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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민가의 조경과 공간구성체계론
(우석대 신상섭 교수님)
Ⅰ. 서론
전통이란 역사성을 가지며 傳承되어 내려온 사회적 집단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문화내용을 지배하는 규범적 의의를 지니게 되는데, 이러한 규범성 내지는 가치관이 공간조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서 실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전통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리를 잡는 일이었다. 삶과 관련하여 공간이론을 전개한 李重煥의 擇里志(1750)에 의하면 "卜居之地는 地理가 爲上이요 生利가 次之하며 次則人心이요 次則山水니 四者에 缺一하면 非樂土也라" 하여 거주지를 가려 정한다는 의미를 樂土와 함께 고려한 paradigm으로 地理와 生利, 人心, 山水를 설정하고 있는데 地理는 "先看水口하고 次看野勢하며 次看山形 … 土色, 水理, 朝山朝水라" 했으니 水口란 입지감을 野勢란 공간의 크기를 산형과 朝山朝水는 경관을 의미하는바 즉, 자리를 잡는 것은 마을의 환경조건과 吉地의 공간감을 감지하는 방법론임을 알게 된다.
특히, 마을의 소단위인 한국의 살림집(전통민가)은 삶의 지혜와 숨결이 스며있는 문화공간 그 자체로, 공간의 꾸밈새는 우주의 섭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原景으로 삼은 유기적인 소우주이며 생물사회의 생태적인 특성이 잘 반영된 예술공간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민가에 작용된 조경기법과 공간적 특성을 언급함에 있어서 시대적인 범위로는 조선시대(AD 1392 -1910)를 채택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원형적 유구가 잘 남아 있으며 고유양식을 계승해온 상류주택으로서 국가 또는 지방 지정문화재가 물적 대상이 되었다.(표1)
표1. 사례 주택
고구려의 온돌구조와 백제, 신라의 마루구조를 절충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고려시대의 민가가운데 상류사회의 양식인 상류주택은 기와를 사용한 채(棟)와 마당의 분화, 별당, 別墅 등의 도입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양식은 조선시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어 松嶽(開城), 漢陽(서울)을 위시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분포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 이전에 조영된 민가의 유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과, 한국의 보수성 및 주택평면에서 표출된 발전의 폭이 靜態的으로 전개되었으므로 분석되는 의미를 보다 포괄적인 전통민가의 조경적 특징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Ⅱ. 한국 전통민가의 형성배경과 조영원리
1. 형성배경
(1) 환경적 요인
한국인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인식하고 그 속에 축조되는 조영물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로 파악했던 바, 이와 같은 보이지 않는 규율에 따라 마을이 자리하게 되고 단위주택은 남향선호의 주거 좌향(좌우 20。 범위)이 이루어지는 등 지형, 지리, 기후 및 기상, 산출재료 및 생물상 등이 민가 조영의 결정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한편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라 민가의 家垈, 家舍 등이 제한되었고 칸수의 크기 등에 대한 규제가 나타난다.(표 2, 3) 경제적 여건은 상하층 계급간의 차이가 심했고, 그 결과 신분에 비례하는 상류주택과 중·서민주택이 평면 내지는 양식 면에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표2. 가대제한 분급표
표3. 가사제한 분급표
(2) 사상적 요인
마을과 주택의 간택, 배치 등에 있어서 풍수지리사상은 다양하게 영향을 주었으며 花階의 발달과 池塘造營에 기본원리가 되었고 厭勝과 風水裨補(洞藪비보, 河川비보, 火氣비보, 地名비보)라는 방법을 써서 더 나은 福居環境을 추구하는 배경요인이 되었다.
老莊思想의 원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하게 하였으며, 隱遁思想이 반영된 별당과 別墅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고, 三才思想은 고대의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천·지·인의 상호의존 관계를 기본원리로 하여 우주의 근원을 파악하려는 사상으로 기본형태인 圓·方·角이 응용되었으며 主·從·添의 원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공간의 분화 및 신분에 따른 위계를 반영한 儒家思想, 1년 24절기를 표현하는 영속성의 生命思想, 日月思想 등이 공간 조영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2. 공간구성과 조영원리
(1) 공간구성
한국의 민가는 신분제도를 기준으로 상류, 중류, 서민주택으로 구분되는데 상류주택은 양반계급이 거주하던 주택으로 양반은 신분상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권력에 참여하는 지식층이었으며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도 마을의 土豪的, 敎化中心的 역할을 하였다.
