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분실자살 기도’라는 말에 대하여
분신이라는 말은 세 가지쯤 다른 뜻을 가진 말로 알 것이다. 그 하나는 “갈라져 나간 또 하나의 몸”이고 다음은 “몸이 가루가 될 만큼 애쓴다”는 뜻이고, 세 번째는 “제 몸을 불로 태워 죽는다”는 말이다. 이중 세 번째 말로 쓰는 분신은 중국 글자말 사전에도 없고 일본말 사전에도 없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없는 말이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분신이라고 하면 첫 번째나 두 번째의 뜻을 가진 말로만 알았는데, 오늘날에는 모두가 ‘불타 죽는다’라는 말로 안다. 여기에 ‘자살’이란 말이 붙었고 다음으로 ‘기도’라는 말이 붙어 분신자살 기도는 틀로 굳어진 말이 되었다. 여기서 ‘기도’라는 말은 반드시 없애야 할 말이다. ‘기도’ ‘기도하다’라고만 쓰면 누구든지 ‘빈다’는 뜻으로 알 것이다. 또 ‘하려 한다’고 할 것을 기도한다고 쓰기도 하지만 ‘덮어두려 한다’고 쓰면 될 것을 ‘은폐를 기도한다’고 쓰는 수가 많다. ‘몸을 태우다’, ‘불타 죽으려’라고 고쳐서 쓸 것을 권장한다.
17. 뿌리가 있는 말, 뿌리가 없는 말
부산지역의 말에 시장에 쌀을 사러 가는데 “팔러”간다고 하는데 ‘사다’와 ‘팔다’를 구분하지 않는다. 물건과 물건을 바꾸면서 살아갔을 때 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백성들의 말은 그 어떤 말이든지 갑자기 허황되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뚜렷한 사물이나 사실이 있어서 생겨났다. 백성의 말은 뿌리가 있다. 그런데 요즘 생겨나는 중국 글자말과 서양말은 뿌리가 없다.
젊은이들 속에서 변질되어가는 말도 그렇다. ‘석 장’ ‘석 달’할 것을 세 장, 세 달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요즘 젊은이들이 모두 말을 말로서 실제 생활에서 배우지 않고 책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삶에서 떠난 말의 변질을 보면 겨레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8. 남의 말을 글로 적을 때
남이 입으로 말한 것을 글로 적어 보일 때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적어야 한다. 다음의 신문기사를 보자
천안 “아파트 붕괴” 헛소문 떠들썩
수도권 새 도시 건설 현장의 불량 레미콘 공급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최근 충남 천안시에는 “백성동에 짓고 있는 현대 아파트가 붕괴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아 천안시장이 현장 확인 점검에 나서는 등........
사람들이 ‘무너졌다’라고 말했음이 분명했음에도 ‘붕괴’라고 쓴 것은 살아있는 말을 죽은 말로 옮겨 쓴 것이라 안타깝다.
외국사람의 말도 우리 말로 옮겨 쓸 경우도 우리들의 입말이 되도록 써야 한다. 외국말을 직역해서 이상한 말을 만들어 내는데 어느 신문기사에 났던 외국인이 말한 것을 지면에 옮겼는데 ‘나에게 있어’라는 말고 ‘나로서는’으로 고쳐야 하고 ‘... 세미나 참석을 종용했다’라는 말도 ‘.... 권했다’라는 말로 고쳐야한다.
19. ‘입장(入場)’이라는 일본말
자주 쓰이고 가장 많이 쓰는 일본식 중국글자말을 든다면 입장이 될 것이다. 해방 뒤에 『우리말 찾기』 책에 ‘처지’란 말로 쓰자고 해놓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입장은 거의 다 쓰고 있다. 이 말을 대신할 우리말은 없는가?
다음의 여러 경우를 생각해 보자
1)낙동강 상수원 오염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2)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
3)교육을 바로 세울 교육위원 선출에 즈음한 우리의 입장
4)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분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 경우에는 입장을 대신해 태도로 쓰면 훨씬 알맞은 우리말이 된다.
