트 시민의 반은 러시아어를 말하기(러시아인이 아닐지라도) 때문에 비교적 문화적으로 안전한 이곳으로 이주해오고 있다.
에스키 샤카르(eski shakhar)구시가의 유적을 따라 산책을 할만하다. 낮은 진흙벽돌집과 모스크사원, 메드레사(이슬람 학교)가 늘어서 있는 미로같은 좁고 지저분한 거리는 소련 정책자들이 사회주의의 찬양없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기위해 남겨놓은 듯하다.
쿠켈다쉬 메드레사(KukeldashMedressa)는 복원되고 있는 웅장한 16세기의 학교로 따뜻한 금요일 아침이면 이곳의 광장에 예배자들로 넘쳐난다. 근처에 있는 작은 15세기의 자미 모스크사원(Jami mosque)은 소련 시대에 금속 작업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쿠켈다쉬옆의 큰 야외시장인 초르수 시장(Chorsu Bazaar)은 전통복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부터 몰려드는 곳이다.
타쉬켄트에서 오래된 것이 부족하다면 거대한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관(Museum of Fine Arts)에는 러시아 이전의 투르크스탄 예술품과 조로아스트 작품, 1000년된 온화한 부처상, 소그디인의 벽화가 소장되어 있다.
건물 자체는 전통적인 타쉬켄트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세기의 전홤점에서 응용미술의 전시장으로서 1937년에 개관한 응용미술관(Museum of Applied Arts)은 소장품보다 더 흥미로운 곳이다. 역사(항상 대문자 'H'로 된), 골동품, 문학, 지질학, 철도에 관한 여러 박물관이 있다. 가벼운 휴식을 취하려면 세계에서 가장 싸게 고전 오페라를 공연하며 개성에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는 타쉬켄트에서 유일한 소련식 건물인 나보이 오페라 발레극장(Navoi Opera & Ballet Theatre)을 체크해보기 바란다. 사마르칸트만큼 실크로드의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이름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마르칸트는 아틀란티스(Atlantis)처럼 신비로운 것이며 팀북투(Timbuktoo)처럼 멀리 떨어진 전설적인 것이다. 여느때처럼 현실은 더 가혹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티무르 제국의 웅장하고 보다 큰 생생한 기념비인 사마르칸트에서 총천연색 시장과 길고 풍부한 역사가 특이한 형태의 마술같이 작용하는 곳이지만 역사의 핵심을 벗어나면 몇몇 복원된 특징과 함께 쭉 뻗은 소련스타일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유명한 대부분의 여행지는 14, 15세기에 사마르칸트를 중앙 아시아의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만든 티무르와 그의 손자 울루그벡, 우즈벡 샤이바니드인의 작품이다. 거의 모든 명소가 그 구조가 옛시대 그대로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잡다한 구시가에 위치하고 있다.
사마르칸트의 자랑거리이자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경외심을 일으키는 것은 수많은 마졸리카 도자기, 담청색 모자이크, 거대하고 아름답게 분할된 공간을 제공하는 메드레사를 가리는 웅장한 종합작품인 레기스탄(Registan)이다. 옆에 있는 대규모 집회를 할 수 있는 비비-카님 모스크사원(Bibi-Khanym Mosque)은 티무르 제국의 보석같은 곳이었으며 황폐하더라도 힘이 넘치고 빈틈이 없다.
이 사원은 이슬람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하나였으며 한계상황까지 건설기술을 추진했기 때문에 그 자체의 웅장함에 희생되어 수세기동안 서서히 기울어져 1897년 지진으로 마침내 붕괴되고 만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감동적인 곳은 대부분 티무르와 울루그벡 가문과 총신들에 속한 무덤 거리인 샤히-진다(Shahi-Zinda)로 그중 하나는 많은 존경을 받던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촌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기부함이 손상되었어도 무덤은 가장 아름다운 마졸리카 타일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마르칸트시에서 가장 생기있는 곳은 비비-카님 모스크사원주변의 주요 시장거리이다. 활기찬 다양한 주요 농산물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바벨탑(Tower of Babel)으로 이 지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몰려들어 다채로운 옷과, 숄, 모자, 터번을 쓴 사람들로 가득하게 된다.
타쉬켄트와 사마르칸트간에 매일 비행기가 운항된다. 그렇지 않으면 건조한 평지인 '헝그리 스텝(Hungry Steppe)'을 가로질러 5시간동안 버스나 기차를 탈 수 있다. 버스가 사마르칸트, 타쉬켄트, 부카라, 두샨베, 알마타에서 운행된다.
1000년의 역사에 걸쳐있는 건물과 2세기동안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완전히 살아있는 도심지가 있는 부카라는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전 투르크스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다. 사마르칸트의 눈부신 모자이크에 이어, 부카라의 평범한 갈색은 시각적으로 최고의 기분을 약간반감시키는 것같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심지에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거대한 왕궁 요새, 여러곳의 옛 메드레사, 수많은 고대의 공중 목욕탕, 옛시절의 거대한 시장터의 유적가 남아 있으니 아무도 단순한 색채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지 못한다.
