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단상(2)
- 즐기는 것도 습관이다.
스페인에서의 운전은 쉽지 않다. 복병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도로는 거의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신호등 없는 로터리가 많다. 그러다 보니 코르도바를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으나 막상 세비아에 들어가니 예약한 호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나중에는 잘못 들어가다 보니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이곳 고속도로는 바로바로 인터체인지가 있고 또 요금을 받지 않으니 되돌아왔다. 그래서 그렇게 큰 낭패는 아니었다. 어떻든 1시간 가까이 방황하다가 밤 9시가 넘어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나니 주변은 아직 훤했으나 시간으로는 10시가 넘었다. 그래도 저녁을 먹어야겠기에 호텔데스크에 물어보니 왼쪽으로 100미터 쯤 가면 강변에 카페가 여럿 있다고 추천해준다.
강변을 따라가니 마침 한 여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카페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위쪽에는 시골 장날 축제하듯 사람들이 수백 명이 노래하고 떠들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래도 시끄러울 것 같아 첫 번째의 생음악이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런데 자리가 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저녁 11시에 접어들었는데도 사람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즐겨야 할 시간대라는 분위기이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강아지들까지 꼬리 흔들며 난리다. 모두가 제 세상 만난 듯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있다. 오후에는 시에스터라고 해서 충분히 쉬고 5시가 넘으면 모두가 깨어나 즐기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밤을 축제의 시간이라 생각하며 온 종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스페인사람들 문제는 버는 것보다 더 쓰며 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실이 그럴 것 같다. 남녀노소 모두가 열정적으로 오늘을 즐기며 사는 모습이다. 즐기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
- 로커에 짐 맡기고 택시타기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스페인 제3의 도시라는 발렌시아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반납하였다. 대부분의 렌터가 사무실은 기차역에 있다. 우리가 예약한 바로셀로나로 출발하는 기차 출발 시간까지는 약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 사이에 발렌시아가 자랑하는 현대건축물 그리고 현대미술관을 보기로 했다. 이동 편의를 위해 기차역 내의 로커에 짐을 넣어두기로 했다. 로커에 짐을 맡기려면 우선 공항 출국장에서와 마찬가지의 검색대를 통과하여야 한다. 그 다음 짐의 크기에 맞춰 로커에 넣게 되는데 로커의 크기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동전이다. 신용카드로는 요금 지불이 안 된다. 그리고 요금에 맞게끔 동전이 정확하게 준비되어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2.5유로인 경우 2유로짜리 동전 혹은 1유로짜리 동전 두 개와 50센트짜리 동전을 넣어야 한다. 주머니에 동전이 없으면 역 내의 상점이나 안내소를 찾아 동전을 바꿔 와야 하는 것이다. 참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렌시아 역에서 동전 바꾸느라고 한참을 허비했다.
역 밖으로 나가니 마침 택시 한대가 도착하며 손님이 내리고 있다. 잘 되었다 싶어 얼른 뛰어가서 택시를 타려고 했다. 그러나 기사는 탈 수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대신 10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앞쪽으로 가라한다. 그곳에는 택시가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택시 타는 곳과 조금 떨어져 있으면 예외 없이 바로 태워주는데 이곳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앞으로 가서 맨 앞의 택시를 타야 한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 내 집 앞이 미술관이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은 입장료가 14유로이지만 오후 6시가 되면 무료입장을 시켜준다. 8시까지 개방이니 2시간은 관람이 가능하다. 지역주민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발렌시아 현대미술관도 일요일은 무료였다. 고속도로, 미술관, 박물관 등 공공시설은 지역주민의 것이라는 개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미술관, 박물관이나 성당을 지역주민에게는 무료로 개방한다. 이런 문화 정책에 따라 스페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고야, 피카소, 가우디, 달리, 베라스케스 등 세계적인 화가는 물론이고 조상이 남겨준 아름다운 미술품, 건축물 등 예술품을 감상하며 자라게 된다. 스페인에서 인상적인 점은 도시마다 미술관이 너무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피카소미술관만 해도 가장 많은 작품,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바로 옆 아토차역 앞에 있는 소피아미술관, 피카소 생가가 있는 말라가의 미술관, 그리고 바르셀노나의 피카소미술관 등 가는 곳마다 피카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원도심은 삶의 터전이다.
스페인, 이태리, 체코, 파리 등에 있어 원도심, 구도심이라는 개념은 없다. 원도심은 대부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그곳이 사실상 그들을 먹여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유적을 최우선 시 한다. 최대한 원도심을 보존하고 문화유산을 가장 두드러지게 할 수 있도록 주변을 갖추는데 투자한다. 따라서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원도심은 그들에 있어 역사의 현장이며, 나라사랑, 지역사랑,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사랑 등의 원천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면서 도시가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구도심 혹은 원도심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유럽처럼 내세울만한 문화유산이 없다. 또 신도시를 만들면서 원도심에 있던 모든 기관이나 관공서를 깡그리 옮겨버린다. 문화유산이 없으면 몇 개의 기관이라도 남겨서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데, 몽땅 새집으로 이사 가버린 것이다. 그래놓고 나중에 원도심을 살리자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이것이 다문화다.
스페인은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로마가 멸망한 후 7세기부터 아프리카의 무어인 지배를 받는다. 그 후 이슬람 시대가 800년 가까이 지속된다. 15세기 에 이르러서야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세력을 몰아냄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 로마의 유적은 물론 아프리카, 이슬람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사원을 보면 말이 성당이지 건축물 자체가 이슬람 사원이다.
