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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문제의 해법 : 시장보호와 소득보전
- 국내 정책의 핵심은 쌀소득보전 -
1. 들어가며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를 개편하는 문제가 점차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은 2012년 생산까지만 적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2013∼2017년까지 5년 동안 새로 적용할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작년 대선 당시부터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의 인상폭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 바 있다.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은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구하여 시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그동안 주로 정부와 국회 사이에서만 이 문제가 주로 협의되었다.
그러나 이제 수확기가 다가오기 때문에 올해 수확되는 쌀부터 새로운 목표가격이 적용되기 때문에 향후 5년간 쌀 소득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이 문제에 대해 쌀 생산농가를 비롯하여 농민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당연한 현안 핵심문제로서 목표가격과 고정직불금 논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며, 또한 중장기적으로 쌀의 소득보전 및 가격안정 차원에서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개편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경과
지난 2004년 정부는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를 도입하여 대체하였다. 추곡수매제도가 갖고 있던 주요 기능의 하나인 쌀 소득보전 기능을 직접지불제도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는 매우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 전부를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가장 핵심은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에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표 1.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의 경과
연 도 | 05 | 06 | 07 | 08 | 09 | 10 | 11 | 12 |
고정직불금(원/ha) | 600,000 | 700,000 | 700,000 | |||||
목표가격(원/80kg) | 170,083 | 170,083 |
2005년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은 2005∼2007년까지 3년간 적용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최초에 고정직불금은 1ha당 60만원이었고, 쌀의 목표가격은 80kg당 170,083원이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 1년 뒤인 2006년에 목표가격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고정직불금은 70만원/ha로 10만원이 인상되었다.
그리고 2007년 법률 개정을 통해 2008∼2012년까지 5년 동안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은 각각 70만원/ha, 170,083원/80kg으로 그대로 유지된 채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쌀의 시중가격 변화만을 고려할 뿐 생산비 증가 및 물가상승 등과 같은 요인은 전혀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쌀 생산농가의 실질소득이 하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즉 쌀 소득을 보전하는 기능 자체가 원래부터 매우 취약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급격하게 약화되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에 농민들은 쌀 소득의 보전을 위해 고정직불금을 대폭 인상하고, 목표가격도 생산비와 물가를 고려하여 인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후보를 비롯하여 각 대선후보들이 고정직불금을 100만원/ha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야당들은 목표가격도 20만원/80kg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후보 당선 직후 인수위 과정에서 고정직불금 100만원/ha 공약은 일치감치 폐기되었다. 박근혜정부는 기존 고정직불금에서 10만원을 인상한 80만원/ha으로 결정하여 고시해 버렸다. 그리고 쌀의 목표가격도 정부와 국회간 협의과정에서 정부는 현행 보다 4천원 오른 174,083원/80kg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 2. 박근혜정부의 고정직불금 및 목표가격(안)
연 도 | 13 | 14 | 15 | 16 | 17 |
고정직불금(원/ha) | 800,000 | ||||
목표가격(원/80kg) | 174,083 |
농민들은 박근혜정부에 대해 적어도 고정직불금 100만원/ha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기대했고, 목표가격도 상당한 수준의 인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고정직불금 공약도 저버리고, 목표가격도 겨우 2.4% 올리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박근혜정부에게서 쌀 생산농가의 소득을 보전하려는 의도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약간의 생색내기로 자신의 식언을 감추는데 급급한 추태만 확연히 보일 따름이다.
3.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근본적인 한계
지난 MB정권 5년간 쌀값은 2009∼2010년에 크게 폭락했다가 2011∼2012년에 겨우 회복되는 상황을 보였다. 소위 ‘쌀대란’이 역대 어느 정권 보다 극심했고, 쌀 농가의 소득 또한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
당시 정부는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가 있기 때문에 쌀값이 폭락해도 쌀 농가의 소득은 상당 부분 보전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해 왔다. 이로 볼 때 정부는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근본적인 결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농민과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를 보인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를 도입할 당시부터 이 제도가 쌀의 소득을 보전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해 왔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쌀 농가의 천문학적인 소득 손실이 그것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쌀 농가의 실질소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쌀값과 쌀 생산비 그리고 물가 수준이다. 그런데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는 쌀값의 변화만 반영할 뿐 생산비와 물가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비의 증가 및 물가의 상승으로 인한 쌀 농가의 소득손실을 막을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는 추곡수매제가 마지막으로 시행되었던 2004년 수준의 쌀 소득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목표가격과 고정직불금을 설정했기 때문에 쌀값이 하락할 경우 실질소득은 고사하고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2004년 수준의 쌀 소득을 넘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09∼2010년과 같이 쌀값이 폭락했을 경우에는 명목가격 기준으로도 쌀 농가는 막대한 소득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4. 그동안 쌀농가의 실질소득 손실은 얼마나 되나
2008∼2012년 5년 동안 수확기 평균 쌀값은 156,597원/80kg이었다. 그런데 추곡수매가 마지막으로 시행되었던 2004년 수확기 쌀값은 161,630원/80kg이었다. 지난 5년간 평균 쌀값이 2004년 대비 약 3.2% 하락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동안 쌀의 평균 생산비는 100,863원/80kg 인데 비해 2004년 쌀의 평균 생산비는 91,189원/80kg이었다. 지난 5년간 쌀의 생산비가 평균적으로 약 10.6% 상승한 것이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평균 물가지수는 100.38이었고, 2004년 물가지수는 83.8이었다. 지난 5년간 평균 물가수준이 2004년 대비 16.6% 상승한 것이다.