특히 상류주택은 지배사상인 유교에 영향을 받아 가부장적인 가족제도, 계급주의, 엄격한 남녀구별 등의 통념에 따라 내외, 상하생활 구별을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가 반영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전형적인 주택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 고방채, 祠堂, 別堂 등 여섯채로 구성되는데 이들 각 채는 마당을 가지고 있어 여섯마당이고 이에 딸린 문이 있어 소위 열두대문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경제·신분·환경 여건이 달라서 이것을 다 갖추지 못하므로 생략되거나 다른 것과 倂合되는 경우가 많았다.(표4)
표4. 전통민가의 유형과 특징
(2) 조영원리
풍수지리사상 등 이념적 자연관과 환경의 실용적 활용, 그리고 정치사회제도가 작용되어 주거공간이 포치하게 되는데, 배산임수하는 지형조건하에서 양명한 삶의 공간화를 위해 북쪽에 산을 등지고 열린 남쪽을 면하여 건물의 房室들이 중요도에 따라 좌향이 결정된다.
이러한 남북 방향성에 태양 빛을 먼저 받는 동쪽으로 남성적, 외향적 용도의 건물이 배치되고 지는 태양 빛을 받는 서쪽으로 여성적, 내향적 용도의 건물이 포치된다.
따라서 전통공간의 기본단위는 건물 1棟과 마당 1庭을 결합한 단위공간이 나란히 놓이거나 중첩되는 체계를 가지게 되는데, 남북동서의 방향성을 가치기준에 연계시켜 동쪽으로 바깥주인의 영역인 사랑채를 두고 북동쪽에 최상의 위계를 나타내는 작고한 남성주인의 영역인 사당이 배치된다. 서쪽에는 안주인의 영역인 안채가 도입되고, 안팎을 이어주는 전이공간에 가장 낮은 위계의 하인 영역인 행랑채와 보조적인 용도의 건물이 전면으로 포치된다.
이렇게 포치된 공간은 자연과 인위의 결합, 陰과 陽, 主와 從, 靜과 動, 分과 聚, 疏와 密, 내향과 외향성의 조합과 같은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 설정에 의해서 통일성이 확보되는 공간구성 원리로 작용되고 있다.
3. 조영사례
1815년에 지어진 강원도 강릉 船橋莊은 背山臨水의 완경사 지형에 살림채는 남서향하여 행랑채, 사랑채(悅話堂), 안채, 별당, 사당으로 구성되었으며, 대문 밖 동남쪽으로 외별당에 해당하는 方池方島 형태의 연못과 活來亭이 자리하고 보다 멀리 경포호수가에 別墅인 放海亭이 위치한다. 공간적으로 볼 때 살림채인 정침영역과 별당, 별서를 고루 갖춘 조선시대 상류층의 대표적인 민가 유형을 보여준다.
背山臨水, 前窄後寬, 前低後高의 풍수적 요건을 두루 갖춘
마을에 입지한 충북 괴산의 金機應 가옥은 장방형 대지에 주건물은 정남향하여 안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채, 광채로 구성되며 이것과 연접하여 행랑마당, 중문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후정, 측정 등의 외부공간 이 포치하게 되는데, 건물과 샛담으로 적절하게 분절되며 몇 개의 단으로 처리된 공간구성은 심연성과 함께 아름다운 율동미를 자아내게 한다.
