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남 보성군 벌교읍, 순천시 별양면, 낙안면 성북리
◈ 금전산(金錢山 667.9m)은 순천 낙안읍성에서 선암사로 가가 위하여 오공재를 넘어가다보면 좌측으로 낙안온천이있고 우측을보면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는 산이다. 금전산은 호남정맥 남쪽에서 특히 우뚝한 산봉인 조계산에서 뻗어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고동산을 거쳐 일으킨 암산이다. 이 금전산의 옛이름은 쇠산이었으나 100여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전산은 낙안읍성 뒤에 낙안의 큰 바위얼굴로 우뚝 서 있다. 정상부의 서쪽면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특히 석양 무렵이면 붉디붉은 광채로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이 첨탑처럼 솟은 암봉 사이를 비집고 한 줄기 등산로가 나 있으며 원효대, 의상대, 형제바위, 개바위, 등 기암들이 도열해 있다. 밑에서 보는 바위 암릉은 어느 바위산 못지 않게 압도적으로 보인다.
낙안온천→금강암(의상대.형제바위)→금전산 정상 코스
산행은 보통 오공재를 지나 고개산장에서 시작을 하지만 낙안온천에서 원점회귀로 실시하기도 한다. 온천에서 보면 금전산 정상에서 4줄기 정도의 지능선이 내려와 있으나 나머지 구간은 바위가 많아 아직은 개발이 안된듯 온천 주차장을 길을 건너가면 "금강암" 가는길이 등산로 시발점이다.
산행은 처음부터 급경사의 길이다. 흙길에 작은 깨진돌들이 있는 급경사의길 나무들도 어느정도 자라 햇빛을 막아준다고는 하지만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할무렵 출발 15분정도만에 몇개의 무덤을 지나게 되고 전망대에 도착을 한다. 낙안온천과 그 밑으로 동고저수지가 좌측으로는 낙안읍성이 조망이 된다.
또다시 6분쯤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의상대의 우람한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숨을 돌리고 5분쯤 올라가면 성북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 나오고 조망이 좋아진다. 원래는 2개의 봉이 서 있었으나 80년대 초 어느날 밤에 아래쪽의 아우바위가 허물어져 버리고 형님바위만 남았다고 하는 형제바위를 지나 원효대밑으로해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산죽길을 따라 원효대와 의상대의 바위사이에 난길을 따라 7분정도 올라가면 밑에서 올라온 능선이 보이는곳에 "극락문"을 통과하게 된다. 문을 통과 S자모양으로 올라가 결국 문위를 딛고 건너가는 형상인 극락문은 지리산의 통천문과 모양이 비슷한데 다른것은 극락세계로 들어오며 세속의 때를 벗으라고 문을 통과하자마자 있는 "감로수"이다. 극락문을 통과하면 무념무상의 세계에 들어선다.
"극락"과 "현실"은 이 문 하나 한발자국 차인데 눈을들어 멀리보면 낙안온천과 그뒤로 낙안벌의 시야가 보이고 뒤를 보면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금강암으로 올라서자 자그마한 절이 나타난다. 수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주지스님의 당부가 있는 곳이기도하다. 조용히 정상으로 향해야한다. 백제시대 창건된 금강암은 원통전, 지장암, 선원, 삼성각등 부속건물을 지닐 정도로 규모있는 사찰이었으나 여순반란 사건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초라한 사채 1동도 그후 건축된것으로 보여진다.
좌측의 의상대를 지나 약간의 바위 암릉길을 통과 10여분을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다. 커다란 돌탑이 있는 정상은 나무에가려 조망은 그리 좋지가 않다. 천천히 올라왔을 경우 약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하산길에 의상대에는 돌탑이 있고 후면에는 관음좌상불이 새겨져 있는데 비가와서 물이 고였을때는 부처님의 형상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좌측으로는 원효암의 커다란 바위군락이 위용을 보이고 그 밑으로는숲가운데에 형제바위가 서있고 지능선상에 서있는 바위들 개바위, 참선바위, 두꺼비바위 비록 어느것이 어느 바위인지는 구분을 못하는 기암괴석은 어느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바위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다시 극락문을 통과하면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고 형제바위에 올라서 위를 보니 좌측으로는 의상대, 우측으로는 원효대등 기암괴석이 밑으로는 낙안벌, 낙안읍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총 산행시간이 2시간 21분 단체 산행을 하여도 3시간내외. 짧은 산행치고는 기암괴석이 인상이 남는 산으로 바위산이라고는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고 온천과 낙안읍성 관광을 할수 있는 가족 산행지로 적격이다.
