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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샘동 네 가구
경기 광명고둥학교
최아라
지미야!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은 엄마는, 나에게 부리부리한 눈을 고정시켰다. 파르르 떨고 있는 엄마의 눈꺼풀. 엄마의 손에는 파란색 분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1초, 2분, 30분…… 내 입가로 다가오는 연노란 물방울들이 느리게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또렷이 분무기의 분출구를 쳐다보았다. 분출구에서 나온 연노란 물방울이 공기를 타고 퍼졌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연노란 물방울이 내려앉았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시큼한 레몬즙이 살포시 내려앉을 때 느낀 알싸한 통증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쌉싸래한 향내가 입 안을 가득 메웠을 때, 나는 소리쳤다. 이씨 이씨. 엄마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분무기를 내 입가로 두어 번 더 분사했다. 나는 수평으로 엄마의 검은 눈동자를 째려보았다. 엄마의 눈빛에 고여 있는 섬뜩한 기운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내 거친 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흥분을 느끼고 자아도취를 만끽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난 거침없이 사람들 얼굴을 향해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푸우우우우우. 그럴 때면 내 귓속으로 날카롭고 따끔한 엄마 목소리가 꽂혔다. 순간 나는 놀라, 귀를 틀어막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또 다른 감각을 느끼기 위해 앞뒤로 두 번, 대각선으로 두 번 리듬을 타고 몸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몸을 흔들 때마다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내겐 오감을 뛰어넘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 내 살결을 쥐었다 폈다 하는 감각. 나는 그 감각을 느낄 때마다 흥분을 느끼고 내 세상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못 느끼는 감각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나만의 세상에 또 다른 감각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쑝깔라비! 쑝깔라비!”
나만의 세상에 들어갈 때 외치는 암호이다. 내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낮은 톤의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일단, 낮은 톤의 목소리라면 누구든지 1단계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앞뒤로 몸을 흔들어야 한다. 단, 오감을 뛰어넘는 감각을 느낄 때까지 몸을 흔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암호를 말하면 나만의 세상에 도달할 수 있다.
나만의 세상에는 타인이란 존재가 없다. 오로지 나밖에 없다. 만약 누군가가 내 세상에 침입하려든다면 나는 공격 자세를 취한다.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최대한 많은 량의 침을 모으고, 한 손에는 짙은 갈색 나무막대기를 들고 빠른 속도로 휘두른다.
“지미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공격 자세에 화가 난 엄마는 내 몸을 강압적으로 눌렀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엄마가 내 살결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촉각이 전해질 때면 소름이 끼쳤다. 엄마는 힘에 부친 지, 내게 노란 형광색 빛이 나는 조끼는 입혔다. 앞가슴이 조일 때까지, 엄마는 계속해서 벨트를 잠갔다.
“달샘동 4번지는 나가!”
나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의 어깨를 깨물었다. 온힘을 다해 깨물었다. 엄마는 나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입 안에서 밍밍한 피맛이 돌 때쯤, 나는 엄마를 놓아주었다. 엄마의 어깨에 내 이빨자국이 선명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수평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달샘동 4번지 주인 얼굴에 연거푸 침을 뱉었다.
*
나는 가슴을 짚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내게 미쳤다는 말을 내뱉고 떠나버렸다. 자폐아의 특성으로 본다면 타인에 대한 기피증이 심하지만, 나는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오히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아 가슴 한편이 꽉 막힌 듯이 답답했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드리아 수녀에게 말을 붙였다.
“저는 달샘동에 살아요. 그것도 달샘동 2번지에요. 저희 집에는 아무도 못 들어와요. 어쩔 땐 허전해서 외로워요. 하지만 저는 달샘동 1,3,4번지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괜찮아요. 연두색 대문은 달샘동 3번지에요. 그곳에는 저와 가장 친한 지우가 살고 있어요. 지우는 항상 저를 반갑게 맞아줘요. 그런데 요즘 문제가 생겼어요.”
안드리아 수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바닥의 대리석을 내려다보았다.
“지미야, 어서 말해 봐. 선생님 무척 궁금해. 혹시 달샘동 3번지하고 싸운 거야?”
“아니에요. 달샘동 3번지하고는 싸우지 않았어요.”
“그럼, 왜 그러는 거야?”
“요즘 달샘동 4번지 주인이 저를 무척이나 힘들게 해요. 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어요.”
안드리아 수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달샘동 4번지가 아직도 너를 타박하니?”