1616년에 지어진 충남 논산의 尹拯 고택은 풍수적 玉女彈琴形의 명국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노성산의 숲을 배경으로 주건물은 동남향하여 사랑채, 안채, 행랑채, 광채, 사당으로 구성되었다. 튼ㅁ자형의 안채에 독립된 사랑채가 접합된 구조로 전면은 담장이 생략된 열려있는 공간이 되고 서쪽으로는 배롱나무가 심어진 圓島를 둔 넓은 方池가 자리하는 등 공간의 짜임새가 치밀하면서도 평화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1784년에 지어진 전북 정읍의 金東洙 가옥은 蒼霞山을 배산하고 桃源川을 前川하여 平沙落雁의 터전에 주건물은 행랑채, 안행랑채, 중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 별당으로 이루어 지며 경상도 지방 상류주택의 집중형과는 다른 분산형 배치를 하였다. 특히 풍수적 의도로 조영된 연못과 느티나무 수림은 인공과 자연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여 주거공간 자체가 아늑하면서도 자연속에 파묻히게 됨을 인식한다.
15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전북 임실의 李雄宰 가옥은 풍수지리적 지네형국터(飛天蜈蚣形)로 알려지고 있는데 북에서 남으로 경사진 터에 위계를 반영한 살림채는 사당, 사랑채, 안채, 곳간채, 중문채, 행랑채로 이루어졌다. 외부공간은 사랑마당, 행랑마당, 안마당, 사당을 포함한 후정으로 대별되는데, 몇 개의 단으로 처리된 후정은 죽림이 어우러지고 비교적 넓게 채원을 두는 등 실용원적 성격을 보여준다.
1776년에 지어진 전남 구례의 雲鳥樓는 金環落地 터에 三胎峰을 배산하여 자리하는데 家舍規制에 따라 99칸 品字形으로 조영되었다 한다. 전라도 지
방에서 보기드믄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여 행랑채, 운조루라 하는 안사랑채, 바깥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의 6개 부분으로 영역화 되어있다. 사랑채엔 대청과 누마루가 병존하는 점이 특이하며 집앞에는 지리산의 지맥으로부터 끌어들인 水溝와 方池圓島形의 연못이 자리하는데 위계성을 강하게 表出시키는 공간구성이 특징적이다.
1783년에 지어진 경북 달성의 荷葉亭은 사육신 朴彭年의 후손 朴光錫이 定居한 가옥으로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동남향하여 3중으로 배열되어 있다. 소박한 초가의 중문채와 고방채가 자리하며 후정에는 화계가 발달되고, 서쪽으로는 사랑채(三可軒)와 연접하여 샛문으로 분절된 별당(하엽정)이 ―자로 뻗어나가 있다. 이곳 하엽정에는 조선시대 池塘形式의 전형인 方池圓島의 연못을 두어 여름에는 연꽃과 배롱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분홍빛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1600년대 초기 건물인 경북 안동의 養眞堂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班村으로 일컬어지는 河回마을의 중심가옥으로 지형조건이 높지 않은 평활한 대지에 건물이 밀착되어 정남향하여 자리한다. ㅁ자형 안채에 전면하여 행랑채가 돌출하고 동쪽으로 사랑채가 연결되어 3개 건물이 접속되어 있고 사랑과 연접된 후정에는 담으로 구획된 사당이 북쪽으로 위치한다. 한편 살림집과 거리를 두어 별당인 賓淵精舍와 花川 건너편에 별서인 謙庵精舍를 두어 자연속에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정자의 공간적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
Ⅲ. 조경기법과 공간구성 체계
한국민가의 포치와 관련된 조경기법과 공간구성 체계에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 공간의 침투성, 율동과 연속성, 위계성, 동세성, 인간적 척도의 적용, 비대칭적 균형성, 耽美觀이 반영된 공간 등으로 요약된다.
1. 자연과 인공의 조화 (順應의 美學)
한국민가의 공간구성에는 자연계의 섭리를 신앙으로 승화시켜 자연을 主格으로 놓는 조영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背山臨水의 지형조건에서 앞이 낮고 뒤가 높은 前低後高의 택지공간은 아래의 인공으로부터 위의 자연으로 이행되고, 또 아래는 좁고 뒤는 넓히는 前窄後寬의 형국도 인공환경에서 다시 외계의 순수한 자연환경으로 되돌아가는 이념과 실용적 가치관의 조화를 얻고 있다.