또 스페인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다. 신대륙의 발견은 금음보화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던 낯선 사람들도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스페인의 문화는 일찍부터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이 통합된 다중복합적 문화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다민족, 다문화는 이미 그들의 생활이고 삶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외국인애게 매우 친절하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운전하다보니 호텔이나 목적지를 제대로 찾지 못해 나중에는 주유소나 식당에 들어가 길을 물어보게 된다. 영어를 쓰지 않으니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 이때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일을 아예 접어두고 자동차로 앞서 가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그리고 시내를 걷다 보면 스페인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어온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외국인으로 보일 것ㅇ린데 하고 생각하며 의아해 하지만 그들은 외국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을 다 스페인사람, 아니 같은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다.
- 여행에서는 가슴이 떨려야 한다.
여행에서 가장 기본은 보이는 대로 보며 가슴이 떨려야 하는데 실제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아는 대로 보고 만다. 여행에서는 내가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라는,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귀한 것, 이 순간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받아드릴 수만 있다면 최고의 여행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생활 속까지 들어가 삶의 현장까지 느낄 수 있는 공정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현실은 여러 가지 제약이 있으니 그렇지 못한다. 소위 수박 겉핥기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것이 여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새로움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더 많이 느끼기 위해, 더 많이 보기 위해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해도 역시 부족하다. 그들의 수천 년 삶을 어떻게 일시에 다 이해할 수 있으랴! 그래서 여행은 새로움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아마 아쉽게 지나가는 우리의 청춘이나 비슷할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 속에는 불편함도 포함된다. 편한 것만 찾는다면 집에 있으며 일상대로 사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바다에는 풍랑이 있겠지만 배의 운명은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여행을 떠나도록 되어 있는 존재이다.
- 물은 생명이다.
스페인은 고원지대가 대부분이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까지 1시간 가까이 달리는 고속버스 길 좌우 어디에서도 높은 산을 볼 수 없다. 높은 산이 없으니 강도 보기 어렵다. 강물이 없으니 교량도 없다. 가끔 낮은 산이 나타나지만 산에는 나무가 없다. 들판에는 녹색이 거의 없다. 스페인의 6월은 황량하다. 처음에는 저 넓은 지역을 온통 제초제를 풀을 다 없앴나 하고 생각도 했으나 오해였다. 6월까지는 강우량이 워낙 적어 그냥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이다. 대신 가뭄에 강한 올리브, 코르크나무 등이 평원을 채우고 있다. 그에 비할 때 우리의 자연은 완전히 녹색이다. 수많은 녹색 생명을 준 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베푼 큰 축복이 아닐까!
- 플라밍고는 스페인의 정열이다.
자유여행을 하다 보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가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지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것이 자유여행의 매력이니 어쩌지 못한다. 스페인하면 투우와 플라밍고이지만 이제는 동물보호론자들 때문에 투우를 죽여야 하는 옛날 방식의 투우는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플라밍고는 그대로 남아 있으니 반드시 공연을 봐야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은 처음부터 있었다. 당초의 계획은 플라밍고 원조라는 세비아에서 보는 것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스페인을 떠나는 마지막 날 마드리드에서 구경하기로 하였다.
호텔에 부탁하니 바로 플라밍고 명소라고 추천을 해준다. 그곳은 클링턴대통령도 관람했다는 300년 된 공연장이라고 소개해준다. 사실 예약할 때 1인당 30유여서 좀 비싸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여행기에서 보면 10유로짜리도 많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스페인 광장과 스페인왕궁 사이에 있었다. 우리가 탄 택시는 잘 개발된 마드리드의 지하차도를 질주했다.
공연은 8시 30분경에야 시작하여 한 시간 반 가까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열기는 더 해갔다. 냉방이 잘 된 공연장이었으나 무희들은 땀을 비오듯 흘렸다. 결론적으로 30유로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여성무용가 바일라오라가 4명이 나왔다. 남성 무용가 바일라오르가 한 사람 그리고 남성가수 깐따오르가 2명, 여성 가수 깐따오라가 1명, 기타리스트 또까오르가 두 사람 등 총 9명이 함께 한 공연이었다. 출연진들의 열정적 공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여성무용가의 예상을 뒤엎는 춤사위에 놀랐다. 하이라이트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관객 중 두 여성이 무대에 올라가 함께 플라밍고를 추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두 여성은 춤 솜씨로 보아 보통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플라밍고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일 것이다.
플라밍고에는
투우사와 마주한 투우의 붉은 눈이 보였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을 향해 마구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땅이 울리고, 비명소리가 났다.
순간이여 영원하라
사랑이여 황홀해라
삶이여 덧없어라
나는 너를 이겨야 한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준 소명이다.
나의 온 정신은 네 발에 맺혀있다.
나는 저 세상을 모른다.
이미 떠난 영혼이다.
뿔을 들이대며 진격이다.
살아서 무엇하랴
내 소리를 들으라
나는 죽는다.
나를 너에게 바친다.
더 이상 방황은 없다.
몸으로 말할 뿐
외마디 비명이 전부이다.
발로 구르는 몸짓이 바로 나다.
무엇이 필요하랴, 신이 내린 이 몸인데
플라밍고는 생명이다.
플라밍고는 죽음이다.
플라밍고는 영원이고 영혼이다.
노랑 칸나와 빨강 사루비아 꽃을 닮은 사람들이
스페인 고원의 밤을 불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