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수은주가 많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눈이 제법 내렸다.
춥고 미끄러운데다 이사하는데는 도움 되지 못해도 자기 방 정리는 해야
하므로 이를 이유로 해서 하루를 접으려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실은 그렇게 나오기를 내가 은근히 기대한 것이 아닌지.
모레(12월31일) 시작되는, 아직도 내 연중행사의 하나인 연말연시의 삼백
산(함백, 태백, 소백) 등산 여정을 위해 준비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추운 날씨와 미끄러운 산길에 적응되지 않은 어린 손자에게 3개
산(우면,구룡,대모)을 오르내리는 18km는 이전 3일에 비해 벅찰 것이다.
그래서 기상과 노면 상태가 양호한 날 걷고 싶었다.
그러나, 손자는 간밤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고 아침의 정한 시간에 약속
장소(지하철 충무로역)에 나타났다.
사당역, 어제의 입구와 반대편 출구(3번)에서 4번 역코스를 시작했다.
2016년 12월 29일 아침 9시 30분, 지하철 4호선 3번출구 앞에서 시작(위)
어제 마감한 5코스 관악산 관음사에서 남태령을 넘어가는 과천대로를 횡단하면 지하철 사당역을 거치지 않고
반시계방향 4코스가 시작된다.
출발해서 곧 코박기 알맞은 된비알 오르막이다.
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비치된 4코스 3번째 스탬프를 찍고 손자에게 아이젠을 신겼다.(아래)
조심성 있는 손자라는 확신이 있다면 단연코 막았을 것이지만.
아이젠의 풀네임은 슈타이크아이젠(Steigeisen/독일어)이다.
전주에 오르기 위한 '발 디딤쇠'를 말하는데 언 땅 또는 미끄러운 눈길 등 산길에서 등산용으로 변용되고 있다.
더러는 이 도구를 발명한 독일인 아이젠의 이름을 땄다고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아이젠은 겨울 산행에서 일종의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무픞 관절에는 절대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희수(77세)에 이르기 까지 이 도구의 사용을 거부해 왔으나 이즈음에는 받아들이고 있다.
다리의 힘이 약화된 지금 무릎 관절의 보호와 다른 대형 사고의 예방 중에서 택일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여전히
전자를 고집할 나이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서울둘레길 4코스의 반시계방향 진행은 우면산 부터 시작한다.
소가 잠자는 형국의 산이라 해서 우면산(牛眠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산의 허리를 밟고 돌아간다.
큰 바위가 관을 쓴 모양이라 해서 관암산(冠巖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본래 관악산과 연결되어
있던 산임을 의미하는 이름일 것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양재역과 서초동까지 이어졌던 우면산은 하반신 한 다리가 완전히
절단나고 말았다.
서울시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우면산은 정상이 해발 313m에 불과하므로 오르내림이 심하다
해도 안내리본 또는 화살표만 놓치지 않으면 그다지 어려운 산이 아니다.
성산약수터(위)에서 안내 표지를 따르면 쌍돌탑(아래3)을 지난다.
10시 방향,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예술의 전당과 서초동 일대가 보이는 듯 마는 듯 하는가 하면(위1.2) 1시
방향으로는 대성사가 희미하다.(아래1)
음악당과 미술관을 비롯해 각종 자료관, 교육관 등 예술 전반의 활동을 담는 예술의 전당은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나 우면산을 절단내어 만든 시설이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분노의 표출이라 할까.
자연은 2011년에 대형 산사태로 경고장을 보내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제대로 고쳤는지.
백제의 15대 침류왕(枕流王) 원년(384년)에 인도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에 들어왔으며 이듬해(385년)에
한산(漢山)에 절을 지었다는데 그 고찰이 여기 대성사(大聖寺)?
1c 전인 일제 식민 통치 시기에 대성사는 종교간의 대화를 활발하게 했던가.
대성사를 중심으로 불교와 천도교, 기독교 등의 지도자들이 민족의 광복과 독립, 종교의 중흥을 도모했다니까.
우면산이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는 산속 깊은 곳의 고찰이었을 텐데 예술의 전당 바로 뒤에 있으니 제자리에
앉은채로 환속한 셈이다.
대성사 이후 손자는 매일 이 시간대가 되면 하던 대로 점심 메뉴 열거를 시작했다.
오늘은 아직껏 관심을 끌만한 대화거리가 없다.
우면산도, 예술의 전당도, 대성사도 모두 손자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나마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난데없이 나타난, 집 잃은(?) 시위석(위)
서울둘레길은 잠시 다시 올랐다가 양재숲으로 내려간다.(아래)
금강산도 식후경이 맞는 듯 손자는 2번째 스탬프를 점심 식사 후로 미루었다(위)
식사 후에는 시간에 쫓겨 양재숲은 주마간산 식으로 끝내고(아래1) 여의천 따라서 구룡산으로 향했다.(아래2)
구룡산은 서초구 염곡동, 내곡동과 강남구 개포동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개암약수터와 구룡터널 위를 지나서(위) 대모산유아숲과 불국사도 지났다(아래)
경주 불국사와 동명이사인 일원동의 대모산 불국사도 오래된 명찰이다.
고려말의(공민왕2년?) 고찰이며 석불좌상이 서울시 문화재자료(제36호)로 지정되었다니까.
3개의 산을 거쳐 오는 동안에 여러 곳의 약수터를 지나왔지만 하나같이 '부적합', 퇴출대상이었는데
홀로 살아남은(적합) 영예로운 실로암약수를 조.손이 한모금 마셨다.(위)
관리자가 강남구청인데 약수터 이름을 왜 기독교 성서에서 차용(?)했는가.
기독교 장로인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쳤는데(봉헌) 강남구청도 그런 유형인가.
실로암(히브리어)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지만 약수는 소경을 눈 뜨게 한 개안수를 의미하는데.
대모산 돌탑.
임형모씨는 왜 대모산의 이갑룡 처사를 자임했는가.
20c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마이산 탑사의 주인공 이갑룡 처사가 21c에 하필 대모산에 환생했는가.
강남구 개포동과 일원동 남쪽에 위치하는 산으로 늙은 할머니의 형상이라 하여 할미산이었던 해발
293m산이 대모산(大母山)으로 개명되었단다.
태종 이방원(이조3대)과 원경왕후(민씨)의 묘인 헌릉(獻陵)이 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산 이름을 바꾸
라는 왕명이 떨어졌다나.
정북에 서와 동을 더한 부채꼴 시야가 막힘이 없다.
여기에 123층 롯데 월드타워는 단연코 군계일학이다.
곧, 수서역 6번 출구에 연결되는 대모산 초입에 당도함으로서 4코스를 마쳤다.
우리는 연말 2일과 연초 3일 등 5일 이후, 1월 4일 다시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그 날부터는 중학교 2년인 큰 손자도 함께 한다.
둘과 셋은 숫자로는 0.5배의 증가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15살짜리 하나가 늘어
나는 것이므로 긴장도 2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다.
거듭 명심해야 할 것은
"말 1 필을 물가에 데려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그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이는 일은 아무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