표 3. 쌀값, 생산비, 물가 비교(2008∼2012년)
| 2004년 (기준년도) | 2008∼2012년 (5년 평균) | 증감율 | 비고 |
쌀값(원/80kg) | 161,630 | 156,597 | - 3.2% | 85% 보전 |
쌀생산비(원/80kg) | 91,189 | 100,863 | + 10.6% | - |
물가지수 | 80.9 | 100.38 | +16.58% | - |
지난 5년간 쌀값은 기준년도인 2004년 대비 3.2% 하락했다.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는 하락폭의 85% 까지는 보전해 준다. 그래서 순전히 명목가격만 놓고 보면 쌀 농가의 소득은 2004년 대비 매년 평균적으로 약 0.5% 감소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비와 물가수준이 2004년과 똑 같다는 전제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쌀 농가의 소득에서 쌀값과 함께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쌀 생산비이다. 쌀 생산비는 지난 5년간 평균 10.6% 증가했다. 쌀값은 3.2% 하락하고 생산비는 10.6% 증가했기 때문에 쌀 농가의 소득은 2004년 대비 매년 평균적으로 약 13.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추곡수매를 폐지하고 직접지불제도를 도입한 이후 쌀 농가의 소득은 기준년도와 비교할 때 매년 약 13.8% 줄어든 것이다.
쌀 농가의 소득은 생계유지와 소비생활을 위한 구매력의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쌀 농가 입장에서는 소득의 실질적인 구매력, 즉 실질소득이 피부에 와 닿는 소득이 된다. 같은 기간 동안 물가수준은 16.58% 상승했기 때문에 결국 2004년 대비 쌀 농가의 실질소득은 30.38% 하락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산방식과 기준년도 설정에 따라 구체적인 수치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농업전문 연구기관들의 조사 결과도 대부분 지난 5년간 쌀 농가들이 천문학적인 소득손실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농협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10a당 쌀직불금 합산 실질소득은 2005년 814,875원에서 2010년에는 599,249원으로 215,626원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값이 폭락했던 2010년 한 해에만 쌀 농가의 실질소득이 기준년도에 비해 약 26.5% 감소했다는 것이다.
둘째, Gs&J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쌀 80kg 기준으로 2003∼2004년 평균 실질 농가수취가격 대비 2010∼2011년 평균 실질 수취가격은 39,518원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값이 폭락했다가 회복되는 추세에 있던 2010∼2011년의 경우 기준년도 대비 쌀 생산농가의 실질 수취가격이 19.2% 감소했다는 것이다.
