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로 불교 읽기 4
김연아 선수의 성공은 그녀가 처해 있었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더욱 빛난다. 그녀의 경쟁자였던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의 경우 여러 면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김연아 선수는 한국의 빙상연맹으로부터 기초적인 지원만을 받은 상태에서 개인의 힘만으로 훈련을 했었다.
피겨 스케이팅을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스케이트 한 벌 값이 2백만 원 정도인데 김연아 선수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의 경우 두 달 정도면 스케이트를 바꿔야 한다. 애써 구입한 스케이트가 발에 안 맞는 경우도 있다. 외국으로 전지 훈련도 가야 하고, 의상도 맞추어야 한다. 프로그램 구성 비용과 코치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월 5백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운동.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김연아 선수가 이 운동을 하던 당시 한국 피겨 스케이터로서 세계 대회에 입상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입상을 한다고 해서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여자 선수의 경우 제2차 성징이 드러나는 때인 사춘기 시절에 몸매가 현저하게 변한다는 점이다. 가슴이 커지고 둔부가 발달해서 몸이 무거워진 나머지 그때까지 훌륭했던 선수가 졸지에 평범한 선수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나이도 문제다. 어찌어찌하여 제2차 성징기를 잘 넘긴다고 해도 곧 나이에 따르는 핸디캡이 찾아온다. 몸이 둔해지는 것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스무 살이 넘으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어렵다. 열여섯 살부터 시니어 선수로 뛰게 되니까 김연아 선수가 은퇴한 스물네 살까지를 여자로서 피겨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나이로 보면, 그 기간은 고작 8년밖에 되지 않는다. 김연아 선수는 이런 불안정한 미래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에 더해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열악한 피겨 환경이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는 피겨 스케이팅 전용 빙상장이 없다. 피겨 스케이팅을 위한 빙상장의 빙질은 스피드 스케이팅 등 다른 종목의 빙상과는 달라야 한다. 더 부드러워야 하고 실내 온도 또한 따뜻한 편이 좋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같은 빙질의 얼음 위에서 모든 빙상 종목의 선수들이 훈련을 한다.
그마저도 시설이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시간 별로 쪼개어 이 시간 대에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 다른 시간 대에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훈련을 하는 식이다. 일반인이 다 이용한 뒤인 밤 12시 이후에 민간이 운영하는 스케이팅장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김연아 선수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천, 태릉, 잠실 등을 오가며 훈련을 했다.
그에 비해 경쟁자였던 일본으 아사다 마오 선수는 자신만을 위한 전용 연습장이 두 개나 갖고 있었고, 마오 선수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던 안도 미키 선수에게도 그녀만을 위한 빙상장이 하나 있었다. 그녀들이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는 동안 김연아 선수는 일반인과 섞여 훈련을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던 나에게 넘어야 할 또다른 산이 있었는데, 그것은 훈련장의 환경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훈련장으로 태릉 아이스링크가 주어져 있었지만 나는 빙질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라 되도록 국제대회 경기장의 빙질과 가장 비슷한 롯데 월드 아이스링크를 자주 찾았다.
그런데 그것이 놀이 시설이 있는 링크이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링크 주변에 몰려든 사람이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나를 향해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려대고,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져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연아야, 점프! 점프!’하고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며 집중력을 흐트리기도 했다. 내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온힘을 다해 스케이팅을 해도 시원찮을 때였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 나와 경쟁할 다른 선수들은 저 혼자 혹은 선수들끼리만 있는 링크에서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북받쳤다.”
삶은 이렇듯 어렵다. 쉬운 삶은 없다. 그리고 삶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노력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과 구별된 따로따로의 존재로서의 개별자이고, 따라서 내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는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개별자로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짐을 나 스스로 져야만 한다. 물론 부모, 형제, 친지, 친구 들의 도움을 받기는 한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은 ‘밖’에서의 도움일 뿐이다. ‘안’에서의 도움은 오직 내 스스로 나를 돕는 그것뿐이다.
피겨 스케이터로서 김연아 선수는 링크에 홀로 서 있을 때 그것을 가장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에서 응원하는 오천만 명의 사람들고, 나를 그동안 지도해준 코치들도, 나를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드디어 넓은 링크 위에 나 홀로 남겨졌다. 아무도 없는 빙판 위에서 나만이 스케이팅을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며 내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할 것이다 연기에 몰입하기 직전, 이 순간 만큼 소름끼치도록 외롭고 무서운 순간은 없다.”
비록 김연아 선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또한 그 느낌을 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 바로 이 진실의 다른 표현이며, 그러므로 만일 그것을 모르는 불제자라면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출가 직후 싯다르타 태자는 자신에게 왜 출가를 했느냐고 묻는 빔비사라 왕에게 말했다. “마침내 내가 죽는 그 날, 나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내 곁에 부모, 형제, 처자가 있다고 해도, 그들의 도움은 눈 못 보는 사람에게 등불을 대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이런 심정으로 싯다르타 태자는 자신 앞에 미리 예정되어 있는 죽음과, 그것으로부터 야기되는 온갖 번뇌를 쳐부수기 위해 출가를 감행했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로서, 한편으로는 부모, 형제, 처자를 사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그들과 딴 몸, 딴 마음을 가진 개별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