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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世界觀 worldview) = 세계를 바라볼 때 쓰는 안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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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어(J.Sire) |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갖는 일련의 전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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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스(A. Wolters) |
"사물에 대한 기본 신념의 종합적인 틀" |
<세계관의 특징>
⑴ 신앙에 기초하는 신념의 문제이다. ex) 진화론도 무신론적 세계관에 근거한다.
⑵ 공유적(shareable)이며 공동체적(communal)이다. 개인이 소유하지만 개인의 전유물은 아니며 공유되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⑶ 다양하며 상대주의 적이다.
⑷ 삶의 방향감각과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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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進化論 evolutionism) VS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 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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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물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연히 탄생 |
초월적 존재(창조주)가 자유의지로 우주만물 완벽하게 만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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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적 유물론, 우연에 기초한 자연주의(naturalism) |
유신론(창조주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삶이 목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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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종의기원,1859> 출간이후 학계 주도 |
중세에 학계 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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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 이므로 양자를 분리하자고 주장 |
두 이론 모두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신념이며 신앙이다. |
1.2 진화론적 세계관 ←철학적 기초: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人文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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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 (humanism) 인간의 중요성 능력중시 신의영역 극소화 주장 |
⇒ |
16-18C 이성주의 (rationalism) 계몽주의 (illuminism) 교회권위에 대항.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비판으로 인간생활 개선 목표 |
⇒ |
세속인본주의 뉴에이지운동 포스트모더니즘 과 함께 세계로 확산 |
공통점: 신을 배격,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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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진화론의 구성
① 화학진화론(chemical evolutionism) : 구소련의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 1937>에서 정립한 가설. 자연발생설(abiogenesis)에 기초
② 생물진화론(biological evolutionism) : 다윈이 <종의 기원, 1959>에서 체계화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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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Charles Dawin)의 <종의 기원, 1959> - 생물은 필요이상으로 출산한다(overproduction) - 개체들 사이에는 변이가 일어난다(individual variation) - 이들은 서로 경쟁한다(mutual competition) - 환경에 가장 적응하는 자가 생존한다(the survival of the fittesst) -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우량종은 선택한다(natual selection)
그러나 다윈주의의 모순이 밝혀지면서 이를 보완하려는 여러 대체이론이 등장 ; 신다윈주의, 신라마르크주의, 정향진화설, 현대종합이론, 분자진화설, 도약진화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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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두 명령 ① 문화명령 → 창조질서의 회복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1:28)” ② 대위임령(great commission) → 영적회복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hwp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 |
* 기독교 세계관의 우월적, 구별성(신학자 R. 네쉬, 2003)
(1) 신에 대해: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초자연적 인격신으로 믿음. 무신론 ․ 다신론 ․ 범신론 ․ 유대교 등과 구분됨
(2) 신과 우주의 관계에 대해: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 ․ 간섭하시는 창조주를 믿음으로 우주의 영원성을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나 우주에서 목적론을 배제한 자연주의와 구분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므로 이신론(deism)과, 무에서 우주를 창조를 믿으므로 플라톤주의와 구분됨
(3) 인간의 감각에 대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고 여기므로 회의주의나 불가지론과 구분됨. 감각적 경험이 지식이 원천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극단적 합리론과 구분. 진리의 근거가 성경에 있다고 믿으므로 지식의 출발을 인간에게서 찾으려는 인본주의와도 구분.
(4) 도덕법칙에 대해: 창조주가 하나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으며, 우주를 운행하는 자연 칙처럼 인간사회에는 도덕법(율법․양심)을 주셨다고 믿으므로 도덕의 근원을 인간의 욕구에서 찾으려는 주관주의적 윤리학과 구분됨.
(5) 인간에 대해: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이해하므로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는 결정론과 구분됨. 인간행위에 대해 사후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비물질적 영혼이라고 주장하므로 물질주위와도 구분됨.
1.4 유신 진화론적 세계관 ; 교회안의 진화론적 세계관
창조주가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고 말함. 신의 존재도 인정하면서 진화론도 수용하자는 의견이지만 양측에서 모두 배격당하고 있음. 하지만 세계학문의 중심역할을 하는 구미의 많은 지성인들이 이 이론을 선택하고 있다.
