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이모저모
<3> 토프카프(Topkapi) 궁전과 돌마바흐체(Dolmabahçe) 궁전
토프카프 궁전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황제)들이 살았던 성으로 언덕위에 우뚝 솟아있는데 그 화려한 장식들과 유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술탄들의 사치와 권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별채 부분인 술탄의 여자들이 기거하였던 할렘도 내부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제31대 술탄 압둘 마지드(Abdul Majeed)가 1853년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대리석으로 짓기 시작한 제2의 궁전으로 유럽풍으로 지었는데 보스포루스 해안에 있어 기막힌 풍광을 자랑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수많은 술탄의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보냈다는 750개의 전구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황제의 방 천정에 매달려 있다.
토프카프 궁전 / 진귀한 술탄의 보물들
돌마바흐체 궁전 / 보스포루스 해협 / 멋진 경관
돌마바흐체 궁 앞에서 / 정원 분수대 / 궁전으로 가는 길
빅토리아여왕이 보낸 샹들리에 / 아타튀르크 국왕의 내빈 접견실 / 정원의 탑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가 1938년 서거한 방이 있는데 그 방의 시계는 그가 죽은 시각인 9시 5분을 가리킨 채 멈추어 있다. 가이드 녀석이 이 궁전을 안내하다가 딸랑 둘만 데리고 다니며 설명하는 것이 지겨웠는지 20여 명의 여행팀을 인솔하는 다른 가이드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더니 우리더러 저 사람도 영어로 하니 그 뒤에 붙어 다니다가 나중 만나자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들로 보이는 단체여행객들 두어 발짝 뒤에서 뻘쭘히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어야 했다.
<4>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그랜드 바자르 입구 / 화려하고 미로와 같은 바자르 내부
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는 15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끝을 알 수 없는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높다란 돔 천정으로 덮여 있어 길을 잃기가 쉽다. 가이드는 입구에 데려다 주면서 돌아 나오는 길을 수도 없이 확인 시키고는 헤어졌다.
5.0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는 이 시장은 카펫, 가죽 제품, 금속 세공품 등의 터키 특산품을 비롯하여 온갖 제품들로 들어차 있고 활기가 넘치고 있으며 가지가지 이국적인 물건들이 넘쳐난다. 한국 사람들도 제법 있는지 ‘언니, 이리와요, 싸요,’ 등의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구경을 마친 후 가까스로 입구를 찾아 나와 양념시장인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r)로 들어갔다.
<5> 스파이스 바자르(Spice Bazaar)
알록달록한 색깔의 가루들과 이름 모를 조미료들을 좌판 그득 내놓고 파는데 그랜드 바자르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구조는 그랜드 바자르와 마찬가지로 지붕이 덮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로로 얽혀있다.
큰 감동을 주었던 터키영화 ‘테이스트 오브 스파이스(Taste of Spice)’ - 우주의 행성들도, 인생살이의 모든 것도 조미료(양념)로 설명하던 주인공 할아버지의 심미안(審美眼)은 오랜 역사와 독특하고 향기가 강한 터키의 음식문화에 기인함을 알겠다.
스파이스 바자르(양념시장)와 그랜드 바자르
<6>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Cruise)
보스포루스 크루즈(Cruise) 안에서 만난 머리가 허연 서양 늙은이한테 말을 걸었는데 쉰다섯 살의 아일랜드 인으로 내가 환갑이 넘었다니 놀란다. 60년대 서울 YMCA의 ‘Sing Along Y’ 에서 전석환씨에게서 배웠던 기억으로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Molly Malone)’을 한국말로 흥얼거렸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같이 ‘Molly Malone'을 흥얼거리며 아일랜드 영감과 같이 관광을 한 것도 추억이다.
동서양을 잇는 다리 / 길거리에서 맛본 케밥(아들) / 현지 가이드와 한 컷
우리를 태운 크루즈는 마르마라(Marmara) 해협을 바라보며 보스포루스 좁은 해협을 거슬러 올라 동서양을 잇는 보가치키(Bogaziki) 다리를 지나서 멀리 흑해가 바라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온다.
유럽 쪽 이스탄불은 무수한 모스크와 미나레트로 동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고, 아시아 쪽 이스탄불 또한 멋진 별장들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스탄불의 집값은 우리나라 서울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멀리 아시아 쪽 남쪽으로 우리에게 노래로 익히 알려진 ‘우스크다르(Uskdar)’도 어렴풋이 보인다.
<7> 벨리 댄스(Belly Dance)와 세마 춤
저녁에는 벨리댄스를 보러 다리를 건너 아시아 쪽으로 갔다. 극장식 식당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은데 몇 가지 식사코스 가운데 아들 녀석이 120 유로를 주고 최고급으로 예약하였더니 무대 맨 앞자리로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그득 차려졌다. 고대 술탄의 할렘을 재현한 쇼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벨리댄스의 그 화려함과 신기(神技)에 가까운 허리 흔들기는 놀라울 뿐이었고 이슬람 수피파(Sufism)의 무아지경에 빙글빙글 도는 세마 춤(Sema whirling dance)도 인상적이다.
벨리댄스(배꼽춤) / 이슬람 수피파의 세마춤
최고급 식사를 하는 사람들만 계속 무대 위로 불러 올려 쇼에 참가시키는데 나도 수없이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나중에는 손님 중에서 술탄(Sultan)을 선정하는데 나와 뚱뚱한 독일친구 둘을 놓고 선정하는데 체중에 밀려(?) 독일친구가 술탄이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린다. 나는 그 통에 음식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여기에서 한쪽 구석에 식사는 안하고 차만 마시는 한국 젊은 여성 관광객 10여명이 있어서 ‘선생님들이지요?’ 하고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놀란다. 선생님이 선생님을 모를까... ㅎ
귀국 전날 가죽제품 가게와 토산품 점에 들러서 몇 가지 선물을 쇼핑하였다. 특히 질이 우수한 가죽제품이 눈에 띄었는데 가격이 무척 싼 편이었다. 지갑 몇 개, 실크 스카프 몇 장을 샀는데 품질도 좋았고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무척 아름답기는 하지만 카펫은 조그만 것도 상상외로 비싸다.
카펫 가게 / 가죽 지갑 / 이스탄불 도심의 오벨리스크
관광을 하다보니 시내 광장 한 가운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있기에 무심코 가이드한테 저거 모조품이겠지?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BC 1550년, 이집트 파라오(왕)가 메소포타미아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카르나크(Karnak) 신전에 세웠던 것인데 비잔틴제국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I) 황제가 이집트에서 옮겨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양고기 냄새가 나는 길거리의 즉석 케밥, 점심으로 먹었던 아담한 레스토랑의 깔끔한 식사,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골목길도 잊을 수 없다. 이스탄불에 국한된 터키 여행을 끝내며 무진장한 아시아 쪽 터키의 여러 관광지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터키는 워낙 면적이 넓다보니 동부 아시아지역의 터키를 골고루 보려면 적어도 20일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한다. 꼭 다시 한 번 와서 골고루 둘러보아야겠다.
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모습
귀국길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한나절 시간이 있어 암스테르담의 그림 같은 건축물들과 운하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 도심을 흐르는 운하(運河) / 암스테르담 성당(?)
아기자기한 건물들 / 멋쟁이 아들 / 미술관 광장의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