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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탁상달력의 메모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간단하게 소감을 적곤 했습니다. 그게 벌써 10년쯤 된것 같구요. 그 글을 언젠가 저희 테니스클럽 카페에 올려놨더니 사람들이 참 재밌어 하더군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니 의무감도 생기고 글도 좀 상세하게 적어야 하겠더라구요. 그러다보니 글이 좀 길어집니다. 시간 나실때 재미삼아 천천히 읽어 보시라고 올려드립니다. 이것으로 제 새해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다들 건승하시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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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일기(2011)
올 한해의 시작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게 특징이라 하겠다. 아마도 작년 10월에 다녀온 안나푸르나의 감동에 취해 있어서 여타의 일에 집중하지 못한 탓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항상 해오던 격주 수요일의 전주장애인복지관의 의료봉사와 매월 4주차 일요일 한의사 산행모임으로 1월 한 달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2월은 설 연휴로 시작되었다. 부모님께 세배 드리고 조카들도 만나고 즐거웠지만 다들 어려워진 경기로 힘들어 하는 모습에 마음 아팠다. 연휴 마지막 일요일에 가깝게 지내는 형님 모시고 소양 위봉산성으로 해서 서방산을 돌고 내려왔다. 근처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산다. 한의사협회 정기이사회, 대의원총회와 청년한의사회 정기총회 등 각종 행사가 2월에 집중된다. 그렇게 이곳저곳 모임에 불려 다니다 보면 짧은 2월은 어느새 끝난다.
3월 11일에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일본의 지진이 있었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이어서 그 위험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직도 지진의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라 봐야할 것이다. 해양오염은 수중생태계 뿐만 아니라 육상생물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던 일본의 원전사고로 세계적인 핵연료 감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유독 한국정부만 원전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만 잘 살고 가면 끝이란 말인가? 그대들의 자손들은 어쩌라고!
3월에 절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오래 고생하시다 가셨단다. 힘들었을 어머니의 인생이 가엾다. 결국 우리도 다 세상을 뜰 건데 마지막 생이 조금 편안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4월엔 주말산행으로 종남산-서방산 코스와 오봉산-국사봉 코스를 다녀왔다. 산에는 봄기운이 깊어지면서 야생화들이 곱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봄 산은 생기가 느껴져 좋다.
5월 2일, 우리 아들 태수가 군대엘 갔다. 전날 밤 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는데 살살 배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군 입대라는 중압감에 걱정도 되고 긴장도 되긴 했을 것이다. 아침에 나는 출근하면서 “잘 다녀와라” 한마디의 인사로 작별했다. 제 엄마 승용차로 친구와 함께 논산의 훈련소로 간다고 했다. 머리 깎고 훈련소 앞에서 점심까지 먹이고 들여보냈다 한다. 아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흐르더라고 와이프가 전해준다. 아무튼 2년간의 병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5월 3일, 빈 라덴이 미국 해병대의 기습공격으로 아프간의 한 주택에서 사살 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오랜 시간 이슬람세력의 지도자로 저 강력한 미국에 대항하며, 잘도 피해 다니던 그가 결국은 살해되었다. 비무장 상태였고 그것도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살 당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과연 미국의 행동은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미국의 승리”라고 할 만 한 일일까 의문이다. 사살된 그의 얼굴 사진이 합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시신도 바로 수장했다는 등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아무튼 미국 9.11사건과 빈 라덴의 죽음은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의 갈등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지나가는데 꽃구경도 못가고 이런 어수선한 상념으로 보냈다.
6월에는 가족 지리산종주를 마쳤다. 와이프와 나, 현수만 참여하는 반쪽 가족이지만 그래도 2박3일 동안 즐거운 산행으로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현수는 준족이 되어 구간마다 우리를 한 시간정도씩은 앞선다. 발목이 불편한 와이프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줘서 고맙다. 산행을 통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2박3일 지리산종주에 3킬로 감량, 하루 대둔산종주에 2킬로 감량이 가능하도록 식단과 운동량, 심박측정, 코스개발 등을 진행 중이다. 체지방은 최소 3시간 이상 운동이 지속되어야 효과적으로 분해된다는 운동생리학적 관점에서 시작한 일이다. 건강도 증진하고 멋진 체형도 만드는 두 마리 토끼잡기 계획인 셈이다.