2. 주요 논쟁점
2.1 우주관
우주의 기원 -창조론(creationism); 하나님이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
-진화론(evolutionism):“빅뱅설(Big Bang theory)”
;우주계란크기로 팽창했을 때 갑자기 폭발해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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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evolutionism) VS 창조론(creationis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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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폴란드)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주장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떠돌이별에 불과하다. ②(미국)세이건; 지구는 거대한 우주적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점. 우리 은하계에 100만계의 선진문명이 있을 것이라 주장. |
①(영국)카터 ;“제멋대로 보이는 물리적 상수들은 한가지 이상의 공통점을 가진다. 만약 당신이 생명을 가진 우주를 만들기 원한다면 그것들이 정확히 당신이 필요로 하는 숫자들이 될 것이다.” ②리스;“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몇가지 기본적인 물리상수에 의해 의존하며, 생명의 존재 가능성은 그 수치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 |
⇒최근에 지구에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보호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중심원리(anthropic principle)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구의 위치․크기․구성․대기조성․온도 몇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 뿐 아니라, 지구 주위를 도는 행성도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2.2 지층과 화석의 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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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evolutionism) VS 창조론(creationis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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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허튼(James hutton), 라이엘) 지형이 풍우와 기후에 의해 장기간 점진적으로 형성, 지층은 하부에서 상부로 차례로 축적되었다고 주장. |
*격변설(catastrophism) -헨리모리스(Henry Moris) 노아홍수에 의한 대 격변으로 오늘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다. 증거) 1980년 5월 미국의 세인트 엘렌스 산 |
2.3 생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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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설(abiogene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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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생설(續生說, biogene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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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C 헬몬트(Van Hermont) ;쇠고기를 거적으로 덮어두면 쥐가 저절로 생긴다고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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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Louis Pasteur) <자연발생설에 대한 실험적 검토, 1861>에서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는 속생설 입증” 2,000여 전 지속된 자연 발생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
⇒생명 속생설은 슐라이덴과 슈반, 피르호에 의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무신론적 유물론을 표방한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1937>에서 화학 진화설을 주장하면서 자연발생설이 부활하게 되었다.
2.3.2 종의 가변설 대 불변설
-종의 불변설(fixity of species) : 린네(Carl linneus)<자연의 체계, 1758>주장, 큐비에(1829) 지지 →이론으로 자리 잡음.
-가변설(可變說): 생물 종(種,species)이 변한다.(라마르크),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체계화.
⇒이러한 창조-진화 양측의 대립이 옥스퍼드 논쟁(Oxford Debate, 1960,6)으로 이어짐.
멘델의 유전법칙은 1865년 진화론자들에 의해 발표 거부당함. 1900년 멘델의 유전법칙이 정설로 인정되면서 진화론이 위기에 몰림. 그러나 신 다윈주의(Neo-darwinism) 등장으로 진화론 살아남.
2.3.3 인류 기원과 인종분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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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evolutionism) VS 창조론(creationis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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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다(多) 지역설(地域說): 인류가 세계각지에서 동시에 출현했다. ②단일(單一)지역설(地域說):아프리카에서 첫 사람이 출현했다. → 이 두 학설은 서로의 이론을 비난함. |
노아의 대홍수 후에 생존한 노아의 자손들이 시날(수메르)평야로 이동했다 →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쌓은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나뉘면서 같은 말을 하는 어족들끼리 세계 각지로 이동․분산해 오늘의 인종을 형성했다. |
※진화론의 예언자 “헥켈(Ernst H. Haeckel, 1834~1919)”은 아메바․어류․도롱뇽․거북이․닭․원숭이를 거쳐 진화했다는 증거로 ‘배(胚) 발생도’를 만들어 홍보하면서, 계통발생설을 주장했다. 지금도 국내 생물교과서에 실린 이 그림은 사실은 정교하게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3. 창조-진화의 주요 논쟁
3.1 미국 교육계의 창조-진화 논쟁
미 ․ 소 우주 경쟁에서 소련이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1961)를 먼저 발사하자 미국은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상황가운데 대통령에 취임한 케네디는 달에 우주인을 착륙시킬 아폴로 계획과 과학교육의 현대화를 위한해 진화론의 도입을 목적으로 인간자유선언을 발표했다. 미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인종차별, 공포, 빈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연방헌법이 개정되면서 기독교 교육에 대한 위헌판결이 뒤따랐다. 이일에는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가 앞장섰다. 미국 교육계에 진화론이 급속히 확산되자 이에 위기를 느낀 모리스(Herry Moris) 등은 1970년대 창조론을 성경적 창조론과 과학적 창조론으로 구분하고, 과학적 창조론을 진화론과 더불어 생물 교과서에 삽입시키는 운동을 전개했다. 미국에서의 주요 창조-진화논쟁을 소개한다.