불재→암릉→궁굴재 갈림길→금전산 정상→금강암(의상대)→형제바위→낙안온천 코스 산행 초입인 불재의 오봉산쪽은 대형 축사가 있고 주차할 공터가 많이 있다. 산행 안내도(정상 3.4km)가 세워져 있는 넓은 길로 리본들이 산행 길잡이 역할을 한다. 20여 분을 진행해 가면 구능약수터가 나온다.
이어 암릉지대를 지나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궁굴재 삼거리가 나오고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다. 정상에는 돌탑과 금전산(667.9m) 정상석이 있고 조망은 잡목으로 가려 좋지 않다. 오히려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의 낙안벌 조망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약 400m쯤 내려가면 금강암이 나온다. 금전산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마애불이 있는 의상대에서의 조망은 아주 좋다.
구능약수의 유래 예전에 처사(處士)한 분이 득도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수도를 하는데 석굴 입구 위쪽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하루 세끼분의 쌀이 나와 연명을 했다 한다. 하루는 손님이 찾아와 식량이 부족하자 쌀이 더 나오도록 부지갱이로 이 구멍을 쑤셔대자 쌀은 나오지 않고 쌀 뜨물만 흘러 내렸다 하며, 쌀 뜨물이 석영으로 입구에부터 있다. 또한, 석굴 안쪽 한면에 석유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신령스러워 공을 드리지 않거나 상스런 행위를 하고 물을 받으면 조금전까지 흐르던 물이 마른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낙안온천→금강암→금전산 정상 산행기
낙안온천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금전산(金錢山 667.9m)을 오르는 산길은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았다. 산행 출발 전에 낙안읍성에서 올려다볼 때는 초가 너머로 암봉도 제법 보이긴 했으나 처음부터 숲이 짙어 과연 조망이 어떨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출발한 지 단 5분만에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낙안읍성을 기준으로 보면 드넓은 낙안벌 너머로 북쪽은 진산인 금전산, 동쪽은 좌청룡인 오봉산(592m), 서쪽은 우백호인 백이산(584m), 그리고 백이산에서 동남쪽으로 얌전히 흘러내린 안산인 옥산(97m)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물줄기는 금전산 동남에서 흘러들어오는 동내와 서남에서 흘러나오는 서내가 있는데, 모두 성벽의 바깥동면을 따라 흘러 옥산 앞을 지나 들판을 훑고 바다로 이어진다.
풍수로 보면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의 명당. 이는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리려고 화장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형국'이다. 낙안읍성 남쪽에 있는 평촌리 평촌못은 옥녀의 거울에 해당한다. 그래서 낙안 고을엔 옛날부터 미인들이 여느 지역보다 유난히 많다고 전한다.
다시 숲을 지나 얼마쯤 가자 본격적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서쪽으론 조계산에서 고동산을 거쳐 백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넌출거리고, 남쪽으론 풍요로운 낙안들판이 펼쳐져 있다. 낙안온천을 출발한 지 35분만에 집채만한 바위에 도착했다. 높이가 5~10m 정도 되는 이 바위 한 쪽엔 키가 비슷한 두 개의 바위가 사이좋게 나란히 붙어있어 형제바위라 불린다.
그러나 1980년대 태풍이 불던 어느 날 밤에 아래쪽 동생바위가 허물어져 형님바위만 남았다. 하나만 남은 바위 생김새가 조금 날카로워 칼바위라고도 한다. 조심해서 올라갈 수 있는 형제바위 정상에서 땀을 식히며 내려다본 조망은 정말 일품이었다. 아침 안개가 접시 모양의 낙안들판을 뒤덮으면 옥산이 섬처럼 솟는 장관을 만날 수도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런 날은 일년에 며칠밖에 안된다.
