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비를 서지 않는 감방에 갇혀 있는 포로와 같다.
아무도 우리를 우리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감금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바로는 우리를 풀어줄 열쇠 또한 우리와 함께 안에 갇혀 있다.
우리가 그 열쇠를 찾기만 한다면, 우리는 문 열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설령 알았다 해도, 우리가 속에서 한쪽으로 감방을 뚫고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단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이며, 또, 새로 얻은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뜻 없는 은유가 아니다.
우리는 진실로 우리의 자아의 포로이고, 우리의 두려움이란 사슬에 묶여 있으며,
우리의 자유는 제약을 받고, 우리의 조건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열쇠를 찾는 것을 아무도 막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그 열쇠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알아야 하고,
다음에는 일단 그것이 어디 있는지 발견하고 나서는 그것을 기꺼이 쓸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내적 여정을 갖게 되면, 우리는 마스터키를 찾은 셈이다.
이것으로 수많은 잠긴 문을 열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만든 감옥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필요한 지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그 결과론 보다 충만한 삶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해 준다.
내적 여정과 더불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의 숨겨진 부분들을 열 수 있도록 옛 부터 전해진 체의 인간 이해의 체계를 이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충만하게 기능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 의 삶 속에서 내적 여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 실상은, 그것을 사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 -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속에서 내적 여정이 무엇을 풀어줄지를 조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해방의 과정이 계속될 때 우리는 점진적으로 우리 공포와 갈등으로부터와 제멋대로의 격정과 혁박(강박충동)으로부터 그리고 병적인(disordered) 욕망과 내적 혼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과정의 어떤 부분도 자동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인성 유형을 확인(동일시)하고 난 뒤에라도, 주어진 통찰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는 않다.
사람들이 흔히 묻는다. "이제 내 자신의 인성유형을 알았으니까, 그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지요? 그걸 가지고 이제 어디로 가지요?" 아니면, 내적 여정 워크샾에서 누가 물었듯이 "우리가 여기는 왜 와 있지요?"
그런 불안정한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한쪽 부분이 아는 것이 있다. 즉 "우리는 모두 거기에 있지 않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우리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한"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고 나가야 할지에 대하여 두렵거나 불확실하다.
우리는 때때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불행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간이 길지라도, 우리의 행복을 항상 유지한다는 것이 어려운 줄도 안다.
친구들로 에워 쌓여 있으면서도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거나 인생에 있어 서 외톨이가 됨을 예리하게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그들에게 다 가가서 관계를 치유하려고 시도도 해보지만, 곤란한 상태에 빠지기만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거기에 없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심리학에 접근 하듯이,
우리는 내적 여정으로 눈을 돌린다. 자아의 만다라처럼 내적 여정은 우리의 인성 발달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열망하는 온전함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내적 여정에 대하여"(Understanding the Enneagram)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여정이 괄목할 만큼 풍부한데도,
우리가 내적 여정에 눈을 돌리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흥미로운 심리학의 체계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남에게 대하여 통찰을 얻음으로써 더 행복하고, 더 생산적인 삶을 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풍부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가리키고 싶은 것이다.
내적 여정에 대하여 알맞게 방향을 맞추기 위하여, 우리가 몇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상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본성과 그것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형태들을 말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봐야 우리 자신이나 타인에 대하여 부분적인 불완전한 이해를 할 수 있을 뿐이 고, 총체적 이해나 최종적 해명에 이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는 미스테리의 요소가 현재 뿐만 아니라 장래에도 항상 있을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도달하는 어떤 해답에도 완전히 만족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자각(자기지식)을 터득한다는 것은 본래부터 어렵고 미묘한 문제이다. 인성 유형에서 알 수 있 듯이, 자기발견의 과정에 있어서 우리를 여는 정도만큼 내적 여정의 우리 내면에서 휘저어 놓는 바에 의하여 놀라고, 보상을 받고, 풍성해지며, 때로는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 자신을 더욱 더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상쾌하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밟는 과정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식해야만 한다. (사실상 우리가 감정적으로는 내적 여정 때문에 감동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경험은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에 우리 자신이 마음 놓고 영향을 받도록 열어놓는다면, 내적 여정이 우리의 성장과 해방의 촉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내적 여정을 사용할 수 있기 전에 우리가 심층적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그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오도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유익보다 해를 입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어떤 도구와 마찬가지로 내적 여정도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어떤 열쇠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알고 보면 열지 말았어야 할 문의 잠을 쇠를 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