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 2000 기쁨이 할아버지 오성규 교우(메인 2) 나의 생일은 철이 들면서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알려주었기에 그게 내 생일이란걸 알게 되었고 나는 아무 기억이 없다. 정미소를 하던 외가집 꽤나 큰 아름드리 기둥이 있던 기와집 뒷방에서 어머님은 임신중독의 자간증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일찍이 예수님을 믿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할머님의 기도로 감자분만을 해서 세상에 나온 나의 출생이야기는 할머니 생전에 귀에 닳게 들어왔다. 그 다음은 내가 아버지로 탄생하던 날, 서울 종로에 있던 고려병원의 전신인 작은 개인병원에서 내 아내가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을 때 황태식 박사님은 경기도 광주에 처가댁에 일이 있으셔 출타하시고 레지던트만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애기가 막상 나올 때 자기 상급 레지던트 부인의 분만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그를 제치고 결국 내가 나의 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로의 생일은 내가 힘들여서 맞는 셈이 되었다. 많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예수님 제자로 태어난 Born Again의 날이 몇 년 몇 월 몇일이라고 하지만 내가 예수님 믿은 것은 말 배울 때 할머니가 기도를 하시면 한마디 빼지 않고 따라 반복을 했던 어린 날로 돌아가서 나는 Born Again 날이 없다. 이번에야 말로 내가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태어날 차례였다. 가만히 뒷짐지고 앉아서 나의 며느리가 아프다고 소리를 치다보면 애가 나올것이고 나는 점잖게 앉아서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은 그렇게 쉽지 않게 된 것온 보스톤에서 산전진료를 받다 여름방학으로 필라델피아에 온 아들과 며느리는 이곳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수소문해서 찾아보더니 마지막 달에 새로 의사를 찾기도 어렵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Group practice를 하기 때문에 정작 진통이 오면 그 group 중에 누가 분만올 맡올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니 망설여지는 눈치였다. 아마 정 안되면 집안에 대타를 할 수 있는 후보 선수가 있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의사들이 자기 가족은 치료를 안 하는 것이 상례이고 레지던트 할 때 자기 며느리의 아이를 받는 의사가 딱 한 사람 있었는데 좀 이상하게 보였던 기억이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산전진찰에서 저능아 검사가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아이 아무려나 감사히 받겠다고 그 검사도 안하고 쉽게들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감별하는 것도 원치 않고 있었다. 교육 TV방송에서 하루에도 서너명 환자의 분만과정을 보여주는데 날마다 앉아서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이미 분만과정을 졸업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오더니 이 세상에서 아버지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아버지가 분만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는 잠이 잘 안오고 생각지 않게 마음에 무거움을 느꼈다. 그래도 며칠 뒤에 그저 지금까지 받은 3300+ 의 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보통대로 대하자고 맘을 먹고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나와 나의 아내가 아이들을 기다릴 때는 별로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고 그저 덤덤하니 열달이 갔고 막상 분만 뒤에도 그렇게 좋아하고 특별히 예뻐한 것 같지 않았는데 요즘엔 준비할 것도 많고 얼마나 가슴 벅차게 기대를 하면서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정말 아버지 노릇 수준 이하로 했구나하고 미안하기도하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아들과 며느리의 아주 가까운 친구의 부인이 Seattle에서 며느리 분만하기 열흘 전쯤 분만을 했는데 난산 끝에 아이가 잘못된 소식이 와서 아들내외가 실망하고 울며 염려하더니 며느리의 진통이 아주 소식이 없어졌다. 기다리다 못해서 6월 30일 유도분만을 하기로 하고 병원에 가서 진통을 오게 했는데 다행이 진행이 잘되어서 힘만 주면 금방 분만할 2기에(2nd stage) 들어섰다. 그러나 웬걸 두 시간이 되어도 아이는 나오질 않았다. 어차피 뒷짐지고 쉽게 할아버지가 되긴 틀렸어도 평균정도로 쉬운 분만을 해주어야 옳은 건데 이제 걱정까지 하게 되었으나 이제 그만두겠다고 하기는 너무 늦고 30분만 기다렸다 괜히 Seattle 친구처럼 나쁜 결과롤 가져오느니 수술올 해야겠다고 하고있는데 가까스로 밀고 땡기다가 아이가 자연분만을 했다. 건강한 아이로 금방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마디 기도를 하고 한시간을 걸쳐서 붕합올 마쳤을 때 그래도 아내와 딸이 괜찮으시냐며 “수고하셨어요” 하고 위로해주었다. 8파운드 13온스는 한국아이로는 생각지 않게 커서 힘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나의 할아버지로의 생일은 다시 참 힘들게 된것이었다. 다행이 회복도 잘되고 손녀도 잘커가고 있고 아들이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Hannah라고 했고 한글로는 '기쁨’이라 하겠다고 해서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오! 기쁨”이다. 성경에 나오는 늘 기뻐하란 구절과 메시아의 오 기쁜 소식에도 잘 맞는 이름이어서 생각할수록 좋았다. 이 기쁨이가 자라서 항상 기뻐하며 세상과 교회와 이웃에 기쁨을 전해주고 하늘 나라의 기쁨을 이 세상에 소개하는 귀한 일꾼이 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아이가 될 것을 믿는다. 사람들이 할아버지,할머니가 되면 세상이 자기 손자손녀 귀엽단 이야기로 옆에서 보면 뭘 그리들 법석을 떠나했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내의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천국시민으로 태어나는 것 외에는 나에게 다른 자격으로 태어날 생일이 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