3.1.1 스코프스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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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에 관해 밝혀진 몇 가지 사실들 (Some Facts about the Scopes Monkey Trial) -Stephen Caesar 일명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라고 불리는 스코프스 재판은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였다. 1925년 테네시주 데이톤(Dayton)에서, 공립학교 교사 존 스코프스(John Scopes)는 테네시 주에서는 일찍이 가르치는 것이 금해졌던 진화론을 가르침으로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로 인한 법정에서의 싸움은 서로의 입장을 옹호하는 두 명의 거장들의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창조론을 대변했던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하였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었고, 진화론을 대변했던 사람은 유명한 변호사이며 이성주의자였던 클러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였다.
많은 부정확한 내용들과 오해들이 이 유명한 사건에 관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확한 내용들과 오해들은 거의 대부분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연극과 영화 “바람의 상속자(Inherit the Wind)”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2005년 4월에 스미소니언(Smithsonian) 지에 게재된 한 기사는 이 사건들로 발생했던 잘못 알려져 있던 일부 신화들을 정리했다. 신화들 중 하나는 스코프스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마녀 사냥에 의한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스미소니언 지의 글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 “인기 있었던 연극과 영화 '바람의 상속자'에 의해서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철저히 믿는 광신자들에 의해서 존 스코프스라는 이름의 24살 된 젊은 과학 교사가 인간과 영장류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침으로서 법정에 세워졌고, 이 때문에 데이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재판은 진화론이 가르쳐지는 것이 저지되는 것 때문에 데이톤에서 발생했다. 테네시 주는 그 당시 진화론이 가르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법률을 얼마 전에 통과시켰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은 그 법령에 도전하는 누구라도 방어할 것이라는 발표를 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자원자를 발견하는 것은 침체되어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 데이톤의 사업가들이 생겨났다.” “5월초 어느 날 아침, 사업성 많은 바람잡이들이 고등학교 뒤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던 스코프스의 게임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그를 중심가에 위치한 로빈슨 약국(Robinson’s Drug Store)으로 데리고 가서 후원자들을 만나도록 주선하였다. 청량음료가 건네진 후에, 그들은 젊은 교사에게 진화 단락을 포함하고 있었던 테네시 주의 표준생물학 교과서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스코프스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그들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체포되어진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알기 원했다. 최근에 켄터키 대학을 졸업한 스코프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확실히 믿고 있었지만, 그가 그의 수업에서 실제로 진화론을 가르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절하게 그 책략대로 따라갈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는 테니스 코트로 돌아갔다.” (Kemper 2005: 52, 54).
재판에 관해서 잘못 알려진 또 다른 부정확한 사실은, 스코프스를 변호했던 클러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는 언론의 자유와 교회와 정부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던 편견이 없는 법률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로우는 공개적으로 “미국은 편협하고, 비열하고, 참을 수 없고, 뇌가 없는, 그리고 무정한 종교적 편견을 가진 광신도들에 의해서 설립된 것이 아니라, 자유의 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대대적인 승리 이외에 아무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Ibid. 57) 라고 말한 것처럼, 이러한 강령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다른 오해들도 스미소니언 기사에 의해서 정리되었다 : “1960년의 영화 ‘바람의 상속자’에서, 브라이언(영화에서 프레드릭 마취(Fredric March)가 연기함)의 명성은 증언대 위에서 무너져 내려서 비참할 정도로 지리멸렬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브라이언은 매우 잘 책임을 수행하였고, 대로우(영화에서 스펜서 트레이시(Spencer Tracy)가 연기함)의 질문에 지혜롭게 그리고 현명하게 빠져나가며 대답하였다.”(Ibid. 58). 모든 법정 소동 후에, 존 스코프스는 감옥에서 결코 조금의 시간도 갇혀있지 않았다. 그는 1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그 판결도 후에 절차상의 문제로 뒤엎어졌다. 따라서 그는 대중적인 문화 속에서 알려진 것처럼 결코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스코프스가 가르쳤다는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되던 것들은 순수하게 과학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The New Yorker 에 따르면, “스코프스의 교과서는 우생학을 기초로 하여 ‘정신박약자’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였다.”(Anonymous 2006: 83). 따라서 악하고 근본주의적인 종교적 광신도들이 선하고 과학적인 진화론자들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벌인 사건이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이었다는 단순한 시나리오는 정밀조사 하에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Reference : Kemper, S. 2005. “Evolution on Trial.” Smithsonian, vol. 36, no. 1. Anonymous. 2006. “Briefly Noted.” New Yorker: 27 February.
