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기
<1> 미국 여행
2005년 여름, 미국 멤피스에 사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20박 21일 간의 미국여행 기회가 생겼다. 기왕 미국을 가는 김에 날짜를 넉넉히 잡아 미국 전역을 돌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먼저 미서부는 7박 8일의 패키지 여행을 했는데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라스베가스,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이 포함되었고,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을 관광하고 곧바로 시카고를 경유하여 딸이 사는 테네시(Tennessee)주 멤피스(Memphis)로 갔다.
미시시피 강가에 위치한 오래 된 도시 멤피스 시내를 두루 구경한 것은 물론 딸 부부는 모처럼 휴가를 내고 갯링버그의 스모키 국립공원 안에 미리 예약하여 둔한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의 산장(Sweet Home Tennessee)에서 3박을 하며 인근을 두루 구경할 수 있었다. 산 정상까지의 트래킹, 산장 테라스에 설치한 핫터브(Hot Tub)에서 스모키 계곡을 바라보며 즐기는 따뜻한 목욕, 실내에 설치된 자쿠지(Jacuzzi/뜨거운 거품이 나는 일본식 욕조), 인근에 널려있는 미국 남북전쟁의 요새들이 인상 깊었고, 특히 공원 안에 있는 체로키 인디언 보호구역(Cherokee Indian Reservation)을 둘러보며 미국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와 현실에 가슴이 쓰렸다.
다시 동부로 훌쩍 떠나서는 뉴저지(New Jersey)에 사는 조카 네에 짐을 풀고는 맨하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뉴욕의 심장부를 구경하였다. 자유의 여신상은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하였는데 관광이 끝나고, 점심시간에는 맨하턴에서 보석상을 하는 고등학교시절의 단짝 친구도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다음에는 뉴욕에서 다시 패키지로 떠나는 2박 3일짜리 나이애가라폭포 버스투어를 하였다. 나이애가라폭포의 위용도 놀라웠지만 캐나다로 건너가 몬트리올에서는 아이스바인(Ice Wine) 포도농장과 포도주 공장을 방문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이민자들의 초기 도시인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보스톤(Boston) 관광이 기억에 남고, 뉴헤이븐(New Haven)에서는 하버드(Harvard), 예일(Yale), 캠브리지(Cambridge), 마사추세츠 공대(MIT) 등 미국의 유명대학을 둘러본 것이 즐거웠다.
특히 보스톤에서 걸어본 『자유의 길(Freedom Trail)』이 기억에 남는데 초기 이민자들의 희망과 활기에 찬 모습, 정착이 힘들어 좌절하는 모습들을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세워놓았는데 그 희망과 절망이 너무도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워싱턴(Washington)에서는 맑고 수량이 풍부한 포토맥강,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탑, 국회의사당, 링컨기념관을 비롯한 수많은 볼거리들을 조카 가족과 같이 둘러보았다.
서부 패키지여행에서 가이드 녀석이 제법 우스갯소리를 잘 했는데 하나를 옮겨 본다. 칠순의 한국할머니 한분이 미국 구경을 하고 귀국했는데 친척들이 둘러 앉아 여쭈어 보았다고 한다.
'할머니, 미국 가시니 좋던가요? 어디어디를 구경 하셨소?'
‘야들아 말도 마라, 나는 미국 가서 벨거 다 보구 왔다.
나이가 든 년도 보구, 그래두 미친 년도 보구, 요새 미친년도 봤다.’
요게 뭔 소린고 하니 그랜드캐년 국립공원(그래두 미친년), 요세미티 국립공원(요새 미친년), 나이아가라 국립공원(나이가 든년)을 보구 왔다는 이야기였단다.
미국사람들에게 미국 내에서 제일가고 싶은 관광지를 꼽아 보라고 했더니 1위가 그랜드 캐년이고 2위는 나이아가라 폭포, 3위가 디즈니월드(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였다고 한다.
3위가 좀 웃기는데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새로 꾸며진 디즈니월드는 규모도 훨씬 크고 어른들이 놀 것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성인들이 놀이공원이라니!!
그런데 정작 1년 동안 미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립공원은 테네시주에 있는, 우리가 갔던 스모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중 하나일 뿐더러 동식물 분포가 가장 다양하고 또 보존이 잘 된 공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거기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미국 동부에 위치하다보니...