형제바위를 지나 짧은 숲길을 벗어나자 문득 큰 암봉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동쪽 암봉은 동대, 서쪽 암봉은 서대인데, 절집에선 동대를 원효대, 서대를 의상대라고도 부른다. 산길은 두 바위 사이를 지나 서대인 의상대로 이어진다. 잠깐 오르자 금강암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바위굴이 나타났다. 지리산의 통천문 비슷한 바위굴엔 극락문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바위굴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맑은 석간수가 반긴다. 시원한 샘물로 목젖을 적시고 산성 같은 예쁜 돌계단을 지나면 여염집처럼 보이는 금강암(金剛庵)이다. <승주향리지>에 의하면 '위덕왕 30년(583)에 금둔사가 창건되었고, 그후 의상대사가 금강암 문주암 등 30여 암자를 가진 큰 절로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강암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의상대로 오를 수 있다. 의상대 펑퍼짐한 바위엔 어른 키를 넘는 돌탑 한 기가 서있고, 그 옆 바위벽엔 최근에 새긴 듯한 마애불이 낙안들판을 굽어보고 있었다. 의상대 마애불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장관이 펼쳐진다. 낙안들판과 금전산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의상대를 벗어나 정상을 향해 오른다. 산길은 암자를 왼쪽으로 돌아서 나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금강암에서 정상 오르는 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엔 등산객들이 늘어났고, 금강암 스님이 길을 다듬은 덕에 제법 널찍해졌다. 금강암을 떠난 지 20분만에 헬기장이 있는 전위봉이고, 여기서 평탄한 길을 2~3분 더 오르자 돌탑이 서있는 금전산 정상이 나왔다.
정상은 잡목숲에 가려 있어 조망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오공재, 그리고 불재로 내려가는 두 갈래로 나뉜다. '오공재 2.44km, 불재 3.4km'라 쓰인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김씨는 오공재로 내려서는 길은 있으나 그다지 좋지 않고, 도중에 금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긴 해도 금둔사측에서 산길을 폐쇄했다고 한다.
우리는 애초에 계획한 대로 동릉을 타고 불재로 내려서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낙안온천에 주차해 놓은 차 때문에 회귀산행을 해야 한다면 정상에서 다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동릉은 숲이 짙어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부드러운 내리막에 호젓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정상을 떠난 지 20분만에 궁굴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팻말엔 '금전산 정상 1.2km, 불재 1.3km, 휴양림 1.2km'라 써있었다. 여기서 낙안민속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는 약간 있으나 부드럽다. 고갯마루에서 직진해 오르막을 5분쯤 오르자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휴양림 아래의 낙안저수지 너머로 낙안들판이 살짝 보였고, 그 너머 멀리 벌교 고을이 어슴푸레 나타났다.
다시 15분만에 동남릉의 마지막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이젠 내리막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쌀바위까지는 길이 제법 가팔라 초등학교 저학년은 조금 위험할 듯싶었다. 그래도 경치는 좋았다. 금강암 오름길에 잘 안 보이던 구절초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남도의 꽃답게 꽃송이가 제법 큼직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15분만에 도착한 쌀바위. 텐트 두어 동 칠 수 있을 만큼 평평한 터 한 쪽에 서있는 쌀바위는 높이가 4~5m 정도 되었는데, 욕심 많은 스님이 쌀을 많이 나오게 하려고 쌀구멍을 쑤셨으나 그 후로는 오히려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다. 쌀바위 오른쪽 아래 바위굴 속엔 처사샘이라는 석간수가 있다.
이후로 경사는 완만했고, 산길도 제법 널널했다. 2~3분 정도 내려서니 천막 두른 약수암이 나왔고, 임도 같은 산길을 10여 분 더 내려가자 새하얀 억새와 보랏빛 쑥부쟁이가 반기는 불재 정상이었다.
◐ 낙안온천→형제바위→금강암→정상→동릉→쌀바위→불재(약 2시간)
◐ 오공재→감나무단지→금전산 정상→금강암→형제바위→낙안온천
◐ 불재→(3.4km)→구능약수→금전산정상→(0.5km)→금강암→(1.4km)→낙안온천 (5.3km, 약 3시간)
◐ 현부자집→(0.7km)→공동묘지삼거리→(2.0km)→대치재→(0.9km)→제석산 정상→(0.2km)→헬기장→(0.5km)→철쭉능선→(0.5km)→헬기장→(0.2km)→제석산→(0.9km)→대치재→(2.7km)→현부자집 (8.6km, 약 2시간 30분)
▷ 순천→낙안 공용버스정류장 앞에서 0-1번, 16번, 63번, 68번 버스가 매일 수시(06:20~21:1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890원.