·자연 지세와는 경쟁하지 않는 가운데 전면이 개방된 입지구조하에 나즈막한 야산이 정침공간을 병풍처럼 감싸주고 행랑채→사랑채ㆍ안채→사당→후정으로 이어지는 입면적 구성체계는 자연 지형에서 sky-line을 형성하는 경관구조를 보여준다.
·내적으로는 후정과 후원을 두고 여기에 亭子나 花階를 도입하여 竹林과 松林으로 연결시키는 토지이용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담장을 생략하거나 생울타리를 조성하고 율동적으로 담을 축조하여 자연과 인공을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別庭, 別墅의 亭子와 연못 등은 인공과 자연이 和合하는 장소성으로 의미가 깊고 경관의 펼쳐짐 속에서 자연과의 대화 내지는 관조의 미를 추구하여 亭子文學을 탄생시키는 여유와 멋을 나타낸다.
·意匠材料 및 색조의 사용에서도 자연과의 동질성 추구, 조망효과를 고려한 넓은 사적 외부공간의 창출, 쾌적한 환경조절 공간 확보, 水(자연스럽게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떨어지거나 고여 돌아나가게 함)·石의 도입과 인공이 배제된 낙엽활엽수 위주의 재식, 조류 및 야생동물이 뜰의 요소로 등장하는 등 자연과의 합일개념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인공요소와 자연이 조화되는 조영의도는 20세기 중반 이후 체계적으로 모색되어진 生態的 공간계획과도 흐름을 같이하는 합리적인 토지이용 원리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자연을 공간구성의 주요소로 삼고 있기는 하나 자
연과의 대비에 비중을 두어 대담한 인공성과 심미성을 강조한 중국의 조영의도와 비교되며, 일본처럼 정교한 기교를 縮景空間에 幽玄하게 대입시킨 개념과도 비교되는 것이다.
2. 침투성, 개방과 폐쇄공간이 교차, 반복되는 구성 (虛+實, 分+聚의 구성)
민가의 공간구성 체계는 개방과 폐쇄공간(마당과 채, 자연과 인공)으로 陰陽의 二元的인 정신세계가 만들어낸 구도가 되는데, 이들이 상호 관련성을 갖게 되면서 나란히 놓이거나 중첩되어 공간의 연속성에 의한 침투성을 보인다.
·행랑채, 사랑채, 별당, 안채, 사당 등의 내부공간과 바깥마당, 행랑마당, 사랑마당, 별당마당, 안마당, 후정 등의 외부공간이 채+마당(棟+庭) 구조로 전환되면서 虛와 實, 分과 聚의 열려진 공간 + 닫혀진 공간으로 일원화되고 자연과 인공이 교차, 반복되는 공간구성을 보인다.
·또한 가장 폐쇄적이고 은밀한 내부공간인 안방에서 대청으로 전환되는 단계, 4면이 건물에 의해 둘러싸인 폐쇄적인 안마당에서 개방성이 확보되는 사랑마당으로 전환되는 단계, 행랑채와 별당 등에 의해 한정되는 바깥마당과 마을의 개방공간으로 전환되는 단계, 그리고 大自然에서 시각적 한정으로 부터 지각적 연속으로 전환되는 단계를 통하여 서서히 폐쇄↔개방으로 승화, 전개(방↔대청↔안뜰↔바깥뜰↔자연)되는 침투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에 완벽하게 파묻히는 樓亭의 조영성이라든가, 안팎의 전이공간에 내외벽을 통한 상징적인 영역 설정, 그리고 지형조건에 따라 담장을 생략하거나 살창을 두어 이 마당과 저 공간을 상호 침투시키며, 한채 한채가 놓이는 바닥과 기단의 점진적인 고저차, 개폐식으로 된 창호의 개방성 등으로 서로 다른 공간은 침투되고 융합된다.
이러한 구성체계는 四合院의 완결된 내향적 폐쇄공간이 중점을 이루는 중국이나, 외부공간이 주택의 주연부를 따라 전면이 열려지고 후면이 차단되는 일본의 외향적 공간구성과는 그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3. 공간의 율동성과 연속성 (起承轉結의 인도와 암시)
율동원리는 공간을 분할하고 인도와 암시를 통하여 감흥과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용을 하게되는데 전통민가 또한 이러한 음악적 율동개념에 의한 공간의 연속성이 감지된다.
