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밤 바닷가에 어디선가 감미로운 땅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닷가 모래사장 한가운데의 간이 무대가 있는 광장에서는 붉은 가로등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구경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모래가 밟히는 이 야외 홀에서의 그들의 복장은 경쾌한
반바지에 슬리퍼에서부터 잘 차려 입은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각양 각색이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앉아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하나의 별미였다. 밤바다를 보러 나온 관광객들에게 이 모습은 또 하나의 진풍경이었으리라.
이들은 해변 밀롱가 행사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땅게로스 들이다. 낮의 자유시간에는 물놀이를 즐기고 저녁에는 실내 홀에 모여서
땅고를 추다가 자정이 넘고부터는 아예 바닷가로 나와서 야외 해변 밀롱가를 즐기는 것이다. 탁 트인 하늘에 시원한 바닷바람,
파도소리, 백사장을 배경으로 구경꾼들과 어우러지는 이 바닷가 밀롱가는 해마다 열리는 이 행사의 백미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밤새 춤을 추고 있는 땅게로스들>
매년 여름이면 전국의 땅게로스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 행사는 부산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준비한 아마추어 행사로, 점차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스케일이 커져서 올해는 200명이 넘는 땅게로스들이 한자리에 모여 3박4일의 휴가를 즐겼다. 이 행사 뿐
아니라 1년이면 각 땅고 동호회들이 주최하는 여러 행사들이 땅게로스들을 전국 각지로 모여들게 한다. 그들은 기획에서 포스터,
행사 진행까지 모두 자체 회원들을 통해 만들어 낸다.
여느 기업체나 기획사가 아닌 한 아마추어 동호회가 이런 전국적인 행사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땅고 역사가 동호회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땅고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초이다. 1999
년 당시 방송쪽 일을 하고 있던 김성공씨는 새로운 방송 소재를 찾던 중, 평소 취미로 하던 춤을 모티브로 하고자 파트너인
이은주씨와 남미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인터넷에서 땅고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그는 그만 땅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서울에 돌아와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기반으로 모임을 만들고 강습을 시작한 그들은 아르헨티나 유명 댄서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워크샵을 개최하고 패시네이팅 탱고 공연단을 소개하여 국내에 초청하는 등 국내 땅고 보급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땅고를 추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밀롱가 역사 역시 이들과 함께 한다. 초창기의 밀롱가는 성균관대 앞 까페 "이노"를 주 1회
대여하여서 시작되었다. 2000년 말에 그들이 만든 커뮤니티를 위한 연습실을 홍대 앞에 마련하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연습실
밀롱가가 생겨났다. 본격적인 댄스 바(Bar)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2001년 홍대 앞의 한 살사바 "보니따(Bonita)"에서 매주 화요일 밀롱가를 개최하면서부터였고, 마침내 땅고
전문 바인 "땅고 오 나다(Tango O Nada)"를 2003년에 오픈하면서 땅게로스들에게 이제 매일 땅고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김성공씨의 소망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친근하게 땅고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동호회는 국내 최고 규모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전국구 동호회이면서 철저하게 아마추어를 지향한다. 그 이상이 필요한 사람은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프로페셔널 댄서가 아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레슨을 하지 않는다는 그는 1년에 한번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조이기 위해서 레슨을 한다. 이는 유행하는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 올 수 있는 전원 Café를 지어놓고 사는 게 꿈이라고 소박하게 말하는 그에게서는 인간내음이 물씬 난다.
이런 성품이 지금까지 땅고 역사를 이끌어 올 수 있는 강한 밑받침이 되어 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땅고인들의 성품을
이루어 내는 데 기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밀롱가가 끝난 후 뒷풀이에서 김성공씨와 필자>
인터넷 커뮤니티는 점차 대전, 대구와 부산으로 확산되어 마침내는 전국에 수많은 땅고 커뮤니티와 회원들이 땅고를 통해 새로운 일상의
활력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모든 정보와 활동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더 활발하게 전달되고 소통되는 게 특징이다. 더불어 전국에 여러 밀롱가들이 생겨나고 변화되며 발전하여 왔고, 수많은 크고 작은 땅고 행사들이 개최되어 전국의 땅게로스뿐 아니라 외국의 땅고인들과의 교류도 이끌어 내며 우리나라의 땅고 역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땅고를 시작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을 해 보라.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는 것에 놀라고, 생각보다 많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땅고는 생각보다 내 주변 가까이에 있다.