부카라시에는 140개 이상의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지만 가장 볼만한 곳으로는 연못 주변에 세워진 17세기의 광장인 라비-하우즈(Labi-hauz), 세 개의 돔으로 된 시장, 47미터(154피트)높이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12세기의 카란 첨탑(Kalan minaret), 부카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905년에 완성됨)로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정교한 인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의 모슬럼이 있다.
몇몇 카펫 디자인이 부카라에서 기원했지만 서양에서 아주 귀하게 여겨지는 유명한 부카라 양탄자는 실제로는 부카라 영토의 일부였던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눈에 번쩍 뜨이는 카펫을 만들지는 않을지 몰라도 현지인들은 사마르칸트나 타쉬켄트의 주민들보다 훨씬 더 친절하며 여행자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얼마간 머문다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무엇인가가 있다.
부카라는 사마르칸트(6시간), 타쉬켄트(12시간), 누쿠스(Nukus)(20시간)로 기차가 연결되는 종착역이다. 또한 카자흐스탄의 알마타까지 가는 기차가 매주 운행된다. 타쉬켄트는 버스나 항공편(2시간)으로도 갈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키바는 노아의 아들인 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세워졌다고 한다. 키바시는 카스피해와 볼가강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지류에 위치한 작은 요새와 교역소로서 확실히 8세기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16세기초에 키바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북적되는 노예 시장이 들어서고다음 3세기동안 티무르영토의 중심이 된다. 19세기에 러시아가 마침내 티무르의 지배로부터 이지역을 빼앗게 될 때까지 가장 용맹스런 사람들조차 이 사나운 민족과 그들의 사막영토에 부딛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최근에 키바는 많이 친절한 편이다. 키바는 세계에 대수학을 전달해준 지루한 도시인 우루겐치에서 남서쪽으로 35킬로미터(22마일)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화숲과 과일나무외에 더 놀라운 것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현대의 키바는 아주 기이한 곳이다.
중앙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키바의 역사적인 중심은 완전히 보존되어 있지만 너무 번쩍거리게 깨끗해서 모든 생명이 숨이 막힐 것같은 곳이다. 심지어 밀집하여 있는 모스크사원, 무덤, 궁정, 메드레사에서조차 여행자는 옛날의 혼잡함과 불결함을 느끼기위해 상상령이 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사마르칸트의 청색과 부카라의 갈색에 뒤이어 키바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것은 터키석 타일을 사용한 것으로, 적어도 성벽 내부도시인 이촌 칼라(Ichon Qala)의 부분부분이 생생하게 남아 있으나 손상이 되어 이 도시의 박물관같은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아침과 저녁이 키바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키바시의 명소에는 넓적한 터키석 타일로 된 칼타 미노르 첨탑(Kalta Minor minaret), 쿠크나 아르크 요새(Kukhna Ark fortress), 218개의 목재기둥으로 된 주마 모스크사원(Juma Mosque), 화려하게 장식된 토쉬-코블리 궁전(Tosh-KhovliPalace), 이슬롬-후자 메드레사(Islom-Huja Medressa)와 그안의 등대처럼 보이는 첨탑, 정교하게 타일로 붙여진 높이 존경받던 파라본 마무드 모슬럼(Pahlavon Mahmud Mausoleum)이 있다. 우르겐치와 키바간에 자주 버스가 충돌하여 부서진다. 우르겐치는 타쉬켄트 서쪽으로 버스로 16시간 걸리며 비행기를 타면 3시간정도 여행시간을 줄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북쪽으로 티엔샨과 남쪽으로 파미르 알라이 지역으로 둘러싸인 이 넓고 평평하며 비옥한 페르가나 계곡은 우즈베키스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 아시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실크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페르가나 계곡의 막대한 지역을 면화 생산지로 전환시켜 고대의 무역도시를 추한 공업도시로 바꾸게 되며 여행자에 대한 주요 자랑거리로는 보수적이고 자긍심이 많으며 호의적인 사람들과 마르그란(Marghlan)의 만화경같은 시장, 인접해 있는 산악지대를 들 수 있다. 매일 비행기가 타쉬켄트에서 페르가나까지 운항되며 버스는 호잔까지, 기차는 마르길란(Marghilan)까지 연결된다.
사마르칸트에서 남쪽으로 90킬로미터(56마일)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화하지 않은 이 작은 샤크리삽즈는 여행자가 뒷골목에 산재해 있는 유적과 맞닥뜨리고 완전히 다른 장소의 과대망상적인 귀신을 체현할 때 까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샤크리삽즈는 티무르의 고향마을로 옛날에는 아마도 사마르칸트 자체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것같다. 티무르의 아크-사라이 궁전(Ak-SarayPalace)이 웅장한 줄세공같은 청색, 흰색, 금색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 40미터(131피트)높이의 입구인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장려한 여름 궁전의 나머지가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게 된다.
도루사이아다트(Dorussiadat)('권력과 힘의 권좌')는 궁전을 볼품없이 만들기도 한다. 다른 명소로는 티무르의 친족의 무덤, 거대한 콕-굼바즈 모스크사원(Kok-Gumbaz Mosque), 이상하게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두 개의 유골이 포함된 티무르의 약혼자의 납골당이 있다. 택시와 버스가 타쉬켄트에서 샤크리삽즈까지 2시간의 여행을 제공한다.
