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_ 남도역사를 따라 걷다 3
전주 한옥마을
각 지역을 상징하는 코드가 있지요.
대나무의 고장하면 담양이 떠오르고
나비의 고장은 함평.
전주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오늘은 전주를 찾아가겠습니다.
전주에 가면 전주를 소개하는 도시브랜드가 있는데,
그림과 함께 글씨가 한바탕 전주 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한바탕.
한바탕이 무슨 의미일까요?
숫자로서의 한바탕일 수도 있고,
크다라는 의미로 될 수도 있으며,
우리의 상징인 ‘한’의 의미도 품었을 것 같습니다.
서양 것에 대한 우리 것을 얘기할 때 앞에 접두어 한을 붙입니다.
서양집인 양옥집에 대한 한옥.
서양 의사인 양의사에 대한 한의사,
양복에 대한 한복,
양과에 대한 한과.
처음엔 서양 것이 낯설어 생소했을 것인데
어느 순간 우리 것이 생소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근대 개화기와 현대 외래문물의 수용을 거치면서 우리것이 오히려 낯선 것이 되어버렸지요.
한복 입은 사람은 독특한 사람이고,
과자도 한과는 명절때만 먹는 낯선 과자이고, 처음엔 양과자가 낯선 과자였는데요.
의사는 그냥 의사인데 한의사는 다른 의사,
집도 그냥 집인데 한옥집은 다른 집 뭐 그렇잖아요.
원래는 우리 것인데
지금은 독특한 - 그 독특한 한옥집을 집단화 시켜 놓은 곳이 바로 전주 한옥마을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에 시내에 일본 상권이 형성되자
거기에 대한 반감으로 한옥을 한옥촌을 형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역사문화 관광 바람과 함께 전주에서 한옥마을을 브랜드화 했고 그리고 성공했지요.
저는 여기서 성공이란 개념이
관광객들이 유입되고 관광수입이 올라가서 시재정에 기여했다는 부분을 성공이라고 보는데
지속발전에는 약간 회의적인 생각입니다.
슬로시티 전주 - 한옥마을의 맛이 없어져 가는 듯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도 전주에 가면 한옥마을을 찾아갑니다.
우리의 바탕이라고 말을 하는 곳이니.
전주에서 한옥마을 안에 가면 다양한 꺼리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경기전과 전동성당의 조화가 있기에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가 되지요.
마치 전주의 비빔밥처럼 그 둘이 딱 맞아 떨어져서 전주 한옥마을을 더 빛나게 하는 듯 합니다.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그리고 전주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전주는 잘 알다시피 전라도의 대표도시였습니다.
조선시대 지방 행정구역이 크게 팔도로 나뉘는데 지방관으로서는 최고의 높은 관직이 관찰사입니다.
그 관찰사가 파견된 곳이 바로 전주이지요.
저는 전주에서 한옥마을을 보고
전주라는 도시를 전통으로 이해하려면 전주 객사를 가라고 권합니다.
객사.
한자를 쓰지 않으면 '객사'라는 두 글자만 갖고서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안됩니다.
객사에서의 객은 손님 객이고 사는 집 사자이니 손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관청 안에 있는 손님의 집.
조선시대 객사는 조선의 행정조직인 부 목 군 현 그리고 수영, 병영의 관아 안에 있었습니다.
'ㅇㅇ읍성' 이라고 하는 곳엔 객사도 함께 있었습니다.
낙안읍성, 고창읍성, 나주읍성 등
읍성이 있었던 곳에는 모두 객사가 있었지요.
그 유명한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세병관도 객사 건물입니다.
조선시대 객사의 주 기능은 공무를 갖고 출장하는 관리들이 묵어가는 관급 호텔이었으며,
전주는 전라도의 중심이었으니 5성급 호텔쯤으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객사가 호텔 기능 외에 더 큰기능이 있었으니 바로 왕권을 상징했습니다.
전주객사도 그러하지만 각 고을에 있는 객사의 모양은
가운데 중앙 건물을 두고 양쪽에 새의 날개처럼 두 개의 건물을 덧붙였습니다.
가운데 건물엔 대궐 할 때의 ‘궐’ 자와 전하 할 때의 ‘전’자를 모셔두고,
임금이 저기에 있는 듯 생각했고, 양쪽 날개건물에서 출장 온 관리들이 쉬어 갔지요.
맨처음 부임지에 도착한 지방관은 객사에 도착해 도착보고를 하고,
한달에 두번(보름때와 그믐) 객사에 모셔진 전, 궐 패에 예를 올렸습니다.
객사는 살아있는 임금의 사당이고, 임금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지요.
성춘향을 구하러 온 이몽룡도 변사또를 객사앞에서 혼냅니다.
어사또는 임금을 대신해 감찰을 나왔으니 임금의 대행자였으닌까요.
전주객사는 한옥마을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입니다.
한 15분정도. 길을 알았을때요. 지도보고 찾아가면 됩니다.
차는 전주객사에 주차할 데가 없어요. 감시 카메라는 천지에서 번득이고요. 잘 알아서 가야 합니다.
고을 중심에 객사가 있었기에, 도시가 현대화 되면서 객사 인근이 시내 중심이 되고,
도로확장에 한계가 있으니 교통혼잡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교통혼잡을 떠나 객사가 남아 있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광주 같은 경우 객사는 시내 중심지가 되며 그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전주 객사에 대해 더 얘기할 꺼리가 있는데
객사 현판입니다.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