셋째, 위 두 연구기관의 조사결과가 감소율(%)로 표시한데 비해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에서는 쌀 농가의 소득손실을 금액으로 표시하였다. 녀름에 따르면 2004년 대비 2008∼2011년 동안 쌀 농가의 실질소득 감소를 모두 누적하여 합산하면 약 10조9,76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농가의 실질소득이 매년 평균적으로 약 24.9%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당면 현안인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에 대해
앞에서 보았듯이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는 쌀 농가의 소득보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보전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만들려면 현행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올해 수확기부터 새로운 목표가격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고려할 때 우선 당면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부터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정직불금의 금액을 산정하는 특별한 공식은 없다. 고정직불금의 금액을 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과 기준은 사회적 합의 수준이다. 식량자급률, 도농간 소득격차, 과거 5년간 쌀농가의 소득손실 등과 같은 제반 사항을 고려하여 사회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ha당 80만원으로 결정하여 고시한 것은 사회적 합의와 무관하게 정부의 독단적 결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것은 지난 대선 당시 제시되었던 공약들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하여 여야 대선후보 모두 고정직불금을 1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농민들은 이 금액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 공약에서 제시되었던 고정직불금 수준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목표가격의 경우 정부는 현행 시행령에 따라 계산하여 4천원을 인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현행 방식 자체가 실질적인 소득보전을 하기에는 많은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소득보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목표가격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비 증가 및 물가 상승을 고려한 목표가격 설정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를 다 고려할 수 없다면 작어도 하나라도 반영하여 목표가격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5년간 생산비는 평균 10.6% 상승했고, 물가는 16.8% 상승했다. 따라서 목표가격을 설정함에 있어서 최소한 평균 생산비의 증가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10.6%를 최소한의 인상율로 고려할 수 있고, 두 가지 모두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30.38%를 최대한의 인상율로 고려할 수 있다. 최소치와 최대치의 사이에 적정한 인상 수준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편 일부에서는 현행 직접지불제도가 면적(ha)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직불금이나 목표가격을 올려도 대농에게 유리하고 소농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이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방법은 첫째, 직불금을 지급하는 면적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과 둘째, 면적규모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규모가 작은 구간에 대해서는 ha당 단가를 높게 책정하고 규모가 큰 구간에 대해서는 단가를 낮게 책정하는 것으로 역누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대농 보다는 소규모의 농민을 지원하는데 보다 효과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6. 중장기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개편에 대해
당면 현안인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을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도의 근본적인 결함을 해소할 수 있는 전면적인 제도 개편이 중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관해 농민단체와 녀름 연구소는 이미 ‘기초농산물 수매제’라는 것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쌀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정부의 직접수매와 농협의 약정수매를 통해 쌀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이 그 골자이다.
현행 변동직불금의 경우 가격이 크게 하락한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차액의 85%를 기준으로 보전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폭락할 경우 아무리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농가의 소득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지 않도록 적정한 가격안정대의 범위내에서 안정적으로 가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초농산물 수매제를 통해 가격안정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다.
또한 현행 직접지불제도의 경우 목표가격을 설정하고 직불금이 목표가격 및 시중가격과 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감축대상보조의 한도를 고려해야 한다. 만약 가격이 크게 폭락할 경우 변동직불금이 감축대상보조 한도를 초과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차액의 85% 보전이라는 현행 제한적인 목표조차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변동직불금의 경우 앞서 언급한 기초농산물 수매제의 가격안정장치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가격이 폭락한 뒤에 사후적으로 소득보전을 위해 작동할 것이 아니라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여 사전적으로 소득보전을 실현하는 것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현행 고정직불은 농업 전반의 소득보전장치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과 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농업에 소득보전 형식의 고정직불을 기본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고정직불은 가격과 연동되지 않아 허용보조가 되기 때문에 WTO의 보조금 한도를 고려하지 않고 국내적 여건만 고려하여 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모든 농지를 대상으로 기본형 고정직불을 시행하고, 여기로 특별한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가산형 고정직불을 추가로 결합할 수도 있다. 추가적인 가산형 고정직불의 명목으로는 환경보전, 식량안보, 생물다양성 등과 같이 매우 다양하게 정책목표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경우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한국농정신문> 2013년 08월 16일 (금) 17:20:35 원재정 기자 jjsenal@naver.com
농경연 쌀 관세화 설문조사 ‘엉터리’ 논란
내용 모르는 농민 수두룩한데 관세화 찬성 78%?
“관세화 이익만 부각시킨 자료 읽고 답하라니 … 조사 하나마나”
“농가 설문조사 결과 77.7%가 쌀 관세화에 찬성”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최세균)의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에 “믿기 어렵다” “명백한 여론 호도”라는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농경연은 농민들의 여론이라고 발표했지만, 설문 대상자의 대표성도 설문문항의 객관성도 모두 담지 못한 ‘함량미달의 조사’라는 것이다.
농경연은 13일 ‘쌀 관세화 유예와 대외경쟁력’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박동규 농경연 농업관측센터장은 2004년 쌀재협상 결과 2014년까지 연장된 관세화 유예 조치에 대해 “매년 쌀 수입량이 늘어나고, 수입쌀의 일정비율이 밥쌀용으로 시장에 판매되는 등 관세화 유예로 인한 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국내 쌀소비량이 점차 줄고 있는데 소비량의 일부가 수입쌀로 대체되면서 쌀농가와 도정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덧붙였다.
박 센터장은 이같은 이유로 2015년부터는 쌀에 고율의 관세를 매겨 수입쌀의 단가를 높이는, 쌀시장 개방론에 힘을 실었다. 관세화를 더 이상 유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해 당사자 농업인의 입장’에 대해 농경연 자체 설문결과를 들어 “응답 농가의 77.7%가 관세화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쌀 시장 개방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농민 절대다수가 관세화에 찬성한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 될 만했다.