*Stephen Caesar holds his master’s degree in anthropology/archaeology from Harvard. He is a staff member at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and the author of the e-book The Bible Encounters Modern Science, available at biblepm@hotmail.com.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2006. 6. 21. URL : http://www.rae.org/scopestrial.html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
3.1.2 동등시간법(Equal Time Law)
:과학적 창조론을 진화론과 같은 비율로 가르치도록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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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등시간법의 제정 배경 창조-진화 논쟁 : 회고와 전망 박희주 출처: 창조지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2001_125_5.htm
진화론 논쟁은 1859 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종의 기원]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으나, 초기의 논쟁은 주로 영국에서 발생했다. 이 논쟁은 생물학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등 사회 각 영역에 걸쳐 다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논쟁에 관심을 가진다. 영국에서의 논쟁은 대략 지식인들 간의 논쟁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반진화론적 흐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영국교회는 진화론과 타협 또는 화해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반진화론적 경향이 우세했으며, 진화론 논쟁은 처음부터 사회적인 논쟁으로 치달았다. 1920 년대 본격화된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따라서 창조-진화 논쟁사에 있어서 중심무대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 세기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창조과학이란 용어는 1970 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는 1980 년대 초 한국에 소개된 바로 그 창조과학이며, 미국의 창조론 운동은 올해 20 주년을 맞은 한국창조과학회의 지적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20 년간 전개되어온 한국 창조론 운동의 특성과 그 전개과정은 미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창조-진화 논쟁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별히 한국창조과학회 20 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지적 배경을 더듬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창조과학회가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반추는 필요 불가결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미국 창조-진화 논쟁은 1960 년을 전후로 대략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20 년대 스코프스 법정 논쟁으로 대표되는 반진화론 운동과, 1980 년 아칸소 법정논쟁으로 정점을 이룬 창조론운동이 그것이다. 이외 1990 년대 초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은 최근 미국 창조-진화논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앞의 두 가지 운동이 창조-진화 논쟁의 회고 부분이라면, 지적설계운동으로 시작된 최근의 동향은 앞으로의 전망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발표에서는 대략 이 세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1) 스코프스 논쟁 (1925)
1859 년 “종의 기원” 출간으로 미국 과학자 사회에 소개된 진화론은 당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기원에 대해 지배적 답변이었던 '특별 창조설’을 급속히 대체하기 시작하여, 1880 년경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추세는 과학 교육에도 곧 반영되어 이때쯤 진화론은 처음으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등장한다. 20 세기 초 미국 중등교육의 급속한 팽창에 힘입어 진화론은 광범위하게 미국사회에 보급되며 이에 위협을 느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반진화론 운동을 일으킨다. 3 번이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던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은 이미 교과서에서 사라진 특별창조론과 교육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진화론을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며 이 운동을 이끈다. 미국 전역에 걸친 대대적 반진화론 운동의 결과 테네시 (1925), 미시시피 (1926), 아칸소 (1928) 주에서 진화론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반진화론법이 통과된다.
테네시주에서 반진화론법이 통과된 직후 미국시민자유연맹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후 ACLU로 약칭)은 이 법의 실효성을 시험할 것을 선언하고 나서고, 이에 협조하기로 한 스코프스 (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진화론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테네시주가 즉각 스코프스를 고발하고 ACLU가 맞서 변호하는 희대의 재판이 1925 년 7 월 데이튼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린다. 약 2 주간에 걸친 대 논쟁은 결국 스코프스 측이 $100 벌금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일단락 된다. 이 재판 과정에서 ACLU측 변호사 다로우 (Clarence Darrow)와 역시 변호사 출신이었던 브라이언이 맞붙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브라이언은 재판이 끝난 3 일 후 돌연사 한다. 법률적으로는 진화론 측이 패소했으나, 자유적 경향의 미국 주류언론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원숭이 재판으로 희화화하고, 반진화론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조롱거리로 만듦으로서 근본주의 측 역시 큰 이미지 손상을 입게된다.
