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서를 구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의 이야기를 처음 대하는 독자들께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더군요. 생각 끝에 이전에 시대소리에 연재하였던 순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것이 그나마 독자들께 전달이 쉬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처음 연재했던 글이 바로 고려제국(高麗帝國)의 계보(系譜)를 정리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다루겠지만 우리의 역사는 계(系)간의 주도권 싸움으로 규정지울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계(系)는 핵심 중에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나라는 망했을지언정 고려계(高麗系), 백제계(百濟系), 신라계(新羅系)는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며 계(系)간의 갈등과 타협을 반복합니다.
본서는 고려제국(高麗帝國)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께서는 고려제국(高麗帝國)의 계보를 먼저 파악하고 계셔야 본서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려제국(高麗帝國)의 계보를 설명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고려(高麗)라 했을 때 도대체 어떤 고려(高麗)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고려(高麗)라 하면 왕건(王建)이 건국한 나라로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高麗)는 추모(鄒牟)가 건국한 고구려(高句麗)를 계승한 것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추모(鄒牟) 태왕(太王)이 건국한 고려(高麗)는 왕건(王建) 황제(皇帝)가 계승하여 국호를 고려(高麗)로 하였고, 또한 이성계(李成桂) 대왕(大王)도 계승하여 국호를 계속해서 고려(高麗)로 하였다가 고종(高宗) 황제(皇帝)에 이르러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개명되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저의 역사 전개를 처음 대하시는 독자들께서는 황당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본서를 끝까지 읽어보시면 저의 역사 전개에 다 동의는 못하시더라도 여러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보다 더 많은 연구와 조사를 하셔서 보다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찾으시면 됩니다.
먼저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가 고구려(高句麗)인지 고려(高麗)인지부터 알아봅시다. 우리는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가 당연히 고구려(高句麗)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길수 교수는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라는 책에서 지나(支那) 서적에서는 우리가 고구려(高句麗)로 명명하는 나라가 고려(高麗)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고려(高麗)라 표기된 것이 고구려(高句麗)라 표기된 것보다 더 많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가 고구려(高句麗)로 표기되어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高麗)와 구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열도(列島)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열도에서도 우리가 고구려(高句麗)로 명명하는 나라가 언제나 고려(高麗)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우리 역사책에는 고구려와 고려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고 삼국시대 역사를 가장 많이 기록한 『삼국사기』에도 분명히 고구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는 고구려의 약칭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중국측 사서에는 고구려와 고려가 함께 씌어 있고 일본의 사서에는 오직 ‘고려’라고만 씌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고구려’라는 기록은 일곱 번 정도 나오는 것에 비해 ‘고려’라는 기록은 70번이나 된다.
(서길수. 1998.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주)사계절출판사. 42-44쪽)
그러면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무엇이라 칭했을까요? 충주(忠州)에는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라 명명되는 비석이 있습니다.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비석입니다. 그런데 그 비석에 고구려(高句麗)는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고려(高麗)는 분명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고려(高麗)라 부른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고구려(高句麗) 후기에 국호가 고구려(高句麗)에서 고려(高麗)로 바뀐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도 고려(高麗)로 불리었음은 명확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으로 명명되는 불상이 있습니다. 그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제작 연대가 새겨진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고 하는데 불상 후면에 나라 이름이 고려(高麗)로 적혀 있습니다. 불상 후면에 적힌 문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弟子僧演師徒卌人共 造賢劫千佛流布 第卄九因現義佛比丘法穎所供養
연가(延嘉) 7년 기미(己未)년에 고려국(高麗國) 낙양(樂良)에 있는 동사(東寺)의 주지 경(敬)과 제자 승연(僧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제29불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합니다.
학자들은 연가(延嘉) 7년을 서기 539년으로 판단합니다. 이는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도 고려(高麗)로 불리었음을 명확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낙양(樂良)은 평양(平壤)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신채호(申采浩) 큰선생께서 밝혀두셨습니다.