▷ 자가운전은 갈대 축제장인 대대동에서 818번 지방도를 타고 순천청암대 앞까지 나와 58번 지방도를 타고 낙안 방면으로 간다. 대대포구에서 30~40분 정도 달리면 금전산 산행기점인 낙안읍성에 도착할 수 있다. 낙안파출소 앞 사거리에서 857번 지방도를 타고 송광사 방면으로 1.5km 정도 달리면 금전산 산행기점인 낙안온천이 왼쪽으로 보인다.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벌교읍 연산리. 순천시 낙안면, 별량면
◈ 제석산(帝釋山 560.3m)은 호남정맥에서 갈려져 남쪽으로 흘러내린 금전산과 오봉산 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다. 행정구역상 순천에 속해있긴 하지만 벌교 사람들은 벌교의 제석산이라고 부른다. 그럴만한 것이 벌교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곳이 제석산이기 때문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넓은 낙안벌과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벌교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특히 뛰어난데, '제석'은 하늘에 있는 33개의 하늘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에 있으면서 모든 하늘을 다스리는 제석천왕을 뜻하는 불경에 나오는 이름이다. 한편 벌교란 지명은 뗏목으로 잇달아 만들어 놓은 다리를 뜻하는 말로, 예전 이곳에는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뗏목다리가 있어서 벌교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다리가 무너지고 이후 보물 304호로 지정된 홍교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제석산과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가 되는 곳으로 곳곳에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어 산행뿐 아니라 문학탐방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상에는 1995년 벌교의 제석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제석산 인근에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있어서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 큰 불이 나서 나무들이 타버려 흉칙하게 되고 어쩌다 서있는 나무를 스치면 손이나 옷이 꺼멓게 더러움을 타는 바람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다. 또한 제석산이 불행했던 것은 이 산의 흙 속에서 괴석이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온 산을 마구 뒤집고 파헤쳐 또 한바탕 난리를 치렀고, 산도 흉하게 됐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불탄 흉터는 가셨고, 강력한 단속으로 괴석을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이 산을 다시 찾게 됐다. 오히려 불타서 나무가 없어지는 통에 산등성이에는 바위로 된 기암봉들이 잘 드러나 더욱 돋보이게 됐다. 가을과 겨울의 누런 초원과 하얀 설원에 우뚝 솟은 암봉들, 특히 푸른 초원에 늠름하게 선 암봉들의 위용은 또 다른 매력을 가슴 속에 심어준다. 참으로 자연의 조화는 혜아릴 수 없는 신비다.
월출산·두륜산·백운산 등 전남의 명산들에서, 또는 지리산에서 산을 조망할 때 전남 동부, 특히 벌교 일대의 산들을 알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 일대에 망일봉(652m)·고동산(709m)·금전산(668m)·오봉산(592m)·운동산(465m)·제석산(563m)·백이산(584m)·존제산(704m)·비조암(425m)·두방산(489m) 등 그리 뛰어나게 높지도 않고 모양도 비슷하며 고만고만한 산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일대 산들을 오를 기회가 많지 않아 눈에 익지 않은 탓도 있다.
제석산 암봉들은 주봉 정상과 남봉, 신선대, 남쪽 끝봉 네 곳에 형성돼 있다. 주봉은 그리 뛰어난 봉우리는 아니지만 가장 높아서 거기에 표석이 있고 조망도 좋다. 남봉은 주봉쪽에서 가면 평범한 암봉이지만, 남쪽으로는 높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벌교쪽에서 보면 멋있다.
신선대는 남봉에서 벼랑을 내려서서 이어진 등성이에 갑자기 솟아오른 봉우리로 옛날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봉우리다. 신선대 바로 남쪽에 있는 이 산의 남쪽 끝봉이 가장 멋이 있다. 위아래로 갈라진 바위들(수직절리)이 쌓여서 높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신선대쪽에서는 그리 높지 않지만 남쪽(바다쪽)으로는 20~30m의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그 위용이 대단하다.
그 가운데는 기둥처럼 네모 난 높은 바위도 있고, 까마득한 벼랑 끝에 제법 반반한 반석도 있으며, 모자의 챙(차양)처럼 앞으로 내민 바위도 있다. 바위 사이에 두어 가닥의 밧줄이 매어져 있어 이것을 잡고 내려가는 재미도 아기자기하다. 남쪽으로 순천만과 고흥반도의 팔영산, 북으로 조계산 무등산 백운산의 조망이 좋다.
