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선물
조 신 호
약 20년 전 특수학교 고등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집필위원으로 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교육부 편수관 한 사람이 총책임자였고, 대구성보학교가 주관 학교 업무를 담당했다.
특수학교 교사 두 사람과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 한 사람, 3인 공동저자로 만들어지는 교과서는 중학 교 2학년 수준의 영어였고, 어휘 풀이와 연습문제의 정답도 제공되는 특수한 국정교과서였다.
여러 차례의 회의와 편집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관학교인 성보학교를 몇 차례 방문하게 되었다. 동구청 오거리에서 영진전문대학 방향으로 오르막길 올라 정점 부근에서 우회전 접어들어 내리막길을 갔다. 대구 시민들이 잘 모르는 <신암선열공원>을 지나서 잠시 더 가니 대구성보학교(초중고 통합) 교문이 보였다.
교장선생님이 필자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은사였다. 첫 마디가 “이 사람아! 공동 저자 명단에 자네 이름이 있던군. 내가 자네를 추천하지 않았는데, 혹 오해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군!” 이렇게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럴 분이 아닌 줄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지만, “저도 이곳이 부임하신 줄 몰랐습니다.” 라고 말했다. 추천인은 대구영화학교에 근무하는 친구였다.
나중에 들으니, 대구시교육청 인사담당 장학관으로 있으면서 아무도 특수학교 교장에 자청하는 분이 없어서 스스로 발령 내어 부임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참으로 모범이 되는 교육자라고 부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그분은 경북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 하시고, 지금은 수필가로, 북구 도서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신다. 그 분의 수필집 <보랏빛 수국 피던 날>을 읽으면 삶의 잔잔한 애절함이 안개처럼 스며든다.
참으로 존경하는 은사이시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 동기회에 갔더니 한 친구가 “자네 요즘 조신호 소식 듣는가?”하고 물으시더라고 전해 주었다. 가슴에 무슨 방망이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선생님께 송구스러운 마음 가득했다.
하여간 그날 교장실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접했다. 교장실 쇼파 탁자 위에 음료수와 간단한 간식이 놓여있었다. 월급 다음 날이니, 그날이 3월 18일이었다. 3월초에 새로 부임한 신임 교사 6명이 조금씩 정성을 모아 첫 월급의 감사 표시로 전교직원에게 사 온 것이라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참으로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흐뭇한 심정이 가득했다.
소중한 마음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평생 교직을 걸어오는 필자로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일로 간직되어 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섯 사람들을 가슴에 품어 왔다. 지금쯤 훌륭한 중견 교사로, 혹은 장학직에 근무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오늘 아침, 떡과 음료수를 들고 교장실에 찾아온 발걸음이 있었다. 그는 나의 제자이고, 그는 올 3월에 신임교사로 부임했다. 20년 전 은사님의 그 교장실에 있었던 광경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소중한 마음의 선물이다.”라고 그때 처럼 중얼거리며 창문을 열고 비가 내리는 뒷산을 바라본다. 아니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은사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2008. 03. 19
첫댓글 청출어람이 청어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스승의 그 제자 ,그 제자의 그 스승이 아니겠나. 하운은 본인의 이야기를 빼고 은사와 제자이야기를 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네만 어찌 이 아름다운 모습이 그냥 이루어진 것인가. 평소 하운의 인품으로 보아 보이지 않는 인정과 베품이 남달랐기에 인정과 사랑이 오고간것이 아니겠나. 역시 휴머니티의 하운이 이룬 참된 인간 모습이 아닐까?
과찬일세! 우연히 그런 일이 있어서 써 보았네.
그렇다네 도봉이 한 말처럼 아름다움이 그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네
하운의 인간미가 가슴속 깊이 스며 있었겠지
맹자의 군자삼락 중 득천하영재이 교육지 삼락야라 했지 않은가
하운의 전문성이 세상에 알려진게지...부러울 따름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