1920 년대 반진화론 운동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변천과정이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60 년대에까지 이르기까지 이 사건에 대한 주류해석을 형성했던 자유주의적 해석들은 대체로 그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스코프스 재판(특히 재판 중 브라이언과 다로우의 격돌)을 근본주의와 모더니즘의 대결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구도 하에 아무런 지적내용이 없는 남부 농촌의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브라이언을, 그리고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다로우를 설정한 후, 다로우의 냉정한 이성적 심문에 의해 브라이언의 맹목적 신앙이 철저하게 조롱거리가 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를 스코프스 재판의 하이라이트로 제시함으로써, 브라이언의 패배를 곧 근본주의의 패배로 연결시켰다. 한 마디로 스코프스 재판이 근본주의의 쇠퇴를 결과했다는 것이다. 브라이언의 돌연사도 결국 이러한 패배의 충격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들은 반진화론운동을 현대 세계와 과학에 대한 두려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반동, 교육과 사회를 근본주의의 이상과 부합하도록 교정하려는 욕구) 등 시대착오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현대 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죽어가는 운동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1960 년대 들어 반진화론적 근본주의가 부활함에 따라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고 만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해석에 근원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60년 대 이후 수정주의 역사이다. 대표적인 수정주의 역사가로 폴 카터(Paul Carter), 에른스트 산딘(Ernest Sandeen),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이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다.
폴 카터 : 그는 근본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곧 쇠락할 주변적인 사이비 신앙이 아닌 수백만의 추종자가 따르는 강력한 신념으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스코프스 논쟁 이후 근본주의가 무너졌다는 주장은 근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연구하지 않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판에 박힌 해석이라고 카터는 일축한다. 오히려 근본주의가 보이는 지속적인 활력에 주목하여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을 근본주의 운동에서 찾아내는 것이 근본주의 연구에 있어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제언한다.
에른스트 산딘 : 근본주의의 이념적 뿌리를 추적. 산딘은 근본주의 세력과 이념의 근원으로 무식한 남부의 시골문화를 지목한 기존의 해석과 달리 근본주의는 종말론적 신학과 관련된 당시 보편적 믿음이었으며, 따라서 지적 정통성을 지닌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조지 마스덴 (George Marsden): 이러한 수정주의 해석은 1980년 출판한 {근본주의와 미국의 문화: 20 세기 복음주의의 형성, 1870-1925}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The shaping of Twentieth-Century Evangelicalism: 1870-1925) 에서 집대성된다. 마스덴은 근본주의 운동의 지적 이념적 기반을 분석함으로써 산딘과 함께 근본주의는 지적인 내용이 결여된 공허한 운동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전제를 비판하며, 근본주의 운동의 해석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자유주의적 언론이 창출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한다.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이 반진화론 운동의 지적신뢰성에 손상을 가하기는 했으나, 이 운동의 운명에 즉각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반진화론운동은 곧장 몰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다. 재판이 끝난 2 년 후인 1927 년에 모두 13 개 주에서 반진화론 법이 상정됨으로써 반진화론 운동은 오히려 그 정점에 도달한다.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대식가인 브라이언이 급체로 인해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 브라이언이 재판의 충격으로 고뇌 속에서 죽었다는 해석 역시 사실과 다르며 실제 낮잠을 자던 중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수정주의자들은 브라이언의 죽음이 반진화론 운동의 쇠퇴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반박하며, 브라이언의 죽음은 근본주의자 들에게 순교로 받아들여졌으며, 오히려 잠깐이나마 반진화론운동을 가열시킨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에 의해 반진화론운동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운동의 사멸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스코프스 재판이후 30년 동안의 소강상태 동안 진화론이 미국 생물교과서에서 모두 사라지는 다시 말해 반진화론 운동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 그대로 둘 경우 각 주의 교과서 채택위원회에서 이를 문제 삼을 소지가 있고, 이는 교과서 판매부수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진화론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진화론적 근본주의는 이의 임박한 종말을 예언했던 자유주의적 해석과는 달리, 60 년대 새로운 활력을 지니고 부활하여 80 년대에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까지 부상하게 된다.