애팔래치아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스모키 공원은 동부의 대도시에서 비교적 가깝고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자랑이라는데 특히 산장에서 본 스모키 산은 끝을 알 수 없는 골짜기와 거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구름이 환상적이었다. 미국은 한마디로 너무나 광활하고 풍요로운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20여 일의 강행군과 수도 없이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매우 뜻 깊은 여행이었다.
<2> 미국의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 전쟁은 미국이 북부와 남부로 갈려져 만 4년에 걸쳐 벌인 내전으로 격전 끝에 결국 남부가 패배한 전쟁이며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지금부터 약 140여 년 전인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북부를 대표하는 공화당 출신 아브라함 링컨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노예문제 등 각 지역 간의 이해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고 한다.
공업이 발달한 북부지방은 흑인노예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목화재배 등 농업이 주된 산업인 남부는 흑인노예가 꼭 필요하였는데 링컨이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갈등, 남-북은 물론 동-서 지역의 이익이 엇갈리는 등 수많은 갈등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처음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등 7개 주가 링컨이 이끄는 연방정부로부터 떨어져 나올 결의를 굳히고 1861년 2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를 본부로 하는『미국남부 연합』을 조직하면서 구체화 되었다.
1861년 4월 6일,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수도 찰스턴 항구에 있는『섬터 요새』에 식량을 보내려 하였는데 남부 연합은 연방정부가 남부를 공격하려고 지원하는 것으로 보고 섬터 요새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중립적 태도를 취하던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지니아 등 4개 주가 남부 연합에 가담하게 되어 총 11개 주가 되었는데, 버지니아 주는 두 쪽으로 갈라져 서쪽인 웨스트버지니아는 북부편이 되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경제력이 든든하고 유능한 군인인『리(Robert Edward Lee)장군』이 버틴 남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위기에 처한 북부의 링컨대통령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맞대응을 펼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마지막 최대의 격전지가 된『게티스버그 전투』가 1863년 7월 1부터 7월 3일까지 펜실베니아 남부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졌는데 7월 4일에는「리장군」이 이끄는 남부군이 밀려서 포토맥(Potomac) 강까지 후퇴하였다. 이때 계속 공격하였으면 남부군이 전멸하고 전쟁이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북부군을 이끌던「미드(George Gordon Meade)장군」은 평소에 친했던「리장군」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포토맥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북군은 곧 총사령관이「그랜트(Ulysses S. Grant)장군」으로 바뀐다.
이 게티즈버그 전투로 남군은 2만 5천명, 북군은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결국 1865년 4월 12일「그랜트장군」과「리장군」이 만나 정식으로 남군이 항복함으로써 결국 북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이 4년간의 전투로 북부는 총동원 200만 명 가운데 36만 명이 사망하였고, 남부는 70만 명 중에서 25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인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링컨 대통령이 한 연설은 약 3분 정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가장 훌륭한 연설로, 가장 완벽한 글로 기억되고 있다. 1865년 불리하던 전쟁을 북부군의 승리로 이끌어 낸 것도 이 연설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링컨의 연설『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 Of the People. By the People)』는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전쟁의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였다.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 외에도 전쟁이 끝나고 이틀 후인 1865년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은 암살된다. 남부는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 황폐해졌는데 링컨이 약속했던 관대한 남부 재건안도 물거품이 되었으며 남부는 거의 북부의 식민지로 떨어지게 되었다. 특히 자부심이 강한 미국 남부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고, 사사건건 무조건 북부를 반대하는 전통은 지금까지 남아있어 북부 정당인 공화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남부 정당인 민주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3> 미 대통령 관저 백악관
백악관은 1800년에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이라 불리었다고 하는데 1812년 영국인들의 습격에 의해 불에 검게 그슬렸고 그 그슬린 시커먼 벽에 흰 페인트칠을 해서 백악관(白堊館/White House)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그렇게 불려졌다고 하며 당초의 건축은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찰스가 설계했다고 한다. 백악관은 모두 132개의 방이 있으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만 빼고 2대 존 애덤스(John Adams)부터 역대 미국 대통령이 모두 여기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2005년 8월의 워싱턴은 혼잡한 뉴욕과는 달리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는 시원한 포토맥 강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널찍한 도로와 함께 어느 부분을 쳐다보아도 건물과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루어 여유롭게 느껴졌다. 웅장한 국회의사당, 하늘을 찌르는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 스미스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등이 몰려 있고 또 백악관 근처 웨스트 포토맥 공원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총검 위에 우의를 걸친 채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가는 피곤한 군인들의 모습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어 가슴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