“그런 것보다, 달샘동 4번지 주인은 저를 알려고 들어요. 얼마 전에는, 지저분한 수염이 난 의사아저씨와 같이 달샘동을 파괴하려 했어요.”
안드리아 수녀는 살포시 내 손을 잡았다.
“달샘동 4번지가 너의 집을 파괴하려 한다고?”
나는 안드리아 수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안드리아 수녀의 양 쪽 볼은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언젠가 달샘동 4번지가 저를 끌고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의 기억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어요.”
“병원에서 안 좋은 경험이라도 한 거야?”
나는 안드리아 수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물음을 받고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다음에…… 다음에……”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드리아 수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내면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세계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내게 현실이란 공간은 굉장히 낯선 곳이다. 현실에는 내가 없다. 오로지 타인과 얽힌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오감을 뛰어넘는 또 다른 감각을 느꼈을 때, 달샘동 네 가구를 지었다. 내면에 나만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초라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달샘동을 지을 때, 집집마다 문에 신경을 썼다.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강철로 튼튼하게 지었다. 집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대문에 알록달록 천연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달샘동 2번지이다. 달샘동 2번지는 온통 연분홍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 눈에 잘 띄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분홍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방 하나가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코끝에 맴도는 라벤더 향기가 내 몸을 감싼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였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나는, 의자 여기저기에 분홍색 장미를 붙여 놓았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분홍색 장미꽃으로. 내가 달샘동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달샘동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달샘동에는 진짜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현실 속 사람들의 영혼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달샘동은 아주 까다로운 곳이다. 우선 달샘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정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아주 미워하는 사람. 딱 두 종류의 사람만이 달샘동에 거주할 수 있다. 달샘동에는 중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오직 극과 극이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 자리를 누군가에게 함부로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
“당신은 이제부터, 달샘동 4번지 사람이에요!”
멀리서 보기에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지저분한 콧수염이 길게 자란 의사에게 나는 쏘아붙였다. 의사는 당황했는지 뒷머리를 매만졌다. 나는, 내 할 말만 하는 성격이여서 누군가가 민망해 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는 내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이 싫어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모조리 달샘동 4번지에 살게 해요. 하지만 달샘동에 살면 돈 따위는 필요 없어요. 규칙만 잘 지킨다면 제가 잘 해줄 거예요. 당신은 선택받은 인생이에요. 당신은 중간이 아니기 때문에…… ”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빨간 버튼을 누르려 했다. 나는 빨간 버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난 당신이 싫어, 싫어, 당신은 달샘동 4번지야. 4번지야. 4번……”
나는 내면세계인 달샘동을 떠나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술에 순간접착제를 칠한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온몸을 떨면서 의사의 연한 갈색 동공을 뚫어져라 째려보았다.
“지미야! 지미야! 지미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안 돼! 이러면, 안 돼!”
엄마는 소리치면서 내게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짚었다. 나는 살포시 내려앉은 엄마의 뜨거운 체온이 싫었다. 나는 사정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꽉 조이는 것같이 무거웠다.
“쑝깔라비! 쑝깔라비!”
나는 달샘동 암호를 계속해서 외쳤다. 그러나 한 번 빠져나온 달샘동은 다시 들어가기 어려웠다. 현실 세계에 도착한 나는 밀려드는 공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뿌연 안개가 사라진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상황들은 점점 선명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조그마한 유리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와 의사는 유리방 너머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머리에는 수많은 전선들이 붙여져 있었다.
‘삐삐삐’ 이리저리 움직이는 뇌파검사 기계는 내 머릿속을 읽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그려져 나오는 뇌파는 나의 숨통을 조금씩 조여 왔다. 나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며 뇌파검사 기계를 주시했다. 나는 그것으로 인해 달샘동이 파괴될까 봐, 걱정이 됐다. 아니, 그것보다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나는 상황을 중단시키기 위해 거칠게 행동했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머리에 붙여져 있는 수많은 전선을 떼어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앞니로 혀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많은 침을 모았다. 입 안 가득 모인 침을 유리벽에 뱉었다.
“지미야,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건 나쁜 짓이야.”
