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방송국 아나운서였다. 일하느라 바빠 두 아들의 공부를 돌볼 틈이 없었다. 학교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그 흔한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하는 대로 뒀다. 세월이 흐른 후, 아이들은 7개 국어를 하는 ‘글로벌 인재’ 로 자랐다. 최근 출간된 ‘7개 국어 하는 아이로 키우는 언어 멘토링’ (한솔수북, 1만2000원)의 저자 이정숙 씨(59세)의 실제 얘기다.
이 씨는 ‘공부기술’(2002년)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조승연 씨(30세)의 어머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남다른 엄마’ 와 ‘영재 자녀’얘긴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보통 엄마’ 가 ‘보통 아이’ 를 언어의 달인으로 키워낸 경험담이 그려진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솔교육 본사에서 만난 이 씨는 인터뷰 내내 “외국어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국어 ’부터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 저희 부모님은 자식들의 ‘국어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쓰셨어요. 늘 저희 4남매에게‘또박또박 정확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가르치셨죠. 말끝을 흐리거나 얼버무리면 크게 혼이 났어요. 일기 검사도 철저하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늘 저희가 써놓은 일기를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틀리게 쓴 부분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좍좍 그어 돌려주셨어요. 우리끼린 그걸‘악마의 빨간줄’이라고 불렀죠. 하하. 국어의 기초를 튼튼히 해놓은 덕분에 우리 남매는 모두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어린이로 자랐어요. 국어가 아닌 다른 과목을 배울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가 빨랐어요. 학교 성적도 늘 좋았죠.”
-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그가 부모님에게 배운 ‘특별한 언어교육 ’은 대(代)를 이어 완성됐다. 이씨는 부모님에게 배운 방법을 두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정확한 국어를 가르쳤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으로 개념을 확실히 익히게 했다. 책도 많이 읽혔다. 그림책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과 철학책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단어, 수준높은 국어를 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학원 한번 보낸 적 없었지만 아이들의 영어 습득 속도는 남달랐다. 특히 둘째아들은 10대에 3개 국어를, 20대 때엔 7개 국어를 할 줄 알게 됐다. 이 씨는 “모국어인 국어의 기초를 튼튼히 해놓은 게 가장 큰 비결” 이라고 설명했다. “ 우리말을 제대로 안 배운 상태에서 영어를 배우면 언어 자체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져 영어는 커녕 우리말도 잘 못하게 돼요. 하지만 모국어인 국어 단어의 뜻과 문장 구조를 잘 익혀놓으면 다른 언어로 쉽게 확장해갈 수 있어요. 결국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하게 되는 거죠.”
‘7개 국어 하는 아이로 키우는…’ 엔 이 같은 이 씨의 경험담과 비결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 자녀의 성장단계에 따라 부모가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 실천법<박스 참조>도 실려 있다.
“영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를 할 줄 아는 능력은 글로벌 인재가 꼭 갖춰야 할 요건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영어조기 교육을 해선 안 됩니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들이 기초를 충분히 다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아이의 뇌 속에 ‘모국어’ 란 ‘언어 광케이블’ 이 탄탄하게 깔리고 나면 머지않아 다른 외국어도 빠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겁니다.”
◆이정숙 씨가 귀띔하는 "자녀‘언어 달인’으로 키우는 요령"
△자녀에게 말할 때 혀 짧은 소리는 그만! 수준 높은 언어를 사용하세요.
△명시와 고전을 많이 읽히세요. 자녀가 그 속의 고급 단어를 배울 수 있답니다.
△늘‘입조심’하세요. 아이들은 금방 배우거든요.
△자녀를 책 속에 빠져 살게 하세요.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것도 좋아요.
△틈날 때마다 자녀에게 질문을 던지세요.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도와주세요. 사고력과 창의력이 높아집니다.
△발표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주세요. 말하기 능력이 조금씩 향상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