2) 아칸소 법정 논쟁 (1981) 20 년대 근본주의자들의 반진화론 운동은 60 년대 창조론 운동으로 부활한다. 이들 운동의 가장 큰 전략적 차이는 전자가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제거를 요구했다면, 후자는 창조론의 삽입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 하에서 발생한 구 소련의 스퓨트닉 인공위성의 발사성공은 미국에 안보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이는 대대적인 과학교육개혁작업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생물학 분야에서도 60 년대초 진화론이 생물학 교과서에 복귀한다. 복귀하게된 진화론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게 된 창조론자들은 기왕에 그렇다면 진화론과 함께 창조과학을 교과서에 포함시켜 기원에 대한 교육의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랐는데, 미국 헌법에 의하면 국가공공 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행위는 위헌사항으로 규정되어있다. 창조과학이 종교라면 헌법에 의해 이를 공립학교 교과서에 포함시킬 수 없게 된 상황인데, 이를 우회하기 위해 고안해낸 전략이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창조론 (혹은 창조과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70년대 중반 만들어졌는데, 창조론을 '성서적 창조론'과 '과학적 창조론' 둘로 나누어 종교인 전자는 배제하고, 과학인 후자만 선택적으로 생물 교과서 삽입을 요구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와 아울러 두 모델접근법이라는 전략을 개발하여, 진화와 창조를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개의 모델이라고 제안하며, 기원의 문제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새로운 전략에 바탕하여 70년대 말 창조론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1 시간 가르치면 마찬가지로 창조과학도 1 시간 의무적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는 소위 '동등시간법' (Equal-Time Law) 을 고안하고, 미국 전역에 걸쳐 이 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1981 년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주 의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동등시간법이 통과되자마자 미국시민자유연맹 (ACLU) 이 나서서 이 법의 위헌성을 제소한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국가공공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도록 규정한 동등시간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제소의 요지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과학성이 재판의 핵심문제로 떠올랐다. 아칸소주에서만 정식 재판이 열렸는데, 하일라이트는 창조 진화 양측이 동원한 전문가들의 일주일에 걸친 증언이었다. 양측에서 모두 자기 측을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 신학자, 교육전문가들을 동원하였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진화론 측의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Michael Ruse) 였다. 오늘날 대표적 생물철학자중 한사람인 Ruse는 증언에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과학의 요건을 제시하였다.
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에 (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 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가능 해야한다. 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 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재판을 주재했던 오버튼 (William Overton) 판사는 루스의 증언을 받아들여, 창조과학은 초자연적 설명에 바탕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독단적인 믿음에 근거하므로 과학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린다. 동등시간법은 결국 위헌판정을 받게된 것이다. 이어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도 이와 동일한 판결이 내려진다.
창조과학의 과학성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보다 더 치열한 논쟁이 재판 후 발생했다. 재판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몇몇 중진 과학철학자들이 루스가 너무한 것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래리 라우든(Larry Laudan), 필립 퀸(Philip Quinn)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모두 창조과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루스가 전문 철학자로서의 윤리에 충실치 못하고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과학철학자들 간에 과학을 비과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문제(demarcation problem)는 수세기를 끌어온 난제였는데, 이는 논리실증주의의 붕괴이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혹은 가짜 문제 (pseudo-problem)로 간주되어왔다. 과학철학계가 이렇게 포기한 상황에서 Ruse 가 대담하게 다섯 가지 범주를 제시한 것이었다.
라우든이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섰다. 라우든은 법정 판결이 내려졌던 1982 년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가을호에 게재한 글에서 '창조과학'이 시험불가능, 독단성(비잠정적), 반증불가능 등의 이유로 창조과학을 비과학이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결론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은 시험, 반증가능한 경험적 주장을 실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연령이 6,000-20,000년이라는 주장이나, 지구 초기역사에서 발생했던 대홍수가 현재의 대부분의 지질현상들을 결과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하며, 또한 실제 확인 절차를 밟았으며, 그 결과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을 반박하는 정공법은 창조론이 포함하는 경험적 주장들을 반박하는 것이지, '창조과학'이 그러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가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라우든은 주장한다. 만일 '창조과학'의 핵심주장들 - 예를 들어 인간은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였음, 노아 홍수는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임 - 이 변경 불가능한 독단이라면 마찬가지로 과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핵심이론들 역시 가변적인 보조가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쉽게 포기되지 않는 독단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라우든은 루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어떤 현상이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될 때만이 비로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과학사상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한 자연현상에 대한 주장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와 뉴튼은 중력현상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중력의 실재를 가정했으며, 다윈은 멘델에 의해 유전현상이 설명되기 전에 자연선택 이론에서 이미 그 존재를 가정했다. 노아 홍수의 실재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논리로 중력이나 유전현상을 가정한 뉴튼이나 다윈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정리하면 문제의 핵심은 다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과학의 범주를 '창조과학'이 만족하느냐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증거가 진화론과 '창조과학' 어느 쪽에 보다 강력한 논거를 제공해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다고 라우든은 결론짓는다.