6,7월에는 학생들 강의와 우아중 선생님들 특강, 복지관 직원교육 등 강의를 여러 번 했다. 강의를 함으로써 좋은 점은 내가 뭘 알고 있고 뭘 모르는지가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애매하게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성이 된다. 아직도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올 해는 또 사진을 공부하느라 이 분야에 대한 책들도 더 쳐다봐야 한다. 12월에 사진전을 한다는데 어느 작품을 내놓을지 걱정이 앞선다. 6월부터 시작한 논어(論語)강좌는 매월 두 번씩 하는데, 여기서 반가운 사람들을 또 보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함께 전라광장 모임을 하는 유용균이다.
7월 마지막 주에 휴가를 내어 군에 간 아들 녀석과 1박2일을 함께 보냈다. 훈련소 수료식 때 보고 겨우 두 달 만에 보는데도 그렇게 반갑고 좋은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성에 기인하는 것일까? 건강하고 씩씩해진 모습에 안심이 된다. 1박2일의 짧은 외박을 마치고 귀대를 하는 녀석의 뒷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비는 또 얼마나 억수같이 퍼 붓던지…….
8월에 절친하게 지내던 박홍규(화백) 형님의 전시회가 열렸다. 홍규형은 화가이면서 농민을 자처하는 분이다. 농민신문 만평을 아마 20여년은 족히 그리고 계실 것이다. 실제로 완주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틈틈이 그림을 그리신다. 농민한의원시절 참 가깝게 지냈었다. 아이들과도 서로 어울려 여름철에 계곡에 물놀이도 가고 그랬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다. 아무튼 간만에 열린 형님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마쳤다고 하니 마음이 즐겁다.
8월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10년 넘게 살던 송천동을 떠나 바로 옆 마을인 호성동으로 이사를 한 일이다. 뭐 돈을 벌어서 아파트 평수라도 늘려갔는 줄 아시면 오해다. 여차저차 하다 보니 우리 조건에 맞는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가 조금 싸게 나왔기에 그걸 얻어서 집을 옮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파트 시세가 많이 올랐구나 하는 사실만 확인하였고,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의 액수는 더 올라갔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삶의 구조를 좀 단순하게 바꿔야 할 텐데 걱정이다. 대출금을 계산하면 우리 집의 소유 분 중 순수한 우리 공간은 채 30%가 안 될 것이다. 결국 나도 은행에 전세 사는 셈이다. ㅋㅋ.
9월에는 추석이 들어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아쉽다. 그저 차로 이동 중, 고속도로에서 정체에 막혀 많은 시간을 답답하게 보내야 한다는 점과 꽤 많은 음식과 술로 배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뿐이다. 부모님의 모습에 점차 세월의 무게가 조금씩 더 실리고 있다는 것은, 두 분의 동작과 말투에 힘이 약해지고 있음에서 감지된다. 부모님을 뵈러 가기 전에는 항상 흰 머리카락을 뽑고 다녔지만 이젠 너무 많아져 일일이 손을 대기가 어렵다. 염색도 귀찮아 그냥 갔더니 아버지께서 “너도 이제 늙는구나, 흰머리가 늘었네?” 하신다. 일순 죄송한 마음이 스친다.
9월중에 울 와이프 꽃집을 개업했다. 이전까지도 다른 집 화원과 연계하여 알바식으로 사업을 해 왔지만 이참에 맘먹고 가게를 하나 얻어 사업을 벌인 것이다. 아직은 작고 변변찮은 상태라 전라광장 회원 몇 분과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알리고 조촐한 개업식을 가졌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셔서 기뻤다. 이 자리를 빌어 방문해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린다.
9월 마지막 주말에 대둔산 다이어트산행 코스를 개발하러 나섰다. 평소 다니지 않던 칠성봉쪽으로 돌아오니 적당한 운동이 될 것 같다. 나비한의원 고객들과 함께 산행하면서 즐겁게 살을 빼줄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10월, 가을이다.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슬픔과 가슴 한편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아직도 가을을 타는걸 보면 나는 낭만주의자가 확실하다. ㅎㅎ. 단풍구경이라도 가고 싶지만 항상 생각만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리고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산들은 입구부터 차가 막혀 길바닥에서 헛김을 빼다보면 기분이 싹 잡쳐버린다. 가을산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게 낫다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10월6일, IT업계의 기린아 스티브잡스가 췌장암으로 결국 사망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그의 발명품들은 전 세계인들의 기호가 되어버렸다. 그런 위대한 제품들을 만들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상념 속을 헤맸을까? 한의학에서는 사려상비(思慮傷脾)라 하여 사려가 지나치면 비장(현대의학의 췌장개념을 포함한다)을 손상한다고 본다. 결국 그는 인류에게 많은 선물을 남겨주었지만 지나친 사려로 자신의 몸을 해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의학의 정확한 이론이 이렇게 증명되었음을 우리 한의사들은 모두 이해할 것이다.