의사는 내 거친 행동에 흥분을 했는지, 기어코 손에 쥐고 있던 빨간 버튼을 단번에 눌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온몸으로 찌릿한 전기가 퍼졌다. 발끝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전기는 곧 뼈마디를 타고 올라와 머릿속까지 퍼졌다. 손끝 마디마다 감각이 무뎌졌다. 생각이 점점 짧아져 갔다. 누군가 내 머릿속에 있는 필름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내는 기분이었다. 몇 마디 말이나마 뱉을 수 있던 혀도 무뎌져 갔다. 잘근잘근 혀끝을 씹던 앞니도 근육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거친 내 숨소리가 여느 때보다 더 깊고 진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를 조금씩 없애가고 있었다.
*
“안드리아 수녀님, 저는 달샘동이 제일 좋아요. 그만큼 달샘동 주민들을 사랑해요. 그런데 왜 달샘동 4번지 사람들은 저를 미워하죠? 안드리아 수녀님도 저를 미워하시나요?”
안드리아 수녀는 내게 말을 했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어. 내가 수녀가 됐을 때, 주님은 내 마음 속에 미움이란 뿌리를 뽑아가셨어. 난 누구든지 사랑해. 특히 지미는 주님이 내게 내려주신 선물이야.”
수녀라면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안드리아 수녀이기에 믿고 싶었다. 안드리아 수녀는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안드리아 수녀의 양 쪽 볼에 난 주근깨를 바라봤다.
내가 처음 안드리아 수녀를 만났을 때, 안드리아 수녀는 자신의 양 쪽 볼에 난 주근깨를 가리키며, 자신을 주근깨 수녀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안드리아 수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고 웃지 않았던 나였다. 안드리아 수녀는 조금씩 내 마음의 벽을 헐고 들어와 앉았다.
나는 한참 달샘동을 짓고 있던 터라 심적 부담이 굉장했을 때였다. 달샘동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나는 현실 속의 규칙들을 어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내게 화부터 냈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때도 그때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의지하고 싶었다. 자폐아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고 싶었다. 누군가가 먼저 나를 도우려 하는 것보다,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자폐아에게 있어 자발적이라는 것은 힘든 과제였다.
“쑝깔라비! 쑝깔라비!”
안드리아 수녀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달샘동 3번지로 향했다. 나는 연두색 대문을 힘차게 열어젖히고 지우가 누워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우는 몸이 불편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우야, 드디어 내가 도움 받을 상대를 찾았어!”
헥헥대는 내 숨소리를 듣던 지우는 머리맡에 놓인 포도주스를 내게 건넸다. 나는 지우가 건네는 포도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포도주스가 시원했고 입을 열 때마다 풍기는 포도의 단내가 좋았다.
“있잖아, 있잖아. 내가 드디어 사람을 찾았어!”
내 말이면 귀를 기울이던 지우는 평소 같지 않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지우의 행동에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 말 안 듣고, 뭐 하는 거야! 나를 놀리는 거야?”
지우는 급기야 한없이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뭐야? 너 왜 웃는 거야?”
한참 웃던 지우는 내 손을 더듬으며 말을 걸었다.
“너, 입가에 포도주스가 묻었어. 이빨도 보라색으로 변해 버렸어.”
나는 어이가 없어 지우를 째려보았다.
“뭐야! 지금 그게 웃긴다는 거야? 당연히 포도주스를 먹었으니까 그런 거지! 그럼 포도주스 먹었는데 입가에 토마토주스가 묻냐?”
나는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우는 앞을 볼 수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웃기만 하는 지우에게 소리를 지른 게 후회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우의 눈을 더듬어 보았다.
“지우야! 앞이 보여? 보여서 지금 그렇게 웃는 거야?”
“응, 난 정말 잘 보여! 네가 지금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잘 보여.”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너 장님이잖아. 앞이 안 보이잖아.”
나는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앞이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지우는 다시 내게 말을 붙이려 입을 오물거렸다.
“치, 바보! 집나간 시력이 다시 집에 돌아온대? 내게는 마음의 눈이 있어. 무엇이든지 다 볼 수 있는. 사실 네가 달샘동 3번지로 오기 전에 안드리아 수녀님을 만났던 것도 알아. 그리고 너희 엄마가 너를 위해 준비했던 쿠키도 알아. 너네 엄마는 쿠키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아. 지금도 쿠키 냄새가 내 주위에 진동하고 있어.”