과학철학자들 간에 5 년여를 끌었던 이 논쟁은 필립 퀸의 제안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절충되는 것으로 끝난다. 퀸은 상아탑 속의 학자가 비 이상적인 세상 법정으로 나가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때는 세상적 필요와 학문적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손을 더럽힐 수밖에 없고,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올 때는 손을 씻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때 타협의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끔씩만 수행함으로써, 한 개인의 전문가적 양심이 타락으로까지 가는 것을 방지하는 한도 내에서 이러한 타협은 현실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쟁에서 창조론에 반대하는 과학철학자들의 사회적 가치와 그들의 전문가적 양심 사이의 갈등이 절충되는 과정은 결국 과학 비과학 구별문제가 인식론적 문제인 동시에 다분히 사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창조-진화 논쟁은 과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주제인 동시에, 이 논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가진 가치관의 갈등을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의 창조-진화논쟁이 전통적 프로테스탄트 가치와 새로운 다원주의적 가치 체계간의 갈등인 문화전쟁의 큰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3) 지적설계운동 (1990 - ) 동등시간법이 1981 년 아칸소주와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 패소한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첫째, 법률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 결과 전국적인 동등시간법 캠페인을 주도했던 젊은지구창조론은 교육현장에서의 개별적 문제해결이라는 풀뿌리 운동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둘째, 지구연령문제가 표면으로 부상한다. 아칸소주와 루이지애나주에서의 동등시간법 통과는 진화론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동안 창조론운동을 무시해왔던 진화론 진영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적인 반창조론운동을 펼쳐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지구연령문제를 창조과학의 아킬레스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과 두 번의 법정패소는 복음주의 교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구연령문제를 과도한 지적부담으로 여기면서, 오랜지구창조론의 목소리가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커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구연령문제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은 분열적인 이슈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셋째, 지적설계운동의 등장이다. 지구연령문제를 비롯해 창세기 1-2장의 구체적 해석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들은 복음주의 교회의 결속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열상을 수습하기 위한 반성적인 움직임이 1980년 말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버클리 캘리포니어 주립대의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창조-진화 논쟁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전략적 선회를 제안한다. 기존의 논쟁구도가 창조 대 진화 이었다면, 이제 초점을 옮겨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의 대치구도로 이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회는 지적설계운동이라는 형태로 가시화 된다.
제한된 지면상 지적설계운동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기는 힘들고, 여기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이라는 보다 큰 구도로 판을 다시 짤 경우, 창조-진화론 논쟁에서 보였던 보수 교단간의 미묘한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이 무마되며, 공통된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단결 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둘째, 기존의 창조과학 운동이 대중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오면서 보수 기독교 인구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둔 반면, 지식인 사회로부터는 냉대 당하며 보수 기독교에 반지성적 이미지를 안겨준 한계를 지적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지적설계운동은 지식인 사회, 특히 대학사회에서 기독교 유신론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주된 목표를 두게된다. 셋째, 오늘날 세속학문의 절대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주의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다. 자연주의의 한계를 조직적으로 비판하여 숨통을 트지 않는 이상 학문의 주 생산지인 일반 대학에서 진지한 유신론적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창조-진화 논쟁에서 자연주의는 부수적인 이슈였으나, 지적설계운동에서는 자연주의의 한계 비판과 유신론의 과학적, 학문적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 핵심적 이슈로 떠오른다. 진화론은 이들 이슈를 논의하는 대표적 사례로 사용된다.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지적설계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기원에 관한 논쟁의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 한가지만 지적하기로 한다. 지적설계운동이 기원문제에 관한 담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1920 년대 반진화론운동은 스코프스 논쟁을 거쳐가며 1930년대 들어서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창조론 운동 역시 80 년대 두 차례에 걸친 법정논쟁을 거쳐가며 한계를 노출하기 시작하고 활력을 잃는 듯 했으나, 90년대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으로 기원문제에 관한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미국에서의 기원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그 열기가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원문제를 지식사회 내에서 담론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기원문제에 관련해서 복음주의 사회의 지적신뢰성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
3.1.3 ICR 대 진화론자들(굴드 등)
미국의 공교육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크게 이행되자 위기를 느낀 지질학자 모리스(Herry Morris), 생화학자 기쉬(Duane Gish) 신학자 휘트콤(John Whitcomb)등은 창조과학 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 1961)와 창조론의 연구기관인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3)을 설립했다. 그 후 , 이들은 굴드를 비롯한 진화론자들과 활발한 논쟁을 벌였다. 특이한 현상은 ICR의 적극적인 공개논쟁 제안에 대해 진화론측이 기피해 왔다는 사실이다.
