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인월~운봉 9.4km + 운봉~주천:14.5km=25.8km
언제부터인가 이 지리산 둘레길을 가고 싶었다.
왜 그런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욕망의 기원은 몇 년전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고는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런데 당장 영어도 안되고 30일코스를 혼자 갈 자신도 없어 다음으로 미루고 있었던 찰나에
제주에 올래길이 생겼단다. 하지만 올래길도 역시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지리산에 둘레길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지 1년 정도 되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때 꼭 지리산을 거치게 되는 것 같다.
27살에도 그랬고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혼자 가는 길이라 자칫 안갈수도 있을 거 같아 얼른 차표예매를 해놓았다.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이 연휴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간식과 카메라와 화장품등을 준비하고는 새벽 1시에 잠을 청했다.
드디어 떠나는 당일!
아침을 먹고 가방을 꾸리고 집을 나섰다.
항상 빠듯하게 출발하는 이 빌어먹을 습관때문에 동서울터미날에서 8시20분 출발인데
강변역에 10분전에 도착했다. 그 사이 놓치면 어쩌나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차에 올랐다. 내 자리는 이 차의 맨 뒷자석...예매 당시도 이 한자리만 남아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먹을거리와 물4병으로 가방을 가득 채웠으면서도 혹시나 모를 짜투리 시간에
읽을 책도 한권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나의 잠은 여기서도 시작이다.
긴장한 탓에 간밤에 잠을 잘 못잔 모양이다. 그래도 5시간 이상 잤건만...
그 먹고 자는 버릇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싸간 떡 하나 먹고 또 잠자고 일어나 물먹고 또 잠자고...
중간에 화장실 한번 가고 또 자고...그런데 차 안이 웅성웅성 거린다.
쇼트트랙 금메달이 3개 걸려있는 날이라 위성으로 차안에서도 올림픽 중계를 해주었다.
좋은 시절이다. 반쯤 뜬 눈으로 보다가 박수치다가 중간에 시간이 5분이라도 생기면 또 자고...
아무튼 못말리겠다.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잠결에 인월터미널에 내렸다.
옆에 아가씨들 3명이 앉았었는데 보아하니 그들도 둘레길을 가는 것 같다.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참, 터미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썰렁한 서울의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 내렸다.
일단은 점심을 먹어야 겠기에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번듯한 식당이 안보인다.
당황스럽다. 좀 깔끔해보이는 분식집이 있길래 들어갔다.
개업한지 얼마 안되 개업떡까지 주셨다.
그 식당에서 제일 비싼 돈까스를 시켜먹었다.
사실은 좀 겁이 났다.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이렇게 혼자 초행길을걸어야 한다는 것에
최대한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서울은 너무 따뜻해 잠바안에 반팔을 입고 갔는데 지리산 자락은 너무 추웠다.
그래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티를 하나 사고 모자도 하나 샀다.
벌써 인월읍의 반은 파악이 끝난것 같다.
지리산길 안내소를 들렀는데...세상에 아무도 없다.
안내 책자도 거의 동이 났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출력해오길 정말 잘했다.
출발을 하려고 지도를 막 펼쳐보는데 어떤 여인네가 길을 묻는다.
이 길이 운봉가는 길이 맞냐고...저도 찾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여자분 혼자다. 그리고 니콘카메라를 메고 계신다. 너무 반가웠다.
자연스레 길을 같이 걷게 되었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3살 많으시고 이 분도 혼자 오는것은 처음이시란다.
얼씨구나 잘되었다. 길동무가 되었다.
이 여행에서도 나의 전공법 '묻어가기'는 시작되었다.
여행동무의 이름은 세은언니.
산과 여행을 무지 좋아하시는 분.
사실은 운봉까지만 가야했었는데 이 언니가 잡은 숙소가 노치마을까지란다.
그래서 9.4km에 6.7km 합이 16.1km를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총 5시간을 걸었다.
우와! 2시간 정도 지나니까 발바닥이 아파온다.
혼자갔으면 운봉에다 숙소를 마련했을 테지만 이 언니와 길동무가 위안이 되어 노치마을까지 같이 갔다.
또 세은언니가 숙소 사장님께 잘 말씀드려 1만원 깍아주셨다.
돈을 아끼는 차원에서 같이 방을 쓸까 했는데...