“그래봤자. 엄마는 달샘동 4번지 주인이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왜, 그렇게 다 아는지 알아? 우리가 살고 있는 달샘동은 영혼이 살아 숨 쉬잖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지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현실 속이였다면 지우는 지금 중증장애아 병동에 누워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지우의 영혼을 불러와 달샘동 3번지에서 살게 했다. 내가 달샘동 3번지 문에 연두색 천연 페인트칠을 한 것도 지우의 몸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연두색은 건강에도 좋고 눈에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잊지 않았고, 달샘동 3번지 문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연두색으로 칠해 버렸다. 달샘동 2번지의 조그마한 방과 달리, 달샘동 3번지의 집 안은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넓은 곳이었다. 연두색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온갖 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들로 달샘동 3번지를 꾸며놓았다. 특히 지우가 제일 좋아하는 안스리움을 방 곳곳에 심어놓았다.
*
인생이 유한하기에 사람들은 사랑과 질투에 눈멀어 있다. 자폐아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안다. 사람들은 나를 외계인 취급한다. 내가 손을 올리거나 가래 섞인 침을 내뱉을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피한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안으려 들면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숫기가 없어서 낯을 가리는 것뿐이라고 대충 얼버무려 넘겼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자폐아 증세는 더 심해졌다.
“이 자식, 이 또라이 자식! 왜 그걸 모르는 거야! 몇 번을 가르쳐 줬는데도 똑같이 하지 못하는 거야. 넌 안 돼!”
아빠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불만스러웠다. 평범한 아이가 못 된 것. 하고 많은 아이들 중 왜 하필이면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 온 것이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는 자폐아라는 병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많이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원망했다. 아빠의 입장은 또 달랐다. 점점 멀어져가는 엄마. 하루 종일 나에게만 매달리는 엄마의 행동에 아빠는 질투를 느끼고 급기야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빤 엄마를 빼앗아간 나를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 아빠는 늘 새벽에 들어왔다. 만취한 상태로 말이다.
“이년, 애새끼 하나도 제대로 못 낳는 년!”
아빠는 엄마에게 심하게 말했다. 항상 술에 잔뜩 취한 아빠는 엄마에게 똑같은 말을 연달아 쏘아붙였다. 엄만 아빠가 하는 말에도 끄떡없었다. 새벽이었고 엄마는 이웃집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말은 뾰족한 송곳이 되었다. 엄마의 몸 이곳저곳엔 뾰족한 송곳의 독이 박혀 곪을 대로 곪고 있었다. 친척들은 엄마의 몸속에 독기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게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두려웠다. 아빠보다 더 두려웠다. 엄마는 내 자폐증을 고치려고 이 방법 저 방법 좋다면 다 썼다. 나는 그런 엄마가 무서웠다. 나는 내가 실험용 생쥐라고 생각했다. 레몬즙을 담은 분무기를 나를 향해 분사하는 엄마가 싫었다.
‘난 엄마가 싫다. 달샘동 4번지 주인이 정말 싫다. 핏줄이라는 연결고리에 걸어 내 마음을 다 읽는 엄마가 두려웠다. 엄마와 같이 있을 때 내 자신은 없다. 나는 엄마를 피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들킬까 봐……’
*
내가 울 때면 달샘동에는 비가 내렸다. 달샘동 주민들은 비가 내릴 때마다 내게 찾아와 토닥여 줬다. 이건 달샘동의 규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섬뜩한 기운이 달샘동을 감싸 쥐었다. 나는 달샘동이 파괴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달샘동 여러분,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내 말에 놀란 달샘동 3번지 주민들은 시끌벅적했다. 남산만 하게 배가 나온 제빵 아저씨는 내게 초콜릿 빵 하나를 건넸다.
“이 빵을 먹어보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야.”
나는 제빵 아저씨가 내민 초콜릿 빵을 한 입 베어 먹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혀에서 살살 녹았다. 나는 빵을 먹으면서 제빵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줌마들처럼 음식을 못 버리는 성격 탓에 아저씨는 온갖 음식의 지방덩어리로 인해 비만이었다. 눈두덩에 살이 올라 앞이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저씨의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맺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지우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달샘동이 파괴된다면, 달샘동 1번지는 어떻게 되는 거야?”
지우의 말에 순간 시끌벅적하던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멀리서, 달샘동 3번지와 4번지의 싸우던 사람들도 지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달샘동 주민들은 모두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만약, 달샘동 1번지에 영혼이 있다면 문이 열리겠지. 하지만 달샘동을 만든 이후 한 번도 달샘동 1번지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지우는 다시 말을 했다.