3.1.4 자연주의 대 지적설계 논쟁
3.2 해외의 창조-진화논쟁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산하 과학아카데미에서 보낸 서신(1999)에서 진화론이 가설 이상의 정설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쇤보룬(Christopher Soenborn) 추기경은 “모호하고 중요치 않는 발언”이라 비난했다. 전임자와 달리 베니딕토 16세(2005.11.10)는 달리 우주가 설RP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바티칸천문관측소 소장인 코인(George Coyne)은 학교에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같이 배치한 것은 잘못이라고 교황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2006.5.18). 이처럼 현직 신부가 교황의 견해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폴란드의 교육부 차관인 오루체코브스키(Mirslaw Orzechowski, 2006.10.14)는 “진화론은 거짓이며, 일반적 진리로 합법화된 하나의 오류일 뿐”이라면서, 이제부터 진화론에 대한논의를 시작하다고 제안했다. 교육부장관인 기르티크(Macieji Giertych)도 유럽의회에서 진화론이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므로 교과서에서 삭제하자고 요구했다. 이 밖에도 호주, 영국, 캐나다, 러시아, 일본, 이태리 등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창조-진화 및 설계-지연주의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3.3 국내의 창조-진화논쟁
3.3.1 교과서 논쟁
1984년, 국내 최초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비한 생물교과서(이양림․이웅상)가 문교부에 제출되었으나, 문교부에 의해 불합격 처분되었다. 1989년에 이양림(이화여대 생물학)과 이광원(서울과학고, 생물학)이 집필한 생물교과서(계몽사)가 교육부의 합격통보를 받았으나, 진화론을 비판한 내용을 진화론적으로 전명 수정하라는 담당자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저자들이 교과서 검정을 포기해 불합격처분이 되고 말았다.(1989.8.19) 이에 주명수, 강명준, 권영상 등의 변호사가 교과서의 검인정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서울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에 이의 및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97.5.29). 진화론을 옹호한 매스컴들은 진화론이 법정에서 승리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2002년에도 창조과학자 20인이 창조론을 삭제한 생물교과서(고려문화사)룰 제작했으나, 다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3.3.2 KBS 3TV에서의 논쟁
1998년, KBS 제 3TV에서(현 EBS)에서 90분간 “창조냐, 진화냐”의 주제로 양측에서 3명씩 출연해 방송사상 초유의 창조-진화논쟁을 전개했다. 이 내용은 1989년에 KBS 제 2TV에서 재방영되었다. 최근에는 한국창조과학회의 일일 홈페이지(www.creation.or.kr)의 방문자가 일만명을 넘어서면서 인터넷을 통한 창조-진화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3.3.3 지상논쟁
<과학동아,1991,7-9월호>는 창조-진화 두 진영이 3회에 걸쳐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논쟁하도록 유도했다. 진화론 측의 임운기(부산대, 분자생물학)가 제기한 10개 질문에 대해 김영길(KAIST, 재로공학)과 김해리(서울대, 생화학)가 답변했고, 창조론 측의 김종배(건국대, 축산학)가 제기한 10개 질문에 대해서는 임운기와 강호성(부산대, 분자생물학)이 답변했다.
3.3.4 지적설계와 고생물학 논쟁
과총회관에서 창조-진화 측 대포가 각각 50분씩 주제를 발표한 후, 청중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논쟁이 전개되었다. 800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이 <동아사이언스>공청회(2004.12.26)에서 창조론 측의 김정훈(연세의대,신경생물학)은 최신자료로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과학성을 설명했고, 양승영(경북대)은 전통자료로 동일과정설을 주장해 대조를 이루었다. 2005년에는 이승엽(서강대,기계공학)이 생명의 복잡성은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 지적설계론을 언론에 소개하자(중앙 2005.9.9), 장대익(KAIST,과학사)은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의 일종으로 사이비과학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창조-진화 논쟁에 이은 이러한 지적설계-자연주의 논쟁은 앞으로 국내외에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4.맺음말
우주만물의 기원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었으리라 믿는 신념이며 신앙일 뿐이다. 창조-진화논쟁이나 설계-진화논쟁은 궁극적으로 자연과학논쟁이 아닌 세계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는 두 견해를 동시에 가르치고,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 입장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른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