·주거공간 구성체계는 단위공간의 체험적 기억을 축적시키고 공간을 질서있게 연속적으로 전개시킴으로서(亭子木이 있는 마을어귀→어귀길→마을입구→안길→골목길→솟을대문→바깥마당→중문→안마당→대청→방) 율동과 심연성이 부여된다.
·먼데서 보더라도 시선의 표적이 되는 솟을대문은 '起'의 암시가 되며 연못, 亭子가 어우러지는 바깥뜰은 자연과 인공을 이어주는 전이공간이 되는데, 대문간에는 庭心樹가 식재되고 행랑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정서를 승화시키는 '承'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承의 공간을 지나면 중문 쪽을 향하게 되고 ㄹ자 모양의 동선 흐름이 이루어지면서 '轉'의 공간인 샛마당이 나타나며, 내외벽 사이로 밝고 평온한 '結'의 공간인 안마당이 나타난다. 이러한 起承轉結의 율동개념은 연속해서 過程性→昇華性→媒介性→目的性 공간으로 접속되는 공간구성 원리로 작용되고 있다.
·경관인식이나 보행심리에도 율동원리가 작용되는바, 즉 背景(配山, 後苑, 後庭)→近景(路, 村)→中景(平野, 川)→遠景(앞산)의 지각 체험이라든가, 행랑마당→사랑마당 또는 안마당→사당마당과 별당 등으로 전개되는 동선의 흐름에 따라 심리적 弛緩→緊張→安堵→ 또는 緩衝상태를 연속적으로 인식시킨다.
·시선이 바로 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일직선상에 배치하지 않았으며, 담장은 변화있는 경사면에 수평으로 단을 만들었고, 연못에는 섬과 수목에 의해 수면을 분할하면서 하늘로 연계시키는 상징적 연속성을 부여하였음은 물론, 개방적 폐쇄공간의 점진적인 레벨차이, 크고 작은 디딤돌의 배치 또는 수공간에서 물의 흐름과 관련된 시각적, 청각적 요인 등 세부적인 표현에 의해서도
독특한 율동미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단위공간의 연결개념과 시지각적 방향성이 내포된 공간적 sequence(視覺的 分節→ 知覺的 連續→空間的 擴張性)는 같은 동선체계를 가지면서도 공간을 한정함으로서 영역을 重合시키고 방향성을 차단하여 배후를 은폐시키는 일본의 전개기법과 구별된다.
4. 공간의 위계성 (主, 從, 添의 階層化)
민가는 신분, 남녀간 유별이념이 작용되어 主, 從, 添의 공간 분화를 보여주게 되는데 방위, 레벨차, 폐쇄도 및 치장 정도 등에 따라서 계층성을 갖게 되고, 마을의 구성에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위계가 중심과 주변이라는 대조로 나타나는데, 상류주택 또는 종가가 중심가옥으로 배치되고 외측에 가람집이나 다른 주택이 배치되며 길의 패턴 역시 중심가옥을 향하여 설정되는 위계성을 반영한다.
·주거공간의 입지에는 풍수적 영역을 반영한 물리적 수직성이 작용되어 太祖山→主山→案山→朝山으로 이어지는 지형조건과 방→주택→마을→內形局→外形局→하늘로 이어지는 상징적 위계성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의미체계는 높은곳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向天性을 인식하게 된다.
·주택 내부로 들어 갈수록 공간은 점차 위로 점승되면서 건물과 마당의 레벨이 위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사당, 사랑채와 안채를 최상단부에 배치하고 낮은 기단에 별당을 그리고 행랑채를 제일 낮은 하단에 배치하였는바, 가치체계와 관련하여 주인과 하인영역이 구분되고 동서로 남녀간의 공간구분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는데, 특히 사랑채와 행랑채 영역의 종적인 상하관계 설정은 대비적인 공간구성으로 확연한 위계성을 나타낸다.