보지는 못했으나 지리산도 조망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벌교의 첨산(313m)과 별량의 첨산(295.2m)이 다 같이 보이는 것이다. 두 산 모두 하늘을 찌를 듯 삼각으로 뾰쪽해 첨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두 첨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제석산 고스락에 서울 제석산악회(재경 벌교 출신 모임)가 세운 표석이 있다. 여기에 제석산의 이름에 관한 설명이 있다. 불경에 의하면 하늘에 33천(天)이 있고, 그 가운데 수미산은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는 높은 산으로 꼭대기에 도리천(利天)이 있고, 가운데의 희견성(喜見城)에 불법을 믿는 자를 보호하고 모든 악을 징벌하는 제왕인 제석천(帝釋天)이 거처한다.
도리천 사방에는 하늘 사람들이 거처하는 성이 8개씩 있다는 것이다. 또 제석산 남쪽 2번 국도변에 있는 회정 마을을 예전에 도리동이라 했고, 회정 마을을 비롯한 벌교를 도리천으로 하고, 여기에 제석천왕이 군림한다고 해서 이 산을 제석산이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제석산 남동쪽에 있는 대치 마을에서는 이 산이 마을을 감싸주고 있는 명산으로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라고 말한다. 이 마을에서는 고스락 아래의 배암골(背岩谷) 바위틈에 작은 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물에 목욕하고 물을 마시면 의술로는 고치기 어려운 괴질이라도 모두 고칠 수 있다 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한편 동화사 현판에는 '개운산 동화사(開雲山 桐華寺)'라 되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절을 개창한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11대 문종의 아들)이 지방을 주유하다가 난주(현 낙안)에 이르렀을 때 동쪽으로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산이름을 개운산이라 하고 여기에 큰 가람을 세웠다고 한다.
절이름을 동화사라 한 것은 이 절터의 지형이 오동봉서형(오동나무에 봉이 깃들어 사는 형국)이어서 그렇게 이름짓고 오동나무를 많이 심었다 한다. 이 산이 어떤 연유로 언제부터 제석산으로 불려졌는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산행은 동화사까지 차로 들어가 시작했다. 삼층석탑(보물 제831호)이 마당 가운데에 서있는 이 절은 절 뒤 동백숲이 좋았다. 푸르름이 돋보이고 절과 잘 어우러졌다. 유형문화재인 대웅전은 한창 보수 중이어서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스님도 없어서 절에 관한 자료도 얻지 못한 채 물만 한 모금 마시고 절 밖으로 나왔다.
절 앞 길이 대나무숲 가운데를 지나며 위로 오른다. 7~8분 오르면 농가 서너 채가 있는 대평마을이 나오고고, 여기 고샅길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20~30m 가면 또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는 왼편으로 농로를 따라 오르고, 마을 뒤 대나무숲을 지나면 길은 밤나무밭을 지나 위로 위로 오른다. 농로인지 임도인지 산등에 오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산등에 있는 농장을 지나도 농로는 그대로 이어진다.
서쪽으로 등성이를 넘은 농로는 큰 등성이(주능선)를 만나도 계속된다. 알고 보니 동쪽 봉우리(대치 마을 정북의 봉우리)의 남쪽 비탈이 기울기가 느슨하고 넓어 큰 목장(남도목장)이 있었고, 한 때는 소가 1,000여 마리나 있었다 한다. 이 농로는 그 목장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큰 잘록이를 지나서도 길 한 가닥은 그대로 잘록이를 넘고 농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어졌다.
잘록이를 지나서부터는 남쪽 비탈길이어서 순천만과 고흥반도의 산들이 조망되어 산행은 더욱 흥이 난다. 농로가 크게 굽도는 곳에서 작은 산길이 비로소 비탈로 나아간다. 산불이 났던 탓으로 나무가 없는 초원이지만 비탈은 몹시 가팔랐다. 나무가 없기 때문에 바다 조망은 좋다. 비탈길에서 큰 등성이의 머리께에 올라서면 바로 널찍한 헬기장이 있고, 예서 고스락은 가깝다.
고스락은 도도록한 작은 바위봉으로 표석이 있다. 바다와 고흥반도, 낙안들과 그 건너의 산들, 북으로 조계산, 모후산, 무등산의 조망이 좋다. 고스락에서 남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또 하나의 암봉인 남봉에 이른다. 별 것 아닌 작은 바위봉 같지만 남쪽으로 까마득한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다. 등성이 저만치에 있는 신선봉과 남쪽 끝봉에 가려면 서남쪽으로 벼랑을 내려가야 한다.