모이나크는 물이 줄어든 아랄해의 터무니없는 비극을 다른 어느곳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랄해에 있는 두 개의 주요 어항중에 하나였던 모이나크는 이제 물에서 40킬로미터(25마일)지점에 떨어져 있으며 줄어드는 물을 막기 위해 수로를 열려는 시의 변변찮은 노력을 나타내는 불황과 함께 이곳의 풍부한 어류떼는 모래위에 나뒹굴고 있다.
2000명으로 줄어든 모이나크시의 주들은 이제 극심하게 더운 여름, 더 추워진 겨울, 쇠약한 모래, 소금과 먼지폭풍, 여러 건강문제등 아랄해 재난의 영향으로 고생하고 있다.모이나크시는 중앙 아시아에서 소련의 정책으로 발생하게된 의식적인 환경 대파괴의 비극적인 기념물로서 남아있다. 모이나크는 누쿠스(Nukus)에서 북쪽으로 210킬로미터(130마일) 떨어진 곳에 있으며 두 도시간에 버스나 택시를 타면 된다. 누쿠스에 가려면 타쉬켄트에서 매일 기차나 버스가 운행된다. 레저스포츠타쉬켄트에서 버스로 몇시간 가면 훌륭한 래프팅과 카약킹 장소가 있으며 시르-다리야강과 안그렌강(Angren rivers)에서는 평범한 물길을 발견할 것이며 우간(Ugan), 차트칼(Chatkal), 프스켐(Pskem)에서 보다 흥미로운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래프팅의 성수기는 9월과 10월이다. 타쉬켄트에서 북동부로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침간(Chimgan)의 재창조 지역은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곳이지만 비쉬켁(키르기스탄)과 알마타(카자흐스탄)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형편없는 차선책일 것이다.
타쉬켄트에서 서쪽으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안그렌강 계곡에서는 멋진 산책을 할 수 있으며 상류 안그렌강의 협곡은 특히 장관을 이룬다. 우즈베키스탄의 샤키미르단(Shakhimardan)계곡과 페르가나 계곡의 남쪽 파미르 알라이 지역, 키르기스탄 주변으로 향하는 모든 곳에 멋진 하이킹 트레일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길보다 정기적인 국제 항공이 중앙 아시아의 다른 도시보다 타쉬켄트에 많이 운항된다. 불행하게도 중앙 아시아 지역에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우호적인 공항은 거의 없다. VIP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도착장은 특히 소름끼치고 진땀나는 곳이다. 공항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6킬로미터(4마일)지점에 있다.
모스크바에서 카자흐스탄을 지나 사마라(Samara)를 경유하여 타쉬켄트로 가거나 우르겐치, 차르조우, 부카라, 사마르칸트에서 타쉬켄트로 가는 기차가 운행된다. 모스크바에서 타쉬켄트까지 기차로 56시간이 걸린다. 우즈베키스탄에 자신의 차량을 가져가는 것은 한마디로 악몽과 같으며 노력할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다. 국내 교통편비행기를 타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안전하지 않고 가장 볼거리가 적은 교통편이다. 국내 항공은 아무런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으므로 자신의 점심을 가져가야 하며 국제 안전기준에 맞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버스는 도시간에 싸게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정된 정거장에 서며 지정된 노선으로 운항되는 장거리 버스가 있으며 비교적 안락한 편이다. 지역버스는 보다 덜 편안하며 믿을만하지 않다. 사설 미니버스는 요금이 비싸고 더 빨리가지만 종종 머리가 곤두서는 것이기도 하다. 타쉬켄트, 부카라, 사마르칸트간에서 자주 버스가 연결된다.
택시는 버스보다 약간비싸지만 보다 편안하며 외진 장소로 여행자를 태우기도 한다.낮은 등급의 기차여행은 돌아다니기에 가장 싼 방법으로 역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행길에 만난 동료 승객으로부터 많은 주의를 끌게 될 것이다. 기차는 느리고 창문은너무 더러워서 밖을 내다볼 수도 없으며 식당칸같은 것은 없으며 강도당할 기회는 상당히 많다.
Trekking in Russia & Central Asia (Frith Maier지음)은 중앙 아시아의 험한 지역에 대한 비길데 없는 안내서이다.On the Other Side; A Journey Through Soviet Central Asia는 Geoffrey Moorhouse의 작품으로독립전날 사마르칸트 여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Mission to Tashkent (FM Bailey지음)는 1917년 중앙 아시아에서 영국 스파이였던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다.
보다 난폭한 줄거리를 찾는다면 냉전시대의 전형적인 스파이의 자서전인 Patrick French의 Younghusband을 읽어보기 바란다.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최근의 정치 역사를 잘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는 Ahmed Rashid의 Islam or Nationalism을 읽어보기 바란다.Realms of the Russian Bear (John Sparks지음)는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동,식물에 대해 정교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책이다.Samarkand (Amin Malouf지음)는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수학자인 오마르 카얌의 삶을 훌륭하게소설화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