·뜰의 조영에는 주인영역(사랑마당, 後庭, 亭子)에 비중을 두어 움직임을 최소화시키고 한정적인 외부인과의 접촉을 암시하며 衒學的 정신가치에 비중을 두는 공간 분위기를 연출한 반면, 외향적 배치구조를 띠는 하인영역은 특별한 수식 없이 움직임이 커지고 외부와의 접촉이 많아지는 물리적 공간으로 전개되는 등 낮은 위계를 보여준다.
특히 別庭이나 別墅의 樓亭, 솟을대문, 下馬石 등은 전통사회의 권위성을 상징하는 조영물인데, 이곳에서 감지되는 정신세계로의 개방성, 자연 속에서 노니는 풍류를 생활속에 실현시켜 고유한 상류 주거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5. 인간적 척도의 적용 (인간적인 親密空間)
공간규모와 관련된 거리감에서 24m이내 일때 시지각적으로 평안한 친근규모가 되며, 140m범위는 영역을 느낄 수 있는 한계수치가 되고, 1600m를 넘으면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목적공간이 되지 못한다. 또한 공간감을 주는 요소로 수평거리(D)와 건물높이(H)의 관계를 관점으로부터 벽적 요소의 각도가 上下 30˚를 넘지 않음이 적합하며, 폐쇄력이 있으면서 압박감이 없는 공간적 범위는 D/H가 1 보다는 크고 2 보다는 작은 비를 제시하고 있다.
·공간규모에서 한국민가의 내부공간(방)은 8尺내외의 정방형을 기준단위(1間)로 하여 시지각적으로 인간관계가 쾌적하게 유지되는 범위(3m이내)가 되고 있으며, 외부공간은 장단변이 안마당 11.1×7.4m, 사랑마당 19.1×11.7m, 행랑마당 18.2×9.3m, 중문마당 8.6×5.1 m, 사당마당 15.6×10m 등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규모는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인지되는 옥외 친근감 척도의 한계범위인 80尺, 즉 24m(의사전달이 용이한 한도내의 거리)이내에 해당되는 척도개념인 것이다.
·남자영역인 外別堂, 亭子는 사랑채에서 약 100m내외로 이격되어 영역을 체득할 수 있는 한계범위(140m) 이내에 조성되었고, 別墅는 정침공간에서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1.6km)의 목적공간으로 두는 등 전체적인 공간구도가 인간적 척도의 틀 속에서 짜여졌음을 알 수 있다.
·D(마당거리)/H(건물높이)는 안채 영역 1.46, 사랑채 영역 2.0으로 남자영역이 상대적인 개방성을 확보하게 되나 전반적으로 친근하고 적정 폐쇄감이 부여되는 범위(건물을 쳐다보는 앙각 27˚이내)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민가의 채와 마당은 규모와 거리감 등에서 건물의 외관이 아담하고 내외부공간은 심리적으로도 안정성이 확보되는 인간적 척도의 크기와 내용이 도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동세적인 공간구성 (動과 靜의 交織)
洪萬選의 山林經濟(1710)에 의하면 "當面 直來之路를 謂之 衝破라 하니, 必須盤於曲轉이라 … 切忌直衝이라" 하여 똑바로 오는 단조로운 길은 좋지 않다 하여 반드시 굴리고 曲轉하라고 권유한다. 말하자면 공간 조영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시선과 시각의 변화로 공간을 감지하면서 움직일 때 정지공간을 동적인 시간예술공간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출요소로 巨樹, 솟을대문, 亭子 等 주변의 물체보다 크거나 높은 것, 율동을 부여하는 길, 다리, 출입문 등이 이용되는데, 특히 극적 효과를 얻기 위해 亭子木이나 대문 등을 매개하여 짧은 거리에서도 동세적 생명성을 갖게 하고 있다. 즉, 독립된 마당영역은 정지공간 자체가 출입문을 통한 진입시 曲轉에 의해서 시선이 급격히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動勢的 분위기를 연출하며 중심쪽으로 서려있게(盤) 되는데, 솟을대문에서 사랑마당, 중문에서 안마당 등으로 交織되는 시지각적 전개과정은 더욱 강한 동세효과를 연출한다.
