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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탈출기) |
이사야(이사야서) |
예레미야(예레미야서) |
4,10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
6,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1,6 내가 아뢰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
4,15 너는 그(아론)에게 일러, 그가 해야 할 말을 그 입에 담아 주어라. 네가 말할 때나 그가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가르쳐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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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6,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
1,8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9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
다) 메시아 직무가 주어진 심판의 대리자 예레미야
10절 말씀 중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에서 맡긴다는 표현은 위탁과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엄숙한 책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야훼의 이 말씀은 직접적인 수여의 성격이 짙다. 결국 예레미야에게는 야훼로부터 ‘메시아 직무’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예언에 처음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야훼의 명령들 아래서 야훼의 대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다음의 용어들은 ‘심판의 대리자’로서의 예레미야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뽑거나 근절하려고(예레 12장 14-17, 린토쉬, 정원사가 나무를 뽑는 모습)’, ‘허무는 모습(39장 8절, 베린토츠, 전문가가 건물을 부수는 것)’, ‘무너지게 하는 원인(10장 15절, 헤에비드, 부숴짐, 제거)’, ‘넘어뜨리려고(베라하로스, 현재 질서의 종말)’이다. 예레미야는 검이나 정치적 대리인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심판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에게는 선포해야 할 야훼의 말씀이 주어진다. 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해야 할 것이다. 심판을 가져다 줄 말씀은 이중적인 도구인데 그것은 새로운 질서 아래서의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를 드러내는 개념적 용어로서 ‘리브노트’와 ‘린토아’라는 두 용어를 볼 수 있다.
‘리브노트(세우다)’라는 용어는 건물을 세운다는 건설의 상황적 의미이다. ‘린토아(심다)’는 농업의 상황에서 온 말로서 땅 표면 아래 두는 행동을 말한다(이러한 심는 행동은 안정감과 지속적 생명을 암시). 예레미야는 스스로를 새롭거나 새로워진 제도들을 가진 새 질서를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야훼의 대리자로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용어 사용은 예레미야의 메시아적 직무 즉 옛 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 선포의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심판 다음에 세움이 나타남에서 예레미야에게 메시아 직무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라)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예언자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전형으로서 메시아 모형이라고 보여진다. 예레미야는 야훼로부터 메시아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인물로 선택되고 지명된 자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다. 그가 처음에 보인 두려움과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반응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야훼의 뜻과 계획에 대한 거듭되는 확고한 증거들을 요구한다. 이 점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전형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께서 죄가 없는 분이셨으나 세례를 받으실 때 위로부터 확고한 증거들을 받으셨기 때문이다(마태 3,17). 또한 그는 ‘눈물의 예언자’로 불렸다. 이 눈물은 그의 백성과 나라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었다(8,21-9,3). 그의 원형인 예수께서 우셨듯이(요한 11,3) 그도 울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전복되고 멸망될 때 그 나라의 중심인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헌신, 인내, 감성, 동정심, 지혜가 수많은 상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특히 예레미야를 향한 왕의 분노와 적대감이 커져 가며, 그가 추방과 저주를 견딜 때(15장 10절-11절, 17절, 17장 15절, 20장 7 중반절)를 볼 때 우리는 그가 왜 눈물의 예언자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의 시대, 소명, 경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비교할 때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 시대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예레미야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와 예수는 모두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 직전에 전파하였고, 모두 성전 제사의 상업주의를 경멸했으며, 그 시대 제사장들과 그들의 친척들로부터 배척당하였다. 게라르드 반 그로닝겐은 예레미야가 다른 예언자들이 하지 못한 경험들을 했다는 주석가들의 의견을 정확하다고 평가하면서, 예레미야와 예수의 유비들과 평행 관계들과 유사점들을 말한 것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예언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참다운 전형이요,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예언자라 할 수 있다.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메시아적 요소들
우리는 그동안 메시아 모형으로서의 예레미야의 인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다시 온 것이 아닌가하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이제 예레미야서 본문 내용에 따른 메시아적 강조점들을 간략히 살펴본다.
가) 백성을 준비시킴
백성을 준비시킴은 예레미야의 소명과 연관된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메시아적 요소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온갖 재난, 즉 질병, 전쟁, 기아, 실패, 죽음, 유배, 노예 생활 등에 대해 준비시킨다. 그는 치드키야 왕에게 바빌론 왕에게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재난 예언 때, 그는 희망과 축복의 미래를 거듭 선포한다. 이 희망과 축복의 미래 선포에서부터 메시아 예언이 비롯되었다.
나) 메시아 예언
그는 야훼께서 그의 백성과 다윗의 가문과 맺으신 언약의 확실한 수행자인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 그에 상응한 본문들(3,14-17; 23,1-8; 30,8-9; 33,14-26) 중 23장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23,2 그러므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내 백성을 돌보는 목자들을 두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3 그런 다음 나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들은 출산을 많이 하여 번성할 것이다.
4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 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메시아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지만, 메시아의 정체를 언급하고 있다.
다) 타 예언자의 메시아 예언에 대한 탁월함
예레미야는 이사야가 다윗의 후손일 것이며 영원한 아버지일 것이라 선포(이사 9,6-7; 11,1)한 바로 그 왕적 인물에 대해 말한다. 관련된 두 본문을 제시해본다.:
① 23,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② 30,9 그들은 주 그들의 하느님을 섬기고, 내가 그들에게 일으켜 줄 임금 다윗을 섬길 것이다.
②에서 예레미야는 좁은 의미의 메시아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오시는 그 왕과 구속자를 보았고 묘사했다. 또한 ①에서 그는 메시아 개념의 넓은 측면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오시는 왕적인 분의 덕목들 즉 지혜, 공의로움, 인정이 많음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예레미야는 메시아의 행동들을 또한 말한다. 그에 의해 선포되는 메시아는 ‘목자’로의 섬김, 다스림,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 모든 언약의 실현을 가져온다.
결국 예레미야서 속에는 좁은 의미의 메시아와 넓은 의미의 메시아 개념이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 예언자가 타 예언자들에 비해서, 야훼의 언약과 그 언약의 약속된 메시아적 대리자의 관계를 탁월하게 많이 보여주었다고 불 수 있다.
예레미야의 신학적(종말론적) 구조
예레미야 예언에 담긴 메시아적 요소가 한편으론 종말론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 연관되는 신학적 구조가 예레미야에게서 발견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 활동의 무대를 과거에서 끌어온다. 그는 아담과 맺어졌으며 노아에게서 반복된 창조 언약, 족장들과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시나이산과 요르단 강가에서) 그리고 다윗(그의 가문 포함)과 맺어진 언약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렇게 과거 언약을 거듭 말하면서 그것이 갱신될 것이라는 신학적 구조를 예레미야서는 제공한다. 즉 예레미야는 포로 생활로부터의 귀환이 종말론적 첫 사건이 될 것이며, 다른 종말론적 사건들이 나타날 근원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미래의 역사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가운데서 사건들이 전개됨은 그리스도의 지상 활동이 수행되었을 때와 교회가 세워지고 발전되었을 때를 말한다. 오로지 이때에 예레미야가 다윗의 계보로서의 메시아, 갱신된 영원한 언약의 메시아에 대해서 그가 예언한 바가 분명해졌다.
그가 이렇게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가 분명해졌다고 하는 것은 예레미야서 마지막 52장 부록의 분위기를 반영한듯하다. 52장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 학자들의 추세이기에, 예언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수용함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