10월 4주차 주말을 이용해 지리산 천왕봉 등반을 나섰다. 전북한의사 산행모임 팀의 1주년 기념 산행이다. 토요일 백무동의 허름한 민박집에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천왕봉을 보고 장터목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하산하는 일정이었다. 걸음이 약간 늦은 선배님이 날이 어두워질 무렵 뒤늦게 하산하여 약간 걱정을 했지만 모두 무사히 완주를 하였다. 처음 일박을 하는 산행이었고 아주 즐겁고 유쾌한 산행이었다. 올 한해 두 번이나 지리산을 다녀와서 기분이 좋다.
11월엔 내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복지관 관장님, 사무국장님과 우리 부부, 한의원 실장과 함께 막걸리파티를 했다. 관장님과 내가 둘 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가끔 함께 어울린다. 관장님은 나보다 두 살 연배이신데 아주 인품이 좋으신 분이다.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는 형님이라 부르며 친해졌다. 2차로 노래방도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업무적으로 만나면 격식을 차리다보니 속내를 터놓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어울리면 사람의 관계가 참 편해진다. 좋은 형님이 한 분 더 생겼으니 이 또한 기쁜 일이다.
11월12일 그간 3개년에 걸쳐 진행하던 육군부사관학교(익산 여산면소재)의 의료봉사활동을 최종 마무리하는 강평회가 열렸다. 군부대 의료봉사를 통해 군진의학에 한의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노력했던 사업이고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도 올렸다고 판단한다. 모든 군부대에 한방군의관이 배치되어 군 전투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강평회는 마지막 술자리가 조금 과했는지 다음날 몸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건지산 가꿈이 활동을 마치고 또 술자리에 휩쓸리고 말았다. 에고고, 미안한 나의 간장이여!
건지산 가꿈이 활동을 11월에 시작하였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산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산을 가꾸고 보살피자는 일종의 환경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하자는 의미다. 우리 전라광장 회원들이 함께 참여해서 즐거운 주말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길 기원해본다.
11월 한의산사모 산행은 완주 만덕산을 다녀왔다. 낙엽이 가득 덮여 초반에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약간 고생을 했다. 하지만 하산 후에 장어구이로 보양식을 충분히 했으니 고생한 보답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11월22일,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나라당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한미FTA 협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도대체 니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11월 들어서면서 연말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갑자기 일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11월은 약간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지나갔다.
12월, 이제 달력이 한 장 남았다.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야 항상 하는 말이지만 다른 표현이 없다. 세월 참 빠르게 지나간다!
첫 주말부터 나비한의원 네트워크모임의 송년회부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어 청년한의사회 송년회, 전주시 한의사회 송년모임, 약무위원 송년회, 송년 산행모임, 생명자활센터 송년회 등이 계속 이어진다. 아무튼 12 월은 최소 10여개의 송년회를 치러내면서 또다시 간을 혹사하는 시절이 이어진다.
12월17일 북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다. 이 소식은 이틀이나 늦은 19일 발표되었으니 우리 정부의 정보력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김위원장의 죽음으로 한순간 우리 정부는 무척 긴장한 느낌이다. 24일 예정되었던 우리 아들 정기휴가가 일단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었다.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정국이 안정되면서 아들 녀석은 예정대로 휴가를 챙겨먹을 수 있었다. 북의 변화가 어찌될는지 모르지만 제발 민족통일과 상호협력의 분위기로 전환되길 기대해본다.
12월24일 우리 부부는 청주공항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오후 6시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있다. 그간 오랜 시간 만나온 친구들 모임에서 제주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다.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남들보다 훨씬 더 알차고 다양한 관광을 즐긴 느낌이었다. 여행을 준비했던 친구의 배려로 제주의 여러 토속음식을 즐겼고, 갈치와 오메기떡 등 선물도 받게 되었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더니 30여년 우정이 그 말을 증명한다.
12월 30일 새벽,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하셨다. 김 고문님의 삶은 우리사회 민주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희망이었다. 민주라는 이름을 들먹이자면 일단 김 고문께 빚진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역시 아까운 분들이 세상을 많이 떠난다. 아직도 우리는 핍박받는 민중일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올해는 12월 31일 마지막 날이 토요일이다. 연말 끝나는 날이 토요일, 탁상달력의 맨 마지막 칸이다. 한 해를 완결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게 한다. 아무튼 이렇게 2011년이 다 저물었다. 다가올 임진년 한 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용의 해는 변화가 많은 해라는데, 다들 몸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시라는 덕담으로 한 해 일기를 마친다.(白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