다음의 신문기사 제목을 보자
1)경찰조사 반발 – 재야 입장
2)미봉개각 – 시국 긴장 계속
오늘 확대 당정회의 정국운영 입장 정리
3) 제3자 입장서 짜임새·무대효과 등에 조언
4)‘사찰’수용으로 ‘핵 철수’부각
‘한반도 핵무기’ 수세 몰린 미국 입장
5)4·19주역들 ‘점진적 개량’ 입장
1)2)5)는 ‘태로’로 쓰면 되고, 3)4)는 ‘처지’라야 알맞다. 입장은 본래 일본글 따라 쓴 글말이었는데, 이 글말이 이제는 입말까지 되었다. 표준말이고 교과서고 또 어떤 유명인사의 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쓰는 말, 어린아이 적부터 지껄여온 말임을 알아야 한다.
20. 몰아내어야 할 일본말
우리가 일본말을 몰아내어야 하는 까닭은 일본말을 배우게 된 지난날의 역사가 두 나라 사이에서 정상으로 이뤄진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말을 따라 쓴 말을 쓰는 주범을 신문이다. 신문에 자주 나오는 일본말과 이 말의 바로 쓰임새를 들어 보겠다
1) ‘적자’는 ‘손해’, ‘손실’, ‘부족’, ‘빚’ 같은 말을 쓰고 ‘적자 운영’이면 ‘밑진 운영’이라 쓰면 된다.
2) ‘인상’은 ‘올려’하는 우리말이 있고 ‘인하’도 ‘내려’라고 쓰는 것이 맞다.
3) ‘적립식’은 ‘쌓아두기’로 하면 되고 ‘대출’은 ‘빌려주기’로 쓰면 된다. 이 밖에 ‘매출’->‘팔기’, ‘매출액’->‘판돈’, ‘매상’->‘팔림’, ‘매입’->‘사들임’, ‘인출’->‘찾아냄’으로 쓰도록 한다.
4) ‘명도’는 ‘내주기’, ‘넘겨주기’로 바꿔서 쓰고 비슷한 ‘인도’는 ‘건네줌’, ‘건넴’으로 쓴다.
5) ‘담합’은 ‘짬짜미’로 쓴다.
6) ‘지분’은 ‘몫’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다.
7) ‘차출’은 ‘뽑아내’로 하면 그만이다.
8) ‘역할’은 ‘노릇’이나 ‘할일’로 쓰면 맞다.
9) ‘취급당하고’는 ‘대우받고’ 혹은 ‘처리되고’로 쓴다.
10) ‘적환장’은 ‘쌓아두는 곳’이라 쓰면 되고, ‘매립장’은 ‘묻는 곳’이면 된다.
11) ‘연인’도 ‘애인’이라면 된다.
12) 이 밖에 ‘수순’은 ‘차례’나 ‘절차’로 ‘할인’은 ‘덜이’, ‘깎음’으로, 노견은 ‘길섶’으로 쓴다.
21. 일본말을 따라 쓴 ‘불리다’
“옛날부터 6월을 보릿고개라고 했다.”
“어릴 때 천재라고 하던 그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이런 말들에 나오는 “했다”와 “하던”은 ‘(누구나)말했다’ ‘(누구나) 말하던’이란 뜻으로 널리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하다’를 부르다란 말로 바꾸고, 다시 이것을 입음꼴(피동형)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옛날부터 6월은 보릿고개라 불렸다.
어릴 때 천재라고 불리던 그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이것은 완전히 일본말을 따라 쓰는 꼴인데,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우리말과 글이 거의 모두 이렇게 되어가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자주 나오는 불리는, 불려온, 불리워지는 따위는 모두 ‘-고 하는’으로, 불리던은 ‘-고 하던’으로, 불렀다는 ‘-고 했다’로 써야 알맞은 말이 된다.
22. 귀에 거슬리는 ‘먹거리’
먹거리는 우리 말법에 맞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만든 말’이니 ‘먹을거리’라고 말해야 한다. 먹거리라는 말은 필자는 어디에도 들은 적이 없다. 글로서도 읽은 바가 없다. 움직씨의 줄기에 ‘거리’를 붙여서는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입거리’나 ‘읽거리’등도 쓸 수 없다.
23. 다시 ‘-적’에 대하여
일본말에는 원칙으로 된소리나 닫힘소리가 없고 예삿소리와 열린소리뿐이지만, 우리 말에는 예삿소리와 된소리, 열린소리와 닫힘소리가 고루 있다. 지난 글에서 ‘-적’을 많이 쓰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일본사람들이 이 말을 많이 쓰게 된 까닭은 부드러운 소리밖에 낼 수 없는 일본말의 결함을 보충하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나왔다.