벼랑을 내려가 조금만 돌아가면 등성이에서 우뚝 솟아오른 신선대다. 등성이에 일부러 쌓아 놓은 돌무더기 같다. 이 신선대 위에 오르면 하늘 위에 올라앉은 신선이 된 듯 가슴이 시원하다. 신선대 바로 옆이 제석산의 가장 좋은 명소인 남쪽 끝봉이다. 기둥처럼 네모 난 바위들이 쌓인 이 봉우리도 신선대쪽에서는 낮지만 남쪽으로는 높은 낭떠러지다.
바위 사이에 밧줄 두어 가닥이 매어져 있어 내려가는 데 도움은 되지만 꽤 어렵다. 쉽게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 남쪽 끝봉을 내려가면 서서히 대치재로 내려간다. 대치재 일대는 괴석을 찾으려고 땅을 파헤친 흔적이 많아 흉하다. 대치재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벌곡~낙안 사이 길가의 연산(벌교)농공단지에 내려서고, 동쪽으로 내려가면 한재골을 거쳐 대치마을로 내려간다.
※ 제석산 산행은 낙안의 금전산과 오봉산을 이어 긴 산행을 할 수도 있고 낙안의 구기마을이나 별량의 대치마을로 올라서는 짧은 코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동화사에서 시작해 현부자 집으로 내려서는 코스가 힘도 적게 들면서 경치도 좋다. 동화사에서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쉼터까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면 되고 임도에서부터 헬기장까지 난 등산로도 마지막 깔딱고개를 제외하고는 능선까지 오르는데 크게 힘들지 않다.
정상에서 신선대까지 이르는 능선은 날카로운 바위가 많아 조심해야한다. 신선대에서 내려서는 길은 대단히 가팔라 위험하다. 5미터 정도의 낭떠러지를 내려서야 하는데 밧줄이 마지막 2미터 정도만 설치되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서면 큰 코 다친다. 오른쪽으로 우회로가 있으니 그 길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 동화사→(40분)→쉼터→(20분)→헬기장→(10분)→정상→(5분)→신선대→(10분)→갈림길→(30분)→갈림길→(10분)→현부자집
◐ 동화사→대평마을→주능선→헬기장→제석산 정상→남봉→신선대→끝봉→대치재→한재골→대치마을
◈ 순천만 갯벌을 뒤덮은 광활한 갈대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이 좋은 갯벌이고, 이 땅 최고의 '갈대왕국'이기도 하다. 호남정맥에서 발원한 동천과 이사천의 합류지점으로부터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펼쳐진 갈대 군락은 무려 15만 평에 이른다. 또 순천만 동쪽의 용산에서 바라보는 순천만 일몰은 지금껏 봐온 낙조의 개념을 완전히 바꿀 만큼 아름답다. 11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갈대축제가 펼쳐지는 순천만을 구경한 후, 조선시대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낙안읍성의 진산인 금전산 산행을 즐겨보자.
순천만 갯벌을 뒤덮은 광활한 갈대숲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누구나 할 것없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갈대숲에 파묻힌 대대동 마을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고, 갯벌을 따라 길게 방죽이 있어 넓은 순천만에서 갈대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1990년대 후반 여러 조사에서 '순천만은 한국에서 가장 질이 좋은 습지'로 밝혀졌듯이 다양한 갯벌 생물과 희귀 철새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순천만에서는 흑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11종의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모두 140여 종이 넘는 조류가 서식한다. 이들 개체수도 풍부해 순천만은 람사보존지역 후보지로 첫손에 꼽히고 있다.
또 순천만 갯벌은 바다가 육지화해 가는 염습지가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남은 곳이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일곱 가지로 색이 바뀐다는 칠면초는 염습지의 대표적인 식물이다. 순천만에선 자줏빛 칠면초와 하얀 갈꽃이 어우러진 갯벌 풍경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늦가을의 이른 아침에 낀 짙은 안개는 순천만의 또 다른 명물.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될 때 비평가들에게 '감수성의 혁명'이란 극찬을 들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의 배경지가 바로 이곳임은 우연이 아니다. 소설의 무대인 무진은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이지만,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김승옥은 '순천만 대대포 앞바다와 갯벌'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곳 대대포구 안개가 '무진기행'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순천만 축제를 주최하는 곳은 순천시가 아니라 갈대밭을 관할하는 도사동사무소다. 행사는 갈대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순천만 대대포구와 자연생태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전시 및 체험, 공연행사 등 40종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주요 체험행사는 탐사선을 이용해 순천만을 탐조하는 순천만 생태 탐사, 갈대 사잇길을 걸어 보는 순천만 갈대속 생태체험,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환경기원 연날리기, 갈대 원두막 체험을 비롯해 새끼꼬기, 떡방아찧기 체험 등 다양하다.