“달샘동 1번지에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맞아. 하지만 한 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 웃기지? 나는 가끔씩 그곳에 안드리아 수녀님이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난 안드리아 수녀님을 사랑하잖아.”
내 말을 한참 듣던 제빵 아저씨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했다.
“안드리아 수녀님은 달샘동에 올 수 없어! 주님의 딸이기 때문에 달샘동에 온다면 수녀의 자격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제빵 아저씨의 말에 한참 동안이나 달샘동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
엄마의 어쩔 수 없는 강요로 나는 자폐아 증세를 치료했다. 차도가 없던 자폐아 증세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달샘동은 파괴되고 있었다. 달샘동 3번지에 있던 식물들은 하나 둘씩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자, 지미야! 내가 누군지 아니? 어제는 무얼 했니?”
콧수염이 지저분한 의사는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누구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어젠, 달샘동……”
내 말 한 마디에 엄마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정신 나간 듯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오감을 뛰어넘는 감각을 느낄 때까지 계속해서 흔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나서 의사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엄마는 의사에게 손수건을 내밀며 분무기를 내 입가에 두어 번 분사했다. 또다시 쌉싸래한 향내가 입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는 안드리아 수녀 곁으로 뛰어갔다. 안드리아 수녀는 두 팔을 펼쳐 내 몸을 안아주웠다. 나는 안드리아 수녀의 가슴팍에서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안드리아 수녀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웠다.
“울지 마, 달샘동에는 비가 올 거야.”
안드리아 수녀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젠, 그럴 걱정 안 해도 되요. 달샘동은 이제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현실밖에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한참 동안이나 안드리아 수녀의 몸에서 나는 허브 향을 맡으며 안드리아 수녀를 꼭 끌어안았다.
*
“쑝깔라비! 쑝깔라비! 쑝쑝쑝!”
우연치 않게 나는 다시 달샘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달샘동은 그림자가 집어 삼켜버린 지 오래였다. 라벤더 향내가 나는 방 안도 심한 악취가 났고 영원히 살아 숨 쉴 것 같던 식물도 다 말라 비틀어져버렸다. 황폐화된 달샘동을 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달샘동 1번지가 열릴까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잡아보았다. 꿈쩍도 않던 문고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돌아갔다. 나는 힘껏 달샘동 1번지 문을 열어젖혔다. 순간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방 안을 들여다봤을 때 달샘동 1번지에는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엄마가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엄만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꼬마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어렸을 때의 내가 달샘동 1번지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와 난 시장에 갔다 온 것 같았다. 엄마의 한 쪽 손에는 시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엄마가 무서웠지만 울고 있는 내가 궁금해서 계속 쳐다봤다.
“아니, 지미엄마! 내가 언제 나쁜 뜻으로 말한 거야? 순전히 지미엄마 편하게 살라고 한 거야! 하도 지미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그런 거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아파트 통장 아줌마였다. 엄마는 통장 아줌마의 소리에 화가 났는지 나이가 많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통장 아줌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요?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목에 핏줄을 세우며 통장아줌마는 다시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지미엄마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야? 아파트 이미지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게 자폐아가 살아서 그런 거래! 내가 괜히 지미 엄마한테 지미 입양시키라는 소리를 했겠어? 아무튼 말 나온 김에 다 할게. 지미엄마 다음 달 내로 이사를 갔음 해!”
“당신이 뭔데 난리야? 당신이 내 마음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리야? 자폐아를 둔 엄마들의 꿈이 뭔 줄이나 알아?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자식 잘못될까 봐, 내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소원이야.”
엄마의 말에 통장 아줌마는 반벙어리가 되었다. 매서운 눈초리만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떠버렸다. 엄마는 내 앞에서 울지 않으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흐느끼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기에. 엄마의 울음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기에…….
나는 그 장면을 보고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달샘동 1번지에 엄마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조용히 달샘동 1번지를 나왔다. 하얀색 문을 닫는 순간 뻥하고 스파크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샘동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쌉싸래한 향내가 온몸을 적신다. 온몸에 상쾌한 레몬향이 스며들어 기분이 한결 좋았다. 나는 분무기 분사에도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창틀에 턱을 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푸르렀다. 강렬하게 비추는 태양이 보였다. 나는 햇살줄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있는 힘껏 햇살줄기를 빨아마셨다.
뜨거운 햇살은 내 몸으로 퍼져 달샘동의 잔해를 흔적 없이 태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