‘-적’과 같은 된소리나 닫힘소리로 나오는 한자말은 너무 많다. ‘개발박차’할 때 이 박차란 말은 느낌부터 엉뚱하고 좋지 않다. ‘서두른다’고 하면 좋다. ‘파업 돌입’이란 말도 이렇게 닫힘소리만 쓰지 말고 돌입을 ‘들어간다’든지 ‘시작’이란 말로 써야 한다. 특히 필히란 어찌씨도 ‘더구나’ ‘반드시’로 써야 우리 말이고 낙엽도 ‘가랑잎’이 좋다.
24. 우리 말을 쓰면 제목이 길어지는가
우리 글로 쓰면 제목이 길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목이 길어지니까 우리 말을 쓸 수 없다고 해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 중국 대기공해, 한반도 대량유입
여기서 대기는 그냥 ‘공기’로 쓰고 유입을 ‘날아와’하면 더 낫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쓰겠다.
• 중국 공기 공해, 우리 땅에 마구 날아와
글자가 한 자가 늘어나도 우리말을 쓰는 것이 옳다. 몇 개의 고쳐야 될 말을 들어보겠다.
• 가시화 -> 드러난
• 어불성설(語不成說) -> 말도 안 돼
• 유명무실 -> 이름뿐(글자가 석자로 준다)
• 도서 -> 섬, 투입 -> 들여
• 수면 -> 자고, 수면습관 -> 잠버릇
• 살해 -> 죽여
• 토양 -> 땅 또는 흙
• 주민 항의 불구 -> 주민 항의해도
25. 입말과 글말
글은 쉽게 읽어서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이러려면 입으로 하는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낱말도 말법도 입말을 살려서 쓰는 것이 가장 미덥다. 남의 글을 읽을 때도 좀 말이 어렵거나 이상하게 되어 있으면 입말로 고쳐볼 필요가 있다. 신문기사에서 우리말로 다듬어야 할 예를 들어보겠다.
•정체불명의 병 -> 알수 없는 병, 정체를 알 수 없는 병
•연명해오다. -> 목숨을 이어오다.
•활력을 -> 생기를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 정상으로 생활을 하고, 보통사람의 생활을 하고
•현재 -> 지금, 이제
•갑자기 졸도 -> 갑자기 쓰러져
•1년 후 -> 1년 뒤
•그녀의 호흡과 맥박이 -> 그의 숨과 맥이, 숨과 맥이
(그녀란 말은 우리 말에 없다. 우리말로 ‘그’라고 하면 된다)
•기적적으로 재개 되었으며 그 후 ······· -> 기적같이 다시 열렸으며 그 뒤……
글은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말이 으뜸이고, 글이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말이 글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첫댓글 늦게 올려 송구하고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무의식 중에 입으로 뱉는 말이 바르게 쓰는 말이 아닌데도 생각도 해보지도 않고 고치려고 하지도 않는 현 세태도 안타깝습니다. 저조차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부끄럽습니다. 글쓴이가 과격한 표현을 쓰면서까지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고 주장하는데는 이런 절박함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 번역을 할 때도 일본어체나 서양어체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말로 바르게 표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어제군요^^;) 한 TV뉴스에서 이 달의 프로그램을 수상한 프로그램 제목이 '먹거리 X파일'이었습니다. 프로그램 만든 사람에게 '움직씨의 줄기에 ‘거리’를 붙여서는 말이 안 된다'라는 글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불리던' 이 표현이 그런 어원인지 몰랐어요 이럴수가 ...
영어에서 what we call, be called 등 얼마나 많이 이런 표현을 불린, 불리던으로 번역했는지 ..
국어공부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ㅜㅜ
무엇이 우리 백성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한 가지 생각나는 점은 우리 의식 속에 '사대주의'가 여전한 듯합니다.
예를 들어 한자어와 영어 더 나아가서는 불어 라틴어 희랍어 등을 섞어 쓰면 좀 나아보인다는...
특히 한자어는 그 뿌리가 깊어서 그것이 일본어 중국글자어인 줄도 모르고(아니 알면서도 썼을 시대가 있었을지도)
쓰는 버릇이 고학력일수록 심하다는 것이 저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일부러라도 신경을 써서 고치려 노력할 것을 번역팀원들에게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