사서(史冊)에 보면 平壤(평양)․平穰(평양)․平那(평나)․卞那(변나)․百牙(백아)․낙랑(樂浪)․낙량(樂良)․浿水(패수)․浿江(패강)․浿河(패하) 등은 다만 「펴라」를 각종 가음(假音 : 실제의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의 한자로 쓴 것)으로 쓴 것이니...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2007.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347쪽)
[그림 1-2]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후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런데 “高麗”는 “고려”로 발음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서길수 교수에 의하면 나라 이름으로 쓰일 때 “麗”의 발음은 “려”가 아니라 “리”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려”가 아니라 “고리”로 발음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고구리’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일찍이 이런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현재 논문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우선 우리나라 옥편을 보면 ‘려(麗)’ 자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麗 : 빛날 려 / 나라 이름 리
이처럼 두 가지로 쓰인다는 것을 밝힌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옥편인 『전운옥편(全韻玉篇)』이다. 『전운옥편』은 정조 때 중국의 『강희자전』을 본떠 만든 것인데, 일상용어만 골랐기 때문에 『강희자전』의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전운옥편』에서는 ‘麗’자를 읽는 법이 두 가지라는 걸 분명히 밝히고 있다.
麗 : [리] 附著 東國高-陳名魚 - (支)
[려] 美也 華也 施也 偶數 高樓 - (霽)
여기서 ‘리’자로 읽는 경우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부딪친다는 뜻으로 쓰일 때. 둘째, 동국고려(東國高麗), 즉 동쪽 나라 ‘고려(高麗)’를 읽을 때는 ‘고리’. 셋째, 진(陳) 이름 ‘어려(魚麗)’를 읽을 때는 ‘어리’. 이러한 한자의 음독은 『전운옥편』이 대본으로 쓴 중국 옥편 『강희자전』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바로 『강희자전』은 고려는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서길수. 1998.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주)사계절출판사. 47-48쪽)
한편, 한자로 “高句麗”나 “高麗”로 표기하는 것은 부차적인 사항이며 원래 발음은 둘 다 “가우리”로 해야 한다는 해석도 제기됩니다. 그리고 “가우리”의 뜻은 세상의 중심, 즉 중국(中國)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영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전에 만들어진 서양 지도를 보면 한반도가 “Cauli”나 “KAU-LI”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도가 많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할 것입니다.
본서에서는 추모(鄒牟)가 세운 나라, 왕건(王建)이 세운 나라, 그리고 이성계(李成桂)가 계승한 나라를 모두 한자로는 “高麗”로 표기할 것이며 발음은 “고려”로 정할 것입니다. 발음을 “고리, 코리, 가우리” 등으로 하지 않고 “고려”로 하는 이유는 한국인이게 익숙한 발음이 “고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高句麗”라는 한자 표기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高麗”로 통일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런 구분이 자칫 잘 못하면 고려제국(高麗帝國)의 계보(系譜)를 끊어버리는데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1-3] 일제 초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조중응(趙重應)이 고려신사(高麗神社) 편액에 굳이 “구(句)”자를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열도(列島)에 있는 고려신사(高麗神社)의 편액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고려신사는 추모(鄒牟)가 건국한 고려의 왕족 약광(若光)을 모신 신사로 동경(東京) 근처 히다카시(日高市)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려신사의 편액은 현재 고구려신사(高句麗神社)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신사의 정식 명칭은 고려신사(高麗神社)입니다. 