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 유레카3
1부. 우주
1장. 프롤로그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철학
4. 진리에 대하여
진실과 진리는 영어에서는 같은 단어 'truth'로 통용되어 일견 같은 뜻으로 느껴지지만, 엄격히 말하면 진실은 과학적 사실관계에 대한 문제이고, 진리는 철학적 가치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진실과 진리는 서로 다른 가치이다. 진실을 풀어쓰면 참된 사실이다. 사실은 객관성을 지닌다. 누가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풀어쓰면 참된 이치가 된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부자가 살아가는 이치와 가난한 이가 살아가는 이치는 달라야 한다. 산에 사는 사람의 이치와 바다에 사는 사람의 이치도 달라야한다. 어렸을 때 살아가는 이치와 늙어서 살아가는 이치가 달라야한다. 십계명을 절대 진리라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때에 따라서 거짓 증언도 해야하고 필요하다면 살인도 하여야 한다. 안중근의사가 이등박문을 죽이는 살인을 했다하여 하느님이 그 분을 지옥에 보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을 당한 이등박문이 주변 뭇민족과 나라를 빼앗고 괴롭힌 죄로 당연히 지옥으로 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본 사람의 입장이라면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건, 부처님을 믿건 그 사람들 마음 속에는 서로 다른 하느님과 부처님이 들어있다.
수학의 명제에서 '진리 집합(truth se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그 명제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이므로 우리말 해석으로는 '진실 집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진리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개별적이다. 그렇다고 진리가 의미가 없다거나 하찮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모든 사람과 생명은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짧은 하루살이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 삶 하나하나는 그 생명에게 있어 곧 우주의 전부와 같다. 그 삶이 끝나면 그에게 있어 우주도 끝난다. 한 생명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와 같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에게 맞는 진리의 길을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진실과 진리의 혼용은 특히 종교의 세계에서 남용되고 오용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와 종파를 진리의 종교요 종파라 설파한다. 믿음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이 차이가나고 다르므로, 자기 종교와 종파가 진리의 종교라고 말하는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종교와 종파는 거짓이라거나, 이단이라거나, 우상숭배라 이야기하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自家黨則)에 불과하다.
진리와 또 다른 진리가 부딪칠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해와 포용이다. 그러한 이해와 포용은 진실을 통해 확대될 수 있다.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어 지금까지 왔고, 우리 생명이 어떻게 생성되어 지금에 이르는 진화의 길을 걸었는지를 안다면 내가 사는 이치와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가 믿는 진리와 다른 사람의 진리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또는 다양성의 관계에서 그 또한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가 믿고 있는 것을 너무 확신하지마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다.

(2016년 봄. 관악산 연주암에는 뭇 불자들의 소원풀이를 해 줄 연등이 아름답게 걸려있다. 부처님에게 진리란 무엇일까?)
첫댓글 진리는 이치
이치는 각자 처해있는 삶에서
자연을 보고 깨닫거나
사물을 보고 깨닫거나
그 자체가 진리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 인것에서 시작이라 생각 하면서요
올려주신글에
공감하며
감사의 마음
놓아 봅니다
ㅎ. 감사합니다
멋진 주말되세요
@하늘바다 여운종
올려놓으신 글
애독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