이외에도 갈대 공예품과 황포돛배, 그리고 각종 농기구들을 상설 전시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남도 김치 특산품 전시장선 남도젓갈, 순천만 갈대쌀, 순천단감 등 순천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이렇듯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는 축제기간 중에는 볼거리는 많으나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야할 게 자연생태관이다.
1~2시간쯤 둘러보면 갯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순천만 생태계에 대해 눈이 트인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동행했다면 반드시 들러야할 곳이다. 요금은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이후 대대동 선착장으로 간다. 목교를 넘어 갈대밭을 걷기 전에 즐길 거리는 순천만 탐사선을 타는 것과 갈대밭 자전거 하이킹이다. 부두에서 출발하는 탐사선은 두루미호와 순천만1·2·3호 4대의 배가 있다. 뱃길로 4km 정도 떨어진 별량면 장산 근처까지 가는데 왕복 30~40분 정도 걸린다.
배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순천만 가장 안쪽의 갯벌과 붉게 물들어 가는 칠면초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일곱 가지로 색이 바뀐다는 칠면초는 만추 무렵이 제일 예쁘다. 단풍 못지않은 붉은 색에 가까운 진자줏빛 칠면초와 포실포실한 갈꽃이 어우러진 갯벌 풍경은 순천만의 자랑이기도 한다. 잘 살피면 구멍으로 숨어드는 짱뚱어의 우스꽝스런 몸짓도 구경할 수 있다.
탐사선을 타고 가는 도중에 선장의 설명이 곁들여지지만, 너무 간단한 게 조금 아쉽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축제기간만이라도 해설사가 동승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면 좋을 것 같다.
뱃삯은 대인 5,000원, 어린이 3,000원.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 갈대밭 둑을 한 바퀴 도는 것도 해보자. 운동도 되고 시원한 둑도 달릴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잠시 세워놓고 활짝 핀 갈대를 감상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1시간에 성인용 3,000원, 어린이용 2,000원이고, 연인들이 즐겨 타는 2인용은 5,000원이다.
탐사선과 자전거를 탔다면 드디어 순천만 갈대밭을 걸을 차례다. 갯강이 가로막고 있어 예전에 갈대밭 탐사가 어려웠으나 최근 생태공원을 가꾸면서 목교를 설치하면서 수월해졌다. 갈대숲 사이의 목교를 10분쯤 걸으면 농로로 이용되는 둑이 나온다.
이 둑길을 5분쯤 걸으면 일몰 감상지로 유명한 용산(용머리) 아래에 닿는다. 여기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순천만 일몰을 감상하지 않으면 순천만 갈대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된다. 순천만 갈대밭의 아름다운 풍광은 노을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예전엔 최고의 포인트인 용산 일몰 포인트로 가려면 승용차로 순천만을 30분쯤 빙 돌아가서 해룡면 농주리 마을로 접근해야 했으나, 최근 대대동에서 용산 일몰 전망대로 이어지는 산길을 널찍하게 잘 닦아놓았다. 30분쯤 걸리는 가벼운 산행코스라 생각하면 된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명품으로 다가오는 순천만 일몰 전망대인 용산 전망대는 한반도의 명풍경을 찾아다니는 사진작가들의 단골 명소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인들도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른다. 굽이도는 갯강은 금가루라도 뿌린 듯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갯강을 따라 망둥어를 낚기 위해 떠났던 배들이 거슬러 올라올 때면 누구라도 감탄사를 풀어놓게 마련이다. 해가 넘어가고 대대동으로 돌아갈 때도 랜턴은 필요치 않다. 여명으로 충분히 되돌아갈 수 있다. 대대동 선착장에서 용산까지 다녀오는 데 걷는 시간만 왕복 1시간3 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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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년 첫 산행지 정보 잘 올려 놓으셨내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