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사각어항에서 헤엄치다
전관표
나지막한 산 위로 해가 일찍 들어
오랫동안 마을 머리위에 앉아있다
험 험 헛기침 한번 하는 척
서산으로 느릿느릿 넘어가는 마을
양지말에는 문곡천이 가로질러 흐른다.
한때는 최고의 탄광이었던 마차를 돌아
마을 앞길에 이르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동네 청년들과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싱싱한 피라미들은 물살을 타고 오르고
까만 등짝은 햇빛에 익어 껍질이 벗겨져도
여름이 꼴딱 다 넘어갈 때까지 물가에 살았다.
큰 홍수가 나서 다리가 넘치는 때였는지
마을 꼭대기 집 아저씨가 제일 먼저
서울로 이사를 가더니 그 아래 아저씨도
아들 둘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살 갔다.
중국에서 고추를 수입해 온다고 걱정인데
덮친 격으로 탄저병으로 농사를 망친 해
텔레비전을 처음 가지고 있던 아저씨도
그 많은 논을 팔고 아래쪽으로 가버렸다.
그 많던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 저기
우리나라 곳곳으로 떠나 버리니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던
집들도 점점 낡아 쓰러져 마을도 낡아버렸다.
너라도 남아있어 달라는 듯 튼튼하게 지은
돌담 덕분에 아직 버티고 서있는 사각어항
강가에서 볼 수 없었던 빨강 금붕어가
우아한 꼬리지느러미를 맘껏 뽐내면
하루 종일 강을 뒤져 닮은 녀석이라도
잡으려고 씩씩 대었던 기억이 맴돌고 있다.
사각어항은 유리에 이끼가 끼었지만
지금이라도 담을 수 있을 어항의 절반
따뜻한 봄바람 살짝 넘어와 꾸벅 졸았을 거고
뜨거운 여름과 세찬 소나기를 담기도 했었고
노랗고 빨간 단풍잎 색깔별로 골라 담았을 거고
차가운 겨울과 하얀 눈을 담았을 텐데
아직도 담지 못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떠나있던 마을에 돌아와
흘러간 시간들을 붙잡아 넣어보련다.
우리의 화려한 시절이 헤엄치는
반짝거리는 사각어항의 시대에
밖을 볼 생각도, 볼 수도 없었지만
조그만 세상을 끝없이 돌아 다녔었다.
언제 우리의 어항이 버려졌는지
아니면 제 발로 뛰쳐나왔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 증발되어 버리고
조그만 손가락 지문은 지워져 가는데
하루해는 아침부터 어항에서 헤엄치다
젖은 몸이 마르기도 전에 뒷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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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말: 양지마을(어릴때는 양지말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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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표: 아송문학회 부회장 동강문학회 회원 강원문인협회 회원 한국 가곡작사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아시아문예 가곡 3집 섬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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