박 센터장도 “생각한 것보다 많은 비율이 관세화에 찬성했다”“생각보다 관세화에 적극적이다. 이왕 갈 거 빨리 관세화 하자는 조기관세화 입장도 높다”고 언급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토론회 보다 3시간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으로 강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설문 결과에 대해 토론자인 충남 예산 농민 박진수 씨가 제동을 걸었다.
박진수 씨는 “원망스럽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이 지났는데 쌀관세화를 할거냐 말거냐 논의만 하고 있다. 쌀관세화 유예 발표하면서 10년을 준비한다더니, 한 게 뭐있냐”고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오늘 토론회도 국익에 관세화가 도움된다고 하니까 틀 짜고 토론회 하는 것 같다”면서 “내 주변 농민들은 관세화가 뭐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설문결과는 이렇게 많은 농민들이 관세화를 찬성한다니, 표본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고 반박했다. 농민들은 관세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는데, 관세화 찬성률이 높은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과 설문조사 결과의 괴리는 설문조사지에서 비롯됐다.
실제 농경연은 7월 농업관측센터 쌀 표본농가 1,282호를 대상으로 관세화 전환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고, 일부를 토론회 자료집에 수록했다.
자료집에 따르면 관세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농가는 65.1%, 인식하지 못하는 농가는 34.9%다. 그런데 1번 문항의 경우 관세화전환에 대한 입장을 묻고 (1)찬성 (2)반대 (3)모르겠다 중 (3)을 선택한 농가는 관세화 전환 배경 등에 대한 설명자료를 읽고 다시 질문에 응하도록 했다.
설명자료 내용은 이렇다. 「관세화로 전환될 경우,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어 현재 의무적으로 수입되는 물량 외에는 추가적인 수입 가능성은 매우 낮아 관세화가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중략)…관세화 유예를 지속할 경우 의무수입물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2015년부터는 최소 경기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량만큼 쌀을 수입하고, 추가적으로 매년 도입물량을 더 늘려서 수입해야 합니다」 관세화로 전환했을 때는 이익만을 부각시키고, 관세화 유예했을 때는 불이익을 강조하고 있다.
관세화를 잘 모르는 농가가 이를 읽고 선택할 수 있는 답이란 불을 보듯 뻔한, 하나마나한 조사가 된 셈이다.
혹자는 “이런 설문 조사 구조라면 100% 관세화 찬성도 나올 법 하다”고 꼬집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대종 정책위원장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유도심문의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쌀을 지키자는 정부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증거다. 국내 쌀산업 보호를 위해 현상유지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런 가능성은 배제한 채, 국책연구기관과 정부가 협상에 임하기 전에 관세화만이 답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있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다. 국내 쌀생산 농가를 보호하고 주식을 지키는 방안에 대해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2013년 8월 14일자 사설
쌀 시장 개방 문제가 20년 만에 최대 농정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와 합의한 쌀 관세화 유예기한이 내년 말로 끝나게 돼 1년 안에 개방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어제 “농민의 77%가 쌀 관세화에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을 앞세워 쌀 시장 개방에 대한 여론몰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쌀은 단순한 시장경제 논리를 넘어 농민의 생존권 및 식량주권 문제와 연계된 예민한 사안이다.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시장 개방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쌀 농가의 피해보전과 식량 자급률 확보 대책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쌀 문제 공론화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WTO에 관세화를 추가로 유예할지를 결정한 뒤 내년 9월까지 통보해야 한다. 고작 1년 남짓 남았다.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따라 10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한 뒤 한 차례 더 기한을 연장했다. 대신 의무수입물량에 해당하는 수입 쿼터를 정해 쌀 수입량을 늘려왔다. 내년 의무수입물량은 40만9000t으로 국내 쌀 소비량의 8.3%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말만 앞세울 뿐 뚜렷한 대책이 없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수입쌀과 국내산 가격 차이가 좁혀진 데다 의무수입물량 부담을 감안하면 관세화가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번 여론조사도 이 같은 취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의 조사마저 엉터리로 드러났다. 관세화에 찬성한 것으로 발표된 77% 농민 중 35%는 ‘관세화가 뭔지 모르겠다’고 응답한 사람들이었다. 연구원은 이들에게 관세화의 장점을 설명한 뒤 찬성 응답을 사실상 유도했다고 한다. 진정성 있는 대책을 갖고 농민들을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여론조작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쌀 시장 개방은 섣불리 결론 낼 일이 아니다. 수입쌀에 400~500%의 관세를 매긴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거나 맺을 예정인 미국·중국의 쌀 관세율 인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쌀 자급률은 2010년 104%에서 1년 만에 83%로 주저앉았다. 다른 식량자원을 포함한 식량 자급률은 4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더구나 농촌 현실은 농가부채가 가구당 27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어렵다. 정부가 이들 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먼저 내놓는 게 순서다. 쌀 시장 개방은 그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