·동선의 흐름은 바깥마당→행랑마당→중문마당→사랑마당→안마당→별당마당 또는 사당마당으로 이어지는 전개과정에서 각 영역은 끊임없이 분절되면서 중심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자연스럽게 확장되거나 축소되어 동적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며, 내외부공간의 시점 이동에 따른 선적, 면적 동세를 느끼게 한다. 이것은 중국의 '걸음이 옮겨감에 따라 경치가 바뀐다(步移景移)' 라는 의미와 일본의 회유식 정원에서 체험되는 동적 경관과 같은 감정 이입으로서 정형화된 외부공간에 시각적 조작을 통하여 생동감과 깊이를 부여시키는 연출 의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지역 상류층의 사상적 차이는 주택의 평면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규범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공간을 수평적으로 펼쳐 가는 등 보다 動勢的인 구
성체계를 보이는 畿湖地方의 외향적 공간배치 기법(저밀도의 구성, 담장 밖에도 비중을 두는 개방적인 苑의 성격, 실용성과 동적 감상기능)과 유교적 엄격성에 의한 절제성을 견지하면서 내적 수양주의 체험을 중요시하는 영남지방의 내향적 공간배치(고밀도의 구성, 담장내에 비중을 두는 園의 성격, 審美性과 靜的 감상기능)와 같은 지역적 차이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7. 비대칭적 균형 배치, 圓·方·角의 공간구성
전통민가의 배치 기법상 뚜렷하게 축의 개념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남북 또는 동서축에 의한 비대칭적 공간분화를 보인다. 이때 자연적 요소(庭)와 인공적 요소(棟) 또는 여자와 남자영역, 주인과 하인영역 등 二元性이 결합된 균형공간으로 지각된다.
·경관인식 과정에서 配山하여 동서 각기 다른 모습의 나즈막한 야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게 되는데, 자연환경속에 주택이 입지하게 되는 국면 자체는 위요와 개방성이 동시에 형성되어 좌우로 비대칭적 균형공간임을 인지하게 된다.
·인공의 채(棟)와 자연의 뜰(庭)은 하나의 짝을 이루면서 整齊性과 非整齊性을 공유하게 되는데, 부분적으로 볼때 정제성이 높은 건물 주위에 뜰이 형성되므로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함에 있어서 불가분 자연이라고 하는 비정제성이 개입될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하여 전체적으로 비정제성을 함축하며 통일된 균형공간이 된다.
·별당이나 外庭에는 생명성을 상징하는 규모가 큰 연못을 조영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天=陽=○, 地=陰=□, 人=中庸=△으로의 상징개념이 반영되어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공간속에서 朝雨될 뿐 아니라, 물이라고 하는 水景을 통하여 경관에 활력을 주고 감동을 주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확보되는 균형공간이 된다.
이러한 구성체계는 중국의 축을 중심으로한 좌우대칭적 조영의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자연이라고 하는 비정형적 요소에 감각적으로 인공을 조화시켜 中庸空間化를 시도한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8. 은유적 탐미관이 반영된 공간구성 (生態的 藝術空間)
안팎에서 인지되는 경관미 즉,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取景으로서의 外景과 인위적인 기교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으나 미적 감각이 잘 표현된 조영물의 곡선미, 인공미와 자연이 잘 융화된 후원의 花階, 담장, 池塘, 돌로 만든 점경물, 樓亭, 수목 등 아름다운 內景要素를 공간속에 투영시키는 은유적 탐미관을 엿볼 수 있다.
·取景에 유리한 입지구조를 보이는 사랑채의 경우 자연경관이 원경으로 借景되고, 마당에는 운치있는 庭心樹가 식재되기도 하여 附視를 통한 意景美를 체험할 수 있으며 대청문을 열어두는 정도에 따라 후원의 仰視 경관을 다양하게 觀景할 수 있게 된다. 또한 隅交形의 마당영역, 별정 등에서 1차로 인지되지 않는 여백을 통하여 상상의 공간을 연출함으로서 좁은 공간에서도 심원성을 확보하는 여백의 미를 곳곳에서 감지하게 된다.