일제 초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조중응(趙重應)이 이 신사의 편액을 썼는데 구(句)자를 억지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사의 정식 명칭대로 고려신사(高麗神社)로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후에 “고(高)”자와 “려(麗)”자 사이에 억지로 “구(句)”자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굳이 구(句)자를 집어넣은 이유를 저는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자신을 고려인(高麗人)이 아니라 조선인(朝鮮人)이라 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언급하겠지만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 열도(列島)는 고려(高麗)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고려(高麗)로부터 이탈해 새로이 건국한 근대일본국(近代日本國)은 이를 감추고 싶어 합니다. “구(句)”자를 집어넣음으로써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 고려(高麗)의 영향 하에 있었던 열도(列島)의 위상은 감출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열도(列島)에 남아 있는 고려(高麗)라는 지명과 명칭은 저 옛날 추모(鄒牟) 태왕(太王)이 건국한 고려(高麗)와만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와 정반대를 주장할 것입니다. 저는 추모(鄒牟) 태왕(太王)이 건국한 고려(高麗)는 왕건(王建) 황제(皇帝)가 계승하였고, 이어 이성계(李成桂) 대왕(大王)도 계승하였으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까지 열도(列島)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주장을 펼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계보(系譜)인 고려(高麗)를 5단계로 구분지어 사용할 것입니다. 5단계로 구분 짓는 기준은 천자(天子)에 대한 호칭의 변경입니다. 천자(天子)에 대한 호칭이 바뀐다는 것은 제국(帝國)의 체제가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추모(鄒牟)가 건국한 고려(高麗)의 천자(天子)에 대한 호칭은 태왕(太王)입니다. 그리고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高麗)의 천자(天子)에 대한 호칭은 황제(皇帝)입니다.
저는 추모(鄒牟)가 건국한 고려(高麗)를 “태왕 고려(太王 高麗)”라 칭할 것이며,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高麗)를 “황제 고려(皇帝 高麗)”라 칭할 것입니다. 발해(渤海)로 널리 알려진 대진국(大震國)도 고려(高麗)라는 국호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정식 국호는 대진국(大震國)이었음에 본서에서는 정통 고려(高麗)의 계보(系譜)에서 제외합니다. 물론 대진국이 태왕 고려(太王 高麗)의 후예이며 황제 고려(皇帝 高麗)로 이어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진국(大震國)의 계보에 관한 사항은 양계론(兩系論)에 대해 설명할 때 다루겠습니다. 저는 “황제 고려(皇帝 高麗)”가 열도(列島)의 여러 소국(小國)들을 세력권 하에 두어 “대왕 고려(大王 高麗)”로 이행하게 되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열도(列島)가 고려(高麗)로부터 이탈해 새로이 일본국(日本國)을 세움에 따라 고려(高麗)는 제국(帝國)의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때의 고려(高麗)를 저는 “국왕 고려(國王 高麗)”라 칭할 것입니다. 이 “국왕 고려(國王 高麗)”를 다시 제국(帝國)의 위상에 올려놓으려 했던 인물이 바로 고종(高宗) 황제(皇帝)이며 그가 새로이 세운 국가가 대한제국(大韓帝國)임을 주장할 것입니다.
고려(高麗)의 계보(系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왕 고려(太王 高麗), 황제 고려(皇帝 高麗), 대왕 고려(大王 高麗), 국왕 고려(國王 高麗), 그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 현재까지 이 계보(系譜)를 연장해 본다면 대한제국(大韓帝國)을 계승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이 계보(系譜)에 포함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보시고 황당하게 느끼실 독자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朝鮮)을 건국하지 않고, 고려(高麗)를 계승했다는 저의 주장을 보고 별 미친놈 다 있다고 생각하실 독자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읽어보시면 여러분들 중 일부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게 될 것이고, 상당수는 상식과 저의 주장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욕실에서 두명의 노예와~
집이나 모델로 직접 보내드립니다.
3시간-3만원 긴밤-5만원 횟수는 무제한!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깨끗히 입사
하루밤 사랑~ 100프로~ 전국 각지 모두 가능~!
시간제한없고 언제든지 만나실 오빠들
http://houseone2.com
에 오셔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맞습니다,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고 하는것이 아니고 왕건의 고려를 계승했다고 해야 맞는겁니다,그래야 우리 나라와 민족의 국통맥도 정확히 이어지는겁니다,,,
세계인들이 왜 코리아라고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