내가 오늘 깜빡하고 밤에 입고 잘 옷을 갖고 오지 않아 속옷만 입고 자야할 판이다.
아무리 넉살 좋은 나도 초면에 내 살들을 다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은 그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산채비빔밥집으로 숙소 사장님께서 태워다 주셨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고 완전 건강식이다.
취나물,고사리 등도 있었지만 방풍나물, 부지깽이나물, 뽕잎나물...처음 보는 것도 많았다.
저녁도 뚝딱!
이번에는 식당 사장님께서 숙소로 태워다 주셨다.
씻고 나니 눈이 저절로 감기는데... 참 자기가 아까운 밤이다.
텔레비젼을 켜놓고 자는둥마는둥...
아침에 노크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거의 8시가 다 되었다.
세은언니다. 배가 고플텐데...나도 먹을것을 챙겨 세은언니 방으로 갔다.
나의 떡 반쪽과 세은 언니가 갖고온 감자스프와 바꿔 먹었다.
또 황송하게도 나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언니가 스프를 타다 주었다.
완전 민폐참치시리즈다.
오늘의 길은 얼마 남지 않았다. 8km정도만 걸으면 끝난다.
그런데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다리가 무겁다.
어제의 여독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 코스는 재미있는 코스란다. 소나무 숲길이 2시간에 걸쳐 있단다.
기대된다.
사무락다무락이라는 곳을 지나치는데...남자 2명이 눈에 보인다.
돌을 쌓으며 소원을 빌고 세은 언니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그 중 한분이 우리에게 대보름날이라고 찰밥으로 만든 주먹밥을 건네신다.
너무 맛있다. 답례로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러다가 또 다른 분들이 합세가 되었다.
여자분만 4분 되셨는데 사진작가 만났다고 좋아하신다.
내 실력을 아신다면 그런 말씀 절대 안하실텐데...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과일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렇게 산속에서의 인심처럼 세상의 인심도 후했으면 좋겠다.
이 코스는 소나무 전시회 같다.
세상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나무들의 종류가 너무도 많다.
가만 보니 나무의 생김새가 꼭 사람들과 비슷하다.
십인십색이다.
아직 푸른기가 돋기 시작하지만 보름정도만 늦게 왔어도 참 예쁠것 같다.
담에 다시 와서 남은 코스를 완주해야지...하는 다짐을 한다.
내 발로 이 나라에 발자국을 남긴 것이 참 기분좋다.
아무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모르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지리산의 봄 내음을....
부지런한 놈들은 벌써 봄을 알린다.
이쁜 것들...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내 선택은 정말 잘한 일이다.
참치처럼 정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비전마을 입구에 걸려있는 표지판
남원이 창과 가락의 고장이라죠. 가왕송홍록과 국창 박초월의 동상입니다.-비전마을-
억새로 만든 집. 초가집과는 좀 차이가 나죠?-회덕마을-
가운데 소나무와 주위의 돌탑들이 있는데 이곳을 사무락다무락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을 잊고 쉬었다가는 돌담벼락이라는 뜻이랍니다.
사무락사무락에서의 짧은 인연. 맨왼쪽이 로사님 그리고 가운데 보라색입으신 분이 나의 길동무 세은언니
앞에 앉아계신분이 시몬님 주먹밥을 주시고 사과 배를 손수 깎아 주신분. 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이런 표지판이 둘레길 곳곳에 있답니다.
서어숲이라고 하는데 아직 잎들이 나오질 않아서...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입니다.
부지런한 이쁜 것중 하나.
산수유꽃의 봉우리 입니다.
첫댓글 재밌게 잘다녀온것 같아 좋아요
혼자가기란 좀 겁났을텐데....
언니참 용감하네^^
드디어 참치가 수족관 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들어가나 봅니다.
참치는 강한 외유성을 가진 물고기 한순간이라도 먼 추면
죽은 고깃덩어리에 불과 한 물고기입니다. 넓은 세상 많이 보시고
여러 사람들 도 만나보시고....
ㅋㅋ 역시 잠 얘기는 빠지질 않는군...
한번 날잡아서 같이들 갑시다..
ㅋㅋ 넌 글케 아무데서나 자고 늙어서 뭐될래??...암튼 코스는 좋다야,,나중에 기회되믄 함 가봐야겠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