· 花階쪽 대청문을 열었을 때 문틀 안으로 점경물이 나타나고 竹林과 松林 등으로 어우러진 뒷산이 연결되어 후정과 야생 초화류를 중심으로 단아한 순정미를 완상하게 되는데, 이러한 회화적인 사진틀효과는 怪石, 石蓮池, 煙家, 정갈한 장독대를 포함한 後庭의 아름다움, 그리고 연못의 섬에 식재된 소나무, 배롱나무 등이 한 폭의 정물화로 나타나는 별정의 연출기법에서도 認知할 수 있다.
·경관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수목의 재식에는 실용적 가치기준에 寫意性과 탐미관을 동시에 반영하는 작정의도를 보여주는데, 水·石의 적절한 사용으로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계절미를 통한 동적 감흥을 유발시킴은 물론 인체의 五感을 자극하는 생태적인 예술공간임을 발견하게 된다.
·대지 및 마당 형태는 대체적으로 장방형에 가까운데, 이때 장단변의 비례관계는 대지 1.3 : 1, 안마당 1.50 : 1, 사랑마당1.63 : 1, 행랑마당1.96 : 1, 샛마당 1.70 :
1, 사당마당 1.56 : 1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1.5∼1.7 : 1 범위는 공간에서 미적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고 하는 黃金比(1 : 1.618)의 근사값으로 추출된다.
·한편 풍류를 즐기고 경치를 玩賞하는 장소로 의미가 깊은 亭子는 완벽한 取景技法을 소화해 내는 경쾌한 미적 의장물인데, 李奎報(AD1168-1241)는 四輪亭記에서 亭子에 바퀴를 달아 경관 체험과 悅樂을 도모하는 遊景의 방법으로 이동성을 시도하고 있는바 이는 계절, 장소, 시간에 따라 감지되는 경관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완상하면서 자연속에 공간성+시간성을 담아내는 공간조영 철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민가는 미적 쾌감을 유발하는 회화적 공간구성과 경관미에 대한 연출효과를 은유적으로 극대화시키는 탐미적 공간구성으로 해서, 형식미학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상징적 간접표현을 동반하는 미적 원리가 표출되면서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통일성이 확보되고, 보고 느끼는 작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생태적 예술공간임을 감지하게 된다.
Ⅳ. 결론
한국민가는 산을 등지고 물이 앞에 흐르는 背山臨水+長風得水의 지형을 이상적인 터전으로 여겨왔는데, 영역을 배후지, 주택지, 경작지로 설정하여 俗에서 聖으로의 상징성을 표출하면서 민간신앙적 요소와 전통사상, 정치사회제도 등을 결합하여 정주환경 조성의 규범적 틀로 활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는데, 마을 및 단위주택의 환경설계원칙과 관련한 조경기법 및 공간구성 체계를 추적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1) 자연과 인공이 잘 융합되어 視知覺的으로 안정성을 부여하는 조화원리를 반영한다.
2) 토지이용과 동선체계에는 開方 ↔ 閉鎖로 영역이 擴張·展開되는 침투적 공간구성을 보이면서, 유기적 방향성을 가진 시선과 동선의 전개기법으로 해서 율동적이며 연속적인 공간구성임을 감지하게 한다.
3) 단위공간(채+마당)을 중심공간에 종속시키는 主와 從과 添의 위계적인 공간구성을 보인다.
5) 내·외부공간에 친근감을 주는 인간적 척도 개념이 공간 조영원리로 작용되고 있다.
6) 정적 공간 자체를 동적 공간으로 曲轉시키는 동세적 구성을 보인다.
7) 단위주택을 포함한 마을의 형국 등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인 균형공간을 이룬다.
8) 보고 느끼는 작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탐미관이 추출되며, 세부적으로 미적 쾌감을 유발하는 회화적 구성과 경관미를 은유적으로 연출하면서 상징적 표현을 동반하는 미적 원리가 반영된 조경기법과 공간구성 체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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